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자들이 서로 혼란을 부추기다(1마카 11)
마카베오기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안에 숨어 있는
잔혹함과 더러움에 치를 떨게 될 것이다.
마카베오기는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마카베오기를
단순히 유다라는 민족의 투쟁사로 읽어서는 안될 것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건너는 과정에
놓여 있는 마카베오기,
단순히 역사서가 아닌
정의와 공정이라는 말씀 안에서,
필자가 마카베오기를 풀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가고자 한다.
또한 관련된 역사적 배경도
인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마카베오기와 관련된 게시글들을 읽으면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인
정의와 공정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정으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마카베오기가
보편 교회에 던지는
일상적인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마카베오기 상권 11장 본문
데메트리오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동맹을 맺다
Alliance of Demetrius and Ptolemy(NAB)
Alliance of Ptolemy and Demetrius II.(RNAB)
11 1이집트 임금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대와 수많은 배를 한데 모아, 알렉산드로스 Alexander I Balas[BC 150/152-145] 왕국을 속임수로 점령하여 자기 왕국에 합병시키려고 하였다. 2그가 평화의 말을 하며 시리아 Syria로 나아가니, 그곳 성읍 주민들이 성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였다. 그가 자기의 장인이므로 그를 맞이하라고 알렉산드로스 임금이 명령하였던 것이다.
3 [이집트 임금]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 Ⅵ Philometor{BC 180-145] 는 성읍에 들어갈 때마다 각 성읍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4그가 아스돗에 가까이 이르자, 사람들은 불에 타 버린 다곤 신전, 폐허가 된 아스돗과 그 주변, 내던져진 주검들과 요나탄이 전쟁에서 불태워 죽인 주검들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가 가는 길에 그 주검들을 쌓아 놓았던 것이다. 5그들은 임금에게 요나탄이 한 일들을 낱낱이 일러바치며 그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잠자코 있었다. 6요나탄 Jonathan 은 야포 Joppa 에서 임금을 성대하게 맞았는데,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을 거기에서 묵었다. 7요나탄은 임금과 함께 엘레우테로스Eleutherus 라고 불리는 강까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8프톨레마이오스 P. Ⅵ Philometor 임금은 바닷가의 셀레우키아 Seleucia-by-the-Sea 에 이르기까지 해안 성읍들을 차지한 뒤, 알렉산드로스 A. I Balas 를 치려고 사악한 음모를 꾸며 나아갔다.
9그리고 데메트리오스 Demetrius Ⅱ Nicator [BC 146-138] 임금에게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 서로 계약을 맺읍시다. 알렉산드로스가 데리고 있는 내 딸을 임금님에게 주겠습니다. 임금님의 부왕이 차지하였던 왕국을 다스리십시오. 10알렉산드로스가 나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딸을 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11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을 탐내어 이렇게 그를 비난하였다. 12그러고 나서 자기 딸을 데려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와 사이가 멀어지고 그 둘의 적개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13그 뒤에 프톨레마이오스 P. Ⅵ Philometor 는 안티오키아 Antioch 로 들어가 아시아의 왕관 crown of Asia 을 썼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이집트와 아시아의 왕관을 둘 다 머리에 쓰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죽다
Deaths of Alexander and Ptolemy(NAB)
14킬리키아 Cilicia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 때문에 그곳에 가 있던 알렉산드로스 A.ⅠBalas 임금은, 15이 소식을 듣고 프톨레마이오스 P. Ⅵ Philometor 와 싸우러 진군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도 강력한 병력을 이끌고 나와 알렉산드로스에게 맞서 그를 패주시켰다. 16알렉산드로스는 피신처를 찾아 아라비아 Arabia 로 달아났다. 이렇게 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임금이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내었다. 17그때에 아라비아 사람 잡디엘 Arab Zabdiel 이 알렉산드로스의 목을 베어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보냈다. 18그러나 사흘 뒤, 프톨레마이오스 임금도 죽고 요새에 있던 그의 부하들도 그곳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19그리하여 데메트리오스가 백육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BC 146/145년] .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와 동맹을 맺다
Pact with Demetrius(NAB)
Alliance of Jonathan and Demetrius II.(RNAB)
20그 무렵에 요나탄은 예루살렘의 성채를 공격하려고, 유다인들을 소집하고 그곳을 공격할 무기를 많이 만들었다. 21그런데 제 민족을 미워하는 변절자 몇이 임금에게 가서, 요나탄이 성채를 포위하였다고 보고하였다. 22그 보고를 들은 임금은 화를 내었다. 그는 보고를 듣자마자 출정하여 프톨레마이스 Ptolemais 로 갔다. 그리고 요나탄에게 포위를 풀고, 되도록 빨리 프톨레마이스에서 만나 상의하자고 편지를 썼다.
23그러나 요나탄은 그러한 제의를 듣고도 포위를 계속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사제들을 뽑아, 24은과 금과 옷, 그 밖에도 많은 선물을 가지고 프톨레마이스로 임금을 찾아갔다. 그러자 그는 임금의 호감을 샀다. 25그때에 백성 가운데 간악한 자들 몇이 그를 고발하였다. 26그러나 임금은 선왕들이 한 것처럼 그를 대하고, 자기의 모든 벗 앞에서 그를 높여 주었다. 27임금은 또 그의 대사제직과 이전의 명예로운 직책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그를 첫째가는 벗들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28그러자 요나탄은 유다는 물론 사마리아의 세 구역에서 걷는 세금도 면제해 달라고 임금에게 청하면서, 그 대신에 삼백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29임금은 그 청을 받아들이고 이 모든 일과 관련하여 요나탄에게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써 주었다.
