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유다의 임금이 되었지만,
유다를 제외한 다른 열한 지파들은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네르가 추대한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요르단 건너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 왕국을 유지한다.
이 기간은 이스 보셋이 임금이 된 해인
고고학적 연대로 BC 1005년부터 1003년까지이다.
다윗과의 계약에도 불구하고
이스 보셋의 장군인 아브네르는
요압에 의해 배가 찔려서,
이스 보셋은
자신의 약탈대 장수인 바아나와 레캅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이렇게 사울 집안의 왕권은
사무엘이 전한 하느님 말씀(1사무 15,28)처럼
이스라엘에서 찢겨나가 침묵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관련 본문 연대표
I. 유다와 이스라엘이 갈라지다.
1. 다윗이 30세에 헤브론에서 유다의 임금이 되다(BC 1010년경)
다윗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가 임금이 된다.
1그 뒤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거라.” 하고 이르셨다.
다윗이 다시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자,
그분께서는 “헤브론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4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와,
거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
다윗은 사울의 장례를 치른 이들이 야베스 길앗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7여러분의 주군 사울이 세상을 떠났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십시오.
유다 집안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았습니다.”(2사무 2)
2.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이 40세에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BC 1005년경)
이스 보셋은 아브네르에 의해 마하나임에서 임금이 된다.
▶ 아수르족
아수르는 아시리아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맥과 RNAB에 의거하면 이스라엘 지파인 아세르인이라 하여야겠다.
(NAB는 Ashurites이지만 RNAB에서는 Asherites)
3. 이스라엘의 1차 분단 시대(BC 1005 - 1003년)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다윗의 통일 왕국과
솔로몬 이후의 분단 왕국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러나 최초의 분단 시대는
이스 보셋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다윗이 유다의 임금이 된
BC 1005년부터 BC 1003년까지 2년간이었다.
이스 보셋은 사울의 막내아들로서
40살에 사울의 장군이었던 아브네르에 의해 임금이 되었다.
사울의 사촌 형제이며 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네르는
다윗이 사울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임금으로 세운다.
아브네르는 사실 의로운 사람이지만,
그가 지파에 충성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을 임금으로 세운 것은
사울이 다윗에 관해 퍼뜨렸던 사악한 중상모략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쫓겨 도망갈 때,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2사무 16,7-8)라고 한
시므이의 잘못된 견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아무튼 이스 보셋의 장군인 아브네르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실되게 알게 될 것이다.
II. 유다와 이스라엘이 싸우다
1. 다윗의 조카 요압과 이스 보셋의 장군 아브네르가 기브온에서 싸우다
12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의 부하들은 마하나임에서 기브온으로 출정하였다.
17그날 싸움은 매우 치열하였다.
아브네르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배하였다.(2사무 2,12.17)
아브네르가 패하다. |
이스 보셋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전조처럼 보인다. |
2. 요압의 동생 아사엘이 죽다
18그곳에는 츠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사이와 아사엘이 있었는데,
아사엘은 들에 사는 영양처럼 달음박질이 빨랐다.
20아브네르가 뒤돌아보며,
“네가 바로 아사엘이냐?” 하고 물으니,
아사엘이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21그러자 아브네르가 그에게 말하였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몸을 돌려 젊은이나 하나 잡고 그를 털어 가라.”
그러나 아사엘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뒤를 쫓았다.
22아브네르가 다시 아사엘에게
“내 뒤는 그만 쫓고 물러서라.
내가 너를 쳐 땅바닥에 쓰러지게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네 형 요압 앞에서 내가 어떻게 머리를 들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23그래도 아사엘은 물러서기를 마다하였다.
그래서 아브네르는 창끝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창이 등을 뚫고 나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아사엘이 쓰러져 죽은 자리에 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멈추어 섰다.
24그러나 요압과 아비사이는 계속 아브네르의 뒤를 쫓아,
해가 질 무렵 기브온 광야로 가는 길가의
기아(☞ Geba 게바) 맞은쪽에 있는 암마 언덕에 이르렀다.(2사무 2,18.21-24)
아브네르와 아사엘의 기브온 전투가 상세히 설명된 이유 |
아사엘은 요압의 동생이고 그의 어머니는 다윗의 누이 츠루야이다. 아사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이는 아브네르가 자기 방어로 아사엘을 죽이기 전에 두 번이나 자신을 쫓지 말라고 경고한 의로운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의 이스라엘을 넘기기로 다윗과 공식적인 계약을 맺으려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아브네르는 아사엘의 형인 요압에 의해 살해 될 것이다. 이로써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될 수 있었는데, 피바람을 불러 일으킨 정권 탈취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요압을 저주하고, 요압은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 것이다.(1열왕 2,34) |
3. 요압과 아브네르가 휴전하다
26아브네르가 요압을 불러서 말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칼부림을 해야 하겠느냐?
