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토빗기

사라의 곤경(토빗 3,7–17)

좋은생각으로 2023. 8. 21. 08:47

주님, 제 목숨을 거두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저를 모욕하는 저 말이라도 들어 보소서.(토빗 3,15)

 

 

사라의 기도(토빗 3,11–15)는 그녀가 겪은 곤경에 따른 것으로

토빗기에서 두 번째의 기도이다.

 

토빗이 참새 똥에 의해 실명되는 고난을 겪는 동안,

메디아에 사는 사라는 그녀와 혼인한 남자 일곱 명

악마 아스모대오스에 의해 첫날밤에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당한다.

그런 사라에게 어느 날 매맞은 여종이 그녀에게 대든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이미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의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는 왜 때려요

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을 영영 보지 않게 되죠.”(토빗 3,8-9) 

 

이에 사라는 목을 매고 죽으려 하였지만

아버지를 생각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고,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탄원한다.  

 

▶사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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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하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당신께서 하신 모든 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이제 저는 당신께

제 얼굴과 눈을 들어 올립니다.

분부를 내리시어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다시는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게 하소서.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제가 남자에게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함을,

제가 이 유배의 땅에서

제 이름이나 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적이 없음을.

저는 제 아버지에게 하나뿐인 자식입니다.

제 아버지에게는 대를 이을 다른 아이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저를 아내로 맞아들일

가까운 친족도 일가붙이도 없습니다.

저는 이미 남편을 일곱이나 잃었습니다.

제가 더 살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 제 목숨을 거두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저를 모욕하는 저 말이라도 들어 보소서.”(토빗 3,11-15)

 


토빗의 기도와 사라의 기도에

"모욕"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나온다. 

모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 욕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상대방을 까닭 없이 헐뜯는 것이다. 

 

토빗은 재산을 뺏기고 눈이 멀게 됨에 대해,

사라는 남편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 스스로 자책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들의 자책을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오히려 업신여기고 비난하니 

토빗과 사라의 자책은 수치감을 넘어 모멸감에 이르게 된다.   

모욕으로 인해 삶에 대한 명예가 깡그리 무너지니,

그들의 희망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토빗과 사라가 겪은 상황은

현시대의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 형성에서, 

일반인들은 주로 업무적인 일에서 시작된 단순한 관계지만 

신앙인들은 심리적 혹은 영적인 유대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일반인들은 업무적인 사적 관계를 끊어버리면 되지만, 

신앙인들은 사적 관계를 넘어서 마음의 유대 관계는 물론

영적 관계까지 끊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신앙인들은 이 과정에서 매우 큰 내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신앙인들의 내적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게 되어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되어

토빗과 사라가 죽음까지 내놓으려 했던 처지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여 토빗과 사라가 느낀 모욕은

하느님을 믿는 그들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편 가톨릭 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로 상처를 입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한

"반신앙적 앙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것은 신앙인이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자칭 신앙인이라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혹은 신앙인이라면 말할 수 없는 악의적인 한마디에,

여린 마음의 기대가 한순간에 후벼 파여 참담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점점 멀리하게 되고,

심지어는 악의적은 감정인 "반신앙적 앙심"으로 이어져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보편 교회의 공동체를 비방하는

가슴 아픈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현시대의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하신 말씀 가운데

"황금률"(마태 7,12)과

"불행하여라"(마태 23,1-36)라고 하신 말씀에

깊은 울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시니 이 말씀이 곧 황금률(Golden Rule)이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면 이를 황금률이라 하겠는가?

그것은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있든 없든,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비방도 모욕도 하지 않으므로

말로 인한 어떠한 상처도 주고받지 않기 때문이다. 

 

"황금률"이 신앙인 개개인에 대한 말씀이라면

"불행하여라"는 이 시대 공동체에 대해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당시 지식층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여덟 번이나 "불행하여라"라고 하신 이유가 상당히 충격적이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 세 번째인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태 23,15)라는 말씀은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유념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새 신자들이 수많은 노력으로 보편 교회로 인도되지만

기존 신자 공동체의 그릇된 모습을 보고

새 신자들이 본래의 그들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심리상,

떠나간 그들은 보편 교회에 대한 "반신앙적 앙심"을 가지게 되기 쉽다.  

 

바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교회 지도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하여라"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현시대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누구인가?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고(마태 28,19),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함께 계신다고 믿는 사람들이(마태 29,20) 아니겠는가?

 

"반신앙적 앙심"에 따른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에 하느님 말씀을 가득 채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을 더럽히거나(마태 15,11) 

이웃이 상처를 입고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이 되어 떠나지(마태 3,15) 않게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인들이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못한다면,

사람에게서 나갔던 더러운 영이 자기가 나온 집의 빈자리를 생각하고서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마태 12,45)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되지 않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다시 토빗기로 돌아와 사라의 행적을 살펴본다. 

아스모대오스라는 악마가 죽인 남자 수는 일곱 명이다.  

