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히브리서 2장의 "구원의 영도자"(히브 2,5-18)에 이어
히브리서 3장은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히브 3,1-6)에 대해 기록하는데,
3장은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 여러분,
우리 신앙 고백의 사도이며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히브 3,1) 하면서 시작한다.
히브리서는 계속하여
이미 2장에서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히브 2,17)라고 밝힌,
예수님의 두 가지 속성을 역순으로
충실함 faithfulness은 히브 3,1 – 4,13에서,
자비로움 mercy은 히브 4,14 – 5,10에서 설명한다.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히브 3,1-6)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히브 3,7-19; 4,1-13)
위대한 대사제이신 예수님(히브 4,14-16; 5,1-10)
히브리서는 이러한 주제 전개와 함께,
예수님을 통해 거룩한 형제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천상 안식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설명해 나간다.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의 백성
히브리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의 이스라엘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히브 3,11)
안식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격 요건의 전조라고 한다.
그러므로 광야에서의 반란에 의해(민수 14,1-38)
한 세대 전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실을(여호 5,4),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억해야 한다(히브 3,15-19)는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는 "여호수아가 그들을 안식처로 이끌었다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히브 4,8)라고 말하는데,
이는 탈출기 시대의 백성들이 안식처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신약의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새 계약에 의해
참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히브 4,9).
그러하기에 타락한 백성인(탈출 32,7)
고대 히브리인들 the ancient Hebrews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은 안식처에 대한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약속을 예표하는
"기쁜 소식"이며(히브 4,2.6),
또한 약속의 땅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마련해 주신
안식처이므로,
주님께 순명하는 당신의 백성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을 마치신 후 누리신 안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히브 3,3-4; 비교 창세 2,2).
모세보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예수님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사제직, 특히
대사제의 직분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서가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는 이유는
모세가 옛 계약의 중개자였던(히브 9,19-22) 것처럼
예수님을 새 계약의 중개자로 (히브 9,15) 여기기 때문이다.
19 모세는 율법에 따라 온 백성에게 모든 계명을 선포하고 나서,
물과 주홍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계약의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계약의 피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1 그리고 성막과 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물에도 같은 방식으로 피를 뿌렸습니다.
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히브 9,19-22)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히브 9,15)
그런데 히브리서는 모세를 구약의 예표로 여기지 않고
"새 질서의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만 부과된 외적인 법규"(히브 9,10)를 지키는
속죄일의 대사제로만 여기고 있다(히브 9,6-15).
히브리서는 모세와 예수님 가운데
누가 집안의 창시자인지 드러내고 있지 않으나(히브 3,3-6),
그분의 집안(히브 3,2.5.6)이 "하느님의 집"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그분의 집안"(히브 3,6)이
그리스도 공동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가 "그분의 (한) 집안"이라고 말함으로써
구약의 히브리인 공동체와
신약의 그리스도 공동체의 연속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편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모세보다 위대하시다고 하는데(히브 3,6),
그 이유는 모세가 단지 하느님의 집에 충실한 종이지만(히브 3,5),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히브 10,21)이시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이러한 여러 성경적 논증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대사제이신 예수님에 의해
그분과 거룩한 형제의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보편 교회의 신앙인들은
새 계약에 의해 천상 안식에 참여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형제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형제(히브 3,1)라 불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그 관계를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히브 2,11ㄱ)라고 설명한다.
즉 예수님이나 그분을 통해 거룩하게 된 사람 모두
"저희 아버지"(마태 6,9)이신 하느님 한 분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거룩한 형제라 불린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가 예수님에 대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히브 2,11ㄴ)신다고 설명하니,
보편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에 의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과연 히브리서의 거룩한 형제는 사도 베드로도 인용한(1베드 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45)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라고 말씀하셨으니,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나그네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에 대해,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 2.9)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시며 대사제이신(히브 12,24; 3,1; 7,28)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시대의 거룩한 보편 교회까지 이어져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모세의 만남
이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예수님의
모세와 엘리야와의 만남(루카 9,30)을 통해 극대화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마태 17,1; 마르 9,2),
모세를 만나실 때,
하느님께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라고 말씀하시니,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 피로 맺은(탈출 24,8) 첫째 계약이(히브 8,7)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 계약으로(루카 22,20)
온전하게 대전환 되었음이 선포된 것이다.
