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카베오기는
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BC 536년경)
약 370여 년이 지난 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기간은 바빌론 유배의 새 계약의 시대이므로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에 대한 간절함이 높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카베오기 이전의 역사를 담은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를 먼저 묵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에즈라기 개요
에즈라기히브리어 정경의 마지막 네 권은 순서대로 하여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역대기 상권, 그리고 역대기 하권이다. 그러나 한때 에즈라와 느헤미야는역대기 상하권 뒤에 왔으며일반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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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기의 개요 및 연대별 본문 순서
느헤미야기에즈라-느헤미야기의 결합된 책에서 공통적인 문제점은에즈라기 서론에서 지적되었다.두 사람의 업적은 상호 보완적이었다.각자는 회복의 어려운 시기에유다교가 정체성을 유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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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삼백칠십여 년의 세월 동안
페르시아의 아카메네스 왕조(BC 550-330)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BC 305-63)를 거치면서
(☞ 아래 연대표 참조),
▶페르시아 및 셀레우코스 왕조 연대표
이스라엘은 과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 까?'라는 의문과 함께
독자 자신의 소명을 위해
마카베오기를 읽으면서
자아 성찰적 마음으로
자신을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카베오기, 시대를 넘어 미래를 통찰케 하다
프롤로그마카베오기에 해당하는 연대는 BC 175년부터 BC 134까지로 40여 년이다. 사십 년이라 하니이집트 탈출 후 광야의 40년이 생각난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40년을목이 뻣뻣한 세대를 지우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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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인류 공동체는 특징별로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들 모든 면에서
공통적 혹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종교이다.
종교는 과거 선사시대는 물론
과학 문명이 정점을 치닫고 있다는 21세기 현재에도
종교의 종류와 믿음과는 상관없이
영성 및 물적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들의 삶에도
종교의 영향이 미친다는 것으로,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의 사회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불의한 사이비 믿음을 가진 자들의 행태가
사회 공동체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쉽게 극단화되기 때문에,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올바른 삶을 영위하려는 선한 사람들이
사이비들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사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으로,
이는 곧 사이비 종교인들의 성향에 의해
무신론자 혹은 기타 사회 공동체가
직간접적으로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재론하자면,
악의와 불공정이 가득한 사이비 권력에 의해
정의와 공정을 공동선의 목표로 하는 선한 양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이비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의미로,
바오로 사도도
"사이비 지식의 속된 망언과 반론들을 멀리하십시오."(1티모 6,20ㄴ)라고
디모테오에게 충고하고 있다.
이처럼 사이비는 거짓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이비가 횡횡하는 사회에서
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들자면
거짓 교사,
거짓 예언자,
거짓 종교인 등등 그 끝이 한없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하기에 마카베오기에서도
대사제 오니아스의 동생이면서도
돈으로 형의 대사제직을 차지한(2마카 4,7-8)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would-be high priest, pseudo-high-priest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그리스화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2마카 4,13)라고
사이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요한 17,21-26)와는 달리,
삿된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농간하거나 이간질을 부리는
속칭 거짓 교사 및 거짓 예언자들,
혹은 거짓 사목자와 목회자들과 같은 사이비 신앙인들의 운명에는
득달같이 닥쳐올
하느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주님의 날이 득달같이 다가온다(스바니야서)
스바니야서는 연대적으로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전한 예레미야서 1-6장의 뒤를 이은다. 하느님의 심판의 날인 주님의 날 (스바니야서 BC 622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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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목회자들이 맞이할 운명
헬리오도로스가 살아서 임금에게 돌아가자
임금인 안티오코스가 헬리오도로스에게
예루살렘에 누구를 다시 파견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헬리오도로스가 안티오코스 임금에게 말한다.
"임금님께 맞서는 자나 정권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으면
그를 거기에 보내십시오.
설령 살아 나온다 하여도
호되게 채찍질을 당하고 돌아올 것입니다."(2마카 3,38)
"그곳 주변에는 정말 하느님의 어떤 힘이 있습니다.
하늘에 거처가 있는 그분께서
친히 그곳을 지켜보고 도와주시며,
악한 짓을 하러 그곳에 다가가는 자들은
내리쳐 없애 버리십니다.”(2마카 3,38-39)
그러므로
하느님을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을 들이대며 맞서는 자나(욥 41,3),
하느님의 계명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짜깁기 하여(마태 5,19 참조)
하느님께 저항하는 자들은,
헬리오도로스처럼 말밥굽에 차이고 채찍질을 호되게 당하거나
야손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2마카 5,5-10).
