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카베오기 4장에 등장하는 안티오코스 4세 에페파네스(2마카 2,4-7)는
마카베오의 아버지인 마타티아스의 투쟁을 유발한 임금인데,
마카베오기 상권은 그를 유다인과 유다교를 박해한
황폐를 부르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황폐를 부르는 자가 머리를 내밀다(1마카 1)
시작하면서다니엘서 7장의 네 마리 짐승의 환시는 다니엘서 2장의 순금(바빌론), 은(메디아),청동(페르시아), 쇠(그리스)로 만들어진 입상으로 표현된네 왕국에 대한 주제를 이어간다. 다니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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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를 부른 칙령
그가 아시아의 임금 셀레우코스의 뒤를 이어(2마카 3,3)
왕위를 계승하면서
(참조 ☞가계도)

유다교 박해하고자 내린 칙서에
"성소와 성직자들 the sacred ministers을 모독할 것"(1마카 1,46)이라는
칙령을 포함시켰다.
안티오코스의 대표적인 성소 모독은
예루살렘 성전에
"이교 제단과 신전과 우상을 만들고,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1마카 1,47)이라는 명령이다.
이와 더불어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이라는 명령도 있는데,
그 방법은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온갖 부정한 것과 속된 것으로
그들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도록 할 것"이라는 명령이다.
그 당시의 대사제들
칙령과 더불어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시대에
당시 성직자인 대사제들이 과연 어떠한 행동을 했는가이다.
2마카 4장에는 오니아스 Onias,
오니아스의 동생인
야손 Jason, 그리고
성전 관리 책임자인 시몬의 동생인
메넬라오스 Menelaus라는 대사제들이 등장한다.
오니아스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직전 임금인 셀레우코스 임금 시대에
"오니아스 대사제가 경건하게 살고 악을 미워한 덕분에,
거룩한 도성에서는
사람들이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다." (2마카 3,1)라는
2그때에는 임금들까지도 성소를 존중하고 최상의 선물을 보내면서 성전을 영화롭게 하였다.
3아시아의 임금 셀레우코스도 희생 제물을 바치는 예식에 드는 모든 비용을 자기 수입에서 지불하였다.(2마카 3,1-2)
설명처럼 대사제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성직자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임금 셀레우코스가 사망하고 그 후임으로
셀레우코스 동생인 안티오코스가 임금이 되자
유다 백성들에게 거대한 흑암의 회오리가 들이닥치기 시작하니,
그 시발점은 대사제들의 탐욕에 기인한다.
황폐를 부른 사이비 대사제들
안티오코스의 유다교를 박해하고자 내린 칙령과 관련된
박해가 시작되니
이를 빌미로 성직자라고 칭하는 사악한 대사제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고려대한국어대사전)인 사이비인 것이다.
이들 사이비 대사제들에는
야손과.
메넬라오스가 있다.
이들이 사이비인 것은 그들이 임금을 섬기고자 하여,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사제로서 나를 섬기도록
그들을 성별하기 위하여"(탈출 29,1ㄱ)라는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야손과 메넬라오스가 사이비 대사제인 이유
왕권이 바뀌고 집권자가 비정상적인 행위를 펼치니
기회를 엿보던 사이비와 같은 사악한 자들이 득세를 하려한다.
그러나 악인들의 처세는 정당하지 못할 뿐이다.
사악한 자들은 의인들을 속이고 때로는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잡으려하기 때문이다.
