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용서
마태오 복음서의 주님의 기도는
"거룩한 율법의 원칙"을 설명한다.(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주석)
그 내용은 용서에 대한 것으로
보편 교회인 가톨릭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님의 기도문에 들어 있다.
거룩한 율법의 원칙(Principles of Holy Law)은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라는 본문이다.
본문이 언급하는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주는 것"(표준국어대사전)이지만
잘못한 자를 무조건 덮어주라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자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용서해 달라고 빌 때 용서를 해주는 것이다.
창세기에 소돔에 대한 용서와 관련된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나온다.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이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창세 18,24)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창세 18,32ㄱ)
그러자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창세 18,32ㄴ)
아브라함은 파괴되어 없어지는 파멸 destroy로부터 그들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에게 이방인이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만이 파멸을 피했을 뿐이다.
모세도 용서와 관련하여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민수 14,18)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대를 이어 용서받지 못하는 구체적인 상황이 열왕기 하권에 나오는데,
유다 임금 므나쎄가 지은 온갖 죄와
"그가 흘린 무죄한 피 때문에, 그가 예루살렘을 무죄한 피로 채웠으므로,"(2열왕 24,3-4)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실 마음이 없으셨던 것이다.
이렇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대죄를 범하는 것으로
성경의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므나쎄가 바로 그러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드러난 므나쎄의 구체적인 죄는 무엇인가?
"자기 아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고
요술과 마술을 하였으며, 영매와 점쟁이들을 두었다."(2열왕 21,6)
그리고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많이 저질러 주님의 분노를 돋우었던 것이다.
‘사람을 때려서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5)
사람을 유괴한 자는 그 사람을 팔았든 데리고 있든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7)
그 소가 예전부터 받는 버릇이 있어, 그 주인이 경고를 받고도 그것을 잡도리하지 않아 남자나 여자를 죽였으면, 소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도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29) [참조 ☞ 아래 미필적 고의]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사람이든 이스라엘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제 자식을 몰록에게 바치면,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 땅의 백성이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레위 20,2)
어떤 남자가 한 여자와 간통하면, 곧 어떤 남자가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0,10)
남자든 여자든 영매나 점쟁이로 나서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레위 20,27)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온 공동체가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4,16)
이처럼 유다 임금 므나쎄는 다중으로 계명을 위반하여,
죽음에 이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도 므나쎄의 잘못을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며 죄를 지었기에
유다 전체가 대를 거쳐 파멸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는 다하였으나,
혹여 잘 모르거나 우발적으로 지은, 죽을 죄가 아닌 죄는 잘못을 빌어 용서를 받을 수 있겠지만,
모세의 말처럼 용서를 받더라도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서도 일부러 죄를 짓는다면,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바칠 수 있는 제물이란 남아 있지 않습니다."(히브 10,26)라면서
말씀을 아는 자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말씀을 믿는 우리는 참된 신앙인으로서 불경한 죄를 지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신앙인들은 이웃이 잘못하고 있으면 미워하지 말고,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레위 19,17)라는 말씀을 행하여,
이웃이 “오늘에야 제 잘못이 생각납니다."(창세 41,9)라면서
스스로 깨닫고 잘못을 빌게 해야 할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빌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답하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는 말씀처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깨닫고 용서를 비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22.35)라는 말씀이
용서하지 않는 자의 가슴 속을 무한히 후벼 파고 들 것이다.
용서하는 사람도 흙에서 나온 인간이니 말씀처럼 얼마나 용서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는 말씀으로 성찬례를 제정하셨다.(참조☞ 가톨릭 미사 통상문)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니,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 요한 11,9)라는 사도 요한의 말처럼
하루에 하루가 이어지는 삶의 모든 여정에서 통회하고 고백하며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통회기도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고백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톨릭 기도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필적 고의 |
탈출 21,29 본문에서 주인이 경고를 받고도 소를 잡도리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필적 고의란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 통행인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차로 질주하는 경우, 상대편이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심하게 때리는 경우 따위가 해당한다."(표준국어대사전) |
마태오 복음
주님의 기도(마태 6,9-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마태 6,9)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 [6:10] 마태 26,42,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 [6:11] 잠언 30,8–9.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 [6:12] 마태 18,21–22; 집회 28,2.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13) [6:13] 요한 17,15; 2테살 3,3.