30“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요나탄 형제와 유다 민족에게 인사합니다. 31우리가 여러분에 관하여 우리 친족 라스테네스 Lasthenes 에게 써 보낸 편지의 사본을 당신들에게도 써 보내니 받아 보십시오. 32‘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아버지 라스테네스 father Lasthenes 에게 인사드립니다. 33우리의 벗이며 우리에게 의무를 다하는 유다 민족이 선의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을 잘 대해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4우리는 유다의 영토와 아패레마 Aphairema, 로드 Lydda, 라마탬 Ramathaim 세 지역을 그들의 땅으로 인정합니다. 이 세 지역은 그 주변 모든 지방과 더불어 사마리아에서 유다에 편입된 곳으로, 전에는 임금이 해마다 그 땅의 소출과 과일에 대하여 세를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에게 바치는 이 세금을 예루살렘에서 희생 제사를 지내는 모든 이에게 면제합니다. 35또 그들이 십일조에서 우리에게 바치는 다른 조세들과 그 밖의 세금들, 그리고 염전 세와 왕관 세 등 이 모든 것도 이제부터 그들에게 면제합니다. 36이 결정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지금부터 영원히 취소될 수 없습니다. 37이제 이 편지의 사본을 만들어 요나탄에게 주어서, 거룩한 산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게 배려해 주십시오.’”
트리폰이 흉계를 꾸미다
The Intrigue of Trypho(NAB)
The Intrigue of Trypho.(RNAB)
38데메트리오스 Demetrius Ⅱ Nicator [BC 146-138] 임금은 자기의 통치 아래 나라가 평온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맞서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른 나라 섬들에서 모집해 온 외인부대만 남기고, 모든 군대를 해산시켜 저마다 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선왕들을 모셨던 군대는 모두 그를 미워하였다. 39그러자 전에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트리폰 Trypho이 모든 군대가 데메트리오스에게 불평한다는 것을 알고, 알렉산드로스 Alexander I Balas[BC 150/152-145] 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Antiochus VI Dionysus[BC 145-142] 를 키우고 있는 아라비아 사람 이말쿠에 Imalkue 에게 갔다. 40그리고 안티오코스가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임금이 될 수 있도록, 그를 자기에게 넘겨 달라고 이말쿠에에게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데메트리오스가 해 온 모든 일과 그의 군대가 그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를 도와주다
Jonathan Aids Demetrius(NAB)
Jonathan Aids Demetrius II.(RNAB)
41요나탄은 데메트리오스 Demetrius Ⅱ Nicator[BC 146-138]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루살렘 성채의 군대와 다른 요새들의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이 줄곧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2그러자 데메트리오스가 사람을 보내어 요나탄에게 이러한 말을 전하였다. “나는 귀하와 귀하의 민족을 위하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귀하와 귀하의 민족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하겠습니다. 43그런데 지금 나의 모든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나와 함께 싸워 줄 병사들을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44그래서 요나탄은 용맹한 병사 삼천 명을 안티오키아 Antioch 로 그에게 보냈다. 그들이 오자 임금은 그들의 도착을 반겼다.
45그 성읍 주민들은 임금을 없애려고 성읍 한복판에 십이만 명이나 모였다. 46그리고 임금이 대궐로 달아나자 성읍의 큰길들을 차지하고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47임금은 도와 달라고 유다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모든 유다인이 바로 그에게 집결하였다가 성읍으로 흩어져 나가, 그날로 그곳 주민 십만 명을 죽이고 48성읍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그날 많은 전리품을 거두고 임금도 구하였다. 49유다인들이 저희 뜻대로 성읍을 장악한 것을 보고 사기를 잃은 성읍 주민들은 임금에게 이렇게 간청하며 부르짖었다. 50“저희와 화해해 주십시오. 유다인들이 저희와 성읍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51그러고 나서 그들은 무기를 던지고 화친을 맺었다. 유다인들은 임금과 왕국의 모든 사람 앞에서 영예를 얻고 온 왕국에 이름을 떨친 다음,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52이렇게 하여 데메트리오스 임금은 자기 왕좌에 다시 앉게 되고, 나라는 그의 통치 아래 평온해졌다. 53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모든 약속을 어겨 요나탄과 사이가 나빠졌다. 데메트리오스 D. Ⅱ Nicator 는 요나탄이 자기에게 베푼 호의에 보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몹시 괴롭혔다.
요나탄이 트리폰과 동맹을 맺다
Alliance with Trypho(NAB)
Alliance of Jonathan and Antiochus VI.(RNAB)
54이러한 일이 있은 뒤, 트리폰 Trypho 이 나이 어린 안티오코스와 함께 돌아왔다. 안티오코스 Antiochus VI Dionysus[BC 145-142] 는 임금이 되어 왕관을 썼다. 55데메트리오스가 해산시킨 모든 군사가 안티오코스에게 모여들어 데메트리오스와 맞서 싸우니, 그가 패배하여 달아났다.
56트리폰 Trypho 은 코끼리들을 차지하고 안티오키아 Antioch 를 점령하였다. 57그 뒤에 나이 어린 안티오코스 Antiochus VI Dionysus 가 요나탄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나는 귀하의 대사제직을 인정하고 귀하를 네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하며 임금의 벗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다.” 58그리고 요나탄에게 금 그릇과 식기들을 보내고, 황금 잔으로 마실 수 있는 권리와 자주색 옷을 입고 금 죔쇠를 찰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59그리고 그의 형 시몬 Simon 을 ‘티로의 사닥다리 길 Ladder of Tyre’ 에서 이집트 국경까지 이르는 지역의 총독 governor 으로 임명하였다.