.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들이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까지 기꺼이 넘기려히니
자신과 자신의 근친들을 제외하고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는 물론 민족 공동체가 파멸에 직면하게 되니
그런 사례가 이미 바빌론 유배로 드러났지만,
사악한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과거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변질하기도 하니
바로 이 때, 즉 마카베오 시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대사제와 목회자들의 운명
마카베오기는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BC 536년경)약 370여 년이 지난 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기간은 바빌론 유배의 새 계약의 시대이므로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에 대한 간절함이 높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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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카 4장 본문 및 해설
오니아스가 셀레우코스에게 시몬을 고발하다
1 앞에서 말한 대로 시몬은 기금과 조국에 해를 끼치는 밀고를 하더니, 이제는 헬리오도로스를 부추겨 그 불행한 일을 불러들인 장본인이 오니아스라고 모함하였다. 2 무엄하게도 이 도성의 은인이고 동족의 보호자이며 열렬한 법의 수호자인 그를 정권에 반기를 든 자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3 오니아스에 대한 시몬의 적개심이 점점 커져 시몬의 심복 하나가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4 오니아스는 분쟁이 심각해지고, 메네스테우스의 아들이며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가 시몬의 사악함을 부추기고 있는 것을 보고 5 임금을 찾아갔다. 이는 자기 동족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온 백성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6 그는 임금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 지방 행정이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시몬은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야손이 오니아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리스 문화를 끌어들이다
7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 [4,7] 2마카 1,7; 1마카 1,10. 8 야손은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은 삼백육십 탈렌트와 또 다른 수입에서 팔십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9 그것에 덧붙여, 자기의 권한으로 체육관과 청년 학교를 설립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안티오키아 시민으로 등록하도록 임금이 승낙해 준다면, 백오십 탈렌트를 더 바치겠다고 언약하였다. 10 임금의 허락을 받은 야손은 그 직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의 생활 방식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11 그는 유다인들이 에우폴레모스의 아버지 요한을 통하여 다른 임금들에게서 얻은 특전들을 폐기시켰다. 요한은 전에 로마인들과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다. 야손은 법에 맞는 생활양식을 없애 버리고 법에 어긋나는 새 관습들을 끌어들였다. [4,11] 1마카 8,17. 12 [4,12–17] 1마카 1,11–15. 그는 신이 나서 성채 바로 밑에 체육관을 세우고 가장 뛰어난 청년들에게 그리스식 모자를 쓰게 하였다. 13 이렇게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그리스화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 14 그리하여 사제들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에 열성이 없어져, 성전을 경시하고 희생 제물 바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징이 울리기가 바쁘게 그들은 레슬링 경기장으로 달려가 법에 어긋나는 경기에 참여하였다. 15 그들은 이렇게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고, 그리스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16 바로 그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을 열심히 따르고 모든 면에서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17 사실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대가 그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
18 네 해마다 티로에서 열리는 경기에 임금이 참관하였는데, 19 비열한 야손은 예루살렘의 안티오키아 시민들을 대표하는 사절들을 뽑아 파견하면서, 헤라클레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칠 비용으로 은 삼백 드라크마도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 돈을 가져가는 이들은 그 돈을 희생 제물의 비용으로 쓰는 일이 합당하지 않으므로 다른 데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0 그리하여 그 돈을 보낸 자는 헤라클레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데에 쓰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가져가는 이들의 결정에 따라 삼단 노를 갖춘 군선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21 메네스테우스의 아들 아폴로니우스가 필로메토르 임금의 즉위식에 참석하도록 이집트로 파견되었을 때, 안티오코스는 필로메토르가 자기의 정권에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야포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22 그는 야손과 이 도성 주민들이 횃불과 환성으로 성대하게 환영하는 가운데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페니키아로 진군하였다.
메넬라오스가 대사제가 되다
23 세 해 뒤에 야손은 앞에서 말한 시몬의 동생 메넬라오스를 보내어, 임금에게 돈을 가져가고 몇 가지 필요한 일에 관하여 결정을 받아 오게 하였다. 24 그런데 메넬라오스는 임금에게 인도되자 자신을 권위 있는 것처럼 내세우고, 야손보다 은 삼백 탈렌트를 더 바쳐 대사제직을 확보하였다. 25 그는 어명을 받고 돌아왔지만 대사제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잔인한 폭군의 기질과 사나운 야수처럼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26 그리하여 친동기마저 몰아낸 야손은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몰려서 도망자가 되어 암몬 지방으로 쫓겨가게 되었다.
