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서 히타이트 Hittite란 용어는
여러 집단에 적용되는데,
소아시아와 시리아 북부의
BC 2천년기의 히타이트 제국(Hittite Empire),
BC 1천년기 전반부의 시리아 북부의
신히타이트 왕국(Neo Hittite, 또는시로-히타이트 Syro-Hittite),
그리고 아시리아 용어로써
시리아와 팔레스티아에 거주하는 히타이트 사람 등이 있다.(창세 23,3 관련 RNAB 주석)
히타이트 사람들이 시리아와 가나안 땅인 필리스티아에 거주한 것은
그곳이 그들의 고향에 가까운 지역이며
히타이트 제국의 확장으로 인해 그들의 영토로도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주석 해설처럼
히타이트 사람들은 현재의 튀르키에 지방에
히타이트 제국(BC 1650-1180년경)을 이루고 살았던 민족이다.
히타이트 제국은 피리기아와 중아시리아에 밀려(참조☞ 히타-4 지도)
다수의 지역으로 분열되어
연합체 성격의 나라를 형성하는데
이를 신히타이트(네오-히타이트, 시로-히타이트)라 한다.
이들 신히타이트는 언어적 특성으로
루비-아람 Luwian-Aramean 국가라고도 하는데,
북북 지역 국가들은 루비어 Luwian(Luvian)를
남부 지역 국가들은 아람어 Aramean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히타이트는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당시 국제 정세의 지표적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및 왕조 변화와 관련된
히타이트의 숨은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여 히타이트는 아시리아나 이집트처럼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 하나의 제국으로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보이지 않는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성경사적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히타이트는 아래 연대표처럼
히타이트 제국 BC 1650-1180과
신히타이트(BC 12세기부터
BC 7세기에 신아시리아에 정복될 때까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히타이트 사람들의 성경에서의 역할
히타이트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Amorites,
히타이트족 Hittites ,
프리즈족 Perizzites,
가나안족 Canaanites,
히위족 Hivites,
여부스족 Jebusites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탈출 23,23)라고 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성경에서의 히타이트 사람들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 본문에 드러나고 있는 히타이트 사람들에 대해
성경사에 기록된 상황별로 구분하여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된 해설은 필자의 의견임을 밝혀 둔다.
1) 히타이트 제국 이전 시대
① 히타이트 사람들이 가나안에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BC 2029년경)
▶관련 본문
10그때 에프론은 히타이트 사람들 사이 sitting with the Hittites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은
성문에 나와 있는 히타이트 사람들이 모두 듣는 데에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였다.(창세 23,10)
10Now Ephron was sitting with the Hittites. So Ephron the Hittite replied to Abraham in the hearing of the Hittites, all who entered the gate of his city:(창세 23,10)
▶해설
헤브론 성문에 나와 있는 히타이트 사람들 모두라는 표현에서
히타이트인들이 공동체를 이룰 정도로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에사우(에돔)의 자손들에 히타이트의 피가 흐르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에사우의 혼인(BC 1950년경)
▶관련 본문
34에사우는 마흔 살 되던 해에
히타이트 사람 브에리의 딸 daughter of Beeri the Hittite 여후딧과
히타이트 사람 엘론의 딸 daughter of Elon the Hivite 바스맛을
아내로 맞아들였다.(창세 26,34)
34When Esau was forty years old, he married Judith, daughter of Beeri the Hittite, and Basemath, daughter of Elon the Hivite.(창세 26,34)
▶해설
이사악의 아들 에사우에게 딸들을 내어줄 정도로
당시 히타이트 공동체는 이사악의 집안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③ 히타이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아브라함의 사망(BC 1991년경)
▶관련 본문
2 사라는 가나안 땅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울었다 (창세 23,2)
3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 the Hittites에게 가서 말하였다.(창세 23,3)
9그[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펠라 동굴에 안장하였다.
이 굴은 마므레 맞은쪽,
히타이트 사람 초하르의 아들 son of Zohar the Hittite
에프론의 밭에 있었다.(창세 25,9)
2 She died in Kiriath-arba—now Hebron—in the land of Canaan, and Abraham proceeded to mourn and weep for her.
3 Then he left the side of his deceased wife and addressed the Hittites: 9His sons Isaac and Ishmael buried him in the cave of Machpelah, in the field of Ephron, son of Zohar the Hittite, which faces Mamre,(창세 25,2.3.9)
▶해설
히타이트 사람들이 아브라함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땅을 내어 줄 정도로 그들 간에 사이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히타이트 사람들이 그들에게는 이방인인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히타이트 인들의 선한 심성을 알 수 있다.