Campaigns of Jonathan and Simon.(RNAB)
60요나탄은 길을 떠나 유프라테스 강 서쪽 West-of-Euphrates 지방과 성읍들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시리아의 모든 군대가 그에게 모여 와 동맹군이 되었다. 그가 아스클론 Ashkalon 에 가자 그 성읍 주민들이 그를 성대하게 맞이하였다. 61거기에서 다시 가자 Gaza 로 갔는데 그곳 주민들은 성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요나탄은 그곳을 포위한 다음, 그 주변 마을들을 불태우고 약탈하였다. 62가자의 주민들이 요나탄에게 탄원하였으므로, 요나탄은 그들과 화해하고 그곳 우두머리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지방을 지나 다마스쿠스 Damascus 까지 갔다.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와 싸우다
War with Demetrius(NAB)
63그때에 요나탄은 데메트리오스 D. Ⅱ Nicator[BC 146-138] 의 장수들이 자기의 직위를 박탈하려고 큰 군대를 이끌고 갈릴래아 Galilee의 카데스 Kadesh 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64요나탄은 자기 형 시몬을 나라 안에 남겨 두고 그들과 싸우러 나섰다. 65시몬은 벳 추르 Beth-zur 를 향하여 진을 치고 여러 날 그곳을 공격하며 봉쇄하였다. 66이윽고 그들이 그에게 화해하자고 탄원하였으므로 그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내쫓아 그 성읍을 차지하고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67요나탄과 그의 군대는 겐네사렛 호숫가 waters of Gennesaret 에 진을 치고, 아침 일찍 하초르 Hazor 평야로 진군하였다. 68그러자 이민족들의 군대가 평야에서 그를 맞아 싸웠는데, 그들은 산에 복병을 숨겨 두고 요나탄과 정면으로 맞섰다. 69복병들이 매복 장소에서 튀어나와 싸움에 가담하자, 70요나탄의 군사들이 모두 달아나고, 압살롬 Absalom 의 아들 마타티아스 Mattathias 와 칼피 Chalphi 의 아들 유다 Judas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군대의 장수였다. 71요나탄은 자기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뿌리며 기도하였다. 72그러고 나서 적군과 싸우러 돌아가 그들을 무찌르자 그들이 달아났다. 73달아났던 요나탄의 군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 돌아와, 적의 진영이 자리 잡은 카데스 Kadesh 까지 그와 함께 추격하여 그곳에 진을 쳤다. 74그날에 이민족들의 군대에서 죽은 사람이 삼천 명가량 되었다. 요나탄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마카 11장 상황: 그리스력 167년(BC 146/145년)
데메트리오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동맹을 맺다
Alliance of Demetrius and Ptolemy(NAB)
Alliance of Ptolemy and Demetrius II.(RNAB)
11 1이집트 임금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대와 수많은 배를 한데 모아,
알렉산드로스 Alexander I Balas[BC 150/152-145] 왕국을 속임수로 점령하여
자기 왕국에 합병시키려고 하였다.
2그가 평화의 말을 하며 시리아로 Syria 나아가니,
그곳 성읍 주민들이 성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였다.
그가 자기의 장인이므로 그를 맞이하라고 알렉산드로스 임금이 명령하였던 것이다.
3프톨레마이오스는 Ptolemy Ⅵ Philometor{BC 180-145] 성읍에 들어갈 때마다
각 성읍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4그가 아스돗에 가까이 이르자,
사람들은 불에 타 버린 다곤 신전,
폐허가 된 아스돗과 그 주변,
내던져진 주검들과 요나탄이 전쟁에서 불태워 죽인 주검들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가 가는 길에 그 주검들을 쌓아 놓았던 것이다. [11,4] 1마카 10,84
[11,4 관련 본문]
[11,4] 1마카 10,84
84 요나탄은 아스돗과 그 주변 성읍들을 불태우고 거기에서 전리품을 거둔 다음,
다곤 신전과 그곳으로 피신한 자들을 불로 태워 버렸다.(1마카 10,84)
5그들은 임금에게 요나탄이 한 일들을 낱낱이 일러바치며 그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잠자코 있었다.
6요나탄은 Jonathan 야포에서 Joppa 임금을 성대하게 맞았는데,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을 거기에서 묵었다.
7요나탄은 임금과 함께 엘레우테로스라고 Eleutherus 불리는
강까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1,7 주석] 엘레우테로스
[11,7] 엘레우테로스:
요빠에서 북쪽으로 200마일 떨어진 곳, BC 2세기에는 코엘레시리아의 북쪽 경계였다.
8프톨레마이오스 P. Ⅵ Philometor 임금은
바닷가의 셀레우키아에 Seleucia-by-the-Sea 이르기까지 해안 성읍들을 차지한 뒤,
알렉산드로스를 A. I Balas 치려고 사악한 음모를 꾸며 나아갔다.
[11,8 주석] 바닷가의 셀레우키아
[11,8] 바닷가의 셀레우키아
오론테스 강 어귀에 위치한 항구 도시.
▷엘레우토레스 강, 바닷가의 셀레우키아(셀레우키아 피에리아)
9그리고 데메트리오스 Demetrius II Nicator [BC 145-138 / 129-125] 임금에게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 서로 계약을 맺읍시다.
알렉산드로스가 데리고 있는 내 딸 [☞ 클레오파트라 테아]을 임금님에게 주겠습니다.
임금님의 부왕이 차지하였던 왕국을 다스리십시오.
10알렉산드로스가 나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딸을 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11,10 주석] 알렉산드로스가 나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딸을 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11,10] 알렉산드로스가 나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딸을 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알렉산더의 친구인 암모니우스 Ammonius 가
프톨레마이오스를 암살하려고 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선동자라고 주장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을 얻으려고 그를 중상모략했다(11절).
11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을 탐내어 이렇게 그를 비난하였다.