27 메넬라오스는 대사제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임금에게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 28 그래서 성채의 장수인 소스트라토스가 그 돈을 바치라고 독촉하였다.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사건 때문에 임금에게 불려 갔다. 29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자기 동기 리시마코스를 대사제 대리로 앉히고, 소스트라토스는 키프로스군을 통솔하는 크라테스를 대리로 앉혔다. [4,29] 2마카 4,39–42.
오니아스가 피살되다
30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타르수스와 말루스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읍이 임금의 후궁 안티오키스에게 선물로 넘겨진 것을 알고 폭동을 일으켰다. 31 그래서 임금은 고관들 가운데 하나인 안드로니코스를 대리로 세워 두고 사태를 수습하러 급히 그리로 갔다. 32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여, 성전의 금 기물들을 몇 개 훔쳐서 안드로니코스에게 바쳤다. 그는 이미 티로와 그 주변 여러 성읍에 다른 기물들을 팔아먹은 적이 있었다. 33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오니아스는 안티오키아 근처에 있는 다프네라는 신성 도피처로 들어가 그를 비난하였다. 34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안드로니코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오니아스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안드로니코스는 오니아스를 찾아가 속임수로 그를 안심시키고 악수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의심하는 오니아스를 설득하여 신성 도피처에서 나오게 한 다음, 정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바로 죽여 버렸다.
35 그가 불의하게 살해당한 일 때문에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민족들도 분개하고 슬퍼하였다. 36 임금이 킬리키아 지역에서 돌아오자, 그 성읍의 유다인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사건을 개탄하는 그리스인들이 오니아스가 피살된 사건을 호소하였다. 37 안티오코스는 마음 깊이 애도하고 측은하게 여겼으며, 죽은 이의 슬기와 고상한 품행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38 분노에 휩싸인 안티오코스는 안드로니코스의 자주색 옷을 벗기고 다른 옷까지 찢어 버린 다음, 그가 오니아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바로 그곳까지 온 성읍을 가로질러 끌고 가서 그를 죽여 버렸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리셨다.
군중이 폭동을 일으켜 리시마코스를 죽이다
39 이 도성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절도 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그것은 메넬라오스의 동조 아래 리시마코스가 저지른 짓이었다. 이미 많은 금 기물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군중이 리시마코스를 치려고 몰려들었다. 40 군중이 분노에 차서 들고일어나자, 리시마코스는 삼천 명가량을 무장시키고, 나이는 많지만 별로 사려 깊지 못한 하우라노스라는 자를 앞장 세워, 그들에게 악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41 그러자 그들은 리시마코스가 공격해 오는 것을 알고서 어떤 이들은 돌을 집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또 어떤 이들은 곁에 있는 재를 움켜쥐고, 리시마코스의 부하들에게 닥치는 대로 마구 던졌다. 42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고 더러는 죽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내쫓아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성전 절도범은 금고 곁에서 죽여 버렸다.
메넬라오스의 악행
43 이 일로 사람들이 메넬라오스를 고발하였다. 44 임금이 티로에 도착하였을 때, 원로단에서 파견된 세 사람이 임금에게 이 사건을 아뢰었다. 45 이미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메넬라오스는 도리메네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임금을 설득시켜 달라면서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4,45] 2마카 8,8; 1마카 3,38. 46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람을 쐬러 나가는 체하면서 임금을 회랑으로 데리고 나가,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47 임금은 그 모든 악의 원인이었던 메넬라오스에 대한 고발을 기각하고, 오히려 그 불운한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들은 스키티아인들 앞에서 변론하였더라도 무죄로 풀려났을 사람들이었다. 48 그들은 이 도성과 대중과 거룩한 기물들을 위하여 변론하였다가 느닷없이 부당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49 그래서 티로 사람들까지도 이 불의한 처사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 주었다. 50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권력자들의 탐욕 덕분에 대사제직을 유지하면서, 줄곧 악에 집착하여 동족을 반역하는 원흉이 되었다.
