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그가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유다의 대사제들과 그러한 그들을 추종한 백성들의 독성죄가
큰 이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에피파네스 직전의 임금인 셀레우코스는
성소를 존중하고 최상의 선물을 보내면서
성전을 영화롭게 하였으며(1마카 3,2),
당시 유다의 대사제인 오니아스는
경건하게 살고 악을 미워한 성직자였기 때문이다. .
그런데 셀레우코스의 동생 에피파네스가 BC 175년에 즉위하자
오니아스의 동생인 야손이
돈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한다.
비록 돈으로 대사제직을 팔았던 에피파네스이지만
성직자라고 하는 유다 사제들의 매관매직 행태를 어찌 보았겠는가?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인 BC 172년에
메넬라오스라는 흉악한 자가
임금에게 돈을 더 주겠다고 하면서
또다시 대사제직을 차지한다.

이렇게 야손에서 메넬라오스로 이어지면서 발생한
성직에 대한 대사제들의 매관매직의 독성죄가
유다 사회를 짓누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대해
"바로 그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다.
다음 시대가 그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2마카 4,16-17)라고
마카베오기 하권은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는
야손의 패륜을 보면서 이처럼 일갈하고 있다.
이처럼 마카베오기 하권은 집중적으로
대사제들과 그를 추종하는 변절자들로 인한
유다 사회에 닥쳐올 바로 그 무서운 재앙을 밝히고 있다.
마침내 그로부터 5년 뒤인 BC 167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성전에 세워진다(1마카 1,54).
그리고 갈수록 거세지는 이민족들의 핍박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니
극단적인 사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2마카 7,1-42)이다.
마카베오기는
아브라함을 통해 드러내신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성직자들과 백성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비참하고 참담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매관매직에 의해 대사제직을 취한 자들과
그러한 그들을 추종하는 우매한 백성들로 인해 발행할 수 있는
수많은 반윤리적 혹은 반인륜적 행태들이
과연 어떻게 사회를 파멸시켜 가는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마카베오기 하권은
사이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경고하고 있다(2마카 4,13).
바른 길을 걷지 못하는 사이비의 종말이 무엇인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대사제와 목회자들의 운명
마카베오기는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BC 536년경)약 370여 년이 지난 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기간은 바빌론 유배의 새 계약의 시대이므로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에 대한 간절함이 높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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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는 백성들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사제들은 성직자로서
어찌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마카베오기를
"하느님의 새 계약으로 향하는 디딤돌"이라 부르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새 계약으로 향하는 디딤돌, 마카베오기
프롤로그큰 나라 임금들 간의 싸움에조그마한 유다라는 민족이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쓰러진다. 모욕에 치욕이 더하여비참함과 처참함으로 뒤틀린 유다 민족에크나큰 하느님의 진노가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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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카 4장 본문 및 해설
오니아스가 셀레우코스에게 시몬을 고발하다
1 앞에서 말한 대로 [성전의 관리 책임자인] 시몬은 기금과 조국에 해를 끼치는 밀고를 하더니, 이제는 헬리오도로스를 부추겨 그 불행한 일을 불러들인 장본인이 오니아스라고 모함하였다. 2 무엄하게도 이 도성의 은인이고 동족의 보호자이며 열렬한 법의 수호자인 그를 정권에 반기를 든 자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3 오니아스에 대한 시몬의 적개심이 점점 커져 시몬의 심복 하나가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4 오니아스는 분쟁이 심각해지고, 메네스테우스의 아들이며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가 시몬의 사악함을 부추기고 있는 것을 보고 5 임금을 찾아갔다. 이는 자기 동족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온 백성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6 그는 임금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 지방 행정이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시몬은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야손이 오니아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리스 문화를 끌어들이다