12그러고 나서 자기 딸 [☞ 클레오파트라 테아] 을 데려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와 사이가 멀어지고
그 둘의 적개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와의 혼인(1마카 10,58)
[관련 본문]
57 그 뒤 프톨레마이오스는 백육십이년에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를 데리고 이집트에서 나와 프톨레마이스로 갔다. 58알렉산드로스 임금이 그를 영접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를 알렉산드로스에게 넘겨주고, 임금들이 하는 대로 프톨레마이스에서 매우 호화로운 혼인 잔치를 벌였다.(1마카 10,58)
[10,57-58 주석]
그리스력 162년: BC 151/150년.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 테아, 당시 15세 정도였다. 그녀는 나중에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와 혼인했고, 그보다 나중에는 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와 혼인했다. 필리스티아 해안에 있는 프톨레마이스(아코)는 중립 지역이었다.(RNAB 주석)
[시대 상황]
기원전 152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와 갈등을 빚었던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VI 필로메토르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를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 에게 대항하도록 선택하여, 군대와 장교를 보내 그를 지원했다.
그리고 기원전 150년에 알렉산드로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승리했을 때,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는 동맹의 보증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딸을 요청했다. 두 임금은 호화로운 의식 속에서 프톨레마이스(아코)에서 만났고,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오파트라와 혼인했다. 이 혼인으로 안티오코스 VI 디오니소스라는 아들이 태어났다.(wikipidia 2025.1)
▷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와의 혼인(1마카 11,12)
[관련 본문]
11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을 탐내어 이렇게 그를 비난하였다. 12그러고 나서 자기 딸을 데려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와 사이가 멀어지고 그 둘의 적개심이 드러나게 되었다.(1마카 11,12)
[시대 상황]
BC 147년, 데메트리우스 I 소테르의 아들 데메트리우스 II 니카토르가 킬리키아를 침략했다.
2년 후인 BC 145년에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는 군대를 시리아로 데려왔는데, 표면적으로는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가 침략자들과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셀레우코스 해안 도시에 수비대를 배치한 그는 결국 안티오키아를 점령함으로써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를 완전히 배신했다. 그곳에서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 는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재회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새로운 정치 목적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와 이혼하고 대신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와 혼인했다.
혼인 계약에는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가 데메트리우스 II 니카토르가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로부터 왕좌를 차지하도록 도울 것이며, 그 대가로 이집트는 안티오코스 3세가 기원전 200년에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BC 204-180)로부터 빼앗은 이후로 셀레우코스 영토가 된 코일레-시리아 속주를 되돌려받을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I 에피파네스(발라스)는 킬리키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집으로 돌아와 안티오키아 근처의 오에네파라스 Oeneparas 강 평야에서 프톨레마이오스와 데메트리오스에 맞섰다.
이어진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패배했고 프톨레마이오스도 너무 심하게 부상을 입어 며칠 후 사망했다.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는 이집트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시리아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든 수비대를 가자까지 몰아내거나 학살하여 그 속주에 대한 취약한 셀레우코스의 지배권을 회복했다.
시리아인들은 그의 아버지 데메트리오스 I 소테르에 대한 적대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는 BC 144년 안티오키아에서 반란에 직면했다.
데메트리오스는 숙청을 실시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불만을 억누르는 대신 오히려 악화시켰다.
알렉산드로스의 전 장군이자 안티오케아 Antiochene 반란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디오도투스 트리폰은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첫째 아들인 안티오코스 VI 디오니소스를 납치하여 코일레-시리아의 분리 왕국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BC 142/141년에 디오도투스 트리폰은 소년인 안티오코스 VI 디오니소스를 살해하고 자신을 임금이라고 선언했다.
이 잔혹한 내전 기간 동안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데메트리오스 II 니카도르는 셀레우코스(V 필로메토르), 안티오코스(VIII 그리푸스), 라오디케라는 딸 등 최소한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wikipidia 2025.1)
▷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안티오코스 VII 시데테스의 혼인(1마카 15,1 참조)
[관련 본문] 1 데메트리오스 임금의 아들 안티오코스 [VII 시데테스]가 바다의 섬에서, 유다인들의 사제이며 영주인 시몬과 온 민족에게 편지를 보냈다.(1마카 15,1)
[시대 상황]
BC 139년,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는 파르티아 왕국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고, 파르티아 왕국은 그를 기원전 129년까지 포로로 잡아두었다. 디오도투스 트리폰은 클레오파트라 테아가 피난처를 찾은 피에리아 Pieria의 셀레우키아 Seleucia를 제외한 모든 셀레우코스 왕국을 정복할 기회를 잡았다. 그녀는 데메트리우스 II 니카토르의 남동생인 안티오쿠스 7세 시데테스를 불러 그녀와 혼인하여 새로운 임금이 되기를 제안했다. 제안을 수락한 안티오쿠스 7세 시데테스는 BC 138년에 디오도투스 트리폰을 물리치고 죽여 BC 152년부터 계속되어 온 내전을 종식시켰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안티오쿠스 7세 시데테스 임금과 안티오코스 9세 키지케누스라는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다른 아이들의 이름은 불확실하다. 알렉산드로스 II 자비나스가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세 번째 남편은 유프라테스 강 서쪽 왕국에서 셀레우코스의 권위를 회복했다. BC 134년에서 130년 사이에 그는 전임자들이 파르티아에 빼앗긴 모든 총독령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파르티아의 임금 프라아테스 2세 Phraates II는 여동생 로도구네 Rhodogune 와 혼인했던 데메트리우스 II 니카토르를 풀어주고 시리아로 보내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형제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안티오쿠스 VII 시데테스가 후퇴하게 되었다. BC 130/129년 겨울에 프라아테스 2세 Phraates II는 엑타바네 Ectabane 근처에서 매복 공격을 가해 안티오쿠스 VII 시데테스를 죽였지만,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는 파르티아 사람들이 그를 구출하기 전에 자신의 왕국에 들어갔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데메트리우스 II니카토르를 평화롭게 맞이했지만,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의 아들인 안티오코스 9세세를 임금의 직접적인 손이 닿지 않는 키지쿠스 Cyzicus로 보내는 예방 조치를 취했다. 그녀는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가 파르티아인 아내를 맞아서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비밀리에 분노했다고 한다.
