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영성

# 나의, 욥의, 그리고 세상의 친구들 - 욥기를 읽으며

좋은생각으로 2025. 11. 27. 06:17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Dominus custodiat introitum tuum et exitum tuum

 

프롤로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그렇다면 친구란 누구인가?
친구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그리고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이다.  

 

이 의미를 뒤집어 보면

가깝지만 잠시 사귄 사람

혹은 오래 사귀었지만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처럼,

단지 세상 살아가는 편의를 위한 상대방으로서의 

친구라 불리는 존재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친구가

과연 일상사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친구를

아우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기에 집회서도

"모두들 “나도 네 친구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이름만 친구일 뿐이다.""(집회 37,1)라고 하면서

"참된 친구와 거짓 친구"(집회 37,1-6)에 대해 논하니,

참된 친구는 누구이며 거짓 친구는 어떠한 사람들인지 

성경 말씀 안에서 찾아가 보고자 한다. 

 

나의 참된 친구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란 누구인가?

이와 관련된 답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계명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즉 친구이기 이전에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방편으로 친구를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공동선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므로,

 

이러한 관계는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의 아들인 성자 예수님과,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주고받을 수 있는

형제로서의 친구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하는 관계,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 친구

그렇다면 세상사에 등장하는

속된 거짓 친구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앞의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부유하고 (잠언 19 4)

선물을 주기 때문에 (잠언 19 6) 친구인, 

 

제 좋을 때와(집회 6 8) 

식탁의 친교(집회 6 10)만을 위한  친구들,

 

그리고 불행하면 떨어져 나가고 (집회 12 9) 

조롱하고 (집회 33 6) 

곤경에 놓일 때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맞서는(집회 37 4) 친구들이

바로 그러한 속된 거짓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거짓 친구들의 속성

더보기

20 빈곤한 이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지만

부유한 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따른다.(잠언 14 20)

4 부유하면 친구가 많아지고

궁핍하면 있던 벗도 떨어져 나간다.(잠언 19 4) 

6 권세가에게는 비위를 맞추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친구다.(잠언 19 6) 

8 제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집회 6 8) 

9 원수로 변하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너의 수치스러운 말다툼을 폭로하리라.(집회 6 9) 

10 식탁의 친교나 즐기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집회 6 10) 

18 친구를 돈 때문에 바꾸지 말고 친형제를 오피르의 금과 바꾸지 마라.(집회 7,18) 

9 행복하면 원수들이 슬퍼하고

불행하면 친구가 떨어져 나간다.(집회 12 9) 

6 조롱하는 친구는 종마와 같다.

누가 올라타든 히힝거린다.(집회 33 6) 

1 모두들 “나도 네 친구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이름만 친구일 뿐이다.(집회 37 1) 

4 어떤 동무는 친구가 행복할 때는 기뻐하다가

곤경에 놓일 때는 그에게 맞선다.(집회 37 4) 

그러하기에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야고 4,4)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은,

 

세상의 친구들이

바로 이러한 거짓 친구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적이 되는

세상의 즉 세속적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이 될 수 없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들로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이므로

결국에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라

나쁜 친구란 적군보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적군은 밖으로 드러나 방어할 수 있지만

마음의 가면을 쓰고 친구가 된 악인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나쁜 친구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매복하고 있는 적군이라는 것이다.

적군의 임무는 자신의 적을 죽이는 것이니

나쁜 친구가 그의 친구를 적으로 생각하고 죽이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솔로몬의 잠언(잠언 1,1)에서도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라"(잠언 1,10-19)고 하는데

이 내용은 

"부모의 교훈을 들어라"(잠언 1,8-9) 바로 다음에 나온다. 

 

이처럼 잠언의 시작부터

나쁜 친구를 조심하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나쁜 친구로 인한 사악한 영향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허울좋은 이름에 속아

나쁜 길로 빠져들기 쉽기에,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여라"(잠언 1,10-19)는 본문이

처음부터

"죄인들이 너를 유혹하여도 따라가지 마라"(잠언 1,10)로 시작 함은

나쁜 친구란 곧 악을 행하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솔로몬은 그 잠언을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유혹하여도 따라가지 마라."(참언 1,10)라고

자신의 아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솔로몬이 이렇게 자신의 아들을 부른 이유는 

그의 아들인 르하브암이

참으로 "우둔하고 지각없는 자"(집회 47,23)이기 때문이다.  

 

르하브암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1열왕 14,22) 임금이다. 

그는 임금이 되자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로서

자기를 받드는 자들과 의논하면서"(1열왕 12,8)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쪼개버린 자이다(1열왕 12,16-18). 

 

솔로몬 임금이 잠언에서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여라"(잠언 1,10-19)라는 잠언을 

 

시대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마태 15,19)

"분노, 격분, 악의"(콜로 3,8)가 횡횡하는 이 시대에

솔로몬처럼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식을 훈육하는 말로 바꿔본다.  