2) 히타이트 제국 이후 시대
① 히타이트 사람들이 히타이트 제국(BC 1650-1180년경)을 세우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대 (BC 1406-1399년경)
▶관련 본문
4"광야에서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리고 히타이트 사람들의 온 땅 All the land of the Hittites과
해 지는 쪽 큰 바다까지
모두 너희 영토가 될 것이다."(여호 1,4)
4 All the land of the Hittites, from the wilderness and the Lebanon east to the great river Euphrates and west to the Great Sea, will be your territory.(여호 1,4)
▶해설
히타이트 사람들이
히타이트 제국(BC 1650-1180년경)을 세울 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탈출하여(BC 1446년경)
가나안을 정복한다(BC 1406-1399년경).
▶"히타이트 사람들의 온 땅"(여호 1,4)
4광야에서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리고 히타이트 사람들의 온 땅 All the land of the Hittites과
해 지는 쪽 큰 바다까지
모두 너희 영토가 될 것이다.(여호 1,4)
4 All the land of the Hittites, from the wilderness and the Lebanon east to the great river Euphrates and west to the Great Sea, will be your territory. (여호 1,4)
☞ 영문 본문 직역: 히타이트 사람들의 온 땅, 곧 광야와 동쪽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그리고 서쪽으로 대해까지가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가능한 해석>
이 문장을 살펴 보면
"히타이트인들의 모든 땅 All the land of the Hittites "이라는 전제 조건이 나온다.
이 본문을 통해
당시 가나안 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던 이민족은 히타이트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히타이트 제국의
최대 영토 확장기는 BC 1350-1295년경으로
당시 히타이트가 가나안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음을
고고학적 지도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다.(☞ 히타 2 지도 참조)
☞ 너희 영토가 될 것이다:
남쪽으로는 시나이 광야,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맥,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으로는 큰바다, 지중해이다.
이러한 경계는 실제적인 경계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경계이다. (참조 ☞ 히타-2 지도)
② 신히타이트 국가(BC 12세기 - 7세기경)가 등장하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솔로몬 시대(BC 970-931년경)
▶관련 본문
29"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켈,
말은 한 마리에 은 백오십 세켈을 주고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가,
왕실 무역상들을 통하여
히타이트의 모든 임금과
아람 임금들에게 all the Hittite and Aramean kings
되팔았다."(1열왕 10,29)
16"솔로몬의 말들은
이집트와 크웨 [☞ 영문은 킬리키아 Cilicia로 표기]에서 들여왔는데,
임금의 무역상들이 크웨에서 시세대로 사들였다."(2역대 1,16)
17"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켈,
말은 한 마리에 은 백오십 세켈을 주고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가,
임금의 무역상들을 통하여
히타이트의 모든 임금과
아람 임금들 all the Hittiteand Aramean kingskings에게 되팔았다."(2역대 1,16-17)
6"주님께서 아람군 진영에
병거 소리와
군마 소리와
대군이 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람군은 서로
“이스라엘 임금이
히타이트의 임금들 the kings of the Hittites과
이집트 임금들을 고용하여
우리에게 쳐들어오는구나!” 하며,"(2열왕 7,6)
29A chariot imported from Egypt cost six hundred shekels of silver, a horse one hundred and fifty shekels; they were exported at these rates to all the Hittite and Aramean kings.(1열왕 10,29)
16 Solomon’s horses were imported from Egypt and Cilicia, where the king’s agents purchased them at the prevailing price. 17 A chariot imported from Egypt cost six hundred shekels of silver, a horse one hundred and fifty shekels; so they were exported to all the Hittite and Aramean kings.(2역대 16,16-17)
6The Lord had caused the army of the Arameans to hear the sound of chariots and horses, the sound of a large army, and they had reasoned among themselves, “The king of Israel has hired the kings of the Hittites and the kings of Egypt to fight us.”(2열왕 7,6)
▶해설
히타이트 제국이 쇠락하고
여러 소규모의 국가로 이루어진 신히타이트가 들어선다.
신히타이트 시기는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BC 12세기부터
BC 7세기에 신아시리아에 점령될 때까지이다.
