삶과 영성

신령성체, 내 마음의 제단

좋은생각으로 2025. 5. 8. 07:40

신령성체의 기도(CPBC 캡쳐)

 

'제단'은

주님의 말씀이 계신 곳에

주님을 위해 세워진

성소의 중심처이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라는 말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다. 

 

과연 제단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고 사르는 곳이니, 

참으로 거룩하고 신성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창세기의 제단

창세기에 처음 언급되는 제단은,

'새로운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뒤에

"주님을 위하여 쌓은 제단"이다.  

 

이때 노아는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친다.(창세 8,20). 

 

그러자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자손들 간에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창세 9,11)라는

계약을 맺으시고서,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 9,13)라고 말씀하신다. 

 

노아의 삶의 여정(창세기 3막)

3막: 노아의 삶의 여정 시대 배경 홍수부터 노아의 사망까지의 상황(창세기 6-9장)① 노아가 태어나다: BC 3898년② 노아의 아들 셈이 태어나다: BC 3396년 ③ 홍수가 노아 나이 600살에 일어나다: BC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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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새로운 삶의 여정'을 위해

가나안 땅 스켐의 성소에 도착 한 아브라함은(창세 12,6),

하느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라고 말씀하시자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처음으로 제단을 쌓는다(창세 12,7).

 

이처럼 제단은

계약 관계로 맺어진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영성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이

창세기를 비롯한 여러 성경 본문에 드러나고 있다,  

 

▶ 제단과 관련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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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창세 8,20)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창세 12,7)

 

25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이사악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그의 종들은 그곳에서도 우물을 팠다.(창세 26,25)

 

18 야곱은 파딴 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에 있는 스켐 성읍에 무사히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천막을 쳤다.

20 그는 그곳에 제단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다.(창세 33,18,20)

 

15 모세는 제단을 쌓아 그 이름을 야훼 니씨라 하고,

16 이렇게 말하였다.

“손 하나가 주님의 어좌를 거슬러 들리리니,

주님과 아말렉 사이에 대대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탈출 17,15-16)

 

24 너희는 나를 위하여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서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 제물,

그리고 양과 소를 바쳐라.

내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여 예배하게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너희에게 강복하겠다.

25 너희가 나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된다.

25 그리고 너희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제단 앞에서 너희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0,24-25)

 

“아카시아 나무로 제단을 만들어라.

길이는 다섯 암마, 너비도 다섯 암마로 하여 제단을 네모나게 만들고,

높이는 세 암마로 하여라.(탈출 27,1)

 

30 그때에 여호수아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여호 8,30)

제단이 가지는 함의  

아브라함이 스켐을 떠나

베텔의 동쪽의 산에 이르자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세우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니"(창세 12,8),

아브라함의 봉헌은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백성들에게 일러 주고(탈출 24,3)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한 다음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탈출 24,4)을 세운다. 

 

모세가 이리한 것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맺으신 계약이 

하느님의 현현으로 제단 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여호수아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여호 8,30)을 쌓고

"그 위에서 주님께 번제물을 올리고

친교 제물"(여호 8,31)을 바친 다음,

 

"율법서에 쓰인 대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축복과 저주를 읽어 주었다."(여호 8,34)

 

다시 말하여 여호수아의 이러한 행동은

비록 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지만,

약속의 땅은 물론 그들 자신까지도

'하느님의 소유'임을 모든 이민족들에게 천명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흔 해의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유다 백성들도

'새로운 보속의 삶'을 시작하면서

하느님께 번제물을 올릴 제단을 쌓고

아침저녁으로 번제물을 바치니(에즈 3,3),

 

이 역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민족들 앞에 천명한 것으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하느님과의 계약 이행을 지속한 것이다. 

 

제단을 쌓고 성전 기초를 놓다(BC 538/7) 에즈 3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연대별 주요 행적다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다Restoration of the Altar Restoration of Worship. 전례 복원(RNAB) 3 1일곱째 달이 되었다. [▶BC 538년]이스라엘 자손들은 저마다 제 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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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제단

참으로 제단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기에

그 위에서 바치는 제물과 번제물은

거룩한 예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는 백성과

제물을 살라 바치는 사제들이

하느님의 마음에 아니 들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다시 쌓은 이유이다. 

카르멜 산 수도원의 제단(제단 받침대가 돌로 되어 있다)

엘리야가 그리하였기에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찼지만(1열왕 18,35),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물에 흠뻑 젖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을 핥아 버릴 수 있었던(1열왕 18,36) 것이다. 