28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사가 멈춰 서서
더 이상 이스라엘인들의 뒤를 쫓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았다.
29그날 아브네르와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 아라바를 지나 요르단을 건너고,
오전 내내 걸어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30요압도 아브네르의 뒤를 더 이상 쫓지 않고 돌아섰다.
그가 군사들을 모두 모아 보니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열아홉 명과 아사엘이 비었다.
31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벤야민 사람과 아브네르의 부하를 삼백육십 명이나 쳐 죽였다.
32그들은 아사엘을 메어다가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묻었다.
그런 다음 요압과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서
동틀 무렵에 헤브론에 이르렀다.(2사무 2,26-32)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간의 싸움이 시작되다. |
아브네르는 휴전을 제안 한다. 요압은 아브네르가 기브온 못에서 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 아사엘의 죽음을 아브네르의 탓으로 돌린다.
아브네르는 마하나임으로, 요압은 헤브론으로 돌아간다. |
III. 이스라엘의 장군 아브네르가 다윗에게로 돌아서다.
1.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의 싸움이 계속되다
1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다.
다윗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갈수록 약해졌다.(2사무 3,1)
사울의 집안이 약해지다. |
이스보셋이 11개 북부 지파(10 + 벤야민)의 임금이었던 2년 동안 다윗과 길고 지속적인 내전이 벌어진다. 다윗은 강해지고 이스 보셋은 약해져 갔다. 이는 아브네르가 다윗에게 기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
2. 다윗이 헤브론에서 6명의 부인에게서 6명의 아들을 낳다
2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다.
맏아들은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에게서 난 암논이다.
3둘째는 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서 난 킬압이고,
셋째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의 아들 압살롬이다.
4넷째는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이고,
다섯째는 아비탈의 아들 스파트야이다.
5여섯째는 다윗의 부인 에글라에게서 난 이트르암이다.
이들이 헤브론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들이다.(2사무 3)
다윗의 아내 | 다윗의 아들 | 비고 |
아히노암(이즈르엘 여자) | 암논 | 타마르 추행(압살롬이 살해함) |
아비가일(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 | 킬압 | |
마아카(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 압살롬 | 반란 주도(요압이 살해함) |
하낏 | 아도니야 | 임금 행세, 아비삭(솔로몬이 살해함) |
아비탈 | 스파트야 | |
에글라 | 이트르암 |
3. 이스라엘의 장군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 임금에게 화를 내다
6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아브네르는 사울 집안에서 점점 강해졌다.
7사울에게는 아야의 딸 리츠파라는 후궁이 있었다.
어느 날 이스 보셋이 아브네르에게
“장군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였소?” 하고 말하였다.
8이스 보셋의 말에 아브네르가 몹시 화를 내며 대꾸하였다.
“내가 유다의 개 대가리란 말이오?
오늘날까지 나는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안과
그분의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오늘 한낱 여자에 관한 잘못을 들어 나를 꾸짖으시오?
9주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일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하겠소.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이 아브네르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이오.
10그 일은 이 나라를 사울 집안에서 거두어,
다윗의 왕좌를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세우는 것이오.”
11이스 보셋은 아브네르를 두려워하여
그에게 다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였다.(2사무 3,6-11)
이스 보셋이 아브네르를 비난한 이유 |
전쟁에 승리한 권력자들은 자신을 임금으로 선포하는 방법으로 죽은 임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하곤 한다. 이스 보셋은 아브네르가 후궁을 범한 일이 자신의 임금 자리를 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스 보셋은 자신을 임금으로 세우고 군대 전체를 통솔하는 아브네르가 자신을 다윗에게 넘길 권한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에게 화를 낸 이유 |
아브네르는 이스 보셋을 임금으로 세워
다윗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아브네르는 이스 보셋이 자신의 목을 베기 원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유다의 개 대가리란 말이오?"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즉, 이스 보셋이 누군가에게 "아브네르가 유다로 기우는 것 같아, 위험하니 개처럼 목을 쳐야 겠어"와 비슷한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아브네르는 이스 보셋을 임금으로 세웠는데도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
IV. 이스보셋의 장군 아브네르와 다윗이 계약을 맺다.
1. 아브네르가 계약을 맺으러 다윗을 찾아가다
12아브네르는 다윗에게 자기 대신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이 땅이 누구 것입니까?
