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솔로몬의 역사

열왕기 개요

좋은생각으로 2022. 10. 1. 12:44

열왕기는 솔로몬과 그의 사후 분열된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의 멸망의 역사를 담고 있다. 열왕기 내용은 이스라엘 임금과 유다 임금들의 재위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때때로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본 자료에서는 열왕기를 솔로몬의 역사, 북부 이스라엘의 역사, 남부 유다의 역사로 분류하여 접근하고자 한다. 특히 솔로몬의 역사에서는 그의 저술 작품인 잠언, 아가, 코헬렛을 그의 삶과 관련하여 간략히 살펴본다. 

열왕기에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의 멸망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되었다. 따라서  열왕기는 예언서와 함께하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가 나뉘어 여럿 되고, 여럿이 모여 하나 되다.

 

아래에 제시된 자료는 미국천주교 주교회의 성경(RNAB)에 나온 열왕기 서언을 의역한 것이다. 열왕기에 대한 편저자의 관점과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1. 두 권으로 구성된 열왕기 상하권은 신명기계 역사로 알려진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는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 정착부터(여호수아기와 판관기),

사무엘, 사울 그리고 다윗 치세에서의 판관직의 군주제로의 전환을 거쳐(사무엘 상권과 사무엘 하권),

솔로몬의 치세, 통일 왕국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으로의 해체와 두 왕국의 멸망까지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열왕기 상권과 열왕기 하권).

신명기계 역사는 오경과 더불어 천지창조부터 유배까지 확장하는 단일의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열왕기를 몇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열왕기는 역사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중요한 정보 자료이다.

열왕기는 또한 조심스러운 독서를 필요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흥미로운 성격 묘사와 극적 긴장의 요구로 인해 역사적 정확성이 때때로 희생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표현과 서술의 독창성 모두가 특유한 종교적 세계관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3. 열왕기의 다면적 특성은 열왕기가 다양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적 사건 그 자체들이 물론 중요하지만,

저자의 사건 구성에 있어서 저술 방식은 저자의 역사 재현에 일치성을 보여준다.

북부 임금들은 예외 없이 저주받고, 왕실 계보는 예로보암 1세의 하느님의 선택부터 연속적인 단명 군주를 거쳐 예후의 쿠데타의 피바다까지 쇠퇴하다가, 마침내는 일련의 암살로 멸망한다.

(저자가 가끔 저술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빗나가게 하고 있음도 인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예로보암 2세의 비교적 번영한 41년 통치가 단 일곱 절로 간단하게 처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2열왕 14, 23-29)

반면에 유다 임금들은 배신과 개혁이라는 순환적 형식을 따르는데, 이 형식은 배신한 임금들 뒤에 이들보다 위대한 개혁가 임금들(아사, 요아스, 히즈키야, 요시야)이 뒤따르는 것이다.

불행히도 배교자 임금들 역시 사악함으로 나아가는데,

특히 므나쎄의 악행은 요시야의 믿음조차도 주님의 진노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크게 타락한다(2열왕 23,26).

 

23유 임금 요아스의 아들 아마츠야 제십오년에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이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다. 24그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25그가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았다. 이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갓 헤페르 출신으로 당신의 종인,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 그대로다. 26종이든 자유인이든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이 없이, 그들이 매우 쓰라리게 고생하는 것을 주님께서 보셨던 것이다. 27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하지는 않으셨으므로,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셨다. 28예로보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 그의 무용과 그가 한 전쟁, 그리고 그가 유다에 속하였던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이스라엘로 복귀시킨 일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29예로보암이 자기 조상 이스라엘의 임금들과 함께 잠들자, 그의 아들 즈카르야가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2열왕 14,23-29)

26그러나 므나쎄가 주님의 분노를 몹시 돋우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유다를 거슬러 타오르는 커다란 분노의 열기를 거두지 않으셨다.(2열왕 23,26)

 

4. 열왕기는 경탄할만한 어문학적 저작물이다. 

 

일부 탁월함은 오직 히브리어 원문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언어유희,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절에 대한 언어적 암시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영어가 과장된 표현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울림과 속도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문학적 기술이 번역을 살아남게 한다.

즉 서술 단위에 대한 대칭적 구조(그리고 중요한 지점에서의 대칭성 붕괴),

풍부한 모호성(참조 1열왕 3,26),

유다에서 온 하느님의 사람과 베텔의 늙은 예언자들의 행동이 그들 왕국의 운명이 된다는(1열왕 13) 전조현상과 같은 방법이다. 