마카베오기, 신약으로의 디딤돌
마카베오기 시대의 지도,관련 국가 및 인물에 대한 연대표,비인륜적인 가계를 형성한 왕조의 가계도,마카베오기의 본문의 연도별 주요 상황, 그리고 그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연대표를 게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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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PROFANATION AND PERSECUTION(RNAB)
모독과 박해(RNAB)
Simon Accuses Onias.(RNAB)
시몬이 오니아스를 고발하다(RNAB)
오니아스가 셀레우코스에게 시몬을 고발하다
Onias Appeals to the King
4 1앞에서 말한 대로 시몬 Simon은
기금과 조국에 해를 끼치는 밀고를 하더니,
이제는 헬리오도로스 Heliodorus를 부추겨
그 불행한 일을 불러들인 장본인이 오니아스 Onias라고 모함하였다.
2무엄하게도 이 도성의 은인이고
동족의 보호자이며
열렬한 법의 수호자인 그를
정권에 반기를 든 자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3오니아스에 대한 시몬의 적개심이 점점 커져
시몬의 심복 하나가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4오니아스는 분쟁이 심각해지고,
메네스테우스 Menestheus의 아들이며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 Apollonius가
시몬의 사악함을 부추기고 있는 것을 보고
5임금 Seleucus Ⅳ Philopator [BC 187-175]을 찾아갔다.
이는 자기 동족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온 백성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6그는 임금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 지방 행정이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시몬은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Jason as High Priest.(RNAB)
대사제 야손(RNAB)
야손이 오니아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리스 문화를 끌어들이다
Jews Led by Jason To Apostatize
7셀레우코스 Seleucus Ⅳ Philopator [BC 187-175]가 생을 마감하고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BC 175],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 Jason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 [4,7] 2마카 1,7; 1마카 1,10.
[4,7 주석] 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가계도 참조)
[4,7] 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Seleucus died :
그는 헬리오도로스 Heliodorus 에게 살해당했다.
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는 셀레우코스의 남동생이었다.
오니아스의 동생은 그의 히브리 이름인 예수아 Joshua 또는 예수 Jesus를
그리스 이름인 야손으로 바꾸어 그리스식 생활 방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다(10절).
[4,7 관련 본문]
[4,7] 2마카 1,7; 1마카 1,10.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2마카 1,1-9)
7 백육십구169년 데메트리오스가 다스리던 때에
우리 유다인들은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것은 야손과 그의 일당이 거룩한 땅과 나라에서 떨어져 나간 뒤 몇 해 동안
우리가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2마카 1,7)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풍습을 따르다(1마카 1,10-15)
10 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137년 [☞ BC 175년]에 임금이 되었다.(1마카 1,10)
8야손은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은 삼백육십360 탈렌트와
또 다른 수입에서 팔십80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9그것에 덧붙여,
자기의 권한으로 체육관 gymnasium과
청년 학교 youth center를 설립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안티오키아 시민 citizens of Antioch으로 등록하도록 임금이 승낙해 준다면,
백오십150 탈렌트를 더 바치겠다고 언약하였다.
[4,9 주석] 청년 학교. 안티오키아 시민
[4,9] 청년 학교 youth center :
젊은이들이 그리스의 지적 문화와 신체적 건강을 모두 훈련받는 교육 기관.
안티오키아 시민 citizens of Antioch :
셀레우코스 왕국의 헬레니즘 도시인 안티오키아의 명예 시민.
안티오키아에는 특정 정치적, 상업적 특권을 누린 안티오키아인들의 법인이 있었다.
10임금의 허락을 받은 야손은 그 직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의 생활 방식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11그는 유다인들이 에우폴레모스 Eupolemus의 아버지
요한 John을 통하여 다른 임금들에게서 얻은 특전들을 폐기시켰다.
요한은 전에 로마인들과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다.
야손은 법에 맞는 생활양식을 없애 버리고
법에 어긋나는 새 관습들을 끌어들였다. [4,11] 1마카 8,17.