저와 계약을 맺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의 편이 되어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께 돌아가게 하겠습니다.”(2사무 3,12)
아브네르가 다윗에게 계약을 제의하다. |
다윗은 아브네르를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는 평화의 사람이었기에 아브네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
2. 다윗이 계약에 동의하고 미칼을 돌려달라고 하다
13다윗은 이렇게 응답하였다.
“좋소. 그대와 계약을 맺겠소.
그 대신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만 요구하겠소.
그대가 나를 보러 올 때 사울의 딸 미칼을 데려오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오.”
14한편 다윗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나의 아내 미칼을 돌려주시오.
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포피 백 개를 바치고 그 여자를 아내로 얻었소.”
15이스 보셋이 사람을 보내어 미칼을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팔티엘에게서 데려왔다.
16남편도 그 여자와 함께 떠나,
바후림까지 울면서 그 뒤를 따라왔다.
아브네르가 그에게 “그만 돌아가시오.” 하니,
그가 돌아섰다.(2사무 3,13-16)
다윗이 계약 조건을 제시하다. |
다윗은 사울이 라이스의 아들 팔티엘에게 준 미칼을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임금의 딸이나 아내인 여성의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청은 다윗이 사울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미칼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에게는 이미 6명의 아내가 있으며, 미칼이 애를 낳지 못했음에서도 알 수 있다. |
당시와 현대의 관습적 차이가 크다. |
3. 아브네르가 다윗과 계약을 맺다
17아브네르는 이미 이스라엘 원로들과 이렇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여러분은 오래전부터 다윗을 여러분 위에 임금으로 모시려 하고 있습니다.
18이제 그렇게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그리고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겠다.’”
21아브네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제가 일어나 가서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 온 이스라엘을 모아들여
그들이 임금님과 계약을 맺게 하겠으니,
임금님께서는 뜻하시는 대로 다스리십시오.”
다윗이 아브네르를 보내자 그가 무사히 떠나갔다.(2사무 3,17-18.21)
아브네르가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추진하다. |
아브네르는 다윗의 의견에 동의하고, 유다를 제외한 북쪽 11개 지파의 통제권을 다윗에게 넘기기 위해 북쪽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가 요압에 의해 살해되기 때문에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4. 다윗의 조카 요압이 아브네르를 죽이다
27아브네르가 헤브론으로 돌아오자,
요압은 그와 더불어 조용히 이야기하겠다고 그를 성문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 요압은 거기에서 그의 배를 찔렀다.
아브네르는 이렇게 요압의 동생 아사엘의 피를 흘린 탓에 죽었다.
28나중에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나와 나의 나라는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의 피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영원히 죄가 없다.
29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 집안 전체에 닥치리니,
요압의 집안에는 고름을 흘리는 자와 악성 피부병 환자,
물레질하는 자와 칼에 맞아 쓰러지는 자와
양식이 없는 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2사무 3,27-29)
다윗이 요압을 저주하다. |
요압은 동생 아사엘을 죽인 아브네르에게 항상 원한을 품고 있었다. 다윗의 군사령관인 요압은 오랫동안 사울의 측근인 아브네르를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적으로 보아 왔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요압이 임금의 결정에 불순종하고 아브네르를 죽인 것이다.
다윗은 요압이 아브네르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아브네르가 살아서 11개 지파를 평화롭게 다윗에게 넘겨주었다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죽임을 당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요압 집안에 대해 저주를 선포한다. 다윗은 끊임없이 요압을 내치려한다. 요압은 다윗 치세 말기에 아도니야를 지지하다가, 솔로몬이 임금이 된 뒤에 처형된다.(참조 1열왕 2,5.34) |
5. 다윗이 아브네르의 죽음을 애도하다
31다윗이 요압과 그가 거느린 모든 군사에게 일렀다.
“너희는 옷을 찢고 자루옷을 두른 채 아브네르의 주검 앞에서 애도하여라.”