14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 [6:14] 마태 18,35; 집회 28,1–5; 마르 11,25.
15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5) [6:15] 야고 2,13.
거룩한 율법의 원리(마태 6,14-15) - 용서하면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마태 6:14-15] 이들 절은 “거룩한 율법의 원리”라 불리는 한 묶음의 양식을 반영한다. 이제 인간의 행동은 마지막 심판에서 하느님의 합당하신 행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주석
[6,9] 주석: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6,9]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이 기도는 후기 신약 시대의 많은 랍비 기도에서 발견된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비록 신의 이름에 대한 “경배함”이 인간의 찬양과 그분의 뜻에 대한 순종에 의해 행해진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라는 청원 즉, 권능의 행동(비교: 에제 36,23)으로, 이 경우에서는 충분히 당신 왕국을 건설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라는 청원일 것이다.
23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에제 36,23)
[6,10] 주석: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6,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이 청원은 기도의 분위기를 설정하며, 바로 앞과 뒤에 오는 청원에서의 인간의 행동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의 평정이 일어나게 한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느님 나라를 하늘에 세우시려는 하느님의 목적이 지금은 땅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6,11] 주석: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6,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희소한 그리스어 단어로, 여기에서 "일용할"이라는 의미인 epiousios는, 신약에서는 오직 이곳과 루카 11,3에 나타난다. 이들 본문과 이 본문에 의존하는 문헌 외에 이 단어가 한번 사용된다고 주장되고 있지만, 그 주장은 매우 의심스럽다.
단어는 "매일" 혹은 “미래”(다른 의미들 역시 제안되어 왔음)를 뜻하기도 한다. 후자(“미래”)는 모든 기도의 종말론적 분위기에 더욱 어울릴 것이다. 그래서 청원은 왕국의 빠른 도래(오늘날)를 위한 것이며, 청원은 자주 축제의 모습으로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묘사된다고 이해되고 있다(이사 25,6; 마태 8,11; 22,1-10; 루카 13,29; 14,15-24).
3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루카 11,3)
6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25,6)
11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8,11)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0; 루카 14,15-24)
29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13,29)
[6,12] 주석: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6,12]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잘못이란 단어는 하느님께 빚진 “잘못”인 (참조: 루카 11,4) 죄에 대해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원은 아마도 마지막 심판에서의 용서일 것이다.
4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4)
[6,13] 주석: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6,13] 유다인의 묵시론적 저술들은 세대의 종말 전에 있는 혹독한 심판의 기간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구세주적 비통”이라 불렸다. 이 청원은 제자들이 그 최후의 심판을 겪지 않아도 되길 바라는 것이다.
13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13)
[6,7-15] 주석: 주님의 기도
[6,7-15] 마태오는 그의 기본적인 전승 소재 안에 기도의 전형인 “우리 아버지”를 포함하는 기도에 소재의 전개를 삽입한다. 주님의 기도는 루카 11, 2-4에서 상이한 내용과 형식으로 발견된다.
2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2-4)
▷루카 복음서는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루카 11,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고 나온다.
1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6,9-12] 주석: 주님의 기도
[6:9-13]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 ”의 마태오 형식은 마태오의 교회 전례 전승을 따른다. 루카의 덜 다듬어진 형식 역시 루카에게 알려진 전례 전승을 나타내지만, 루카의 본문이 마태오의 것보다 예수님의 원래의 말씀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인용 본문
[6:10] 마태 26,42,
42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 26,42)
[6:11] 잠언 30,8–9.
8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8-9)
[6:12] 마태 18,21–22; 집회 28,2.
21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2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집회 28,2)
[6:13] 요한 17,15; 2테살 3,3.
15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15)
3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3,3)
[6:14] 마태 18,35; 집회 28,1–5; 마르 11,25.
15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마태 18,35)
1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집회 28,1-5)
25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6:15] 야고 2,13.
13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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