BC 128년,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는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2세(Philometor Soteira)가 그녀의 형제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피스콘과 계속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이집트로 군대를 보냈다. 그는 그의 병사들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펠루시온 Pelousion 근처에서 후퇴해야 했고, 당시 안티오키아에 있던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그에게 반기를 들고 아들 안티오코스 IX 키지케누스를 임금으로 세웠다.
같은 해, 안티오키아는 알렉산더 2세 자비나스에게 점령당했다. 알렉산더 2세 자비나스는 알렉산드로스 I 발라스의 거짓 자식으로, 프톨레마이오스가 군대와 함께 시리아에서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와 전쟁을 벌이도록 보냈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도성에서 도망쳐 아마도 20년 전에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와 혼인했던 프톨레마이스로 갔을 것이다.
데메트리오스 II 니카토르가 알렉산드로스 II 자비나스와 싸운 BC 128년에서 125년 사이에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아마도 데메트리오스가 낳은 두 아들 셀레우코스 V 필로메토르와 안티오코스 VIII 그리푸스와 함께 프톨레마이스에 머물렀을 것이다. BC 125년 데메트리오스는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알렉산드로스 II 자비나스와 그의 이집트 동맹군에게 완전히 패배하고, 프톨레마이스로 도망쳤다. 클레오파트라 테아가 그를 도시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자, 대신 티로로 갔지만, 그곳에서 지역 셀레우코스 행정관이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에 따라 그를 죽였다.
13그 뒤에 프톨레마이오스는 P. Ⅵ Philometor 안티오키아로 Antioch 들어가
아시아의 왕관을 crown of Asia 썼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이집트와 아시아의 왕관을 둘 다 머리에 쓰게 되었다.
[11,13 주석] 왕관
[11,13] 왕관: 문자적 의미는 왕권(diadem)
알렉산드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죽다
Deaths of Alexander and Ptolemy(NAB)
14킬리키아 Cilicia [☞ 아래 지도 참조]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 때문에
그곳에 가 있던 알렉산드로스 A.ⅠBalas 임금은,
15이 소식을 듣고 프톨레마이오스와 P. Ⅵ Philometor 싸우러 진군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도 강력한 병력을 이끌고 나와
알렉산드로스에게 맞서 그를 패주시켰다.
16알렉산드로스는 피신처를 찾아 아라비아로 Arabia 달아났다.
이렇게 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임금이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내었다.
17그때에 아라비아 사람 잡디엘이 Arab Zabdiel
알렉산드로스의 목을 베어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보냈다.
18그러나 사흘 뒤,
프톨레마이오스 임금도 죽고 요새에 있던 그의 부하들도 그곳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19그리하여 데메트리오스가 백육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BC 146/145년] .
[11,19 주석] 백육십칠년
[11,19] 백육십칠년: BC 146/145.
두 죽음(17-18절)은 BC 145년 여름에 일어났다.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와 동맹을 맺다
Pact with Demetrius(NAB)
Alliance of Jonathan and Demetrius II.(RNAB)
20그 무렵에 요나탄은 예루살렘의 성채를 공격하려고,
유다인들을 소집하고 그곳을 공격할 무기를 많이 만들었다.
21그런데 제 민족을 미워하는 변절자 몇이 임금에게 가서,
요나탄이 성채를 포위하였다고 보고하였다.
22그 보고를 들은 임금은 화를 내었다.
그는 보고를 듣자마자 출정하여 프톨레마이스로 Ptolemais 갔다.
그리고 요나탄에게 포위를 풀고,
되도록 빨리 프톨레마이스에서 만나 상의하자고 편지를 썼다.
23그러나 요나탄은 그러한 제의를 듣고도 포위를 계속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사제들을 뽑아,
24은과 금과 옷, 그 밖에도 많은 선물을 가지고 프톨레마이스로 임금을 찾아갔다.
그러자 그는 임금의 호감을 샀다.
25그때에 백성 가운데 간악한 자들 몇이 그를 고발하였다.
26그러나 임금은 선왕들이 한 것처럼 그를 대하고,
자기의 모든 벗 앞에서 그를 높여 주었다.
27임금은 또 그의 대사제직과 이전의 명예로운 직책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그를 첫째가는 벗들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28그러자 요나탄은 유다는 물론
사마리아의 세 구역에서 걷는
세금도 면제해 달라고 임금에게 청하면서,
그 대신에 삼백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11,28] 1마카 10,29; 11,34–35
[11,28 관련 본문]
[11,28] 1마카 10,29; 11,34–35
29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유다인에게 조공과 소금 세와 왕관 세를 면제해 줍니다.(1마카 10,29)
34 우리는 유다의 영토와
아패레마, 로드, 라마탬 세 지역을 그들의 땅으로 인정합니다.
이 세 지역은 그 주변 모든 지방과 더불어
사마리아에서 유다에 편입된 곳으로,
전에는 임금이 해마다 그 땅의 소출과 과일에 대하여 세를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에게 바치는 이 세금을
예루살렘에서 희생 제사를 지내는 모든 이에게 면제합니다.
35 또 그들이 십일조에서 우리에게 바치는 다른 조세들과 그 밖의 세금들,
그리고 염전 세와 왕관 세 등 이 모든 것도
이제부터 그들에게 면제합니다.(1마카 11,34-35)
29임금은 그 청을 받아들이고
이 모든 일과 관련하여 요나탄에게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써 주었다.
30“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요나탄 형제와 유다 민족에게 인사합니다.
[11,30 주석] 형제
[11,30] 형제:
이 용어와 32절의 “아버지”는 친족을 지칭하는 존칭 표현이다.