하느님의 안식처로 이끄는 새 계약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 계약에 따른 안식처는(사도 7,49)
그리스도이신 대사제 예수님이 계시기에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곳에 들기 위해서는 거룩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전환 속에 시작된 새 계약의 여정에
신앙인들이 믿음에 싫증을 내고 지쳐가면서
신앙생활을 포기하려 하니,
새 계약의 백성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과거 이스라엘의 뻣뻣한 목을 닮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히브리서는 시편 95,7-11을 인용하여,
믿음의 일탈에 수반되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질 것을 호소한다 (히브 3,7 - 4,13).
7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8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나를 떠보았다.
10 사십 40년 동안 그 세대에 진저리가 나서 나는 말하였노라.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노라.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지 못하리라.’”(시편 95,7-11)
시편 95장. 와서 주님께 환호하세
와서 주님께 환호하세시편은 모든 피조물의 임금(시편 95,3-5)이시며양떼의 목자이신(시편 95,7ㄱ.7ㄴ) 하느님을찬양하고 경배하라면서 백성을 두 번 부른다.마지막 절은 백성들에게,그들의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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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히브리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히브 3,12)께서는 당신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데(여호 3,10; 예레 10,11 비교),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시어(히브 4,7)
살아 있는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전하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대해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4,11)라고 권고한다.
<참고: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히브리서 관련 주석 >
히브리서 3장 본문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
1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 여러분, 우리 신앙 고백의 사도 the apostle이며 대사제 high priest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2 모세가 “하느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었듯이”,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세우신 분께 충실하셨습니다. 3 그러나 집을 지은 이가 집보다 더 존귀하듯이, 예수님도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셔야 마땅합니다. 4 어떤 집이든 그것을 지은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5 모세는 하느님께서 장차 말씀하시려는 것을 증언하려고, “종”으로서 “그분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었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확신과 긍지를 굳게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
7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40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15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들이 아닙니까? 17 또 하느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 시체가 되어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18 또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19 우리가 보듯이, 과연 그들은 불신 때문에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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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1-13 본문(해설은 '위대한 대사제이신 예수님(히브 4)' 참조)
안식일 휴식.(RNAB)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6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고, 또 예전에 기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7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고 말씀하실 때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을 안식처로 이끌었다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0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해설
III. Jesus, Faithful and Compassionate High Priest(RNAB)
III. 예수님, 충실하고 자비로우신 대사제(RNAB)
Jesus, Superior to Moses.(RNAB)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RNAB)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
[3,1–6 주석] 관련 구절 해설
[3,1–6] 저자는 이제 히브 2,17에 언급된 예수의 두 가지 속성을 역순으로 다루는데,
충실함 faithfulness(히브 3,1 – 4,13)과 자비로움 mercy(히브 4,14 – 5,10)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형제”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님과의 공통된 관계 때문입니다(히브 2,11).
사도라는 칭호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되며(요한 13,16; 17,3 비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마지막 말씀이라는 뜻이다(히브 1,2).
예수님이 모세와 비교되는 이유는
아마도 모세가 옛 계약의 중재자였던 것처럼(히브 9,19-22, 그의 희생 포함)
예수님이 새 계약의 중재자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히브리서 9:15).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 말할 때,
저자는 모세를 구약의 예표로 여기지 않고
속죄일 the Day of Atonement의 대사제로 여긴다(히브 9,6-15).
모세가 “온 집안에서” 보여준 충실함은 민수 12,7절을 가리키는데,
이 부분은 그 구절에 대한 고대 유다인의 구약 주해서인 미드라시적 midrashic 주석이다.
히브 3,3-6에서 저자는 모세와 그리스도 가운데
누가 가문의 창시자인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의 집(히브 3,2.5.6)은 모세나 그리스도의 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을 의미다.
그리스도의 경우, 히브 3,6을 히브 10,21과 비교해 본다.
히브 3,6의 집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가리킨다.
히브리서는 두 집이 아니라 한 집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스라엘과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히브 3,6절은 예수님이 모세보다 뛰어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집에서 충실히 일한 종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 집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1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 여러분 holy brothers,
우리 신앙 고백 confession의
사도 the apostle이며 대사제 high priest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2 모세가
“하느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faithful in [all] his house 있었듯이”,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세우신 분 the one who appointed him께 충실하셨습니다. [3,2] 민수 12,7.
