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사무엘기

사무엘의 예언자 양성과 성경 번역 활동 (1사무 7,2-17)

좋은생각으로 2022. 6. 15. 06:00

 

 

사무엘이 판관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주님의 궤가 키르얏 여아림에 자리 잡은 지

이십 년이 지난 시기이다.

 

고고학적 성경 연대로는 BC 1073년 경이다.

이스라엘 온 집안이

주님을 향하여 탄식하고 있었다고(1사무 7,2)

본문이 시작하는 것처럼,

사무엘의 시대에는 외세의 침략이 계속 되고 있었다.

 

사무엘이 판관의 역할은 하였으나,

오트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타가 했던 것처럼

완전한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역사 및 성경사적 중요한 일을 하였다. 


▶본문 관련 연대표

I. 사무엘의 판관 활동

사무엘 상권 7장의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은
주님의 궤가 키르얏 여아림으로 돌아온지 20년이 된 해이므로,
그때의 사무엘 나이는 29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7장에 소개된 이야기는
사무엘의 나이 29세부터(☞ ①)  50세까지( ☞ ②) 약 20년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왜냐하면  본문 8장은 사울이 임금이 된 해로
사무엘의 나이 50세인 BC 1052년이기 때문이다.  

 

1. 사무엘이 필리스티아인들을  내쫓다(1사무 7,2-14)

 

1) 필리스타인들이 공격하다.

궤가 키르얏 여아림에 자리 잡은 날부터

이십 년( 연대표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1사무 7,2) 

 

이스라엘이 탄식한다.

그러자 사무엘은

"여러분 가운데 낯선 신들과 아스타롯을 치워버려라(1사무 7,4),

그러면 주님께서 필리스타인들의 손에서 빼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주님의 궤를 빼앗긴 후 이십 년이 지나는 동안,

주님의 궤에 무관심했던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역겨운 일들을 계속했기 때문에

필리스티아인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무엘의 판관기적 설명이다.  

 

2) 하느님께서 승리로 이끌어 주시다.

이스라엘의 탄원을 들어주고자

사무엘이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치니 주님께서 응답하신다(1사무 7,9).

주님의 권능으로 필리스티아인들을 물리치고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의 손이 필리스티아인들을 억누르셨다(1사무 7,13).

 

본문은 주님의 손이 필리스타인들을 억누르셨다고 하지만,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는

사울이 임금이 된 뒤에도, 

즉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 일어난다(1사무 13-14장).

 

3) 승리의 돌을 "에벤 에제르"라 부르다.

아무튼 사무엘은,

그가 판관이 된 후 처음으로 치룬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미츠파와  [☞ 영어 본문에는 여사나 Jeshanah이다. (NAB, RNAB)] 사이에 돌을 세우고

이름을 에벤 에제르라 한다(1사무 7,12).

 

사무엘의 8살 어린 나이에 일어났던,

이스라엘이 에벤 에제르에서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주님의 궤를 뺏겼던 사실이

사무엘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돌의 이름을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계약 궤를 뺏겼던 장소의 지명인

에벤 에제르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때 주님의 궤는 키르얏 여아림에 있었고 성막은 놉에 있었다. 

 

▶에벤 에제르

더보기

[1사무 7,12] 에베 에제르: 보호자인 반석,

즉 "주님"이라는 뜻이다.  

2. 사무엘의 판관 활동(1사무 7,15-17)

 

사무엘은 해마다

베텔과 길갈(☞ 위치는 불명하나 이 부근으로 추정, RNAB 주석)과 미츠파를 돌며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자기 집이 있는 라마의 나욧(☞ 예언자 양성 기관)으로 돌아와

거기에서도 판관으로 일했으며,

그는 라마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기도(1사무 7,16-17) 하였다.

 

사무엘의  판관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에 완전한 평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역사에 많은 문제가 야기될 왕정 제도를 세우게 된다.

 

사무엘은 판관이었지만,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들처럼 직접적인 전투와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사제의 직무에 충실했던 것 같다.

