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영성

# 사이비의 폐해에 대한 종말론적 표징

좋은생각으로 2025. 9. 25. 12:26

페르가몬의 폐허

프롤로그

사이비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표준국어대사전)이다.

재언하여,

참됨의 대척점에 서 있는 거짓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그러므로 사이비라는 용어의 대상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사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이 글에서는,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뜻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자신 혹은 삿된 이익 집단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고

정의와 평화의 본질인 십계명을 어기는 행태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의와 평화의 본질, 십계명

머리말모세는 나이 마흔 살(사도 7,23)까지이집트 왕자로 살았다. 그 후 여든 살(탈출 7,7)에 이르도록시나이 산기슭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삶을 꾸렸는데, 그때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이

suhbundo.tistory.com

 

1. 죄를 불러들이는 사이비의 행태

1) 성전 관리 책임자 시몬의 악의적인 반항

메카베오기에 나오는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성전 관리 책임자인 시몬의 동생이다. 

시몬은 오니아스 대사제 시대에

성전의 관리 책임자로서 예루살렘의 시장 운영과 관련하여

대사제와 의견 대립을 보였다.(2마카 3,4)

 

2) 성전 관리 책임자 시몬의 밀고 및 야심

시몬이 스스로 오니아스 대사제를 꺾을 수 없음을 알고,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카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에게 가서 

예루살렘의 금고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가득 차 있어

그 액수를 헤아릴 수 없는데, 

그돈은 희생 제물에 드는 비용이 아니므로

셀레우코스 임금의 권한 아래 둘 수 있다고 일러바친다(2마카 3,6). 

 

시몬의 말을 전해  들은 셀레우코스 임금의 명으로

헬리오도로스가 예루살렘에 들어와 성전을 모독하자,

하늘로부터 나타난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에 의해

벌을 받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2마카 3,24-34) 

 

이러한 사단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의 오니아스 대사제에 대한 적개심은 점점 커져

마침내 시몬의 심복 하나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2마카 4,3).

오니아스 대사제가 동족의 평화를 위하여

셀레우코스 임금에게 시몬을 고발한다(2마카 4,5).

 

시몬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시몬은 오니아스가 무고한 자신을 고발했다고 앙심을 품고 있다가

셀레우코스 임금이 암살되어 안티오코스가 임금으로 들어서자,

이때다 싶어 대사제 오니아스의 동생인 야손에게 돈을 주며

대사제직을 빼앗으라고 부추겼을 것이다(참조 2마카 4,8).   

 

3) 야손의 대사제직 매수

야손은 임금에게 돈을 주고 대사제직을 사들인다.

이때부터 대사제직에 대한 매관매직이 행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야손에게 오니아스를 배신하라고 모사를 꾸민

성전 관리 책임자 시몬에게

성전과 예루살렘 시장을 통 채로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대사제직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음을 알게된 시몬이므로

자신의 보다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족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대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음흉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며,

야손의 경우처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4) 메넬라오스의 대사제직 매수

과연 3년이 지나자 시몬의 바람대로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가 돈을 주고 대사제직을 사들인다(2마카 4,24). 

메넬라오스도,

성전의 관리 책임자이면서 시장의 운영을 맡은

돈 많은 시몬의 꼬드김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임금에게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바치지 않자

징수 책임자인 소스트라토스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있는 임금에게 불려간다.(2마카 4,28) 

 

그때 안티오코스 임금이

자신의 영토에서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안드로니코스를 임금 대리로 세워놓고

타르수스가 있는 킬리키아지역으로 간다.(2마카 4,31)

 

이때를 음모를 꾸밀 기회라 생각한 메넬라오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금 기물들을 몇 개 훔쳐서 

안티오키아에 있는 임금 대리인 안드로니코스에게 바친다(2마카 4,32). 

 

5) 메넬라오스의 살인 교사 

메멜라오스가 성전의 금 기물을 팔아 착복한 사실을 알게 된

전임 대사제 오니아스가

안티오키아 근처에 있는 다프네라는 신성 도피처로 들어가서 

신임 대사제 메넬라오스를 비난한다(2마카 4,33). 

 

거짓과 돈을 밝히고

사람까지 죽이게 한 성전 관리 책임자 시몬의 동생인

메넬라오스의 인성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마카베오기의 설명에 의하면

메넬라오스는 잔인한 폭군의 기질과

사나운 야수처럼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2마카 4,25).

