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너희를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 너희 하느님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29, 5)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주변 민족들에게도 기회를 주고자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적 성숙 기간이,
이민족들에게는 회개의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올려 보내실 수 있으셨지만,
이민족들에게도 마지막의 기회를 더 주시고 싶으셨을 것이다.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다고(창세 15, 16)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드러내신 당신의 거룩하신 모습을 통해
이민족들이 죄악에서 벗어나 올바른 백성이 되는 시간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당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민족의 회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점령하기 전에
그곳에 살던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말했다.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당신들 앞에서
갈대 바다의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이며,
당신들이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아모리족의 두 임금 시혼과 옥에게 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여호 2, 9-10).
라합은 유다 지파인 살몬에게 보아즈를 낳아주어
다윗의 조상이 되는(마태 1, 5) 복을 받게 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예리코와 아이에서 한 일을 듣고서
그들 나름대로 속임수를 써서 살아남게 된다(여호 9).
신명기 27장의 열두 가지 저주에 나오는 행동들을 하며 살던 가나안의 민족들도,
라합과 기브온 주민들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했다면
그처럼 무참한 살육에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상 숭배를 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미혹하면,
여린 백성들이 열두 가지 저주에 나오는 행동을 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된다.
그들은 반드시 전멸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이민족들 가운데의 여린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기다리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의 사십 년 동안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해,
당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숨 넘어가실 듯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예수님 탄생 후 이천여 년이 지났다.
기원후 점진적으로 진행 되어온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예수님께서는 누구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당신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는가?
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마태 5, 17) 하시면서
당시 지도층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그렇게 질책(마태 23)하셨는가?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 18). "라고 겁을 주시듯이 말씀하셨는가?
그들이
보면서도 못 본 척,
들으면서도 안듣는 척,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눈 없는 곳에서는 개차반이면서 남 앞에서는 고고한 척,
이렇게 척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탈출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큰 시험과 표징과 큰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신명 29, 3).
그러나 주님께서 주 너희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신명 29, 4-5),
이스라엘 민족을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그런데도 그들의 목은 뻣뻣했다(신명 9, 13).
예수님께서는 세례받으신 후 40일 동안,
유다 광야에서 홀로 사탄의 유혹을 떨쳐 내셨다.
그런데 함께 있던 그들은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단 한 시간도 함께 하지 않았다(마태 26. 40).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 6).
현시대에 사제들의 나라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현시대에 맞는 사제들의 나라가 되는가?
사회를 향해 준엄하게 외치신,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히브 3, 1).
다락방에서 기도해야 한다면서 커다란 성전 안의 골방에 숨지 마십시오.
허물어집니다(마태 24, 2).
어떻게 해야 거룩한 민족이 되는가?
어떻게 해야 거룩한 민족의 거룩한 백성의 거룩한 사람이 되는가?
들어내 보이려고 성당과 한길 모퉁이에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기도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십니다(마태 5, 6).
추신) 2022년도 사순시기를 마무리하면서, 모세의 거룩한 삶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하고 통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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