왕정제도가 출범하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통치적 판관 소임을 벗어난 사무엘은

예언자 양성, 성경 번역 등과 같은 학자적 소명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① 필리스티아 회복 지역, ②사무엘의 활동지역 (바탕 지도: 구글맵)


II. 사무엘의 예언자 양성과 성경 번역

이제 세월이 흘러 사무엘의 나이가 많아졌다고 말하면서 본문 8장이 시작한다.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지자 (☞ 연대표) 자기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내세웠다.(1사무 8,2)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진다고(1사무 8,1) 설명하는 본문 8장의 내용은 20여 년 뒤의 일이므로,
이번 본문 7장은 사무엘의 가장 왕성한 할동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예언자가 양성되고
성경 번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사무엘의 나욧 예언자 학교

 

나욧이 예언자 학교라고 추론할 수 있는 성경 본문은 다음과 같다. 

사울이 다윗을 찾아 라마로 가다.(1사무 19,18-24)

더보기

18다윗은 그렇게 달아나 목숨을 건진 다음,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가,

사울이 자기에게 한 일을 모두 이야기하였다.

다윗과 사무엘은 나욧으로 가서 거기에 머물렀다.

20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전령들을 보냈다.

그들이 가서 보니,

한 무리의 예언자들이 사무엘을 중심으로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울의 전령들에게도 하느님의 영이 내려 그들도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였다.

21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다른 전령들을 보냈으나,

그들도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였다.

그가 다시 세 번째로 전령들을 보냈지만 그들도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였다.

22그래서 사울 자신이 라마를 향해 나섰다.

그가 세쿠에 있는 큰 저수 동굴에 이르러,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자,

어떤 이가 “그들은 라마의 나욧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3그래서 사울이 그곳 라마의 나욧으로 가는데,

그에게도 하느님의 영이 내려 라마의 나욧까지 걸어가는 동안 줄곧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였다.

24그는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며,

그날 하루 밤낮을 알몸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인가?”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1사무 19) 

 

한 무리가 사무엘을 중심으로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고,

사울이 세 번이나 보낸 전령들도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고,

사울도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활홀경에 빠져 예언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이 사무엘의 앞에서 즉 사무엘이 주도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나욧의 의미가 헛간 혹은 목초지라 하여도,

예언자를 헛간(shed)이나 목초지(pasture)에서 양성할 수는 없다.

한 무리의 예언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곳에는 예언자를 양성하는 학교와 같은 기관이 있었을 것이다

.(☞ 나욧을 예언자 학교라고 하는 Bible.ca의 고고학적 자료를 참고) 

 

▶나욧(Naioth)

더보기

[1사무 19,18] 나욧이 영문인 NAB에는 헛간 혹은 곁채(shed)로 나오고,
RNAB에는 지명인 나욧 Naiot으로 표기되어 있다. 

 - Then he and Samuel went to stay in the sheds.(1사무 19,18b NAB)
 - Then he and Samuel went to stay in Naioth.(1사무 19,18b RNAB) 

 

2. 사무엘의 고대 히브리어 성경 번역본

 

사무엘은 라마의 나욧(1사무 19,18)에서

성경사적으로 중요한 작업을 하였다.

사무엘은 나욧에 학교를 세워놓고 예언자를 양성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이집트 문자를 이용한

상형-히브리어(Hieroglyphic-Hebrew)로 되어 있는

모세의 시나이 본문을 

고대 히브리어(Paleo-Hebrew)로 번역하였는데

이때는 BC 1050년 경이다.(아래 그림 참조)

 

사무엘이 번역한 이 본문은

BC 623년에 유다 임금 요시야 시대에

힐키야 대사제가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서이다(2열왕 22,8). 

 

예언자를 양성하고 성경을 번역하는 사무엘의 이러한 면모를 보았을 때,
그는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던 다른 판관들과는 달리,
어린 나이부터 성소에서 자란 사제답게,
영적 소명을 다하는 사제적 판관의 역할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다. 

 

 

성경 본문의 변천 과정(연대는 Bible.ca 참조)


<성경 본문 참조용 그림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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