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요새는 인도 아그라 시에 있는 역사적인 요새이다. 1565년에서 1573년 사이에 무굴제국의 황제 악바르를 위해 지어졌다. 이곳은 무굴족이 점령한 후 수도가 델리로 옮겨진 1638년까지 무굴 왕조의 주요 거주지였다. 요새는 성곽 도시라고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1983년에 아그라 요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은 타지마할에서 북서쪽으로 약 2.5km 떨어져 있다. 타지마할을 세운 샤 자한이 말년에 유폐되어 머문 곳이 아그라성이다.
정문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길이 경사져있다.
전쟁시 기름을 부어 미끄러워지게 하여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목적이다.
자한기르 궁전에는 두 황제의 이름이 붙여졌는데 악바르에 의해 건설되고, 자한기르가 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잔디 정원 뒤에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졌다.
아그라성의 아마르 싱이라는 이름의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자한기르 궁이 보인다.
자한기르 궁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의 회색 빛의 물체는 자한기르 욕조이다.
자한기르가 황태자였을 때 이곳에서 장미수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자한기르 궁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면 정원이 나온다.
포도나무 정원이라는 이름의 앙구리 박이다.
이곳을 지나면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의 궁전인 카스 마할로 들어가게된다.
포도나무 정원에서 카스 마할을 바라보며 찍은 영상이다.
앙구리 박의 동쪽에 있는 카스 마할이다.
왼쪽 돔모양의 지붕이 있는 곳이 황제와 황후의 거처이다.
이들 궁전은 샤자한에 의해 1631부터 1640사이에 건설되었다.
아그라성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이다.
샤 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에 의해 이곳에 유폐된 후 이곳에서 바라보았다고 한다.
아그라성에서 타지마할쪽을 바라보며 촬영한 영상이다.
카스 마할을 나와서
황제가 군중을 알현하던 곳인 디완 이 암을 지났다.
이곳은 황제가 군중이 참가하는 공식적인 의전과 행사를 하였던 곳이다.
디완 이 암에 딸린 정원에 대한 영상이다.
디완 이 암에서 나오는 문이 왼쪽에 있다.
이 문은 아그라성의 정문과 마주하고 있다.
오른쪽의 돔이 보이는 건물이 처음에 들어갔던 자한기르 궁전으로 왼쪽 모습이다.
아그라성 정문을 바라보며 찍은 영상이다.
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문에서 나오면 아그라성의 정문으로 곧바로 나가데 된다.
아그라성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타지마할을 세운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아들에 의해 폐위되어 말년에 유폐되었던 곳이다.
그는 이곳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사랑하던 아내가 잠들어 있는 타지마할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1다윗 임금이 늙고 나이가 많이 들자,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았다. 2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군이신 임금님께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 드려 임금님을 시중들고 모시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처녀를 품에 안고 주무시면 주군이신 임금님의 몸이 따뜻해지실 것입니다.” 3그리하여 신하들은 이스라엘 온 지역에서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찾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찾아내고는 그 처녀를 임금에게 데려왔다. 4그 젊은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가 임금을 모시고 섬기게 되었지만, 임금은 그와 관계하지는 않았다.(1열왕 1,1-4) 1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일렀다. 3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1열왕 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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