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열두 고갯마루의 두 번째인 상황 2는, 솔로몬이 자신의 왕조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산입" inclusion이라 불리는 저술 기법에 의해 표현되는데, 여기에서는 "왕권이 튼튼해졌다"(참조 12ㄴ, 46ㄴ)라는 문장이 해당된다. 산입이란 특정 문단의 시작과 끝에 단어, 구, 혹은 생각을 반복하여 제시하는 방법으로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상황 11인 적대자 등장(1열왕 11,14-25)과 대응한다.
솔로몬의 열두 고갯마루
<상황 2> 적대자 처형(1열왕 2,12ㄴ-46)
① 반란 진압과 즉위 (1열왕 1,1-53; 2,1-12ㄱ) ② 적대자 처형(1열왕 2,12ㄴ-46) ③ 혼인과 하느님의 축복(1열왕 3,1-15) ④ 통치(1열왕 3,16-28;4,1-20; 5,1-14) ⑤ 성전 건축 준비(1열왕 5,15-32) ⑥ 성전 건축(1열왕 6,1-38; 7,13-51) ⑦ 성전 봉헌 및 왕궁 완성(1열왕 ; 8,1-66; 7,1-12; 9,1-9) ⑧ 일반 건축 활동(1열왕 9,10-25) ⑨ 치세(1열왕 9,26-28; 10,1-29) ⑩ 다혼과 하느님의 진노(1열왕 11,1-13) ⑪ 적대자 등장(1열왕 11,14-25) ⑫ 예로보암의 반란 예고와 솔로몬의 죽음(1열왕 11,26-43)
1. 솔로몬의 왕권이 튼튼해지다.
다윗의 신하들이 솔로몬을 따르니
12ㄴ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
2. 아도니야가 수넴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원하다.
아도니야는 밧 세바에게
자기 것이 될 나라가 뒤집어져 아우 것이 되었다고(1열왕 2,15)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위치를 부각시키면서
17그는 이렇게 청하였다. “솔로몬 임금님에게 말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제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해 주십시오. 임금님은 모후의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18밧 세바가 대답하였다.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임금에게 말해 주마.”(1열왕 2,17-18)
3. 솔로몬이 수넴 여자 때문에 아도니야를 죽이다.
19그리하여 밧 세바는 아도니야를 위하여 청을 하러 솔로몬 임금에게 갔다.(1열왕 2,19).
21밧 세바가 말하였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임금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해 주시오.”
22이에 솔로몬 임금이 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어머니께서는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청하십니까?
차라리 그에게 나라를 주라고 청하시지요!
그는 저의 형이고, 또 그의 편에 에브야타르 사제와 츠루야의 아들 요압도 있으니 말입니다.”
23그러고 나서 솔로몬 임금은 주님을 두고 맹세하였다.
“아도니야가 자기 목숨을 걸고 이런 말을 하였으니, 그 목숨을 살려 두면 하느님께서 저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입니다.
24이제 저를 세우시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히시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집안을 일으켜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아도니야는 오늘 죽을 것입니다.”
25그러고 나서 솔로몬 임금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내려치게 하니,
아도니야가 죽었다.(1열왕 2,21-25)
솔로몬 입장에서는 모반을 꾀했던 아도니야가 비록 충성을 맹세했지만,
솔로몬에게 그는 형이므로 항상 눈엣가시였다.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이때다 싶어 실행했을 것이다.
아도니야를 죽인 다른 이유 |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이 후궁을 범한 그의 장군 아브네르에게 화를 내듯이(2사무 3,8) 솔로몬도 자신의 권위를 침해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후궁이란 승계하는 임금의 소유이므로, 그러한 후궁을 가지겠다는 것은 왕권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름다운 수넴 여자 아비삭에게 드러나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도니야가 그녀를 아내로 청하자 급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마음에 든 여자를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인 데에 대한 반응이다. |
솔로몬의 아가 |
아도니야가 죽게 되니 사건의 당사자인 수넴 여자 아비삭은 자의든 타의든 내쫓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로 인해 수넴 여자 아비삭은 궁전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간다. 특히 왕자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비삭은 이스라엘에서 뽑힌 아름다운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솔로몬의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솔로몬은 자신의 포도밭(아가 8,11)이 있는 곳이기도 한 그곳에 가서 그녀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왕비가 예순 명 후궁이 여든 명 궁녀는 수없이 많다"(아가6,8)고 하듯이 궁정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아비삭은 솔로몬을 따라 궁전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비삭의 반응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쥐고 있는 솔로몬에게는 매우 뜻밖이다. 천 여명의 여인들과 함께 살았던 솔로몬, 세월이 흘러 자신의 어리석음이 생각난다. 수넴 여자 아비삭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그로 하여금 아가를 쓰게 한다. |
솔로몬의 아가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서정시적으로 표현했다는 학설도 있지만, "둘만의 만남을 향하여"로 귀결되는 아가(아가 8,13-14)는 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성가정을 이루는 거룩한 가정의 기본을 제시하는 거룩한 이야기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
4. 사제 에브야타르가 쫓겨나다.