정의와 공정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사악한 사이비들에게 내리는
참으로 강력하고 엄한 말씀이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목회자라면서도
여리거나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교언잡설로 끌어들이는 사이비 목회자들에게는
헬리오도로스나 야손에게 내린 벌보다 엄한
주님의 날(이사 2; 에제 30; 요엘 2; 아모 5; 오바 1; 스바 1. 즈카 14)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거짓 행위자들의 종말
거짓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거짓의 행위자들로서거짓 사도(2코린 11,13), 거짓 교사(2베드 2,1), 거짓 형제(2코린 11,26), 거짓 예언자(1요한 4,1)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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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이비의 극심한 패륜이 발생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창세 15,6)
그를 의롭다 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민족들의 아버지로 선택하신 이유를 드시는데,
그것은 정의와 공정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이루시려고 그리 하신 것이다(창세 18,19).
하느님의 이러한 말씀은,
정의와 공정이 없는 자들이
아무리 종교를 가지고 종교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하여도,
불의하고 불공정한 자들이 믿는 것은
하느님의 율법에서 벗어난
사악한 사이비 잡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오니아스 대사제는
"경건하게 살고 악을 미워한 덕분에,
거룩한 도성에서는
사람들이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다."(2마카 3,1)
따라서 오니아스의 삶의 본질은
'경건함'과 '악을 미워함'이라 할 수 있다.
경건함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표준국어대사전)이므로,
오니아스의 삶은
하느님을 공경하며
하느님 앞에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고
백성들 앞에서 말이나 태도 등에
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사제 오니아스와 같은 삶을 이루려는
경건하고 악을 미워하는 공동체,
즉 정의와 공정이 함께하는 공동선의 사회는
평화를 누리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라고
선하신 분이신 하느님께서(마태 19,17) 말씀하셨으니
하느님을 믿는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은
거룩한 사람으로의 소명을 지켜야 할 것이다.
거룩한 사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탈출 19, 6)"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제들의 나라는 외형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거룩한 민족은 내적인 영적 성숙이 없으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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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람의 기도
안티오코스 임금의 행정 장관인 헬리오도로스가
사제 가문의 시몬 Simon, of the priestly clan of Bilgah 이라는
사이비 성전관리 책임자의 말을 듣고(2마카 3,4-6)
예루살렘을 탈취하러 왔지만,
대사제 오니아스가 경건하고
악을 미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와 사제들과 백성들의 간청을(2마카 3,13-22) 들어주시어
당신께서 직접 현현하시고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를 보내신다(2마카 3,24-25ㄱ) .
기사가 말의 앞발로 그를 공격하고
두 젊은이가 채찍으로 그를 쉴 새 없이 때리니,
성전을 침탈한 행정 장관 헬리오도로스가 갑자기 쓰러지고
어둠이 그를 덮으니,
헬리오도로스는 말도 못 하고
회복될 희망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2마카 3,25ㄴ-30).
하지만 헬리오도로스 동료들의 요청으로(2마카 3,31)
오니아스 ""대사제가 속죄 제물을 드릴 때,
그 젊은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헬리오도로스에게 다시 나타나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오니아스 대사제에게 깊이 감사하여라.
주님께서 그를 보아 네 목숨을 살려 주셨다.""(2마카 3,33)
이처럼 하느님께 들어 올려진 거룩한 사람의 기도는
죄인들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하고
심지어는 죄인들의 목슴을 구원하기도 한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선함이 가득한 세상
성전을 탈취하려다
하느님의 회초리에 쓰러졌다 살아난
헬리오도로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이 사건을 통해 알아야 할 명제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오니아스 대사제의 삶과
그의 기도가 하느님께 다다른 이유이다.
마카베오기에 그에 관한 답이 있으니
헬리오도로스의 체험에서 우러난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하느님의 전능하신 힘이 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를 지켜보고 도와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악한 짓을 하는 자들을
내리쳐 없애 버리신다'라는 것이다(2마카 3,38-39 참조).
이 말은 선함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함이 가득한 세상-고백
사람은 이성이 있어 본성만 있는 동물과는 사뭇 다르다. 이성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하신 하느님을 찾고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읽기 어려운 레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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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벌을 받았던 너는
이제 모든 이에게
주님의 위대한 능력을 알려라.”(2마카 3,34ㄱ)
악을 미워한 대사제, 오니아스(2마카 3)
마카베오기는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BC 536년경)약 370여 년이 지난 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기간은 바빌론 유배의 새 계약의 시대이므로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에 대한 간절함이 높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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