따라서 BC 970-931년경에 살았던
솔로몬의 무역(1열왕 10,29; 2역대 1,16-17) 및
BC 842년경의 엘리사 시대에 일어난
아람군의 소란(2열왕 7,6)과 관련된 본문에서의
히타이트의 임금들이라는 표기는
당시 지역 국가들의 임금들의 연합체이므로
신히타이트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집트와 크웨(킬리키아)
[역대 1:16-17] 이집트와 크웨 [☞ 킬리키아 Cilicia 참조 ☞ 히타-4 지도]:
말은 킬리키아에서 왔고
병거는 이집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③ 히타이트인이 이스라엘의 전사로 활약하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다윗의 재위 기간(BC 1010-970년경)
▶관련 본문
6""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아히멜렉 Ahimelech the Hittite과,
요압의 동기며 츠루야의 아들인 아비사이에게,
“누가 나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내려가겠느냐?” 하고 물었다.
“제가 장군님을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아비사이가 대답하였다.""(1사무 26,6)
24"삼십 인 부대원은
요압의 아우 아사엘,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
39"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Uriah the Hittite,
이렇게 모두 서른일곱 명이었다."(2사무 23, 34.39)
6David asked Ahimelech the Hittite, and Abishai, son of Zeruiah and brother of Joab, “Who will go down into the camp with me to Saul?” Abishai replied, “I will.”(1사무 26,6)
24 Asahel, brother of Joab, was among the Thirty; Elhanan, son of Dodo, from Bethlehem; 39 Uriah the Hittite—thirty-seven in all.(2사무 23,34.39)
▶해설
아모리족처럼 제거 대상인 히타이트 사람들을
군인으로 받아들여 곁에 둔다는 것은
아모리족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히타이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 시대에 보여준 호의 등으로
히타이트 인들에 대한 신뢰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국의 사람들이었다는
민족적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④ 하느님께서 히타이트 사람을 통해 묵시적 계시를 드러내시다
▶관련 고고학적 성경 연대: 다윗의 재위(BC 1010-970년경)
▶관련 본문
3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Uriah the Hittite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2사무 11,3)
10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Uriah the Hittite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2사무 12,10)
3David sent people to inquire about the woman and was told, “She is Bathsheba, daughter of Eliam, and wife of Uriah the Hittite, Joab’s armor-bearer.”(2사무 11,3)
10Now, therefore, the sword shall never depart from your house, because you have despised me and have taken the wife of Uriah the Hittite to be your wife.(2사무 12,10)
▶해설
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사건 말고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하였다(1열왕 15,5).
하느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원하시지 않은 왕조의 종말을
당신의 백성이 아닌
히타이트 제국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야를 통해 보여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표징을 통해
임금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왕조의 문제점(1사무 8,9-19)과
민족들로의 새 계약의 확장 계획(창세 17,4)을
보여주신다.
2. 히타이트 제국이 이스라엘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
히타이트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드러나지 않게 이스라엘 역사에
표징적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사의 실체적인 역사성을 살펴보고자
시대별 지도를 제시하여 읽고자 한다.
관련하여 게시된 지도는
위키피디아에 게재된
최근의 각종 지도 자료의 역사성을 인용하여
필자가 직접 작성한 지도임을 밝힌다.
1)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시대(BC 1446년경)

히타이트 제국괴 미타니 왕국이 등장하고
메소포타이마에서 카시트 왕조가 일어서면서,
아모리족이 세운 나라들이 점령됨으로써
아모리족의 영향이 쇠퇴하게 된다.
이 시기에 고아시리아가 아수르에서
도시 국가 형태의 변방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집트는 18 왕조가 남쪽으로부터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2)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대(BC 1406-1399년경)

히타이트 제국이 크게 성장하면서
미타니의 세력이 약화되어 가는 시대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에 필요한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카시트 왕국은
현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남쪽에서는 이집트 18왕조가 부동의 세력을 유자하고
3) 이스라엘의 판관 시대 (BC 1350-1100년경)

여호수아가 BC 1356년경에 죽고
판관 시대로 진입할 무렵으로
중아시리아 제국이 일어선다.
중아시리아가
북쪽으로는 미타니 왕국을
남쪽으로는 카시트 왕국을 압박하니
북쪽에는 히타이트 제국이 세력을 팽창하고
카시트 왕국의 빈자리로는 이산 왕조가 들어선다
이집트는 18왕조에서 19 및 20왕조로
통치력이 넘어가고 있다.