 

다시 말하여 참된 제단이란

주님의 이름으로 쌓은 제단이다. 

 

▶엘리야가 쌓은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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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1열왕 18,32-33.35)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1열왕 18,38)

거룩한 제단은 하느님의 현현

제단은 사람이 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해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듯이(창세 12,7)

하느님의 직접적인 현현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현현은 무엇인가?

훗날 사탄의 부추김에 넘어간 다윗의

하느님을 거스른 인구 조사로(1역대 21,2)

이스라엘에 흑사병이 창궐하자(1역대 21,14),

백성에게 내린 재난을 거두어 달라고

하느님께 다윗이 청원하니(1역대 21,17)

주님의 천사가 다윗에게

"주님을 위한 제단을 세워야 한다."(1 역대 21,18)라는 말을 전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의 천사를 통하듯이

간접적인 현현으로도 제단을 세우게 하신다. 

 

그러하기에

현시대의 가톨릭 성당의 성전에 있는 제단은

주님의 현현 바로 그 자체이며,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전능하신 주님의 현현 덕분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2마카 3,30). 

 

▶주님을 위한 제단(1역대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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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주님의 천사가 가드를 시켜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올라가서

주님을 위한 제단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게 하였다.(1역대 21,18)

성요셉 성당 지하(나자렛)

 

거룩한 제단을 부인하는 거짓 행위자들에게 내릴 심판

약속의 땅에서

여호수아가 하느님을 위해 제단을 쌓은 뒤로

유다의 사악한 자들에 의해 

제단의 대상과 목적이 변질된다. 

그것은 제단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위해 세워졌다는 것이다. 

 

▶거짓 제단과 관련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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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1열왕 12,32)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의 어떤 임금보다 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32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 신전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세웠다.(1열왕 16,30.32)

 

11 그래서 우리야 사제는 제단을 세웠다.

아하즈 임금이 다마스쿠스에서 보내온 것에 따라,

그가 돌아오기 전에 그대로 만들었다.(2열왕 16,11)

 

므나쎄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자기 아버지 히즈키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짓고,

바알 제단들을 세웠다.

또 이스라엘 임금 아합이 하던 대로,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모든 군대를 경배하고 섬겼다.

5 그는 주님의 집 두 뜰에 하늘의 모든 군대를 위하여 제단들을 지었다. (2열왕 21,3.5) 

성경 역사로,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분열되어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결국에는 유다의 멸망과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주님을 위한 제단을

자신들 마음대로 제물을 바치고 사르는 곳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거짓 행위자들에게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는 말씀에 따라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라는

예수님의 무한한 질책이 내릴 것이다.  

주님 무덤 성당(골고타 언덕의 제단, 예루살렘)

따라서 이러한 거짓 행위자들에게는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5)라는 말씀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보편 교회의

가톨릭 신앙인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유사교와 관련된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거짓 교리를 내세워

입으로만 주절거리면서

제물을 봉헌하는 제단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의

제단에 대한 말씀을 부인하는 신성 모독이라는 사실이다.  

 

▶ 예수님의 제단에 대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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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마태 23,18-22)

득달같이 다가오는 주님의 날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6,9)

 

"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묵시 6,10)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묵시 6,11)

 

하느님께서,

조금 더 쉬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쉬어야 하는가?

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 산 쳐다보듯 머리 굴리며 미몽 속에 헤매야 하는가?

되쟎게 떠오른 생각을 입으로 주절거려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아브라함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 자식들과 뒤에 올 자기 집안에 명령을 내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려고 한 것이다.”(창세 18,19)

 

이 시대, 왜 정의를 부르짖는가?

에필로그마카베오기는 주로 BC 175년경부터 134년경까지의 40여 년 간의 기록으로,마카베오기부터 약 1300여 년 전에 발생한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40년 간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마카베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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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여

하느님께서 보편 교회의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식들과 뒤에 올 우리 자손들에게 명령을 내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지 이천여 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어찌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라고 하시듯,

너희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너희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라고 하시지 않겠는가?

 

그러하기에 스바니야가 외쳤고

지금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날(스바 1,14-18)

"주님의 위대한 날이 가까웠다.

가까울뿐더러 득달같이 다가온다.

주님의 날에 들리는 소리는 쓰라리니

용사조차 비명을 지르리라."(스바 1,14)

 

"그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난의 날

파멸과 파괴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름과 먹구름의 날이다.(스바 1,15)

 

"견고한 성읍과 드높은 망대를 향하여

뿔 나팔 소리와

전쟁의 함성이 터지는 날이다."(스바 1,16)

 

"내가 사람들에게 환난을 보내리니

그들은 눈먼 이들처럼 걸으리라.