 

시몬과 그의 아우 메넬라오스 집안과, 

비록 형을 몰아낸 야손이지만 그와 오니아스 집안 간에

암묵적인 다툼이 발생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과연 오니아스의 비난에 사악한 대사제 메넬라오스가

임금 대리인 안드로니코스를 구슬려

경건한 대사제 오니아스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금 기물들을 받았던 안드로니코스는

"정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바로 죽여"(2마카 4,34) 버린다. 

 

그런 뒤에 킬리키아에서 돌아온 안티오코스 임금이

전임 대사제 오니아스의 피살 소식을 듣고,

오니아스를 죽인 안드로니코스를

안티오키아에서 신성 도피처인 다프네까지

온 성읍을 가로질러 끌고 가서 죽여 버린다 (2마카 4,38).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오니아스를 죽여달라고 사주했던

메넬라오스는 어떠했는가이다. 

아마도 안티오코스 임금의 탐욕을 이용한 음흉한 모사를 꾸며

교묘히 빠져 나갔을 것이다. 

 

6) 메넬라오스의 반역적 횡포

과연 그 이후에도 예루살렘 도성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절도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그것은 안티오키아에 있는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동조 아래

대사제 대리인 리시마코스가 저지른 일이다(2마카 4,39). 

 

아마도 대사제 대리인 리시마코스가 훔친 물건들은

대사제 메넬라오스에게 건네지고

그 물건들은 다시 임금인 안티오코스에게 상납되었을 것이라는

정황적 추론은 당연할 것이다. 

 

아무튼 대사제 대리인 리시마코스의 절도 사건에 군중이 분노하자

리시마코스가 3,000여명의 군사로 공격하지만

군중들의 반격으로 리시마코스는 금고 곁에서 죽임을 당한다(2마카 4,42).  

 

이 일로 사람들이 메넬라오스를 안티오코스 임금에게 고발하고, 

임금이 페니키아의 티로에 도착했을 때 ,

원로단에서 파견된 세 사람이 사건을 임금에게 보고한다. 

 

이에 메넬라오스는

티로를 관할하는 페니키아 총독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고 구슬려

오히려 의로운 원로들이 처형되게 한다(2마카 4,48). 

 

이렇게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권력자들의 탐욕 덕분에 대사제직을 유지하면서 

줄곧 악에 집착하여

동족을 반역하는 원흉이 되었"으니(2마카 4,50)

성직자로서의 직분을 망각한 대표적인 사이비가 아닐 수 없다. 

 

2. 사이비들의 발호에 의한 무고한 자들의 피해

1) 대사제였던 야손의 동족 학살

그 무렵에 안티오코스 임금이 제2차 이집트 원정을 시도했는데,

쫓겨났던 야손이 안티오코스 임금이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1,000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도성을 침략하여

동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그러나 야손은 대사제직을 차지하지 못하고, 

마침내 모반 때문에 수치를 당한 채 다시 암몬 땅으로 달아났다가,

그리스에서 죽음을 맞는다(2마카 5,5-10). 

 

2) 안티오코스 임금의 백성 학살

그런데 안티오코스 임금은 야손이 일으킨 반란을

유다인들이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에 들러

단 사흘 만에 80,000명을 살해하고 40,000명을 백병전으로 죽인다. 

또한 살해당한 사람만큼 노예로 팔아버린다(2마카 5,11-14).

 

한 사람과 또다른 한 사람의 잘못된 인식과 결정에 의해

추정하여 도합 240,000여 명의 무고한 백성이 피해를 입었으니

백성들은 스스로에게,

누구 때문에 벌어진 참상인가?

누가 피해를 보았는가?라는 질문을 하여야 할 것이다.  

 

3) 대사제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모독 

이러한 동족상잔의 슬픔 속에서도

민족의 배반자인 사이비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이민족은 발조차 들일 수 없는 온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전으로

임금을 인도하여 들어간다(2마카 5,15). 

 

4) 이민족 임금에 의한 성전 모독

그러자 임금은 거룩한 기물들에 부정한 손을 대고,

다른 임금들이 그곳의 발전과 영광과 영예를 위하여 바친

예물들을 더러운 손으로 휩쓸어 간다(2마카 5,16).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도성에 사는 이들의 죄악으로 

하느님께서 도성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잠시 이곳을 소홀히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하느님과 민족을 배반한

사이비 대사제 메넬라오스가 직접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이민족 임금을 데리고 들어갔기 때문에. 

