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연대순(ca.BC 629-561)

BC 561년,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예레 연대-10)

좋은생각으로 2023. 12. 23. 07:45

느보 산에서 바라본 사해와 요르단 강 건너 이스라엘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바빌론에 의한 유다 멸망의 첫 번째 예언은 유다 임금 히즈키야 시대로 올라간다. 

이때는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BC 740-710)이다.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이, 히즈키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절단을 보냈는데,

히즈키야가 사절단에게 궁궐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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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보라, 네 궁궐 안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쌓아 온 것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주님이 말한다.

너에게서 태어날 아들들 가운데 더러는 끌려가서 바빌론 왕궁의 내시가 될 것이다.”(2열왕 20,17-19; 이사 39,6-7)

 

그 이후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파멸되었다(BC 723).

남왕국 유다는 하느님의 사람이 예언한(1열왕 13,2) 요시야 임금의 통치를 받았다(BC 640).

이 시대에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BC 629) 예언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요시야는 모세의 율법서를 발견하고(BC 623) 종교 개혁을 강력히 실시하였지만,  

바빌론과 싸우러 올라가는 파라오 느코를 막지 말라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므기또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죽게 된다.(BC 609)

 

요시야 이후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그리고 치드키야 임금 시대를 거치면서,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온 백성들에게 무수히 전하였다. 

그러나 유다 임금들과 대신들은 물론 사제들과 거짓 예언자들 그리고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고 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저수동굴에 집어넣었으며, 

결국에는 경비대 울안에 그를 가두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레미야는 유다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에게

바빌론에게 항복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만날 때마다 전하였지만, 

히즈키야는 이미 유배 간 유다인들이 무섭다고 거부하였다. 

결국에는 도성이 뚫리자(BC 587),

히즈키야는 도망가다가 칼데아인들에게 붙잡혀 리블라로 끌려갔다.

그는 네부카드네자르 바빌론 임금에 의해 

두 눈이 뽑힌 후 바빌론으로 끌려가 죽었다.  

유다 임금들이 유배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하느님 계시가 순차적으로 이행되어

결국에는 유다가 망하고 백성들이 유배지로 끌려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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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자들의 인원수는  

네부카드네자르 제7년(BC 599/598)에 3,023명,

네부카드네자르 제18년(BC 588/587)에 832명,

네부카드네자르 제23년(BC 583/582)에 745명, 

이렇게 해서 모두 4,600명(예레 52,28-30)이 되었다.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나서

네부카드네자르가 그의 재위 제36년인 BC 570년에 이집트 파라오 호프라를 죽이니,

유다 총독 그달야를 살해하고(BC 587) 이집트로 도망간

유다인들에게 내린 파멸의 예언도(예레 44,30) 

17년 만에 어김없이 이행 되었다.

 

이와 반대로 바빌론에 항복하면 살 것이라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유다인들은

바빌론에서 그들만의 거주지를 만들고 살아가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끌려갔던 여호야킴의 아들 여호야킨 임금은 유배살이 제37년에

바빌론 임금 에윌 므로닥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BC 561)

임금 앞에서 늘 음식을 먹게 되는 처우를 받았다.  

한편 네부카드네자르가 임금이 된 해인 BC 605년에 끌려간 다니엘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하느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한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채 채워야 하는 햇수인 일흔 해인데(다니 9,2),

유다의 유배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BC 536) 풀리니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일흔 해는 다니엘의 유배부터 시작한 것이 된다. 

 

예레미야를 통해 줄기차게 내리신 하느님 말씀대로 유다가 멸망하고

다니엘서에 기록된 키루스의 칙령으로 유배가 해제되었을 확인할 수 있으니 

예레미야를 통해 내리신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순차적으로 전부 이행되었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 역시 이루어짐이  명확하고,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므로(2코린 6,16)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마태 28,20) 예수님의 말씀은

곧 우리 안의 성전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  말씀처럼 "거룩한 백성"이 되어(신명 7,6)  

사도 바오로가 우리에게 던진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라는 질문에,

"알고 있습니다!"라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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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영광송, 가톨릭 기도문>

 

 


예레 연대-10.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BC 561년, 바빌론 유배 45년(예레 52)

예레미야서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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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1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탈인데,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이었다. 2치드키야는 여호야킴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3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분노하시게 하였기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런데 치드키야가 바빌론 임금에게 반역하였다.