31우리가 여러분에 관하여
우리 친족 라스테네스에게 Lasthenes 써 보낸 편지의 사본을
당신들에게도 써 보내니 받아 보십시오.
[11,31 주석] 라스테네스
[11,31] 라스테네스
크레타에서 데메트리우스와 함께 온 용병 부대의 지휘관.
그는 이제 젊은 왕의 수석 장관이었고
국가 군대를 해산하는 재앙적인 정책(38절)에 대한 책임이 있는 듯하다.
38데메트리오스 Demetrius Ⅱ Nicator [BC 146-138] 임금은 자기의 통치 아래
나라가 평온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맞서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른 나라 섬들에서 모집해 온 외인부대만 남기고,
모든 군대를 해산시켜 저마다 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선왕들을 모셨던 군대는 모두 그를 미워하였다.(1마카 11,38)
32‘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아버지 라스테네스에게 father Lasthenes 인사드립니다.
33우리의 벗이며
우리에게 의무를 다하는 유다 민족이 선의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을 잘 대해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4우리는 유다의 영토와
아패레마 Aphairema, 로드 Lydda, 라마탬 Ramathaim
세 지역을 그들의 땅으로 인정합니다.
이 세 지역은 그 주변 모든 지방과 더불어
사마리아에서 유다에 편입된 곳으로,
전에는 임금이 해마다
그 땅의 소출과 과일에 대하여 세를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에게 바치는 이 세금을
예루살렘에서 희생 제사를 지내는 모든 이에게 면제합니다.
[11,34 주석] 아패레마 Aphairema, 로드 Lydda, 라마탬 Ramathaim
[11,34] 아패레마 Aphairema, 로드 Lydda, 라마탬 Ramathaim
아패레마 : 여호 18,23; 1사무 13,17의 오프라 Ophrah ; 2역대 13,19의 에프론 Ephron ; 그리고 요한 11,54의 에프라임 Ephraim —현대의 에트-타이이베, 베델에서 북동쪽으로 5마일.
23 아윔, 파라, 오프라,(여호 18,23)
17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에서는 공격대가 셋으로 나뉘어 출동하였는데,
한 부대는 수알 지방 오프라로 난 길을 향하고,(1사무 13,17)
19 아비야는 예로보암을 뒤쫓아 가서,
그의 성읍들,
곧 베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여사나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에프론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을 점령하였다.(2역대 13,19)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1,54)
로드(☞ Lydda 리따, RNAB): 유배 이후의 로드 Lod(에즈 2,33; 느헤 11,35) 그리고 베드로에게 치유를 받은 애네아스의 고향(사도 9,32-34). 요빠에서 남동쪽으로 10마일 떨어져 있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 로드와 하딧과 오노의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에즈 2,33)
35 로드, 오노, 그리고 ‘세공장이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느헤 11,35)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사도 9,32-34)
라마탬 : 1사무 1,1의 라마타임-소핌 Ramathaim-zophim , 그리고 마태 27,57의 아리마태아 Arimathea , 현대의 렌티스 Rentis 리따에서 북동쪽으로 9마일 떨어져 있다.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1사무 1,1)
57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마태 27,57)
35또 그들이 십일조에서 우리에게 바치는 다른 조세들과 그 밖의 세금들,
그리고 염전 세와 왕관 세 등
이 모든 것도 이제부터 그들에게 면제합니다. [11,34–35] 1마카 10,29; 11,28
[11,34–35 관련 본문]
[11,34–35] 1마카 10,29; 11,28
29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유다인에게 조공과 소금 세와 왕관 세를 면제해 줍니다.(1마카 10,29)
28 그러자 요나탄은 유다는 물론 사마리아의 세 구역에서 걷는 세금도 면제해 달라고 임금에게 청하면서,
그 대신에 삼백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1마카 11,28)
36이 결정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지금부터 영원히 취소될 수 없습니다.
37이제 이 편지의 사본을 만들어 요나탄에게 주어서,
거룩한 산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게 배려해 주십시오.’” [11,30–37] 1마카 10,25–45
[11,30–37 관련 본문]
[11,30–37] 1마카 10,25–45
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새로운 제안을 하다(1마카 10,22-45)
22 데메트리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23 “알렉산드로스가 자기 기반을 튼튼히 하려고
우리보다 앞서 유다인들과 우호 관계를 다졌는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24 나도 그들에게 격려의 말로 편지를 써서
높은 지위와 선물을 약속하고 그들의 협조를 받아야 하겠다.”
25 그러고는 이러한 말을 써서 보냈다.
“데메트리오스 임금이 유다 민족에게 인사합니다.
26 여러분이 우리와 맺은 계약을 지키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여,
우리의 원수들 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기뻐하였습니다.
27 앞으로도 계속 신의를 지켜 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에게 보여 준 호의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28 우리는 여러분에게 많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선물도 주겠습니다.
29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유다인에게 조공과 소금 세와 왕관 세를 면제해 줍니다.
30 또 나에게 바쳐야 하는 곡식의 삼분의 일 세와
나무 열매의 이분의 일 세를 오늘부터 면제합니다.
그리하여 유다 땅에서,
그리고 사마리아와 갈릴래아에서 유다에 편입된 세 지역에서,
오늘부터 영원히 그 세금들을 거두지 않겠습니다.
31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으로 인정하고 그 주변 지역과 함께 십일조와 조세를 면제합니다.
32 나는 예루살렘 성채의 지배권을 포기하고 대사제에게 넘겨줍니다.
그는 성채를 지킬 사람들을 뽑아 그곳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33 또한 나는 유다 땅에서 나의 왕국 곳곳에 포로로 끌려온
모든 유다인을 몸값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 줄뿐더러,
들의 가축에 대해서도 세금을 받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34 모든 축제일과 안식일,
초하룻날과 축일,
그리고 축제 전 사흘과 축제 후 사흘,
이 모든 날을 내 왕국에 사는 모든 유다인이
공공 의무와 세금을 면제받는 날로 삼겠습니다.