[4,11 주석] 에우폴레모스
[4,11] 에우폴레모스 Eupolemus :
유다 마카베오가 로마에 파견한 두 사절 가운데 한 사람(1마카 8,17).
유다인들이 로마와 우호 동맹을 맺다(1마카 8,17-32)
17 유다는, 아코츠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인 에우폴레모스와 엘아자르의 아들 야손을 뽑아 로마로 보내어,
우호 동맹을 맺게 하였다.(1마카 8,17)
[4,11 관련 본문]
[4,11] 1마카 8,17.
유다인들이 로마와 우호 동맹을 맺다(1마카 8,17-32)
17 유다는,
아코츠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인 에우폴레모스와
엘아자르의 아들 야손을 뽑아 로마로 보내어,
우호 동맹을 맺게 하였다.(1마카 8,17)
[4,12-17 관련 본문]
[4,12–17] 1마카 1,11–15.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풍습을 따르다(1마카 1,10-15)
10 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1마카 1,10-15)
12 [4,12–17] 1마카 1,11–15.
그는 신이 나서 성채 바로 밑에 체육관을 세우고
가장 뛰어난 청년들에게 그리스식 모자 the Greek hat를 쓰게 하였다.
[4,12 주석] 그리스식 모자
[4,12] 청년들이 알몸으로 운동하던 체육관(그리스어 gymnos)은
성채 동쪽의 티로포이온 계곡 the Tyropoeon Valley에 있었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신전 바로 옆에 있었다.
그리스식 모자 the Greek hat :
챙이 넓은 모자,
운동 경기의 수호신인 헤르메스 Hermes의 전통적인 머리 장식으로,
"유스 센터 youth center " 구성원들의 독특한 의상의 일부를 형성했다.
13이렇게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ungodly pseudo-high-priest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그리스화 the craze for Hellenism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
14그리하여 사제들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에 열성이 없어져,
성전을 경시하고 Disdaining the temple
희생 제물 바치는 일을 소홀히 neglecting the sacrifices 하였다.
징이 울리기가 바쁘게
그들은 레슬링 경기장 the arena으로 달려가
법에 어긋나는 경기 the unlawful exercises 에 참여하였다.
15그들은 이렇게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고,
그리스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16바로 그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을 열심히 따르고
모든 면에서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무서운 재앙: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성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면서 다가오는 재앙이다.
17사실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대가 그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

18네4 해마다 티로에서 열리는 경기에 임금이 참관하였는데,
18When the quinquennial games were held at Tyre in the presence of the king,
☞ 5년마다 the quinquennial 열리는 경기이다.
19비열한 야손은
예루살렘의 안티오키아 시민들을 대표하는 사절들을 뽑아 파견하면서,
헤라클레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칠 비용으로
은 삼백300 드라크마도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 돈을 가져가는 이들은
그 돈을 희생 제물의 비용으로 쓰는 일이 합당하지 않으므로
다른 데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0그리하여 그 돈을 보낸 자는
헤라클레스 Hercules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데에 쓰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가져가는 이들의 결정에 따라
삼단 노를 갖춘 군선 triremes [ˈtraɪriːm] 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4,20 주석] 삼단 노를 갖춘 군선
[4,20] 삼단 노를 갖춘 군선 triremes :
노를 세 개로 놓은 전함.
21메네스테우스 Menestheus의 아들 아폴로니우스 Apollonius가
필로메토르 Ptolemy VI Philometor [180-164,163-145] 임금의 즉위식에 참석하도록
이집트로 파견되었을 때,
안티오코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는
필로메토르가 자기의 정권에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야포 Joppa에 갔다가 예루살렘 Jerusalem으로 올라왔다.
[4,21 주석] 필로메토르
[4,21] 필로메토르 Philometor :
이집트의 임금 프톨레마이오스 6세, BC 172년경~BC 145년경.
Ptolemy VI, king of Egypt, ca. 172 to ca. 145 B.C.
22그는 야손 Jason과 이 도성 주민들이
횃불과 환성으로 성대하게 환영하는 가운데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페니키아 Phoenicia로 진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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