부모의 교훈을 들어라(잠언 1,8-9)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마라.(잠언 1,8)

그것들은 네 머리에 우아한 화관이며 네 목에 목걸이다.(잠언 1,9)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여라(잠언 1,10-19)

나쁜 친구들을 조심하여라.

내 아들아,

나쁜 친구들이 너를 유혹하여도 따라가지 마라.(잠언 1,10) 
나쁜 친구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와 함께 가자!

숨어서 남을 기다렸다가

그 피를 쏟고 매복하였다가

이유를 찾지 말고 죄 없는 이를 덮치자.(잠언 1,11) 


저승처럼 그들을 산 채로 집어삼키자.

구렁으로 내려가는 이들을 삼키듯 통째로 삼켜 버리자.(잠언 1,12) 
우리는 온갖 값진 재물을 찾아내어

우리 집을 약탈물로 그득 채우게 될 것이다.(잠언 1,13) 
너도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돈 자루는 우리 모두 하나만 두자.”(잠언 1,14) 


내 아들아,

나쁜 친구들이 이렇게 말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길을 가지 마라.

나쁜 친구들의 행로에 발을 들여놓지 마라.(잠언 1,15) 
나쁜 친구들의 발은 악을 저지르러 줄달음치고

남의 피를 쏟으려고 서두른다.(잠언 1,16) 
무슨 날짐승이든 그 눈앞에서 그물을 치는 것은 헛된 일이건만(잠언 1,17) 
나쁜 친구들은 제 피를 쏟으려고 숨어서 기다리고

제 목숨을 잃으려고 매복하는 꼴이다.(잠언 1,18) 
부정한 이득을 뒤쫓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니

그 이득이 나쁜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 가 버린다.(잠언 1,19)


"나쁜 친구들"(잠언 1,10-19)과 관련된

잠언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정의롭지 못한 사악한 자들의 전형적인 행태와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다.  

 

다시 말하여

정의를 알지도 실천도 못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삼아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멀리해야 할 사악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욥의 친구들

성경에서 친구들 간의 대화가 가장 긴 본문은 욥기이다.

그렇다면 욥기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과연 어떠한가?

 

욥의 불행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 

엘리파즈가 말한다.

"죄 없는 이 누가 멸망하였는가?"(욥 4,7)

 

빌닷이 말한다.

"자네 아들들이 그분께 죄를 지었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 죄과의 손에 넘기신 것이네."(욥 8,4)

 

초파르가 말한다. 

"자네의 수다스러운 말이 사람들을 침묵하게 할 수 있나?"(욥 11,3)

 

이들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참으로 경박하다

"욥아 네가 잘못했다. 

무조건 잘못했다.

그러니 네 잘못을 뉘우치고 전능하신 분께 빌어라는 것이다."

 

친구들의 언행은

욥의 입장이 되어 그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경험을 마치 진리인양

욥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욥은,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바랐던가,

너희에게 내가 무엇을 도와달라고 했던가,

참으로

"쓸모없는 우정"(욥 6,14-21)이구나라고 대응한다.

 

그러면서도 욥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자네들은 남의 말을 탓할 생각만 하는가?

절망에 빠진 이의 이야기는

바람에 날려도 좋단 말인가?"(욥 6,26) 

 

"그렇더라도

절망에 빠진 이는 친구들에게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욥 6,14)

 

마침내 욥이

친구들의 속성을 꿰뚫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네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네.

무서운 모습을 보더니 두려워 떠는 구려."(욥 6,21)

 

친구인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동정도 하지 못하고

두려워 떨면서 헛된 소리만 하는 자들을

어찌 친구라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친구는 하느님의 적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가 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세상의 친구가 되기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야고 4,4)라고 한 

야고보 사도의 

"세상의 친구는 하느님의 적"(야고 4,1-10)에 대해

묵상하였으면 한다. 

 

◀세상의 친구는 하느님의 적(야고 4,1-10)

더보기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야고 4,1)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야고 4,2)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3)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야고 4,4)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야고 4,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야고 4,6)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야고 4,7)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야고 4,8)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야고 4,9)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야고 4,10)

 

에필로그

이렇듯 세상의 친구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배반자들(예레 3,12)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친구란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거짓 우정을 지닌 

유혹자들(마태 4,3)이다. 

이러한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까지 속이려 한다. 

 

그러므로 서로 참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며 하신 말씀처럼(창세 18,19)

"정의와 공정"을 서로 배우고 가르쳐

함께 실행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진정 하느님의 말씀은

먼 미래,

세상의 종말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현재,

내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묵시이다. 

 

그러하기에

현재,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삶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행복"(마태 5,1-12)이 가득한

현재와 미래의 세상을 함께 이룰 것이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그렇게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참행복(산상 설교: 마태 5,1-12)

참행복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나서(창세 1,27),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 blessed] 말씀하셨다.“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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