[3,2 관련 본문]
[3,2] 민수 12,7.
7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민수 12,7)
3 그러나 집을 지은 이가 집보다 더 존귀하듯이,
예수님도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셔야 마땅합니다. [3,3] 2코린 3,7–8.
[3,3 관련 본문]
[3,3] 2코린 3,7–8.
7 돌에 문자로 새겨 넣은 죽음의 직분 ministry도 영광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사라질 것이기는 하였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8 그렇다면 성령의 직분 the ministry of the Spirit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2코린 3,7–8)
[2코린 3:7 주석] 죽음의 직분 the ministry of death :
바오로는 서두부터 모세 계약과 그 직분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것은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화해가 아닌 단죄 condemnation로 이끈다(2코린 3,6-7; 비교 2코린 4,7 - 5.10).
영광 스럽게 was so glorious :
바오로가 언급하는 주요 구절은
'모세가 빛나는 얼굴로 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다"라는 탈출 34,29-35인데,
그의 반대자들은 이 구절을 자신들의 주장으로 내세웠다.
사라질 것 going to fade :
바오로는 모세 계약과 직분의 영광을 인정하지만,
그 의미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4 어떤 집이든 그것을 지은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5 모세는 하느님께서 장차 말씀하시려는 것을 증언하려고,
“종 servan”으로서 “그분의 온 집안 all his house을 충실히 맡고 있었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확신과 긍지를 굳게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3,6] 히브 10,21; 에페 2,19; 1티모 3,15; 1베드 4,17.
[3,6 주석] 관련 구절 해설
[3,6] 대부분의 사본에는 "끝까지 굳건히 firm to the end "라는 말을 추가되어 있지만,
히브리서의 이 구절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세 사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도 히브 3,14에서 유래한 삽입구일 것이다.
[3,6 관련 본문]
[3,6] 히브 10,21; 에페 2,19; 1티모 3,15; 1베드 4,17.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 the house of God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히브 10,21)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에페 2,19)
15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 the household of God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 the church of the living God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1티모 3,15)
17 사실 심판 the judgment이
하느님의 집 the household of God에서부터 시작될 때가 되었습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된다면,
하느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종말이야 어떠하겠습니까?(1베드 4,17)
Israel’s Infidelity a Warning.(RNAB)
이스라엘의 배신, 경고.(RNAB)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 (히브 3,7 - 4,13)
[3,7 – 4,13] 히브리서 저자는
탈출 당시 이스라엘이 겪은 경험을 근거로 경고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호소한다.
구약 성경에서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유배 the Babylonian exile에서의 귀한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언급되었다(이사 42,:9; 43,16-21; 51,9-11).
신약성경에서 구원은
예수님 자신의 경험(루카 9,31)과 그의 제자들의 경험(1코린 10,1-4) 모두에서
새로운 탈출기 a new exodus로 이해되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지쳐감에 weary따라 여정을 포기하려는 위험을 경고하고자,
마음의 완고함 hardness에 대한 유용한 사례로 시편 95,7-11을 인용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 God living' (히브 3,12)이라 부르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일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여호 3,10; 예레 10,11 비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게 되었던 안식 the rest(히브 3,11)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은 안식의 전조 foreshadowing에 불과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세대 전체가 약속의 땅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른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반란을
하나의 사례로 기억해야 한다(히브리서 3:15-19; 민수기 14:20-29 참조).
[3,7–11 관련 본문]
[3,7–11] 시편 95,7–11.
7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8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나를 떠보았다.
10 사십 년 동안 그 세대에 진저리가 나서 나는 말하였노라.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노라.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지 못하리라.’”(시편 95,7–11)
시편 95장. 와서 주님께 환호하세
와서 주님께 환호하세시편은 모든 피조물의 임금(시편 95,3-5)이시며양떼의 목자이신(시편 95,7ㄱ.7ㄴ) 하느님을찬양하고 경배하라면서 백성을 두 번 부른다.마지막 절은 백성들에게,그들의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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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7–11] 시편 95,7–11.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3,9] 탈출 17,7; 민수 20,2–5.