7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 [4,7] 2마카 1,7; 1마카 1,10. 8 야손은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은 삼백육십 탈렌트와 또 다른 수입에서 팔십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9 그것에 덧붙여, 자기의 권한으로 체육관과 청년 학교를 설립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안티오키아 시민으로 등록하도록 임금이 승낙해 준다면, 백오십 탈렌트를 더 바치겠다고 언약하였다. 10 임금의 허락을 받은 야손은 그 직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의 생활 방식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11 그는 유다인들이 에우폴레모스의 아버지 요한을 통하여 다른 임금들에게서 얻은 특전들을 폐기시켰다. 요한은 전에 로마인들과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다. 야손은 법에 맞는 생활양식을 없애 버리고 법에 어긋나는 새 관습들을 끌어들였다. [4,11] 1마카 8,17. 12 [4,12–17] 1마카 1,11–15. 그는 신이 나서 성채 바로 밑에 체육관을 세우고 가장 뛰어난 청년들에게 그리스식 모자를 쓰게 하였다. 13 이렇게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그리스화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 14 그리하여 사제들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에 열성이 없어져, 성전을 경시하고 희생 제물 바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징이 울리기가 바쁘게 그들은 레슬링 경기장으로 달려가 법에 어긋나는 경기에 참여하였다. 15 그들은 이렇게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고, 그리스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16 바로 그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을 열심히 따르고 모든 면에서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17 사실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대가 그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
18 네 해마다 티로에서 열리는 경기에 임금이 참관하였는데, 19 비열한 야손은 예루살렘의 안티오키아 시민들을 대표하는 사절들을 뽑아 파견하면서, 헤라클레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칠 비용으로 은 삼백 드라크마도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 돈을 가져가는 이들은 그 돈을 희생 제물의 비용으로 쓰는 일이 합당하지 않으므로 다른 데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0 그리하여 그 돈을 보낸 자는 헤라클레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데에 쓰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가져가는 이들의 결정에 따라 삼단 노를 갖춘 군선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21 메네스테우스의 아들 아폴로니우스가 필로메토르 임금의 즉위식에 참석하도록 이집트로 파견되었을 때, 안티오코스는 필로메토르가 자기의 정권에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야포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22 그는 야손과 이 도성 주민들이 횃불과 환성으로 성대하게 환영하는 가운데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페니키아로 진군하였다.
메넬라오스가 대사제가 되다
23 세 해 뒤에 야손은 앞에서 말한 시몬의 동생 메넬라오스를 보내어, 임금에게 돈을 가져가고 몇 가지 필요한 일에 관하여 결정을 받아 오게 하였다. 24 그런데 메넬라오스는 임금에게 인도되자 자신을 권위 있는 것처럼 내세우고, 야손보다 은 삼백 탈렌트를 더 바쳐 대사제직을 확보하였다. 25 그는 어명을 받고 돌아왔지만 대사제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잔인한 폭군의 기질과 사나운 야수처럼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26 그리하여 친동기마저 몰아낸 야손은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몰려서 도망자가 되어 암몬 지방으로 쫓겨가게 되었다.
27 메넬라오스는 대사제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임금에게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 28 그래서 성채의 장수인 소스트라토스가 그 돈을 바치라고 독촉하였다.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사건 때문에 임금에게 불려 갔다. 29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자기 동기 리시마코스를 대사제 대리로 앉히고, 소스트라토스는 키프로스군을 통솔하는 크라테스를 대리로 앉혔다. [4,29] 2마카 4,39–42.
오니아스가 피살되다
30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타르수스와 말루스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읍이 임금의 후궁 안티오키스에게 선물로 넘겨진 것을 알고 폭동을 일으켰다. 31 그래서 임금은 고관들 가운데 하나인 안드로니코스를 대리로 세워 두고 사태를 수습하러 급히 그리로 갔다. 32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여, 성전의 금 기물들을 몇 개 훔쳐서 안드로니코스에게 바쳤다. 그는 이미 티로와 그 주변 여러 성읍에 다른 기물들을 팔아먹은 적이 있었다. 33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오니아스는 안티오키아 근처에 있는 다프네라는 신성 도피처로 들어가 그를 비난하였다. 34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안드로니코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오니아스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안드로니코스는 오니아스를 찾아가 속임수로 그를 안심시키고 악수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의심하는 오니아스를 설득하여 신성 도피처에서 나오게 한 다음, 정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바로 죽여 버렸다.
35 그가 불의하게 살해당한 일 때문에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민족들도 분개하고 슬퍼하였다. 36 임금이 킬리키아 지역에서 돌아오자, 그 성읍의 유다인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사건을 개탄하는 그리스인들이 오니아스가 피살된 사건을 호소하였다. 37 안티오코스는 마음 깊이 애도하고 측은하게 여겼으며, 죽은 이의 슬기와 고상한 품행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38 분노에 휩싸인 안티오코스는 안드로니코스의 자주색 옷을 벗기고 다른 옷까지 찢어 버린 다음, 그가 오니아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바로 그곳까지 온 성읍을 가로질러 끌고 가서 그를 죽여 버렸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리셨다.