사라와 혼인했던 남자들이 첫날밤에 악마에 의해 죽었지만,

사라는 그들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임을 알고  

죽은 남자 일곱 명의 선한 영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을 것이다. 

 

만약 사라가 일곱 명의 죽음을

부모를 탓하고 이웃을 탓하고 심지어는 하늘을 탓했다면

그녀의 마음도 악마인 아스모대오스처럼 되었을 것인데,

그녀가 어찌 하느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사라의 "이 유배의 땅에서 제 이름이나

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적이 없다"(토빗 3,15ㄱ)라는 기도가

하느님 앞에 다다랐음은(토빗 3,16)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비록 그녀가 여종의 입에서 나온 말로 모욕을 당하여 죽음을 생각했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면서 

하느님께 얼굴과 눈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입으로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사라는 물론 토빗에게

천사 라파엘을 보내신 것이다(토빗 3,16-17). 

 

그렇다!

신앙인들은 하느님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야"(1베드 3,10) 할 것이다. 

또한 남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는 배려심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토빗과 사라는 유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았다(토빗 1,10; 6,16). 

그러니까 구약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토빗과 사라가 모욕을 받았지만

그들은 현명하게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였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말하는 신앙 공동체는 무엇인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즉 토빗과 사라가 겪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대답을 들어본다.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3,8-9)

 

베드로는 시편 34,13-17을 인용하여 계속 이어 간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신다.'"(1베드 3,10-12)

 

사도 베드로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라"는 말은

"혀와 입술을 조심하여" 아예 모욕을 하지 말고

항상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배려는 서로를 신뢰하게 하고, 신뢰는 서로를 사랑하게 할 것이다.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코린 13,13)

 

 

메디아의 액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가 하느님께 기도한다.


토빗기

 

II. 사라의 곤경(토빗 3,7–17)

 

불운한 사라(3,7-10)

바로 그날,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도

자기 아버지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토빗 3,7)

▷[3,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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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3인칭으로 진행된다. 7절은 토빗기 사가가 하느님의 섭리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몇 가지 놀라운 우연의 일치 중 하나에 관한 것이다. 또한 토빗 3,1617; 4,1; 5,4 참조.
엑바타나 Ecbatana: 현대 이란의 하마단 Hamadan으로 이곳은 고대 메디아의 수도였다.
라구엘 Raguel: 히브리어 이름인 르우엘 Re'u'el "하느님의 친구의 그리스어 형태,(인용 RNAB 주석)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신부와 관련된 관습에 따라 신랑이 사라와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아스모대오스 Asmodeus는 악귀가 그 남편들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 여종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이미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의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토빗 3,8)

▷[3,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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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스모대오스 Asmodeus: 페르시아어로 분노의 악마"를 뜻하는 "아에스마 데바 aeshma daeva "파괴자"라는 의미로 아람어에 채택되었다. 이 악마는 라파엘(17)에 의해 정복될 것인데(8,3), 라파엘이나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치셨다를 의미한다.(인용 RNAB 주석)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는 왜 때려요?

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을 영영 보지 않게 되죠.”(토빗 3,9)

 

그날 사라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여 울면서,

자기 아버지 집의 위층 방으로 올라가 목을 매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고서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밖에 없었는데

그 애가 불행을 못 이겨 목을 매고 말았구려.’ 하면서,

내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만일 그렇게 되면 늙으신 아버지께서 나 때문에 슬퍼하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시게 되겠지.

목을 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토빗 3,10) [3:10] 토빗 6,15; 창세 37,35; 42,38; 44,29.31. 

 

사라의 기도(3,11-15)

그러면서 사라는 창 쪽으로 양팔을 벌리고 기도하였다.

자비하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당신께서 하신 모든 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토빗 3,11) [3:11] 1열왕 8,44.48; 시편 28,2; 134,2; 다니 6,11.

▷[3,1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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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창 쪽으로: , 기도하면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교 다니 6,11.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는 전통적인 유대인 기도의 시작 부분이다(토빗 8,5.15; 11,14; 13,1).(인용 RNAB 주석)

 

이제 저는 당신께

제 얼굴과 눈을 들어 올립니다.(토빗 3,12)

분부를 내리시어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다시는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게 하소서.(토빗 3,13)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제가 남자에게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함을,(토빗 3,14)

제가 이 유배의 땅에서

제 이름이나 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적이 없음을.

저는 제 아버지에게 하나뿐인 자식입니다.

제 아버지에게는 대를 이을 다른 아이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저를 아내로 맞아들일

가까운 친족도 일가붙이도 없습니다.

저는 이미 남편을 일곱이나 잃었습니다.