 

4그래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다. 그들은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5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6넷째 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굶주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7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이 모두 달아났다.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나가 아라바 쪽으로 갔다. 8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치드키야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9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10바빌론 임금은 리블라에서 치드키야가 보는 가운데, 그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유다의 모든 대신들도 살해하였다. 11그러고 나서 바빌론 임금은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는, 죽는 날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

 

12다섯째 달 초열흘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을 면전에서 섬기던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13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4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모두 허물었다. 15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백성 가운데 일부 가난한 이들과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 장인들을 끌고 갔다. 16그러나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17칼데아인들은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기둥들과 받침대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바다를 부순 뒤, 그 청동을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8그들은 냄비와 부삽, 불똥 가위와 쟁반과 접시, 그 밖에 예배 때에 쓰는 모든 청동 기물도 가져갔다. 19친위대장은 작은 대접과 향로, 쟁반과 냄비와 등잔대, 접시와 술잔도 가져갔는데,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가져가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고 가져갔다. 20솔로몬 임금이 주님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기둥 두 개와 청동 바다 하나와, 받침대 밑에 청동으로 만든 황소 열두 개 등, 이 모든 기물에 쓰인 청동은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정도였다. 21기둥만 해도 기둥 한 개의 높이가 열여덟 암마, 그 둘레가 열두 암마이다. 그 속은 비어 있지만 기둥 면의 두께가 손가락 넷을 합친 것만큼이나 되었다. 22그 기둥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기둥머리가 있는데, 그 기둥머리의 높이는 다섯 암마였다. 이 기둥머리에는 모두 청동으로 만든 그물과 석류들이 돌아가며 달리고, 두 번째 기둥도 마찬가지로 석류들이 달렸다. 23겉보기에는 아흔여섯 개지만 실제로 그물에 매달린 석류는 모두 백 개나 되었다.

 

24친위대장은 스라야 수석 사제, 두 번째 서열의 스바니야 사제, 그리고 성전 문지기 셋을 체포하였다. 25또한 군사의 지휘관이었던 내시 하나도 도성에서 체포하였다. 이 밖에도 도성에서 발견된 임금의 측근 일곱과 나라 백성을 징집하는 군부대신 서기관과, 도성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나라 백성 예순 명도 체포하였다. 26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그들을 체포하여,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끌고 갔다. 27바빌론 임금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쳐 죽였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

 

28네부카드네자르가 유배시킨 백성은 제칠년에 삼천이십삼 명이었고, 29네부카드네자르 제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끌고 간 사람은 팔백삼십이 명이었다. 30네부카드네자르 제이십삼년에는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유다인 칠백사십오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렇게 해서 모두 사천육백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다윗 후손의 운명

31유다 임금 여호야킨의 유배살이 제삼십칠년 열두째 달 스무닷샛날이었다. 바빌론 임금 에윌 므로닥은 자기가 왕위에 오른 바로 그해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다. 32바빌론 임금은 그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며, 그와 함께 바빌론에 있는 다른 임금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33그 뒤에 여호야킨은 죄수복을 벗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바빌론 임금 앞에서 늘 음식을 먹게 되었다. 34여호야킨의 생계비는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바빌론 임금이 날마다 일정하게 대 주었다.

 

 

예레미야서 52장,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예레미야 52장은 예레미야서의 부록으로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그리고 "다윗 후손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더보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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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의 연대순 요약

대예언서인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요시야, 여호야킴, 치드키야 임금 시대와 유다 멸망, 그리고 그 이후 시대에 대한 역사와 예언이 혼합되어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는 연대적 배열이 뒤섞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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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의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면,

예레미야서를 이어

제3 이사야서로 가야 할 것이다. 

 

제3 이사야서 링크파일

2023.12.23 - [제3 이사야서] - 제 3 이사야서를 시작하며

 

제 3 이사야서를 시작하며

제3 이사야서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에 따르면, 이사야서 56-66장(제3 이사야, third Isaiah 혹은 trito-Isaiah)은 바빌론 유배 이후의 신탁을 담고 있으며, 이사야의 사조를 따르면서 이사야의 사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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