군중이 폭동을 일으켜 리시마코스를 죽이다
39 이 도성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절도 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그것은 메넬라오스의 동조 아래 리시마코스가 저지른 짓이었다. 이미 많은 금 기물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군중이 리시마코스를 치려고 몰려들었다. 40 군중이 분노에 차서 들고일어나자, 리시마코스는 삼천 명가량을 무장시키고, 나이는 많지만 별로 사려 깊지 못한 하우라노스라는 자를 앞장 세워, 그들에게 악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41 그러자 그들은 리시마코스가 공격해 오는 것을 알고서 어떤 이들은 돌을 집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또 어떤 이들은 곁에 있는 재를 움켜쥐고, 리시마코스의 부하들에게 닥치는 대로 마구 던졌다. 42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고 더러는 죽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내쫓아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성전 절도범은 금고 곁에서 죽여 버렸다.
메넬라오스의 악행
43 이 일로 사람들이 메넬라오스를 고발하였다. 44 임금이 티로에 도착하였을 때, 원로단에서 파견된 세 사람이 임금에게 이 사건을 아뢰었다. 45 이미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메넬라오스는 도리메네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임금을 설득시켜 달라면서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4,45] 2마카 8,8; 1마카 3,38. 46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람을 쐬러 나가는 체하면서 임금을 회랑으로 데리고 나가,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47 임금은 그 모든 악의 원인이었던 메넬라오스에 대한 고발을 기각하고, 오히려 그 불운한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들은 스키티아인들 앞에서 변론하였더라도 무죄로 풀려났을 사람들이었다. 48 그들은 이 도성과 대중과 거룩한 기물들을 위하여 변론하였다가 느닷없이 부당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49 그래서 티로 사람들까지도 이 불의한 처사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 주었다. 50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권력자들의 탐욕 덕분에 대사제직을 유지하면서, 줄곧 악에 집착하여 동족을 반역하는 원흉이 되었다.
마카베오기, 신약으로의 디딤돌
마카베오기 시대의 지도,관련 국가 및 인물에 대한 연대표,비인륜적인 가계를 형성한 왕조의 가계도,마카베오기의 본문의 연도별 주요 상황, 그리고 그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연대표를 게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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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elaus as High Priest.(RNAB)
대사제 메넬라오스(RNAB)
메넬라오스가 대사제가 되다
Menelaus Supplants Jason
| 7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BC 175-164년],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2마카 4,7) 에피파네스가 즉위한 연도는 BC 175년이다. 그러므로 2마카 4,23절의 세 해 뒤는 BC 172년에 해당한다. |
23세3 해 뒤에 [▶BC 172년] 야손은 앞에서 말한
[성전의 관리 책임자인(2마카 4,4)] 시몬의 동생 메넬라오스 Menelaus를 보내어,
임금에게 돈을 가져가고
몇 가지 필요한 일에 관하여 결정을 받아 오게 하였다.
[4,23 주석] 메넬라오스
[4,23] 메넬라오스 Menelaus :
BC 172년부터 BC 162년 처형될 때까지의 유다인 대사제(2마카 13,3-8).
메넬라오스가 죽다(2마카 13,3-8)
3 그때에 메넬라오스도 그리스 군대와 어울려 매우 교활한 말로 안티오코스를 부추겼다.
그것은 조국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사제직에 재임명되려는 속셈에서 한 일이었다.
4 그러나 임금들의 임금이신 분께서는 안티오코스가 이 악한에게 분노를 터뜨리게 하셨다.
그리하여 메넬라오스가 모든 환난의 원인이었다는 리시아스의 말을 들은 안티오코스는,
그자를 베로이아로 끌고 가서 그쪽 지방의 관습에 따라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5 거기에는 높이가 쉰 페키스 되는 탑이 있었는데,
그 탑은 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위에 둘러쳐진 난간은 어떠한 방향에서든 재 속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져 있었다.