35 어느 누구도 이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유다인에게 세금을 강요하거나 그들을 괴롭힐 권리가 없습니다.
36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삼만 명이 임금의 군대에 편입되어,
임금의 모든 군사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37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임금의 큰 요새에 배치되고,
어떤 이들은 왕국에서 신임받는 자리에 배치될 것입니다.
그들의 상관과 지휘관들도 그들 가운데에서 나올 것이며,
또 그들은 임금이 유다 땅에 명령을 내린 대로
자기들의 법에 따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38 사마리아 지방에서 유다에 편입된 세 지역은
유다와 합쳐지고 한 통치자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대사제 말고는 다른 어떤 권력자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39 나는 프톨레마이스와 그 인접 지역을 예루살렘 성소에 선물로 주어,
성소의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겠습니다
40 여기에 덧붙여 나도 해마다 적절한 곳에서 거둔
임금의 수입 가운데에서 은 만 오천 세켈을 주겠습니다.
41 관리들이 처음 몇 해 동안 주다가 나중에는 주지 않던
모든 추가 보조금도 지금부터는 성전 비용으로 다시 내줄 것입니다.
42 거기에다 해마다 성소 수입에서 받아 오던 은 오천 세켈도 면제합니다.
그것은 그곳에서 봉직하는 사제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43 임금에게 빚을 졌거나 그 밖에 온갖 다른 사정으로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 경내 어디로든 달아난 자는 누구나 사면되고,
내 왕국에 있는 제 소유물도 다 되돌려받을 것입니다.
44 성소 건물을 보수하고 재건하는 경비는
임금의 수입에서 충당할 것입니다.
45 또한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고
그 둘레를 튼튼히 하는 경비도 임금의 수입에서 충당하며,
유다 땅의 다른 성벽들을 보수하는 비용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1마카 10,22-45)
트리폰이 흉계를 꾸미다
The Intrigue of Trypho(NAB)
The Intrigue of Trypho.(RNAB)
38데메트리오스 Demetrius Ⅱ Nicator [BC 146-138] 임금은 자기의 통치 아래
나라가 평온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맞서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른 나라 섬들에서 모집해 온 외인부대만 남기고,
모든 군대를 해산시켜 저마다 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선왕들을 모셨던 군대는 모두 그를 미워하였다.
39그러자 전에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트리폰이 Trypho
모든 군대가 데메트리오스에게 불평한다는 것을 알고,
알렉산드로스의 Alexander I Balas[BC 150/152-145] 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Antiochus VI Dionysus[BC 145-142] 키우고 있는
아라비아 사람 이말쿠에게 Imalkue 갔다. [11,39] 1마카 12,39
[11,39 관련 본문]
[11,39] 1마카 12,39
39 트리폰은 아시아의 임금이 되어 왕관을 쓰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티오코스 임금까지 없애려고 시도하였다.(1마카 12,39)
40그리고 안티오코스가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임금이 될 수 있도록,
그를 자기에게 넘겨 달라고 이말쿠에에게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데메트리오스가 해 온 모든 일과
그의 군대가 그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를 도와주다
Jonathan Aids Demetrius(NAB)
Jonathan Aids Demetrius II.(RNAB)
41요나탄은 데메트리오스 D. Ⅱ Nicator[BC 146-138]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루살렘 성채의 군대와 다른 요새들의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이 줄곧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2그러자 데메트리오스가 사람을 보내어 요나탄에게 이러한 말을 전하였다.
“나는 귀하와 귀하의 민족을 위하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귀하와 귀하의 민족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하겠습니다.
43그런데 지금 나의 모든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나와 함께 싸워 줄 병사들을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44그래서 요나탄은 용맹한 병사 삼천 명을 안티오키아로 Antioch 그에게 보냈다.
그들이 오자 임금은 그들의 도착을 반겼다.
45그 성읍 주민들은 임금을 없애려고 성읍 한복판에 십이만 명이나 모였다.
46그리고 임금이 대궐로 달아나자 성읍의 큰길들을 차지하고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47임금은 도와 달라고 유다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모든 유다인이 바로 그에게 집결하였다가 성읍으로 흩어져 나가,
그날로 그곳 주민 십만 명을 죽이고
48성읍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그날 많은 전리품을 거두고 임금도 구하였다.
49유다인들이 저희 뜻대로 성읍을 장악한 것을 보고
사기를 잃은 성읍 주민들은 임금에게 이렇게 간청하며 부르짖었다.
50“저희와 화해해 주십시오.
유다인들이 저희와 성읍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51그러고 나서 그들은 무기를 던지고 화친을 맺었다.
유다인들은 임금과 왕국의 모든 사람 앞에서 영예를 얻고
온 왕국에 이름을 떨친 다음,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52이렇게 하여 데메트리오스 임금은 자기 왕좌에 다시 앉게 되고,
나라는 그의 통치 아래 평온해졌다.
53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모든 약속을 어겨 요나탄과 사이가 나빠졌다.
데메트리오스는 D. Ⅱ Nicator 요나탄이 자기에게 베푼 호의에 보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몹시 괴롭혔다.
요나탄이 트리폰과 동맹을 맺다
Alliance with Trypho(NAB)
Alliance of Jonathan and Antiochus VI.(RNAB)
54이러한 일이 있은 뒤,
트리폰이 Trypho 나이 어린 안티오코스와 함께 돌아왔다.