큰 세력이 없는 시대이므로
소규모 이민족들의 침략이 기승을 부리니
판관기에 등장하는
아람 나하라임(BC 1350-1342; 판관 3,8)
모압(BC 1302-1284; 3,14)
필리스티아(3,31)
가나안족(BC 1204-1184; 4,3)
미디안 족 및 아말렉족(BC 1191-1184; 4,3)
암몬족(BC 1118-1100; 10,8)
필리스티아(BC 1118-1078; 13,1) 등이 침략과 약탈을 행한다.
이러한 다수의 이민족 침략은
이스라엘이 임금을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
4) 이스라엘의 왕조 시대(BC 1050-930년경)

아나톨리아 지역에 피리기아 왕국이 등장하면서
히타이트 제국이 분열되어
신히타이트가 등장한다.
신히타이트는
여러 개의 지역 분할 정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불안정한 체제이다.
신히타이트의 북쪽에는
루비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남쪽에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연합 전선을 꽤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이로 인해
각자도생의 방법만이
그들의 생존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한편 중아시리아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카시트 왕국이 사라지고 빈자리에 이산 왕조가 들어선다.
이스라엘은
히타이트 제국이 분열되어
조그마한 국가 형태로 형성된 신히타이트를 보고,
자신들도 임금이 다스리는 왕국을 원했던 것 같다.
결국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왕조가 들어선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인 사울의 전쟁사가 성경에 나오지만
그의 전쟁은 주변 국가들과의 소소한 전투였다.
사울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다윗이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여 통일을 이루는데
이 역시 히타이트 제국이
신 히타이트로 가는 과정에서의
권력의 이동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북쪽의 초바를 공격하여 점령하자
신히타이트 최남부인 하맛 임금 토이가
다윗에게 선물을 보낸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9" 하맛 Hamat 임금 토이 Toi 는 다윗이
[초바 Zobah 임금] 하닷에제르 Hadadezer의 군대를 모두 쳐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
10 "자기 아들 요람 Hadoram을 다윗 임금에게 보내어 문안하고,
다윗이 하닷에제르와 싸워 그를 쳐부순 것을 축하하였다.
토이는 하닷에제르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은 기물과 금 기물과 청동 기물들을 보내왔다."(2사무 8,9-10)라고 설명한다.
▶하맛 임금 토이에 대한 고고학적 의견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Palistin>
성경학 교수 게르손 갈릴 Gershon Galil 에 따르면,
"다윗 제국은 현실적인 역사적 현상이며,
그 형성과 통합에 대한 성경적 묘사는 가능하고 타당하다...
최근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8개의 비문은
시리아 북서부와 터키 남부에
팔리스틴 Palistin 이라는 큰 왕국이 존재했음을 분명히 나타낸다.
▶팔리스틴 Palistin은
파티나 Pattina(BC 870년 이전 - BC 738년: Pattin, Patina, Unqu, Ungi라고도 불림)로 이어진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Pattin
<파티나: 참조 ☞ 히타-4 지도>
이것은 여러 학자들이 최근 제안한
고대 팔리스틴 왕국 ancient kingdom of Palistin을 언급하는 것으로,
하맛 Hamath,
알레포 Aleppo,
카르케미시 Carchemish를 포함하는 도시를 포함한다."라고
갈릴 교수는 말한다.
"이 왕국에는
바다 민족 Sea Peoples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이 거주했다.
그들은 기원전 12세기에 레반트 Levant를 침략하여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고 왕국을 파괴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길릴은 "이러한 비문 중 일부는
'나는 영웅 타이(타)이며 팔리스틴의 왕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라고 언급한다.
우리의 언어학적, 역사적 지식을 감안할 때
타이(타) Tai(ta)는 사무엘서와 역대기에 언급된
토이 Toi와 동일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팔리스틴 Palistin은 후기 청동기 시대 붕괴 후 시리아에서 출현한
시로-히타이트 국가 Syro-Hittite state 중 하나였다.
그것은 적어도 기원전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주로 임금 타이타 Taita와 그의 아내의 비문을 통해 알려져 있다.
히타이트 제국에서
신히타이트로 되는 과정에서 약화된 제국에 대한 정체성은
히타이트 사람들의 이스라엘로의 이주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히타이트 사람 아히멜렉(1사무 26,6)과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2사무 11,9)가
다윗을 위해 싸우게 된 배경일 수 있다.
이러한 정황을 보아서라도 다윗의 영토 확장은
시대적인 전환기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5)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시대(BC 930-723/2년경)

다윗의 온 이스라엘은 솔로몬을 거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분열된다.
