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이사야서(ca. BC 740)/이사야서 서언

이사야서 서언

좋은생각으로 2022. 12. 20. 09:20

 

이사야서 서언

이사야 예언자가 히즈키야의 아들인 므나쎄 임금에 의해

톱으로 잘렸다는(참조: 히브 11,37) 참담한 내용이

미국천주교주교회의(USCCB) 성경의 이사야서 서언에 담겨 있는데,

므나쎄의 손자인 요시야 임금의 개혁에도 불구하고(2 열왕 23,4-20)

하느님께서 유다를 거슬러 타오르는

커다란 분노의 열기를 거두지 않으신(2 열왕 23,26)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사야가 유다를 향해 처절한 절규와 호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유다 임금과 백성들의 냉정함이

얼마나 크게 그들의 뇌리와 마음속에 박혀 있는지를 드러내는 참담한 표징이기도 하다.

 

이사야서가 희망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지만,

주님의 고통이 이사야의 처절함에 스며들어 있음을 마음에 새기면서 묵상하고자 한다.

 

<이사야서 서언은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의 이사야서 서언을 인용하여 번역한 자료이다. 자료의 연대는 게시자가 사용하는 고고학적 성경 연대와 일부 차이가 있지만, 인용 자료이므로 원문에 실려있는 연대를 그대로 제시한다. 참고로 표시는 고고학적 성경연대를 나타낸다.>

 

 

위대한 예언자인 이사야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그는 아시리아의 망치 같은 타격으로 북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지고 [BC 722/721(723)],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남 유다 왕국을 위협하는(BC 701) 모습을 보았다.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 임금 우찌야가 죽은 해(BC 742년739)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언직으로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극히 높으신 분, 하느님의 사자가 되는

이사야의 소명에 대한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

이사야서 6장에 대해 각별히 묵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영광 속에 왕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에 대한 환시는

이사야의 직무에 지울 수 없는 성사의 인호를 날인하였으며

이사야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영이 하느님의 장엄하고 거룩한 영광에 사로 잡히자,

이사야는 인간의 하찮음과 죄 많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얻게 된다.

또한 이사야는 하느님의 지고하신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 많음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하고 깊은 심연에 의해 압도된다.

이사야가 하느님의 사자인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라핌에 의해 불타는 숯이 이사야의 입술에 닿아야 한다.

이제 이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이사야서에서의 이사야의 직무는 유다 임금 우찌야의 죽음부터[BC 742(739)]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때까지 [BC701] 이어지지만,

유다 임금 히즈키야 사망 때까지 [BC687(686)]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대에 나오는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과 같은 전설에 의하면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쎄가 이사야를 두 동강으로 톱질하여 처형했다고 주장한다.<비교> 히브 11,37.

37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1,37)


이사야서를 보면 예언자 이사야가 같은 주제를 반복하여 이야기하며,

새로운 시기에 맞도록 그가 오래전에 했던 예언을 종종 재편집했다는 표시가 있다.

이사야서에 있는 신탁들에 대한 성경의 배열이 연대적 순서를 반영했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초기부터 분리된 신탁들의 작은 모음들(특히 6-12)이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것들도 각각 순서에 대한 자체적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작은 모음들은 자료들이 통합되어 하나로 최종 편집될 때도

변형 없이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사야의 신탁은 기원전 8세기말의 몇몇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아우르고 있다.

시로-에프라임 전쟁(Syro-Ephraimite War, BC 735-732),

히즈키야의 즉위 [(BC 715)728(공동), 715(단독)],

아스돗의 반란 [(BC 714-711)713 사르곤의 아스돗 공격],

사르곤의 죽음 [(BC 705)],

산헤립에 대한 반란(BC 705-701)이 이에 속한다. <아래 연대표 참조>

 

 

기원전 7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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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에서의 아시리아 승리(이사 10,9; 아모 6,2)와 더불어,

유다가 맹주였을 반-아시리아 연합이 무너지자,

이스라엘과 다마스쿠스의 아람인들 모두 아시리아에 공물을 바친다.

 

기원전7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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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의 르친이 새로운 반-아시리아 연합을 만들지만,

유다 임금 아하즈가 합류를 거부하자 반-아시리아 연합군이 아하즈를 제거하려 시도한다.

이 결과로 초래된 시로-에프라임 전쟁(2열왕 16,5)

이사야가 많은 신탁(7-8)을 하게 된 최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 상황에서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아하즈는 듣지 않고 전투에서 패한다(2역대 28,5-6).