아도니야가 죽으니
다음으로는 아도니야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차례가 되었다.
솔로몬
26임금은 에브야타르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톳에 있는 그대의 땅으로 가시오. 그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지만, 그대가 나의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하느님의 궤를 날랐고, 또 아버지와 온갖 고난을 함께 나누었으므로 오늘 그대를 죽이지 않겠소.” 27그런 다음 솔로몬은 에브야타르를 주님의 사제직에서 내쫓았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실로에 있는 엘리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1열왕 2,26-27)
주님께서 실로에 있는 엘리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 |
31이제 그때가 온다. 내가 너[엘리]의 기운과 네 조상 집안의 기운을 꺾으리니, 네 집안에는 오래 사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1사무 2,31) 3거기에는 실로에서 주님의 사제로 있던 엘리의 증손이고 피느하스의 손자이며, 이카봇의 조카이고 아히툽의 아들인 아히야가 에폿을 걸치고 함께 있었다. 그런데 군사들은 요나탄이 자리를 뜬 줄 모르고 있었다.(1사무14,3) 20아히툽의 손자이며 아히멜렉의 아들인 한 사람이 목숨을 건져 다윗에게 달아났다. 그의 이름은 에브야타르였다. 22다윗이 에브야타르에게 말하였다. “.... 당신 아버지 집안이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은 바로 내 탓으로 돌려야 하오.(1사무 22,20.22) |
다윗은 엘리 집안이 사울에 의해 살해된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에브야타르를 받아들였었다. |
5. 요압이 살해되다.
이제 요압의 차례가 되었다.
아도니야가 죽고, 에브야타르가 쫓겨났다는
28이 소식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그는 압살롬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아도니야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천막으로 도망쳐 제단의 뿔을 잡았다.(1열왕 2,28)
34그리하여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요압이 있는 데로 올라가 그를 내려쳐 죽였다. 요압은 광야에 있는 자기 집에 묻혔다.(1열왕 2,32-34)
6. 에브야타르와 요압의 자리에 브나야와 차독을 세우다.
에브야타르와 요압이 처리되자
솔로몬은 그들의 자리, 즉 사제직과 사령관직에 그의 측근을 세운다.
35임금은 요압의 자리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임명하여 군대를 지휘하게 하고, 에브야타르의 자리에는 차독 사제를 임명하였다.(1열왕 2,35)
7.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가 죽다
이어서 솔로몬은 다윗을 모욕했던 시므이를 처리할 방법을 궁리한다.
시므이는 다윗이 요르단을 건너올 때 천 여명에 이르는 지지자를 데리고 왔던 만큼 그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나름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
36그 뒤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너는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아라. 그리고 거기에서 다른 어느 곳으로도 나가면 안 된다. 37나가서 키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을 줄 알아라. 네 피에 대한 책임이 네 머리 위로 돌아갈 것이다.” 41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떠나 갓에 다녀온 일이 솔로몬에게 보고되었다. 46ㄱ그러고 나서 임금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니, 브나야가 나가서 시므이를 내려치자 그가 죽었다.(1열왕 2,36-37.41.46ㄱ)
시므이가 갔던 갓 Gath은 키드론 시내와 반대쪽에 있으니 시므이가 솔로몬과의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므이의 죽음은 다윗과 솔로몬의 지극히 의도적인 결과이다.(RNAB 주석) 시므이 사건 발생 당시 솔로몬의 나이는 20살 정도로 이미 10여년이 지난 사건이다. |
8. 적대자들이 제거되니 왕권이 튼튼해졌다고 솔로몬이 생각한다
이렇게 아도니야의 뒤를 이어
에브야타르, 요압, 그리고 시므이가 차례로 축출되거나 제거된다.
그래서 본문은 서문에 설명한 "산입"의 방법으로
이 상황을 결론지은다.
46ㄴ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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