셀레우코스 임금 시대의 현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5) 사이비 대사제 추종자들의 치명적인 방조

대사제 메멜라오스와

그를 추종하는 민족의 배신자들의 암묵적 동조하에

예루살렘 성전이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만일 메넬라오스 대사제와 백성들이

오니아스와 그의 백성들처럼 의로웠다면 

셀레우코스 임금의 명에 따라 

금고를 점검하러 왔던 헬리오도로스처럼(2마카 3,24) ,

안티오코스 임금도 안으로 들어섰다가 바로 채찍질을 당하여

그런 방자한 짓을 못 하게 내몰렸을 것이다.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함께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은 물론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까지도 모욕을 당하게 되니 

이 어찌 사이비들에 의한 폐해를 간과만 할 수 있겠는가?

 

3. 사이비에 의한 돌이킬 수 없는 폐해

이러한 혼돈의 상황은

불의와 선의를 모르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 필연적 혹은 선택적으로  

정의와 공정을 회피하는 자들이 있으면 발생하는

미필적 고의에 따른 결과이다.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와 관련된 본문의 짧은 과거를 돌아본다. 

누가 경건한 대사제 오니아스를 죽음으로 이끌었는가?

어느 누가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고,

야손과 메넬라오스와 같은 사이비들을 대사제로 세웠는가?

어떤 무지하고 포악한 자들이 선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비에서 멀어지도록 획책했는가?

 

악이 과하면 선함은 짓눌리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의로우신 하느님(에즈 9,15) 안에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나 자신 안에서,

나의 가정 안에서,

나의 사회 안에서,

나의 국가 안에서,

우리 모두의 삶의 여정을 정의와 더불어 부단히 이끌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측 가능한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예측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사이비들의 횡포에 의한 독선적

혹은 독재적 행태에 빠져들 때이다. 

 

흙에서 만들어진 아무것도 아닌(욥 6,21; 다니 4,32)

사람이라 불리는 어떤 자들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게 되는데, 

과연 나의 삶이 예측 가능할 것인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다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물은 순환 주기를 갖는다.순환 주기는 태어나서(탄생),살다가(삶),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귀환) 과정으로,유전적으로 끊임없이 순환

suhbundo.tistory.com

 

바로 이러한 상황을

묵시적 징표로 보여주는 성경 본문이 마카베오기이다. 

마카베오기를 숙독하여

성경이 묵시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마카베오기가 사람들의 숫자를

그 어느 성경 본문보다 자주 그리고 자세히 밝히고 있는 이유는

바로 사이비에 의한 독선적 혹은 독재적 피해를

명시적으로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4. 성전은 백성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려고 한 것이다."(창세 18,19)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모든 성경은 

바로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거룩한 보편 교회의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실행해야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와 공정을 알 수 있고,

거룩한 성전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백성을 가르치는 직무를 가진

성직자들의 성전 및 공동체 안에서의

거룩한 삶이 중요한 것이다.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이러한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은

"이곳을 위하여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여 이곳을 선택하신 것이다,"라는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2마카 5,19).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 말씀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된 것이 아니라

거룩한 교회를 원하는 백성들의 간절함이 있기에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없으면 

혹은 사람이 거룩하지 않으면

장소인 그곳은 존재의 필요성도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교회 혹은 웅장한 바실리카를 세워도

사람이 없으면 어찌 되는가?

21세기 현재,

유럽과 과거 교부 시대의 교회들이 있었던 곳의 상황을 보자.

필라델피아 성당의 폐허(튀르키예)

 

사람이 없으니 건물은 무너지고

남은 것이라고는 폐허와

그 속에 스며있는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뿐이지 않는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던 백성들에 의해 세워진

거룩한 성전이 이럴진대,

사람들의 세속적인 생각으로 지어진

사이비들의 날림 교회들은 어찌 될까?

 

탈출기에서 성막과 관련된 기물 제작과,

성전 봉헌에 대해 자세히 묵상해야 할 이유이다. 

 

성전인 성막의 중심인 지성소에는 말씀이신 계약 궤가 있고

그 앞 성소에는 봉헌의 정점인 분향 제단과 제사상이 있으며,

함께 위치한 등잔대인 메노라에서는

성소가 아닌 온 세상을 위한 빛이 밝히 내뿜어지고 있다.    

 

 

만남의 천막의 '성막' 봉헌(탈출 40장)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이라는 긴 세월의 이집트 살이를 하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이집트를 나오게 되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다음마침내 시나이 산에 도착한다. 그들이 맺었던 하

suhbundo.tistory.com

 

자, 이즈음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가슴에 법을 넣어주고, 마음에 법을 새겨주겠다'라고 하신

하느님의 새 계약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한다(예레 31,31-34). 