이에 아하즈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에는 아시리아 임금이 아하즈를 공격한다(2역대 28,20).

 

기원전 7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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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임금 호세아가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치지만,

호세아가 이집트 파라오 소에게 사신을 보내며 모반을 꾀하자,

살만에세르가 사마리아를 세 해동안 포위한다.

 

기원전 7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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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에 의해 함락되어(2열왕 17,6),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백성들은 할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로 유배된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격한 유다의 임금은 아하즈이며,

그를 계승하게 될 히즈키야도 이스라엘 멸망의 목격 증인이다.

 

기원전 715년(715단독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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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즈가 죽고 히즈키야가 왕위에 오르자,

이사야는 다윗의 자손인 그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히즈키야가 착수했던 종교개혁을(2역대 31,1-23) 지지한다.

그런데 이집트의 후원을 받은 필리스티아가 반 아시리아의 중심이 된다.

그러자 유다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오래된 음모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히즈키야 임금에게 이집트 연합에 합류하라는 부추김을 한다.

 

기원전 7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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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임금 사르곤이 그를 거슬러 일어난 반란의 중심지인

필리스티아의 아스돗을 치고자 공격한다(이사 20,1).

이때 히즈키야는 전쟁의 화를 피하게 된다.

 

기원전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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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임금 사르곤이 죽자,

아시리아가 혼란한 상태라고 생각한 히즈키야는

반란을 부추기는 이집트 및 바빌론과 함께 친-이집트 연합에 가담한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를 “죽음과의 계약이라 하면서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들의 목은 뻣뻣하다.

반란이 터지자 아시리아 임금 사르곤의 뒤를 이은 산헤립이 재빨리 행동한다.

 

기원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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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군대가 유다를 유린한 후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한다.

이때 상황을 묘사한 나는 새장의 새처럼 히즈키야를 가두었다.”라는

산헤립의 장황한 말이 그의 비문에 새겨져 있다.

히즈키야는 예루살렘 도성을 구하려고 막대한 배상금을 아시리아에 지불해야 했다.

 

이사야의 활동을 기록한 이사야서 제1부는

바빌론 사절단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만(이사 39,8),

히즈키야 임금 시대 동안에도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이사야에게 하느님의 장엄한 환시는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에게 군대와 정치적 권력은 하찮아졌다.

이사야의 환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품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이사야는 시적인 미와 힘을 가지고 신탁에 대한 글을 썼다.

그의 문장 구성에서의 놀라운 어순 변화와 대담한 언어 유희,

그리고 이중 혹은 삼중적 의미를 갖는 어구로 이루어진 신탁들은 불변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사야서 완결본은 주로 위대한 예언자인 이사야의 말로 이루어졌지만,

제자들 혹은 이사야 이후의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글로 구성된 문집이다.

 

이사야 예언서 제1인 1-39장(첫 번째 이사야서)에 있는 대부분의 신탁들은

이사야로부터 나온 것이며 기원전 8세기 유다의 상황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사야서 34-35장은 이사야 예언자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다.

일부 경우에는 초기 이사야의 소재가 다시 사용되기도 한다.(예를 들어 27,2-8과 5,1-7의 포도밭의 노래)

 

이사야 예언서 제2인 40-55장(두 번째 이사야서)

바빌론 유배의 끝남을 예언한 익명의 저자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부분부터 "주님의 종의 노래"라고 알려진 위대한 신탁들이 나오는데,

주님의 종의 노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을 이해하는 신약성경에 반영되어 있다.

 

이사야 예언서 제3인 56-66장(세 번째 이사야서)은 유배 이후부터의 신탁을 포함하며,

여기에 속한 본문은 이사야와 같은 임무를 계속하던

이사야의 영으로 가득 찬 저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사야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다.

 

1. 이사야서 제1(139)

   1) 이사야의 고발(1,15,30)

   2) 임마누엘서(6,1―12,6)

   3) 이방 민족에 대한 신탁(13,123,18)

   4) 이사야의 묵시(24,127,13)

   5) 주님을 경외하라(28,133,24)

   6) 시온의 복수자(34,135,10)

   7) 이사야서 부록(36,139,8)

 

2. 이사야서 제2( 4055)

  1) 주님의 영광(40,148,22)

  2) 이스라엘의영적 해방(49,155,13)

 

3. 이사야서 제3(5666)

                           (참조USCCBRN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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