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자신의 존재로부터 시작하지만, 삶의 과정에는 의도되지 않은 힘이 영향을 미친다. 신앙인은 그 힘이 하느님의 자비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일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이끔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부름에도 오로지 하느님 말씀을 믿고 응답한 순교자들의 모습이 예수님의 핏빗어린 모습 속에 투영되어 다가 온다.
이 스토리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좀더 과거의 흔적 속에 현재의 오늘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기도 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록 순수함과 진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과거이기 때문이다.
추자도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 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있는 곳이다. 황사영은 1775년에 태어나 1790년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 명리를 버리게 된다. 황사영은 신유박해 때 충북 배론에서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백서를 썼다는 이유로 대역죄인으로 처형되고, 황사영의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그의 부인 정난주는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두 살된 아들인 황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단지 인간들의 뜻에 따라 인간들의 손에 의해.
추자도로 떠나면서 돌아본 제주항이다.
날씨는 잔뜩 찌푸리고 바다는 매우 거칠었지만,
이곳은 방파제로 둘러싸인 내항이라 파도의 거침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잠시 후에는 그 거셈 속에서 요동칠 것이다.
멀미약을 잔뜩 먹고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았다.
비록 아이의 눈물이 생각나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느낌으로 파도를 오르내렸다.
그런 나를 시험하둣 격랑은 비교적 가벼운 쾌속선을 인정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몸을 가눌 수 없는 흔들림에,
기억의 편린들을 사진 속으로 옮길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었다.
나는 성지 순례의 목적으로 추자도에 도착했지만,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 마리아는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추자도에 이르러 젖내나는 어린 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마음 가득 한만 담고 떠났다.
뾰족한 바위가 있는 이 해변가에...
갯바위에서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
이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 그를 거두어 키운다.
그리고 배냇저고리에 적힌 이름으로 그가 황경한임을 알게 되니.
어느정도 신원은 파악되었을 것이다.
아이 어미는 제주로 귀양살이 가는 중입니다.
이러이러한 어미인 저는 국법으로 손발이 묶인 죄인이라.....
어린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
해변에 서서 보니 멀리 희미하게 보길도가 있다.
육지에서 제주로 가는 배는 완도에서 보길도를 지나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로 가게 된다.
지금은 제주가는 배가 다양한 노선으로 운행 중이지만 과거에는 대부분 그러하였다.
상추자도항에서 버스를 타고 예초리에 내려 마을을 지나 산으로 오르다 보니
신대산 전망대 표지판이 보인다.
나는 쉼터로 가야 한다.
황경한의 일생은 알 수 없다.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해 삶이 지배되는 것이 일반이지만
그는 마음속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끈을 자신과 함께 묶어 놓았을 것이다.
그는 그들의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성인 즉 거룩한 사람이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가 여생을 보낸 뒤
자신이 놓여졌던 해안에 맞닿은 산 능선에 묻혔다.
사진의 녹색 화살표 부근에 쉼터가 있는데,
바로 그곳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한참을 오른 후 쉼터에 이르렀다.
쉼터의 이름이 모정의 쉼터이다.
모정,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의,
잠시 숨을 고르려고
바다를 둘러보니 여러 섬들이 보인다.
가운데 횡간도(4)를 중심으로 왼쪽에 추포도(3),
오른쪽에 흑검도(5, 검은가리), 보길도(6), 쇠머리섬(7)이 머리를 드러낸다.
그도 이런 모습의 섬들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사진에는 안 보이는 제주도를 향해서도.....
황경한의 묘이다.
이곳에서도 바로 위 사진의 섬들이 보인다.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와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비석이 있다.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천주교 초기 신앙 선조들처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이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그리하였을 것이다.
오늘날에 그를 찾는 참신앙인들이 있으며,
영원한 삶을 믿기 때문이다.
부근에 있는 낡은 표지판이 세월의 아픔을 대신하는 것 같아 이 글에 담아본다.
지금은 새로이 바뀌었을 것이다.
황경한이 잠든 곳의 모습이다.
추자도는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 아니다.
제주도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큰 바다의 오른쪽으로 더 가야 한다.
가는 배마다, 오는 배마다, 지나가는 배마다....
슬픔 가득한 어린 아이의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의 모든 삶 속에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신앙 때문에 대역죄인으로 몰린 부모의 아들임을 언제부터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의 육지로도 오른쪽의 제주로도 가지 못하는 그의 삶을 통해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 앞으로 가야 함을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초리 해안가에서 나즈막이 바다를 바라본다.
바위 뒤에 추포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추자도에 있는 성당, 천주교 추자 교회이다.
성당 위에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한편 대정 관노로 유배된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는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깊은 믿음과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이웃들의 칭송을 받으며 37년을 살다가 1838년에 사망했다.
비록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와 다름없었기에,
후손들은 그녀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아기를 품은 모습에
눈물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십자가의 길 기도문에서, 가톨릭 기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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