열왕기의 성격 묘사는 풍부하고 복잡하지만(솔로몬, 예로보암, 엘리야, 아합, 엘리사, 예후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26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는 제 아들에 대한 모성애가 솟구쳐 올라 임금에게 아뢰었다. “저의 임금님! 산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제발 그 아기를 죽이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너의 아이도 안 된다. 자, 나누시오!” 하고 말하였다.(1열왕 3,26)

베텔의 제단이 무너지다(1열왕 13,1-10). 베텔의 늙은 예언자(1열왕 13,11-34)

 

5. 열왕기는 역사의 신학적 해석을 제공함에 있어서  이중 원칙 double principle을 사용한다.

 

즉 '다윗 왕국의 정치적 붕괴의 정당화'와 '주님 백성의 종교적 일치의 필요성'이다.

사실 이러한 이중 원칙은 비현실적이지만(참조, 1열왕 12,26-27에서 예로보암 1세의 합리적인 평가),

신명기계 역사가들에게는 상관없다.

왕국의 분열이 주님의 뜻인 것처럼(1열왕 12,22-24),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경배의 집중화도 그러하다(1열왕 9,3; 신명 12 참조).

 

열왕기 상하권은 그 구성에서 앞에서 말한 이중 원칙을 반영한다.

각각의 임금 이야기는, 임금이 이스라엘인지 혹은 유다인지 완전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즉 두 임금 계보는 적법하다.

두 계보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임금이 왕좌에 오른 순서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가 어떤 왕국을 통치했는지는 상관없다.

즉 왕국이 서로 다른 두 왕실의 관할 아래 있어도, 

오직 하나의 하느님 백성만 있다.

 

더욱이, 각각의 임금은 정치적 혹은 경제적 성공 혹은 실패를 고려하지 않고 신학적 배경에서만 평가되고 있다.

모든 이스라엘 임금들은, 

예루살렘 밖에 성소를 세운 예로보암 1세의 죄를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받는다.

유다 임금들은 경우에 따라 배교로 저주받거나 개혁으로 찬양받는데,

신명기계 역사가의 지속적인 짜증의 근원은 칭찬받을 만한 임금들조차 예루살렘 밖의 성소(산당)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6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7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1열왕 12,26-27)

22그런데 하느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 23“유다 임금,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과 온 유다와 벤야민 집안과 나머지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24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올라가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렇게 된 것은 나의 뜻이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모두 주님 말씀대로 돌아갔다.(1열왕 12,22-24)

3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내 앞에서 한 기도와 간청을 들었다. 네가 세운 이 집을 성별하여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니,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1열왕 9,3)

유일한 성소(신명 12,1-28)

 

6. 열왕기는 유명하고 위대한 예언자(엘리야, 엘리사, 이사야)와 덜 알려지거나 익명의 예언자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짜여있다(1열왕 13; 22).

 

이들 많은 이야기들은 입증되어 있지 않으나,

예언자들과 예언자 무리의 일상을 나타내고 있다(1열왕 17; 2열왕 4).

정치적 영역에서 예언자의 놀랄만한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즉 임금에 반대하는 예언자들(1열왕 14; 21; 2열왕 9), 

임금을 지지하는 예언자들(1열왕 20,1-34; 2열왕 19 - 20; 22,14-20)이다.

이것 역시 신명기계 사가의 신학적 세계관의 일부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지상에서 임금들과 백성에게 알려지고

하느님의 뜻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대한 미래의 결과가 설명될 것이다.

 

예언자들이 두 책에서의 구조적 중심이 엘리사가 엘리야의 예언 직무를 계승하는 것임을 열왕기 상 하권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이 이야기가 어떤 임금의 재위를 설명하는 내용에서가 아닌

별도의 서사에서 나타나는 열왕기에서의 몇몇 구절의 하나라는 것은 이 이야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임금들과 통치의 일시적 영역 뒤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말씀의 종인 예언자들의 영속적인 영역이 놓여있다.

 

2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1열왕 17,2)

1예언자 무리의 아내들 가운데 하나가 엘리사에게 호소하였다. “어르신의 종인 제 남편이 죽었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어르신의 종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준 사람이 와서 제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2열왕 4,1)

예로보암의 아들이 죽다(1열왕 14,1-18). 예로보암이 죽다(1열왕 14,19-20).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1열왕 14,21-31)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다(1열왕 21,1-26). 아합이 뉘우치다(1열왕 21,27-29).

엘리사의 제자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우다(2열왕 9,1-13). 예후가 이스라엘 임금 요람을 죽이다(2열왕 9,14-26).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즈야를 죽이다(2열왕 9,27-29). 예후가 이제벨을 죽이다(2열왕 9,30-37).