다윗이 세운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잘못으로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데
히타이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히타이트 제국이 분열되어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합체로 구성된 신히타이트는
왼쪽에서 새로 등장한 피리기아 왕국,
오른쪽에서 신아시리아의 세력에 의해 약화되면서
그 빈틈으로 신아시리아가 세력을 뻗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BC 853년경에 카르카르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전투는 신아시리아의 살만에세르 3세 [재위 BC 859–824]와
열한 명의 반대편 임금들 간의 전쟁이다.
어찌 보면 제국과 여러 지역 국가 연합체와의 전투로서
전투의 승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람 다마스쿠스, 하맛, 이스라엘, 암몬 등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한다
▶카르카르 (Qarqar, Karkar) 전투와 관련된 열한 명의 임금과 전투 결과.
아람 다마스쿠스 Aram-Damascus의 하닷에제르 임금[재위 BC 865-842]
하맛 Hamath의 이르훌레니 임금[ 재위 BC 850–840년경]
이스라엘의 아합 임금[재위 BC 874 – 853년경]
쿠웨-킬리키아 Quwê-Cilicia로 확인된 쿠르 구아아 KUR Gu-a-a 왕국의 임금
뒤덴 Düden 강의 하류인 마수라 Masura로 확인된 쿠르 무우스라 KUR Mu-us-ra 지역의 임금
이르카나타 Irqanata (텔 아르카 Tell Arqa ) 지역의 임금
아르와드 Arwad의 마티누 바알 Matinu Baal 임금
우산나타 Usannata 지역(레바논 산 지역)의 임금
우산나투 Ušnatu(시리아 해안 산맥)의 아두누 바알 Adunu Baal 임금
아라비아 Arabia의 긴디부 Gindibu 임금
암몬 Ammon 지역의 루후비 Ruhubi의 아들인 바아사 Ba'asa 임금
이 시기의 신아시리아 임금의 비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은 패배를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때로는 실제로 조상이나 전임자가 이긴 승리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살만에세르가 카르카르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즉시 시리아에서 아시리아의 추가 정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그는 그 후 10년 동안 그 지역에서 여러 번 더 원정을 벌여
하맛의 이르훌레니가 적어도 두 번 지원한
하닷에제르와 여섯 번이나 맞붙었다.
살만에세르의 반대자들은 이 전투 이후에도 왕좌를 지켰다.
이스라엘의 아합은 카르카르와 관련 없는 전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지만
하닷에제르는 적어도 기원전 841년까지 다마스쿠스의 임금이었다.
6) 이스라엘의 멸망(BC 587년경 이후)

중아시리아 시대까지 버텼던 신히타이트가
새로 등장한 신아시리아에 의해 점령된다.
이렇게 히타이트 국가가 사라지면서
중아시리아 제국 시절에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신아시리아와 신바빌론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되었다.
과연
"이스라엘 집안의 왕조를
없애 버리리라."(호세 1,4)라는 말씀대로
북 왕국 이스라엘이
신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먼저 멸망한다.
그리고 므나쎄가 돋운 주님의 분노로,
하느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처럼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겠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남 왕국 유다가 뒤를 이어 멸망한다.
남과 북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종말은,
하느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잊고서
내분을 일으켜 멸망하는 교만하고 아둔한 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가르치는 실증적 사례이다.
말씀을 드러내지 않고,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과정만을 살펴보아도,
노아의 자손인 히타이트(창세 10,1.15)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때부터
이민족들의 침략에서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해 준
보호자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필로그
히타이트는
아브라함과의 도의적 관계로,
이집트는
재상인 요셉과의 인척 관계로,
이 두 민족은
이스라엘의 위아래에서 버티면서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을 막아준다..
그런데 북쪽의 방패인
히타이트가 사라지니,
신아시리아와 신바빌론 제국이 연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유린한다.
마침내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이
지리 및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다.
오직 성경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되풀이하면서
애가(애가1,1 - 5,22)를 애절하게 읊고
비통하게 울부짖을 뿐이다.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애가 5,21)
"정녕 저희를 물리쳐 버리셨습니까?
저희 때문에 너무도 화가 나셨습니까?"(애가 5,22)
마침내
정의와 공정이 바탕인 어좌에(시편 97,2) 앉아 계신
하느님께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새 계약(예레 31,31)의 희망을 내려주시니,
이스라엘이
또 다른 미래의 몫을 향하여 내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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