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레위기에는 하느님의 명으로 거행된
임직식에서 서임된 첫 사제들이 나온다.
이 사제들은 하느님 말씀에 따라 뽑히고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본분은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제로 서임된 나답과 아비후가
"하느님께서 명령하지 않은 속된 불"을
주님 앞에 피워 바치는 일을 저지른다(레위 10,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사제들의 상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사제들의 상례(레위 10,1-7)
1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저마다 제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담고 향을 놓았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과는 다른
속된 불을 주님 앞에 피워 바친 것이다.
2 그러자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키니,
그들은 주님 앞에서 죽고 말았다.
3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있는 이들을 통하여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나의 온 백성 앞에 나의 영광을 나타내겠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를 두고 하신 것입니다.”
아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4 모세는 아론의 삼촌 우찌엘의 두 아들 미사엘과 엘차판을 불러 말하였다.
“이리 와서 너희 조카들을 성소에서 진영 밖으로 옮겨가거라.”
5 그들은 모세가 분부한 대로 앞으로 나와,
조카들의 저고리를 잡고 그들을 진영 밖으로 옮겨 갔다.
6 모세는 아론과 그의 두 아들 엘아자르와 이타마르에게 말하였다.
“머리를 풀지 말고 옷을 찢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여러분이 죽고, 온 공동체에는 주님의 진노가 미칠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제들,
곧 이스라엘의 온 집안만이 주님께서 불살라 버리신 자들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습니다.
7 여러분은 만남의 천막 어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죽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기름으로 성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분부대로 하였다.(레위 10,1-7)
불같은 영광으로 드러나시는 하느님의 현현 앞에
속된 불을 피워 바치니,
그 행위가 곧 그들의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첫 번째 사제 임직식이 진행되는 중요한 시기에,
왜 갑자기 등장하는가?
사제들의 임무
하느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통해 명확히 구체화되었다.
정의와 공정을 배우고 지키는 것이다.(창세 18,19)
정의와 공정이란 하느님 말씀을 이행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제들을 세우신 이유에 대해 다시 말씀하시니
그것은 사제가 된 아론
"너와 너의 아들들이"(레위 10,9)
"주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한 모든 규정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다.”(레위 10,1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사제들의 상례(레위-10)
▶오병이어 모자이크 그림더보기 레위기 10장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 나온다. 이는 사제로서의 품성과 인성의 중요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왜냐하면 레위 8장부터 10장까지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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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이 모든 규정은
시나이 산에서 당신 손으로 직접 새겨주신
증언판의 내용 즉 십계명에서 시작한다.
주님의 모든 규정은 참으로 엄격하다.
그러하기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규정에 대해
때로는 모형을 보여주시면서(탈출 25,9)
자세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가르치신다.
한편으로는 민족 전체의 죄를 막기 위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처럼
시범적 혹은 경고성인 극단적 벌을 내리기도 하신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게 된 근본적인 이유(레위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들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원로 일흔 명과 함께 시나이 산에 올라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뵌 사람들이다.(탈출 24,9-10)
어찌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속된 불을 피운 행동은
그들이 하느님을 직접 뵈었다는 자부심에 따른
교만에 의해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말씀을 허투루 들은 이스라엘에게
유다가 멸망할 즈음에 다시
에제키엘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
"사제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도록
내 백성을 가르치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도록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에제 44,23)
오죽했으면 이런 말씀을 다시 하시겠는가?
그들은 이스라엘이 멸망에 이르도록,
하느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우상들과 함께 무참히 짓밟아 버렸기 때문이다.
에제키엘 예언자 시대를 지나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회개한 이스라엘이,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마카베오기 시대를 거치면서
신약 시대로 접어들지만
이스라엘의 목은 참으로 뻣뻣하기만 하다.
바빌론 유배와 예언서
유다 민족의 바빌론 유배는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다. 어찌 보면 유다가 하느님의 약속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판관 시대와 열왕기 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이 해왔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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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어떠한가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로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때부터
성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운
셀레우코스 왕조가 멸망한 기간만큼의 세월이 또 흘렀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AI)과 맞물려
예측불허한 다변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말씀에서 나온 복음보다
세치 입에서 나오는 희대의 교언잡설이
촌음을 다투며 팽창하고 있으니,
"나답과 아비후"가 받았던 종말이
스바니야 예언자의 말처럼
이 세대에 득달같이 다가오는 것 같다(스바 1,14).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 선포라는 직무 수행에
보다 시의적절한 대처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가 교리서를 통해 밝힌 것처럼
보편교회 신앙인들 모두는 각자의 성령의 은총과 더불어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날이 득달같이 다가온다(스바니야서)
스바니야서는 연대적으로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전한 예레미야서 1-6장의 뒤를 이은다. 하느님의 심판의 날인 주님의 날 (스바니야서 BC 622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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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보편교회 신앙인들에 내린 소명
가톨릭 교회가 가톨릭 교리서를 통해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보편교회 신자들의 임무는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다.
▶가톨릭 교리서: 성직자, 평신도, 봉헌 생활자
873 주님께서 원하신 당신 신비체의 지체들 사이에 있는 차이는 그 일치와 사명에 도움이 된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무가 있지만, 그 사명은 하나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그분께 받았다. 또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이 양편(성직자와 평신도)의 신자들 중……복음적 권고의 선서로써 특별한 양식으로 하느님께 봉헌되고 교회의 구원 사명에 이바지하는 이들도 있다.” (제1편, 제2부, 제3장, 제9절, 제4단락 그리스도 신자: 성직자, 평신도, 봉헌 생활자)
출처: https://suhbundo.tistory.com/1145 [대지의 숨결과 삶의 여정: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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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혹은 교사라는 자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정의와 공정"에 따른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을 어기고,
자신이 자신에게 위임한 독점적 권리라고 생각할 때마다
역사의 순간순간에 사이비와 이단이 등장한다.
아론의 맏아들인 나답과 그의 아우 아비후의 죽음은,
사목자가 사목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나
예언자나 교사라 불리는 자들이 본연의 역할을 저버렸을 때,
사이비인 그들 자신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징벌적 가르침을 드러낸 것이다.
거짓 행위자들의 종말
거짓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거짓의 행위자들로서거짓 사도(2코린 11,13), 거짓 교사(2베드 2,1), 거짓 형제(2코린 11,26), 거짓 예언자(1요한 4,1)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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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으며 말씀을 마음 안에 푸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보편교회 신앙인들이라면
레위기처럼 어려운 내용이 기록된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교회 신앙인들은
이단과 사이비에 넘어가는 혼란의 세대를
가르치고 이끄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직,
예언자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가톨릭 교리서 1편, 2부, 3장, 9절, 4단락 그리스도 신자).
에필로그
하느님을 믿는
보편교회 신앙인들은
항상 말씀 안에서
내 안의 성령과 함께 겸손되이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마태 5,2)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 7,7)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산상 설교: 마태 7,15-20)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 마태오 복음서 7장 15-20절에 대한 가톨릭 성경의 제목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이고,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USCCB RNAB)은 'False Prophets' 즉 '거짓 예언자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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