벤 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하다(1열왕 20,1-12). 이스라멜이 승리하다(1열왕 20,13-22). 아람군이 다시 처들어오다(1열왕 20,23-34).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2열왕 19,1-8). 아시리아가 다시 위협하다(2열왕 19,9-13). 히즈키야의 기도(2열왕 19,14-19). 산헤립을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2열왕 19,20-28). 히즈키야에게 내린 주님의 표징(2열왕 19,29-34) 산헤립의 말로(2열왕 19,35-37).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2열왕 20,1-11). 바빌론 사절단(2열왕 20,12-19). 히즈키야가 죽다(2열왕 20,20-21)

14힐키야 사제와 아히캄과 악보르와 사판과 아사야는 훌다 여예언자에게 갔다. 훌다는 하르하스의 손자이며 티크와의 아들인 살룸 예복 담당관의 아내였다. 훌다는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살고 있었다. 그들이 훌다에게 용건을 말하자, 15훌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나에게 보낸 사람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16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유다 임금이 읽은 책에 쓰여 있는 말 그대로, 이제 내가 이곳과 이곳 주민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17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향을 피워, 자기들 손으로 저지른 그 모든 짓으로 나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진노가 이곳을 거슬러 타오를 터인데, 그 진노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18그리고 주님께 문의하라고 여러분을 보낸 유다 임금님께 이 말도 전하십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들은 말씀에 관한 것이다. 19이곳과 이곳 주민들이 황폐해지고 저주를 받으리라고 내가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유순해져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또 네 옷을 찢고 내 앞에서 통곡하였다. 그래서 나도 네 말을 잘 들어 주었다. 주님의 말이다. 20그리하여 내가 너를 네 조상들 곁으로 불러들일 때, 너는 평화로이 네 무덤에 묻히고, 내가 이곳에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임금에게 전하였다. (2열왕 22,14-20)

엘리야가 승천하고 엘리사가 그 뒤를 잇다.(2열왕 2,1-18). 엘리사가 두 가지 기적을 일으키다.(2열왕 2,19-25)

 

7. 열왕기 상하권은 오래된 자료를 사용한다.

 

열왕기는 오래된 자료를 인용하는데(아마도 임금들의 실록이라 불리는 작품에 관한 기록 보관소의 자료; 예를 들어 1열왕 14,19.29 참조),

이것들은 열왕기의 신학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명기 역사 자체는 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일어나는 복잡한 편집 수정을 거쳤다.

열왕기가 유다 임금 요시야 치세(640-609 BC) 후기 어느 때의 작품이지만, 

본문에는 유다가 패망한 이후인 유배 시기에서 유래한 내용도 있다(참조 2열왕 25,27-30).

결국 신명기계 역사는 역대기 상하권에 나온 역사를 편집하고자,

유배 후에 연대기 저자들에 의해 사용된 자료의 하나였다.

연대기가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유다 왕국 임금들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들이 드러나며, 

때로는 변경된 형태로 연대기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19예로보암의 나머지 행적, 곧 그가 전쟁을 어떻게 치르고 나라를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관해서는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1열왕 14,19)

29르하브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1열왕 14,29)

27유다 임금 여호야킨의 유배살이 제삼십칠년 열두째 달 스무이렛날이었다. 바빌론 임금 에윌 므로닥은 자기가 임금이 된 그해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다. 28바빌론 임금은 그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며, 그와 함께 바빌론에 있는 다른 임금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29그 뒤에 여호야킨은 죄수복을 벗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바빌론 임금 앞에서 늘 음식을 먹게 되었다. 30여호야킨의 생계비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임금이 날마다 일정하게 대 주었다.(2열왕 25,27-30)

 

8. 열왕기 내용을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솔로몬의 치세(1열왕 1,1 11,43)   

  2) 예로보암의 치세(1열왕 12,1 14,20)

  3) 유다와 이스라엘의 임금들(1열왕 14,21 16,34)

  4) 엘리야의 이야기(1열왕 17,1 19,21)

  5) 아합의 이야기(1열왕 20,1 – 2열왕 1,18)

  6) 엘리사가 엘리야를 계승하다(2열왕 2,1-15)

  7) 엘리사와 요람의 이야기(2열왕 3,1 9,13)

  8) 오므리 왕조의 종말(2열왕 9,14 11,20)

  9) 유다와 이스라엘의 임금들(2열왕 12,1 17,5)

10) 이스라엘의 종말(2열왕 17,6-41)

11) 유다의 종말(2열왕 18,1 25,30)

 

<인용 RNAB 열왕기 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