그들이 주님에게 죄를 지은 까닭이다.

그들의 피는 먼지처럼 쏟아지고

그들의 살은 오물처럼 쏟아지리라."(스바 1,17)

 

"주님의 분노의 날에

그들의 은도 그들의 금도 그들을 구하지 못하리라.

온 땅은 주님의 열정의 불에 타 버리리라.

주님은 세상의 모든 주민에게

정녕 무서운 파멸을 내리리라."(스바 1,18)

주님 탄생 예고 성당(나자렛)

거룩한 제단의 외침

스바니야 예언자의 외침을 듣고도(스바 1,14-18),

묵시록에서 쉬라고 하였으니(묵시 6,11)

잠차코 묵묵히 쉬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쉬어야 하는 이유를 알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쉬라고 한 것이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선한 사람들이

사형을 받아야 마땅할(레위 20,27)

영매들과 점쟁이들을 찾아다니고(레위 19,31)

거짓 교사들에 의해 세뇌당하여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고 있으니, 

선한 양들을 구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묵시록이 말하는 죽임을 당할 동료와 형제들인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는가?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은 뒤로도

수많은 제단이 세워지고

하느님께 제물이 바쳐지고 있지만

수 천년이 지난 이 시대에 들어서도

스바니야 예언자의 주님의 날에 대한 외침은 아직도 처절하다.  

 

이러한 스바니야의 외침이

요한 묵시록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니, 

'하느님 분노의 일곱 대접'(묵시 16,1)을 가진 천사 가운데

"셋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강과 샘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묵시 16,4)

 

"그때에 나는 물을 주관하는 천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분,

거룩하신 분 이렇게 심판하시니 주님께서는 의로우십니다. (묵시 16,5)

저들이 성도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쏟았으므로

주님께서 저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저들은 이렇게 되어 마땅합니다.”"(묵시 16,6)

 

"이어서 제단이 말하는 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십니다."”(묵시 16,7)

 

신령성체로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약속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제단'은  

예루살렘의 성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 계약에 의해 가슴에 넣어진 말씀이

새겨진 마음이 있는(예레 31,33)

내 안의 성전에도 있다. 

 

성체조배

성체조배, 이 자료는 성 십자가의 요한의 저서의 역서(방효익 바오로 신부)와 묵상기도와 성체조배(박종인 라이문도 신부, 가르멜수도회)를 참조하여 편집하였음을 밝힌다. 참고로 십자가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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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현대의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에게도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바빌론 일흔 해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쓰인 대로

하느님께 번제물을 올릴 제단을 쌓은 것은(에즈 3,2)

자신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하느님의 약속을 이행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보편 교회 신앙인들도

항상 이를 기억하면서,

미사성제는 물론

주님을 위해 쌓은

내 안의 제단 앞에서의 신령성체를 통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인

정의와 공정을 이행하여(창세 18,1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마태 5,9)

새 계약으로 드러날(예레 31,33ㄱ)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오병이어 성당의 제대(카파르나움, 이스라엘)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ㄴ)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예레 31,34)

 

▶신령성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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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성체 (神領聖體) [영] spiritual communion

실제적인 영성체가 아니라,

체를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에서 마음으로부터 영성체하는 것을 말한다.

신령성체는 그날 하루 동안의 모든 행위를 신앙과 사랑으로써 할 수 있게 하기에

교회는 모든 신자들에게 신령성체를 적극 권장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성사에 관한 교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었다.

"신령성체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행위를 애덕으로써 가능케 하고

천상 양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생생히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자이며

이들은 성체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 (⇒) 영성체 (가톨릭대사전)

 

<신령성체의 기도>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인용 '묵주의 9일 기도, 영광의 신비 5단' 중에서>


 

<성 알퐁소 데 리구오리 St. Alphonsus Maria de Liguori

영적 영성체를 위한 기도 1. 

신령성체의 기도(The Spiritual Comm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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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iritual Communion
My Jesus, 

I believe that You are present in the Most Blessed Sacrament.
I love You above all things,
and I desire to receive You into my soul.
Since I cannot now receive you sacramentally,
come at least spiritually into my heart.
I embrace You as if you were already there,
and I unite myself wholly to You.
Never permit me to be separated from You.


(Saint Alphonsus Ligu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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