 

▶새 계약(예레 31,31-34)

더보기

새 계약(예레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예레 31,31-34)

5. 어찌해야 거룩한 성전이 유지될까?

1) 정의와 공정을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 

모두 일어나 악을 물리치고

사회를 정화하고 

하느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아직 죄악이 다 차지 않았다(창세 15,16). 

 

더욱 심한 박해가 닥쳐  

이교 예식이 강요될 것이다(2마카 6,1-11).  

의로운 자들이 목숨을 잃게 되어

엘아자르가 순교하고(2마카 6,18-31)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순교하게 될 것이다(2마카 7,1-42). 

 

이 모든 것은 사이비 사제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이비 백성들의 잘못으로 벌어질 일이다.  

성전이 모독되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아도,

잘못을 범한 백성들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보내지 않으신다.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전능하신 분의 진노로 버림받은 이곳은"

그들이 회개하여

"위대하신 주님과 화해하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영광을 되찾을 것"(2마카 5,20)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수방관하며 자신들의 안일함만 찾던 백성들이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체함하고 나서야 

비로소 악의 미몽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참혹한 일이 발생한 것은

사악함을 부추기는 불의한 자와

그를 추종한 자신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정의와 공정이

왜 필요한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구원이 내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루카 19,9),

아니,

땅 위에 살게 된 인류라 불리려면(사도 17,26),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항상 배우고 익혀 실천해야 하는 명제가 된다.  

 

이렇게 하여야 거룩한 성전이 유지될 것이다. 

 

2) 논리적으로 사이비를 제거해야 한다  

마카베오기의 이 사건들이 발생한 시대가 BC 169년이니,

오늘로부터  이천여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불의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실증적 역사가 

이미 거룩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오늘날 이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이 나타나(2베드 2,1)

말씀을 왜곡하고 조작하여

정의를 빙자한 악의로 자신들 만의 집단을 만들고 있다.  

 

속칭 사이비라 불리는 자들이다(1티모 6,20).

 

사이비의 대척점은 실증 과학이다. 

실증 과학은 주어진 조건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실증 과학은 무엇일까?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과학적인 말씀이 있다면

말씀을 사이비적으로 왜곡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은 진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실증 과학에 준하여 하신 말씀은

아래 링크 파일처럼

성경의 레위기에 주로 나온다.

 

구약 시대의 미생물 이해

구약 시대의 미생물 이해 생태계에는 동물, 식물, 어류, 파충류, 곤충류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사람은 이것들로부터 음식을 선택한다. 식품으로 사용되는 재료는 인체에 해로움이 없어야

suhbundo.tistory.com

 

 

하느님께서 방역에 대해 말씀하시다

하느님께서 방역에 대해 말씀하시다 집에 생기는 곰팡이에 관한 내용은 레위기 시대의 주거 환경인 천막이 아니라,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 있는 집에 대한 말씀이다(레위 14,34). 본문 내용을

suhbundo.tistory.com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미생물의 "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살던 구약 시대에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지혜롭고 실증적으로 설명해주신다. 

 

그러므로 거짓의 정점인 사이비라는 자들을

쭉정이처럼 솎아내어(마태 3,12)

완전 봉헌물로 불에 태워버려야 할 것이다(여호 11,11). 

그렇게 하여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는(1베드 3,11)

참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러기 위해 하느님 안에서

보편 교회의 성경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 거룩한 성전이 유지될 것이다. 

 

3) 간절한 회개가 앞서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마카베오기에서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순교하면서 고백한 믿음처럼

하느님께로의 참으로 간절한 희개가 앞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 거룩한 성전이 유지될 것이다. 

 

 

일곱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순교의 노래

아래 본문들을 애가처럼 불러 본다.시작의 노래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 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suhbundo.tistory.com

 

에필로그

"지혜는 다정한 영,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지혜 1,6ㄱ)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한갓 인간의 삿된 생각으로

하느님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지혜 1,6ㄴ)라는 말씀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다시 말하여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예레 31,3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 '새 계약'에 의해 

우리의 속생각과 마음을 다 아시고

우리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은,  

거룩한 성령께서 새 계약의 말씀과 함께

우리 마음 안의 성전에 항상 계심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베드 1,16)


 

사이비 대사제와 목회자들의 운명

마카베오기는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BC 536년경)약 370여 년이 지난 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기간은 바빌론 유배의 새 계약의 시대이므로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에 대한 간절함이 높은 시

suhbundo.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