[3,9 관련 본문]
[3,9] 탈출 17,7; 민수 20,2–5.
7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탈출 17,7)
2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갔다.
3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5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민수 20,2–5)
10 사십 40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 my rest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brothers,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 today”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 partners of Christ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3,14] 로마 8,17.
[3,14 관련 본문]
[3,14] 로마 8,17.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15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3,15] 시편 95,7–8.
[3,15 관련 본문]
[3,15] 시편 95,7–8.
7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8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시편 95,7–8)
[3,16–19 관련 본문]
[3,16–19] 민수 14,1–38; 신명 1,19–40.
(민수 14,1–38)
가나안 정찰과 백성의 불평
19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호렙을 떠나,
너희가 본 저 크고 무서운 광야를 가로질러,
아모리족의 산악 지방 길을 따라 카데스 바르네아에 이르렀다.
20 거기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아모리족의 산악 지방에 이르렀다.
21 보아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앞에 저 땅을 내놓으셨다.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여라.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22 그러나 너희는 모두 나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우리보다 앞서 사람들을 보내어 저 땅을 정찰한 다음,
우리가 올라가야 할 길과 들어가야 할 성읍들에 관하여 보고하게 합시다.’
23 나는 그 말이 좋게 들려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았다.
24 그들은 발길을 돌려 산악 지방으로 올라가서,
에스콜 골짜기까지 가며 그 땅을 정탐하였다.
25 그들은 그 땅에서 난 열매를 따 가지고 우리에게 내려와서,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저 땅은 좋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26 그러나 너희는 올라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주 너희 하느님의 분부를 거역하였다.
27 그러면서 너희는 천막 안에서 불평하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셔서,
아모리족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구나.
28 우리가 어디로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형제들이
'그곳 백성은 우리보다 우람하고 키도 크다.
성읍들은 클뿐더러 하늘까지 닿는 요새로 되어 있다.
우리는 또 거기에서 아낙인들까지 보았다.'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지 않았는가?’
29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라.
30 너희 앞에 서서 가시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이집트에서 하신 것과 똑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것이다.
31 너희는 마치 사람이 제 아들을 업고 다니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너희를 업고 다니시는 것을 광야에서 보았는데,
그 광야에서도 그렇게 싸워 주셨다.
32 그런데도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33 너희가 천막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또 너희가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 속에서,
낮에는 구름 속에서 앞장서 가시는 주님을 너희는 믿지 않았다.’”
주님께서 진노하시어 이스라엘을 벌하시다
34 “주님께서는 너희가 하는 소리를 듣고 진노하시어 이렇게 맹세하셨다.
35 ‘이 악한 세대,
이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36 그러나 여푼네의 아들 칼렙만은 그 땅을 볼 것이다.
그는 주님을 충실히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밟은 땅을 그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겠다.’
37 주님께서는 너희 때문에 나에게도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다.
‘너 또한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8 너의 시중을 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해 줄 사람이니,
너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39 그리고 적의 약탈물이 되리라고 너희가 말한 너희 어린아이들과,
아직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너희 자식들도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그 땅을 주어 그들이 차지할 것이다.
40 그러나 너희는 발길을 돌려 갈대 바다 길을 따라 광야로 떠나라.’(신명 1,19–40)
16 [3,16–19] 민수 14,1–38; 신명 1,19–40.
16 듣고도 반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 Moses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카데스에서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다(민수 14장)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자들을 광야에서의 죽음으로 벌하시어,불평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2절 비교)그들의 하느님에 대한 불신은1코린 10,10과 히브 3,12-18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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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또 하느님께서는
사십 40년 동안 누구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
시체 corpses가 되어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3,17] 민수 14,29.
[3,17 관련 본문]
[3,17] 민수 14,29.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민수 14,29)
18 또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의 안식처 his rest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3, 18] 민수 14,22–23; 신명 1,35.
[3, 18 관련 본문]
[3, 18] 민수 14,22–23; 신명 1,35.
22 나의 영광,
그리고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일으킨 표징들을 보고도,
이렇게 열 번 씩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를 업신여긴 자들은 모두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민수 14,22–23
35 ‘이 악한 세대,
이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신명 1,35)
19 우리가 보듯이,
과연 그들은 불신 lack of faith 때문에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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