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영성

거룩한 독서와 예언자직 소명을 위한 묵상

좋은생각으로 2022. 10. 27. 09:46

성경의 본문 배치는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그리고 예언서가 나오도록 되어 있지만,

거룩한 독서를 할 때는 예언서를 앞 세우고자 한다.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직접 혹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으로

시작되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역사서를 펼치기 전에

해당 역사서 이전의 예언서를 미리 읽으며,

하느님께서 왜 그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묵상한다.  

그리고 예언서의 예언자들의 눈으로 성경을 다시 읽어,

예언자직의 소명(가톨릭 교리서 904-907)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이제부터는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연대적 관점으로  

고대 성경사에 나타나는 광대한 역사적 편차를 줄이며,  

정확하고 섬세한 눈길로 성경을 읽어,

과거와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영성을 키우고 싶다. 

 

성경 연대는 본문의 역사적 실존성을 실체화한다.   

예언서 해석에 특히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예언과 관련된 연대들이 숫자로 특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의 일흔 해라는 예언(예레 25,12)과

다니엘의 일흔 해에 대한 생각(다니 9,24-27)을 살펴본다.  

 

젊은 다니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이때는 유다가 멸망으로 치닫는 시기이다. 


1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 6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다니 1,1)  


예레미야는 바빌론 유배가 하느님의 뜻임을 분명히 하며
그기간은 일흔 해라고 말한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 한다. 
 

1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 제사년, 곧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원년에 온 유다 백성을 두고 예레미야에게 내린 말씀.12그러나 일흔 해가 끝난 뒤에는 내가 바빌론 임금과 저 민족도 그들의 잘못을 물어 칼데아인들의 땅과 함께 벌하고, 그들을 영원한 폐허로 만들겠다. 주님의 말씀이다.(예레 25,1.12) 


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거부하였지만, 
어린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을 마음에 담아 기억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칠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늙은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을 생각한다. 
젊었을 때 끌려간 다니엘, 이제는 팔십이 넘어선 노인이다. 

1메디아족 출신으로 칼데아 나라 임금이 된,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다리우스 제일년이었다. 2그의 통치 제일년에 나 다니엘은 성경을 펴 놓고,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채 채워야 하는 햇수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흔 해였다.(다니 9,2)


일흔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한다. 
키루스가 유배 해제에 대한 칙서를 반포한 것이다. 

1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에즈 1,1)

 

이 본문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은 임의적이고 의도적인 해석으로

거룩한 말씀을 고의로 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확한 성경 연대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를 근거로 접근해 본다. 

 

다니엘이 유배된 때인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은 고고학적 성경 연대로 BC 605년이고

유다의 바빌론 유배가 끝난 때인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은 BC 536년이다.

기간을 계산하면 첫 해를 포함하여 일흔 해, 즉 70년이 된다. 


이야기 하고자 함은

일흔 해, 즉 70년이라는 숫자적 계산의

옳고 그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말씀인 예언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자손이었는가? 라는 질문이다.

 

백성들이,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하느님을 믿고 따랐다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일어났을까? 라는

현시대의 우리들을 향해

조용히 외치는 질문이다. 

 

예언자들이 표징을 내세워 설명해도 이해 못하는데,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는(참조,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가톨릭 기도서)

하느님의 뜻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표징도 내세우지 못하면서 추한 입으로만 떠드는,

이 시대를 현혹하는 삿된 모임을 어느 누가 하고 따르는가?

 

참된 믿음을 믿고 퍼지게 함은

오로지 거룩한 신앙인들의 몫,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시를 이 땅에 어떻게 드러내시는지,

예언서를 통해 역사서에 넘치는 수많은 진주를

거룩한 독서라는 말씀의 실로 꿴 목걸이로 만들어 나누고 싶다. 

 

 

성경의 역사서는 계시된 예언의 결과이다. 
성경의 예언서는 확정된 미래의 계시이다. 

성경에 넘치는 수많은 계시와 결과가 조용히 가르친다. 

무엇을 더 기다리느냐?
무엇을 더 바라느냐?
이미 다 보여주고 이루었는데.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데,
너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인데(참조 2코린 6,16).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