6 성물을 훔치는 죄나 그 밖의 가증스러운 범죄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그 속으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7 변절자 메넬라오스도 땅에 묻히지 못하고 그러한 운명 속에 죽게 되었는데,
8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거룩한 불과 재가 있는 제단에 대하여 많은 죄를 지었으므로,
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2마카 13,3-8)
24그런데 메넬라오스 Menelaus는 임금에게 인도되자
자신을 권위 있는 것처럼 내세우고,
야손보다 은 삼백300 탈렌트를 더 바쳐 대사제직을 확보하였다.
25그는 어명을 받고 돌아왔지만
대사제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잔인한 폭군의 기질과 사나운 야수처럼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26그리하여 친동기 [오니아스]마저 몰아낸 야손은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몰려서 도망자가 되어
암몬 지방 the country of the Ammonites으로 쫓겨가게 되었다.
27메넬라오스 Menelaus는 대사제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임금에게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
28그래서 성채의 장수 the commandant of the citadel인 소스트라토스 Sostratus가
그 돈을 바치라고 독촉하였다.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사건 때문에
[안티오키아에 있는 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 BC 175-164] 임금에게 불려 갔다.
29그래서 메넬라오스 Menelaus는
자기 동기 리시마코스 Lysimachus를 대사제 대리 his deput로 앉히고,
소스트라토스 Sostratus는
키프로스 Cypriots군을 통솔하는 크라테스 Crates를 대리로 앉혔다. [4,29] 2마카 4,39–42.
[4,29 관련 본문]
[4,29] 2마카 4,39–42.
군중이 폭동을 일으켜 리시마코스를 죽이다(2마카 4,39-42)
39 이 도성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절도 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그것은 메넬라오스의 동조 아래 리시마코스가 저지른 짓이었다.
이미 많은 금 기물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군중이 리시마코스를 치려고 몰려들었다.
40 군중이 분노에 차서 들고일어나자,
리시마코스는 삼천 명가량을 무장시키고,
나이는 많지만 별로 사려 깊지 못한 하우라노스라는 자를 앞장 세워,
그들에게 악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41 그러자 그들은 리시마코스가 공격해 오는 것을 알고서 어떤 이들은 돌을 집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또 어떤 이들은 곁에 있는 재를 움켜쥐고,
리시마코스의 부하들에게 닥치는 대로 마구 던졌다.
42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고 더러는 죽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내쫓아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성전 절도범은 금고 곁에서 죽여 버렸다.(2마카 4,39-42)
Murder of Onias.(RNAB)
오니아스의 피살
오니아스가 피살되다
Murder of Onias
30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타르수스 Tarsus와 말루스 Mallus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읍이 임금의 후궁 안티오키스 Antiochis에게
선물로 넘겨진 것을 알고 폭동을 일으켰다.
[4,30 주석] 말루스
[4,30] 말루스 Mallus :
소아시아 Asia Minor 남동부에 있는 킬리기아 Cilicia의 한 도시(36절),
타르수스 Tarsus에서 동쪽으로 약 30마일(≒48.2㎞) 떨어진 곳.
31그래서 [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
임금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은
고관들 nobles 가운데 하나인 안드로니코스 Andronicus를 대리로 세워 두고
사태를 수습하러 급히 그리로 갔다.
32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여,
성전의 금 기물들 gold vessels을 몇 개 훔쳐서 안드로니코스에게 바쳤다.
그는 이미 티로와 그 주변 여러 성읍에 다른 기물들을 팔아먹은 적이 있었다.
33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오니아스 Onias는
안티오키아 근처에 있는 다프네 Daphne라는
신성 도피처 inviolable sanctuary로 들어가 그를 비난하였다.
34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안드로니코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오니아스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안드로니코스는 오니아스를 찾아가
속임수로 그를 안심시키고 악수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의심하는 오니아스를 설득하여
신성 도피처에서 나오게 한 다음,
정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with no regard for justice 그를 바로 죽여 버렸다.

35그가 불의하게 살해당한 일 때문에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민족들도 분개하고 슬퍼하였다.
36임금이 킬리키아 Cilicia 지역에서 돌아오자,
그 성읍 the city [안티노키아]의 유다인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사건을 개탄하는 그리스인들이
오니아스가 피살된 사건을 호소하였다.