제가 더 살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 제 목숨을 거두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저를 모욕하는 저 말이라도 들어 보소서.”(토빗 3,15)

 

기도의 응답(3,16-17)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토빗 3,16)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곧 토빗에게는 그의 눈에서 하얀 막을 벗겨 그 눈으로 하느님의 빛을 보게 해 주는 것이고,

라구엘의 딸 사라에게는 토빗의 아들 토비야의 아내가 되게 해 주고

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를 내쫓아 주는 것이었다.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하는 그 누구보다도 토비야가 사라를 차지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에 토빗이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고,

라구엘의 딸 사라도 위층 방에서 내려갔다.(토빗 3,17)

▷[3,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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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차지할 자격을 갖추고: 가족 내에서 조상 혼인 관습에 따름. 토비야는 사라의 가장 가까운 적격 친척이었다(6,12). 비교 토빗 4,12–13; 창세 24,4; 28,2;  3,9–12; 4,1-12.(인용 RNAB 주석)


▶인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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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0] 토빗 6,15; 창세 37,35; 42,38; 44,29.31.

15마귀가 그 여자는 해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려는 남자만 죽이는 것이오.

그러니 아버지께는 자식이 나밖에 없는데 내가 죽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 때문에 괴로워하며 무덤으로 내려가시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소.

게다가 그분들을 묻어 드릴 다른 아들도 없소.”(토빗 6,15)

 

34야곱은 옷을 찢고 허리에 자루옷을 두른 뒤,

자기 아들의 죽음을 오랫동안 슬퍼하였다.

35그의 아들딸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위로하였지만,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슬퍼하며 저승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가련다.”

이렇게 요셉의 아버지는 그를 생각하며 울었다.(창세 37,35)

 

38그러나 야곱은 말하였다.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갈 수 없다.

그의 형은 죽고 그 아이만 홀로 남았는데,

그 아이가 너희와 함께 가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슬퍼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창세 42,38)

 

29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31그 아이가 없는 것을 보게 되면,

아버지는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종들은 결국,

나리의 종인 백발이 성성한 저희 아버지를,

애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창세 44,29.31)

 

 

[3:11] 1열왕 8,22.44.48; 시편 28,2; 134,2; 다니 6,11.

22그러고 나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44당신 백성이 적과 싸우러 나갈 때,

당신께서 그들을 어느 길로 보내시든지,

그들이 당신께서 선택하신 도성과 제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이 집을 향하여 주님께 기도하면,

48그들이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원수들의 땅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회개하고,

당신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제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1열왕 8,22.44.48)

 

2당신께 도움을 청할 때 당신의 지성소 향해 제 두 손 들어 올릴 때 간청하는 저의 소리를 들으소서.(시편 28,2)

2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주님을 찬미하여라.(시편 134,2)

 

11다니엘은 임금이 그 문서에 서명하였다는 것을 알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의 집 옥상 방 창문은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늘 그러하였듯이,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자기의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다.(다니 6,11)

 

[3:17] 토빗 4,12–13; 6,12–13; 창세 24,3–4.
12얘야, 어떠한 간음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무엇보다 먼저 네 조상의 후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고,

네 아버지 부족 밖의 낯선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우리는 예언자들의 자손이다.

얘야, 우리의 옛 조상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생각해 보아라.

그분들은 모두 자기 친족 가운데에서 부인을 맞아들여,

자녀들로 복을 받으셨다.

이제 그 후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13그러니 이제 얘야, 네 동포들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동포들에 대하여,

네 겨레의 아들딸들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교만한 생각을 품고서는,

그들 가운데에서 네 아내를 맞아들이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교만은 파멸과 큰 혼란을 가져온다.

또 나태는 손실과 큰 곤궁을 가져온다.

나태는 굶주림의 어머니다.(토빗 4,12-13)


12이 사라 말고는 그에게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그대는 사라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니 만큼 다른 모든 사람에 앞서 그 여자를 차지할 자격이 있고,

그 아버지의 재산도 물려받을 권리가 있소.

그 처녀는 현명하고 용감하며 대단히 아름답소.

그 아버지도 훌륭한 분이오.”

13라파엘이 계속 말하였다.

“그대는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권리가 있소.

그러니 형제여, 내 말을 들으시오.

사라를 그대의 신부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오늘 밤에 그 처녀의 일을 그 아버지와 상의하겠소.

우리가 라게스에서 돌아오는 대로 혼인식을 올립시다.

라구엘이 사라를 그대에게 주기를 마다하거나

결코 다른 남자와 약혼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소.

만일 그러했다가는 모세의 책에 있는 법령에 따라 사형을 당할 것이오.

사실 라구엘도 그대가 다른 모든 사람에 앞서

자기 딸을 아내로 맞아들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니 이제 형제여, 내 말을 들으시오.

오늘 밤에 그 처녀의 일을 상의하여 그대와 그 처녀의 약혼식을 올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라게스에서 돌아오면,

그 여자를 그대의 집으로 데려갑시다.”(토빗 6,12-13)


3나는 네가 하늘의 하느님이시며 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가나안족의 딸들 가운데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지 않고,

4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사악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여라.”(창세 24,3-4)


 

 

토빗, 니네베를 두고 선포한 하느님 말씀을 나는 믿는다.

토빗기는 토빗이라는 주요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역사서로서 유다인의 경건함과 도덕성을 민간전승의 매혹적인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기술하고 있다. 토빗기는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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