안티오코스는 Antiochus VI Dionysus[BC 145-142]
임금이 되어 왕관을 썼다. [11,54] 1마카 11,39; 12,39
[11,54 관련 본문]
[11,54] 1마카 11,39; 12,39
39 그러자 전에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트리폰이
모든 군대가 데메트리오스에게 불평한다는 것을 알고,
알렉산드로스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키우고 있는
아라비아 사람 이말쿠에에게 갔다.(1마카 11,39)
39 트리폰은 아시아의 임금이 되어 왕관을 쓰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티오코스 임금까지 없애려고 시도하였다.(1마카 12,39)
55데메트리오스가 해산시킨 모든 군사가
안티오코스에게 모여들어 데메트리오스와 맞서 싸우니,
그가 패배하여 달아났다.
56트리폰은 Trypho 코끼리들을 차지하고 안티오키아를 Antioch 점령하였다.
57그 뒤에 나이 어린 안티오코스가 Antiochus VI Dionysus 요나탄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나는 귀하의 대사제직을 인정하고
귀하를 네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하며 임금의 벗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다.”
58그리고 요나탄에게 금 그릇과 식기들을 보내고,
황금 잔으로 마실 수 있는 권리와 자주색 옷을 입고
금 죔쇠를 찰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11,58] 1마카 2,18
[11,58 관련 본문] 1마카 2,18
[11,58] 1마카 2,18
59그리고 그의 형 시몬을 Simon
‘티로의 사닥다리 길에서 Ladder of Tyre’
이집트 국경까지 이르는 지역의 총독으로 governor 임명하였다.
[11,59 주석] 티로의 사닥다리 길
[11,59] 티로의 사닥다리 길:
현대의 라스 엔 나쿠라 Ras en-Naqurah,
산이 바다에 도달하는 곳으로,
해안 도로는 일련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마카베오는 시리아에서 이집트까지의 해안 지역을 지배했다.
Campaigns of Jonathan and Simon.(RNAB)
60요나탄은 길을 떠나
유프라테스 강 서쪽 West-of-Euphrates 지방과 성읍들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시리아의 모든 군대가 그에게 모여 와 동맹군이 되었다.
그가 아스클론에 Ashkalon 가자 그 성읍 주민들이 그를 성대하게 맞이하였다.
[11,60 주석] 유프라테스 강 서쪽
[11,60] 유프라테스 강 서쪽:
여기서는 필리스티아와 코엘레 시리아의 영토를 가리키지만,
상부 시리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비교: 7,8.
8 임금은 자기의 벗들 가운데에서 바키데스를 뽑았는데,
그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의 총독으로서
나라의 큰 인물이며 임금에게 충실한 사람이었다.(1마카 7,8)
61거기에서 다시 가자로 Gaza 갔는데 그곳 주민들은 성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요나탄은 그곳을 포위한 다음,
그 주변 마을들을 불태우고 약탈하였다.
62가자의 주민들이 요나탄에게 탄원하였으므로,
요나탄은 그들과 화해하고 그곳 우두머리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지방을 지나 다마스쿠스까지 Damascus 갔다.
요나탄이 데메트리오스와 싸우다
War with Demetrius(NAB)
63그때에 요나탄은 데메트리오스의 D. Ⅱ Nicator[BC 146-138] 장수들이
자기의 직위를 박탈하려고 큰 군대를 이끌고
갈릴래아의 Galilee 카데스에 Kadesh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64요나탄은 자기 형 시몬을
나라 안에 남겨 두고 그들과 싸우러 나섰다.
65시몬은 벳 추르를 Beth-zur 향하여 진을 치고
여러 날 그곳을 공격하며 봉쇄하였다.
66이윽고 그들이 그에게
화해하자고 탄원하였으므로 그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내쫓아
그 성읍을 차지하고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11,65–66] 1마카 9,52; 10,14.
[11,65–66 관련 본문]
[11,65–66] 1마카 9,52; 10,14.
52 또한 그는 벳 추르 성읍과 가자라와 예루살렘 성채를 튼튼하게 한 뒤,
군대를 배치하고 양식을 쌓아 두었다.(1마카 9,.52)
14 그러나 벳 추르에만은 율법과 계명을 저버린 자들이 일부 남아 있었다.
그곳이 피신처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1마카 10,14)
67요나탄과 그의 군대는 겐네사렛 호숫가에 waters of Gennesaret 진을 치고,
아침 일찍 하초르 Hazor 평야로 진군하였다.
[11,67 주석] 하초르 평야
[11,67] 하초르 평야:
고대 가나안 도시가 있던 곳(여호 11,10),
겐네사렛 호수에서 북쪽으로 10마일 떨어진 곳이다.
10 그때 여호수아는 돌아오는 길에 하초르를 점령하고 그 임금을 칼로 쳐 죽였다.
하초르가 전에 이 모든 왕국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여호 11,10)
68그러자 이민족들의 군대가 평야에서 그를 맞아 싸웠는데,
그들은 산에 복병을 숨겨 두고 요나탄과 정면으로 맞섰다.
69복병들이 매복 장소에서 튀어나와 싸움에 가담하자,
70요나탄의 군사들이 모두 달아나고,
압살롬의 Absalom 아들 마타티아스와 Mattathias
칼피의 Chalphi 아들 유다 Judas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군대의 장수였다.
71요나탄은 자기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뿌리며 기도하였다.
72그러고 나서 적군과 싸우러 돌아가 그들을 무찌르자 그들이 달아났다.
73달아났던 요나탄의 군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 돌아와,
적의 진영이 자리 잡은 카데스까지 Kadesh 그와 함께 추격하여 그곳에 진을 쳤다.
74그날에 이민족들의 군대에서 죽은 사람이 삼천 명가량 되었다.
요나탄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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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독립 국가로서의 기틀이 만들어지다(1마카 10)
본문 개요(1마카 10장)시리아에 두 임금이 들어서다데메트리오스 I 소테르가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의 아들 에우파토르를 살해하고임금이 되자(1마카 7,4), 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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