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서/갈릴래아 전도(8,1 - 11,1)

마태오의 소명, 그리고 단식 및 새것과 헌것(마태 9,9-17)

좋은생각으로 2026. 1. 8. 16:02

 

마태오 복음서 사가는

본래의 자신의 자료에 기재된 레위를

마태오로 바꾸어 

처음 네 제자(마태 4,18-22)처럼 마태오를

특별한 부름을 받은 제자에 포함시킨다. 

 

복음 사가의 이러한 의도는

마태오가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신분적 지위를 강조하려는 시도라기 보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교회의 신앙인들의 삶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


'하느님의 부르심'은 생각하기에 따라, 

각각의 개인들의 자유에 의해 선택되는

수동적 부르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1베드 3,9),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때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에게 처음 말씀하신

능동적 부르심(창세 12,1)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라는 뜻의 '소명'은 

사람에게 내리는

참으로 신비하고 자상한

주님의 영적 어루만지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신앙인들의 소명은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충실한 이들도

그분과 함께 승리할 것이다.”(묵시 17,14)라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선택되었다는 설렘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좁은 문'(마태 7,13)으로 들어가는

'열쇠'(마태 16,19)가 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을 통해

당시 공동체에 전하고 싶은

즉 공동체가 선택된 부르심에 응답하였음을 드러내고,

 

뒤 이어 나오는  

단식과 함께 새것과 헌것에 대한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기에

새롭게 선택된 신앙 공동체에 내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민족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구약에 이어 신약으로 들어서는 시대적 격변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이유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태 9,12)라는

당신의 말씀을 인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적 병리 현상을

이사야의 "불행하여라"(이사 5,8-22)처럼

 

 

재앙에 대한 신탁(이사 5,8-24; 10,1-4ㄱ)

재앙의 선포를 "불행하다"로 시작한다.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땅을 탐하는,방탕한,죄악을 부추기는,거짓말을 하는,교만한,뇌물을 받는,힘없는 사람들을 수탈하는 자들로서,인간의 삶을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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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마태 11,21; 18,7; 23,13.14.15.16.23.25.27.29)의 주체가 되는

사악하고 병든 사람들의 본질적 배반에 의해 발생한

시대 말 적 사건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당시 사회를 이끌고 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인들의 독선적 행태가 

회개와 복음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백성들이 응답할 수 없게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단식과 더불어

새것과 헌것에 대한 비유 말씀으로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식이란 비움이다. 

이는 곧 율법학자 및 바리사이들이 추종하는

경직된 과거의 율법을 버리고, 

 

복음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즉 시공을 초월하는 시대적 표징이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새 천 조각'과 '새 포도주'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는 복음을 거스른 옛것과 새것의 결합 시도는

 

헝겊이 찢어지고 가죽이 터져 버리듯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르게 됨을

표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과연 예수님의 새것과 헌것의 비유는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그러하기에

성전의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마태 24,2)이라는 

성전 파괴에 대한 묵시인 것이다.


본문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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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마태 9,9-13)
9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마태 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9,9–17 주석] 관련 구절 해설 → 관련 내용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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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7] 이 부분의 순서는 마르 2,13–22의 순서와 동일하다.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마태 9,9-13) ;  (루카 5,27-32)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단식 논쟁-새것과 헌것 (마태 9,14-17) ;  (루카 5,33-39)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The Call of Matthew.(RNAB)

마태오의 소명(RNAB)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마태 9,9-13)

 

[9,9–13 관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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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3] 마르 2,14–17; 루카 5,27–32.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마태 9,9-13) ;  (루카 5,27-32)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4–17)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마태 9,9-13) ;  (마르 2,13-17) 
27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27–32)

9 [9,9–13] 마르 2,14–17; 루카 5,27–32.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9,9 주석] 마태오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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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마태오라는 사람 A man named Matthew  :

마르코는 이 사람을 세리 레위라 언급한다(마르 2,14).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 열두 명의 명단

(마태 10,2-4; 마르 3,16-19; 루카 6,14-16; 사도 1,13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으로 11 명])에는

레위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네 명단 모두 마태오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있으며,

마태 10,3에서는 그를 “세리”라고 지칭한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르 2,14)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the tax collector,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태 10,2-4)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르 3,16-19)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루카 6,14-16)

 

13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 

필립보와 토마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사도 1,13)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the tax collector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마태 10,3)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자신의 자료에 있는 레위를  마태오로 바꾸어,

처음 네 제자(마태 4,18-22) 처럼 특별히 부름을 받은 이 사람을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포함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 (마태 4,18-22)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18-22)

  

레위를 마태오로 바꾸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복음서 저자가 기록하고 있던 교회의 고유한 전통의 출처가 

제자 마태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 tax collectors와 죄인 sinners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9,10] 마태 11,19; Lk 15,1–2.  

 

[9,10 주석] 집에서 (his house), 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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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집에서 His house :

여기서 '그 his'가 예수님을 가리키는지 마태오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세리 Tax collectors: 마태 5,46의 주석 참조.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면 예식적 부정 ritual impurity이 발생한다.

[9,10 관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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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마태 11,19; 루카 15,1–2.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루카 15,1–2)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9,11 주석]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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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스승 Teacher : 마태 8,19의 주석 참조.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9,12 주석] 관련 구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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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마르 2,17에 대한 주석 참조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마르 2,17 주석]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Do not need a physician :

예수님께서 전하신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이 격언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적대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하신 말씀다.(마르 2,16).


율법학자들 the scribes과 바리사이인들 Pharisees은 독선적 self-righteous이기 때문에, 

회개와 복음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었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9,13] 마태 12,7; 호세 6,6.  

 

[9,13 주석] 너희는 가서....자비 ....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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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너희는 가서 ... 자비 ...  배워라 Go and learn…not sacrifice :

마태오는 호세 6,6의 예언적 말씀을 마르코의 서술에 덧붙인다(마태 12,7도 참조).

자비가 성전의 희생 제물보다 우월하다면,

예식 부정에 관한 법보다 자비는 얼마나 더 우월하겠는가?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9,13 관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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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마태 12,7; 호세 6,6.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The Question About Fasting.(RNAB)

단식에 관한 질문.(RNAB)
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마태 9,14-17)

 

[9,14–17 관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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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17] 마르 2,18–22; 루카 5,33–39.

단식 논쟁-새것과 헌것 (마르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18–22)

 

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
33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루카 5,33–39)

14 [9,14–17] 마르 2,18–22; 루카 5,33–39.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9,15 주석] 단식의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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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단식은 애도의 표시이며,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이 기쁨의 시기에 단식하는 것은

혼인 잔치에서 단식하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하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더 이상 제자들과 눈에 보이게 함께 계시지 않을 때,

즉 마태오 교회의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

그때 그들은 단식할 것이다. 디다케 8,1 참조.


디다케 Didache

CONCERNING FASTING
Do not let not your fasts fall on the same days as the hypocrites, for they fast on Mondays and Thursdays. Keep your fast on Wednesdays and Fridays.(Didache 디다케 8,1)

 

<직역> 단식에 관하여
여러분의 단식은 위선자들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하니까,

여러분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시오.

 

[9,16–17 주석] 관련 구절 해설 → 헝겊과 포도주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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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17] 이 비유들은 각각 옛것과 새것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부적절함을 말해준다. 

예수님의 가르침 Jesus’ teaching은 

유다교 Judaism에 덧붙이는 것이 아니며,

복음 the gospel이 모세 율법의 범위 안에 담길 수도 없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