[4,36 주석] 그 성읍 ☞ 안티오키아
[4,36] 그 성읍 Antioch :
안티오키아 Antioch.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그리스어가 “각 성읍”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37안티오코스는 마음 깊이 애도하고 측은하게 여겼으며,
죽은 이의 슬기와 고상한 품행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38분노에 휩싸인 안티오코스는
안드로니코스의 자주색 옷을 벗기고 다른 옷까지 찢어 버린 다음,
그가 오니아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바로 그곳까지
온 성읍을 가로질러 끌고 가서 그를 죽여 버렸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리셨다.
군중이 폭동을 일으켜 리시마코스를 죽이다
Riot against Lysimachus
More Outrages.(RNAB)
더 많은 분노
39이 도성 the city [예루살렘]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절도 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그것은 [아직 시리아 안티오키아에 있는] 메넬라오스의 동조 아래
리시마코스가 저지른 짓이었다.
이미 많은 금 기물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군중이 리시마코스를 치려고 몰려들었다.
[4,39 주석] 이 도성
[4,39] 이 도성 the city : 예루살렘 Jerusalem.
메넬라오스는 아직 시리아 Syria 에 있었다.
40군중이 분노에 차서 들고일어나자,
리시마코스는 삼천3,000 명가량을 무장시키고,
나이는 많지만 별로 사려 깊지 못한 하우라노스 Auranus라는 자를 앞장 세워,
그들에게 악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41그러자 그들은 리시마코스가 공격해 오는 것을 알고서 어떤 이들은 돌을 집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또 어떤 이들은 곁에 있는 재를 움켜쥐고,
리시마코스의 부하들에게 닥치는 대로 마구 던졌다.
42그 결과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고 더러는 죽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내쫓아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리시마코스라는] 성전 절도범은 금고 곁에서 죽여 버렸다.
메넬라오스의 악행
43이 일로 사람들이 메넬라오스를 고발하였다.
44임금이 티로 Tyre에 도착하였을 때,
원로단 the senate에서 파견된 세3 사람이 임금에게 이 사건을 아뢰었다.
45이미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메넬라오스는
도리메네스 Dorymenes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에게
임금을 설득시켜 달라면서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4,45] 2마카 8,8; 1마카 3,38.
| ☞프톨레마이오스는 티로가 있는 페니키아의 총독이었다 (참조: 1마카 3,38) . |
[4,45 관련 본문]
[4,45] 2마카 8,8; 1마카 3,38.
8 마카베오가 조금씩 기반을 확보하고 더욱 자주 성공을 거두며 세력을 넓혀 가는 것을 보고,
필리포스는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총독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편지를 써서
임금의 일을 도우러 와 달라고 하였다.(2마카 8,8)
38 리시아스는 도리메네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니카노르와 고르기아스를 뽑았는데,
이들은 임금의 벗들 가운데에서도 유력한 사람들이었다.(1마카 3,38)
46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람을 쐬러 나가는 체하면서
임금을 회랑으로 데리고 나가,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47임금은 그 모든 악의 원인이었던
메넬라오스에 대한 고발을 기각하고,
오히려 그 불운한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들은 스키티아인들 Scythians 앞에서 변론하였더라도
무죄로 풀려났을 사람들이었다.
48그들은 이 도성과 대중과 거룩한 기물들을 위하여 변론하였다가
느닷없이 부당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49그래서 티로 사람들까지도 이 불의한 처사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 주었다.
50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권력자들의 탐욕 덕분에 대사제직을 유지하면서,
줄곧 악에 집착하여 동족을 반역하는 원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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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사이비 대사제, 야손의 패륜(2마카 4,1-22)
마카베오기 4장에 등장하는 안티오코스 4세 에페파네스(2마카 2,4-7)는마카베오의 아버지인 마타티아스의 투쟁을 유발한 임금인데, 마카베오기 상권은 그를 유다인과 유다교를 박해한황폐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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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을 학살한 대사제 야손의 비참한 최후(2마카 5,1-10)
자신의 형 오니아스 대사제를 배신하고돈으로 대사제직을 얻은 야손이 끝까지 동족을 배신한다. 자신이 했던 방식대로메넬라오스에게 대사제직을 뺏긴 후(2마카 4,23-24)천 명이 넘는 군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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