그러고 나서 다윗 임금 자신도 상여 뒤를 따라갔다.
32아브네르를 헤브론에 장사 지낸 다음,
아브네르의 무덤에서 임금이 소리 높여 우니 모든 군사도 울었다.
38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오늘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장수 하나가 쓰러진 것을 모르오"
39내가 비록 기름부음 받은 임금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약하구려.
츠루야의 아들들인 이 사람들이 나에게는 너무 벅차오(2사무 3,31-32.38-39)
요압이 임금인 다윗에게 무력감이 들게 하다. |
요압의 이기적인 복수 행위는 다윗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다윗이 12지파 모두의 임금이 되는 무혈의 정권 이양의 길을 없애버렸다. 다윗이 요압에게 아브네르를 죽이도록 지시했을 것이라는 다윗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 냈다. 다윗이, 사울이 한 맹세처럼 사람들의 맹세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다윗은 깊은 슬픔에 잠겼고 개인적으로 아브네르의 뒤를 따라 헤브론에 있는 무덤까지 간다. 사람들은 다윗이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않는 놀라운 상황에 직면한다. 다윗이 아브네르의 처형을 명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백성들이 분명히 알게 된다. 이는 통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의 다윗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때 요압은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
어찌 보면 다윗의 정치적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편 등에 나온 그의 삶을 보면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
의로운 사람인 아브네르와 요나탄의 죽음에서, 삶에 대한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종말을 보는 씁쓸함이 베어난다. |
V. 이스 보셋의 이스라엘이 멸망하다
1. 브에롯 사람 레캅과 바아나가 이스 보셋을 암살하다
1아브네르가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은 두 손에 맥이 빠졌다.
온 이스라엘도 혼란에 빠졌다.
2사울의 아들에게는 약탈대 장수(company leader, 중대 지휘관)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레캅이었다.
그들은 벤야민의 자손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이었다.
사실 브에롯도 벤야민 지파에 속한 것으로 여겨졌다.(2사무 4,1-2)
4사울의 아들 요나탄에게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의 나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이즈르엘에서 사울과 요나탄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유모가 그를 데리고 황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그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므피보셋이다.(2사무 4,4)
요나탄의 아들 므피보셋의 이름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 |
므피보셋의 이름은 므립 바알(Meribbal)이다.< 참조> 1역대 8,34; 9,40 이 구절에 므피보셋이 나온 이유는 본문 2-4장에 나오는 주요 인물인 사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그의 삼촌 이스 보셋이라는 이름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언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RNAB 주석) |
5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캅과 바아나가
뜨거운 한낮에 길을 떠나 이스 보셋의 궁에 이르렀다.
7그들이 궁으로 들어갔을 때
이스 보셋은 침실에서 침상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를 쳐 죽인 다음에 그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나와서
밤새도록 아라바 길을 걸었다.(2사무 4)
약탈대 장수(company leader, 중대 지휘관)의 오판 |
아브네르가 요압에 의해 살해된 후, 이스보셋의 지휘관이었던 바아나와 레캅은 자신들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이 아브네르를 처형했다고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브네르가 죽었으므로 다음 처형 대상자는 지휘관인 자신들일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행동을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
2. 다윗이 바아나와 레캅을 죽이다
9그러나 다윗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캅과 그의 동생 바아나에게 말하였다.
“온갖 고난에서 나의 목숨을 건져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11하물며 악한 자들이 자기 집 침상에서 자는 의로운 사람을 살해하였는데,
내가 어찌 그 피에 대한 책임을 너희 손에 묻지 않으며
이 땅에서 너희를 없애 버리지 않겠느냐?”
12다윗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부하들은 그들을 죽인 다음 그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헤브론의 못가에 달아 매었다.
그러나 이스 보셋의 머리는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아브네르의 무덤에 장사 지냈다.(2사무 4)
약탈대 장수들의 오판에 따른 결과 |
다윗은 림몬의 아들인 바아나와 레캅에게 아멜렉 사람이 사울을 죽였다고 했을 때 벌어진 일을 기억시키고 나서 그들을 처형한다. 여기서 슬픈 것은 거짓말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다윗이 아브네르를 죽이도록 명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목숨을 보존하려고 이스보셋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옳건 그르건 간에 아브네르와 이스보셋이 죽고, 이제 다윗이 온 땅을 장악하여 열두 지파 모두의 임금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내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은 통일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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