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존하라
걱정이란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는 것으로,
삶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내적 반응이다.
삶의 걱정에 대한 내적 반응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걱정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개개인의 대응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걱정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에 빠지거나,
이와는 반대로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여 삶의 질을 향상하기도 하니,
걱정은 양날의 칼과 같으므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어떻게 갈까 걱정했을 것이고,
야곱은 파딴 아람으로 도망가기 전에 걱정했을 것이고,
이사악은 아버지의 칼 아래에서 자신의 목숨을 걱정했을 것이고,
요셉은 이집트 노예로 팔려가서,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했을 것이고,
모세는 파라오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까 걱정했을 것이니,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걱정거리가 성경은 물론 실제 인간사에 넘치고 넘쳐난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걱정이라는 단어가 직접 사용된 본문을 대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경 인물들은 무슨 걱정을 하였는가?
야곱은 형 에사우가 장정들을 이끌고 다가오자 몹시 놀라 걱정한다(창세 32,8).
요르단 건너편 지파들이 가나안 정복 후 뒷 날을 걱정한다(여호 22,24).
집회서는 아버지가 딸을 걱정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집회 42,9-10).
토비야 어머니가 길 떠난 아들을 걱정한다(토빗 10,6).
다윗이 도망갈 곳 더 이상 없어 목숨을 걱정한다(시편 142,5).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나라와 백성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사도들이 총독이나 임금들에게 끌려가 무엇을 말할까 걱정한다(마태 10,19).
트로아스 신자들이 바오로의 설교를 듣다 창문에서 떨어진 젊은이에 대해 걱정한다(사도 20,10).
한편 혼인한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의 배우자를 위해 세상일을 걱정한다(1코린 7,33.34ㄴ).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주님의 일을 걱정한다(1코린 7,32).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한다(1코린 7,34ㄱ).
정리하여 보면 걱정이란,
위협에 직면하였을 때, 미래가 불확실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영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등 각양각색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2. 걱정을 해결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걱정에 대해
성경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설명한다.
이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상으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는 비유가 적합할 것이다.
"늘 깨어 걱정하면 졸음까지도 달아나고
병이 중하면 잠도 사라지리라."(집회 31,2)
"재산 때문에 잠을 못 자면 몸이 야위고
재산 때문에 걱정하면 잠을 설친다."(집회 31,1)
걱정거리가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된 자신에게 분노하고
그로인해 뜬 눈으로 날을 새니 어찌 몸이 축나지 않겠는가?
하룻밤 새에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는 신체적 변화도 일어나니
어찌 몸이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집회서는 말한다.
"질투와 분노는 수명을 줄이고 걱정은 노년을 앞당긴다."(집회 30,24)
"그들의 고민과 마음의 두려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
그것은 바로 죽음의 날이다."(집회 40,2)
그렇다면 흙으로 된 모든 인간이 궁극에 마주하는 죽음에 대해,
흙으로 만들어진 부자는 걱정이 없는가?
흙으로 빚어진 가난한 자는 걱정이 없을 수 없는가?
죽음은 삶 속에 똬리를 튼 걱정의 궁극인가?
"아 죽음아, 자기 재산으로 편히 사는 인간에게,
아무 걱정도 없고 만사가 잘 풀리며 아직 음식을 즐길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너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집회 41,1)
이러하니, 걱정 없는 자의 걱정은 바로 죽음인가?
"아 죽음아, 너의 판결이
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 나이를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 많은 인간에게,
반항적이고 참을성을 잃은 자에게 얼마나 좋은가!"(집회 41,2)
그러하니, 걱정 있는 자의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인가?
3. 예수님께서, 걱정이 있어도 죽음 없어도 죽음이라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마태 6,25)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마태 6,27)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루카 12,26)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루카 10,41)
4. 우리는 왜 주님께 모든 걱정을 맡겨 드려야 하는가?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7-8)
"내 말을 듣는 이는 편안히 살고
불행해질 걱정 없이 평온히 지내리라.”(잠언 1,33)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거처에,
안전한 거주지와 걱정 없는 안식처에 살게 되리라."(이사 32,18)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6)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 5,7ㄴ)
"제 속에 수많은 걱정들이 쌓여 갈 제
당신의 위로가 제 영혼을 기쁘게 하였습니다."(시편 94,19)라는 말씀처럼
걱정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지혜를 배우고
모든 상황의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성경에 나온 인물들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필요없는 걱정을 하지 않고,
걱정을 유발하는 문제를 담담히 받아들여 시의적절하게 대처한 것이다.
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걱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다.
당신께서는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유다와 갈릴래아 그리고 페레아를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 선포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셨다는 그 자신감으로
거센 돌풍에 일어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어도(마르 4,37)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실 수 있었다.
이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신 당신의 믿음(마태 26,39)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 4,40)라고, 걱정하는 그들에게 한마디로 일갈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전하신다.
성경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각의 삶의 현장에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그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사람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마태오 복음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마태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마태 6,25)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 6,26) [6:26] 시편 145,15–16; 147,9.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마태 6,27)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마태 6,2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29)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6,30)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마태 6,32)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6:25-33] 루카 12,22-31.
주석
[6,27] 주석: 수명
[6,27] 수명: 그리스어 단어는 “키, 신장(높이)”를 뜻할 수도 있다. 이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취해진다면, 여기에서 모멘트(문자 그대로, “큐빗, 완척”)로 번역된 단어는 그야말로 시간이 아닌 공간 측정 단위로 번역되어야 한다. 큐빗은 약 18인치(45.8㎝ ∵ 1인치=2.54㎝)다.
[6,30] 주석: 믿음이 약한
[6,30] 믿음이 약한: 루카 12, 28에 있는 유사 본문을 제외하고, 믿음이 약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신약에서는 오직 마태오에서만 발견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하는 것처럼 깊지 않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시고 있다.(참고: 마태 8, 26; 14, 31; 16, 8과 마태 17, 20에 있는 같은 어족의 명사).
[6,33] 주석: 의로움
[6,33] 의로움: <참조> 마태 3, 14-15에 관한 주석.
[참조▷ 마태 3, 14-15]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복음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언의 성취를 말하고 의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도덕적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태 5,6; 6,33처럼, 의로움은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동일시하시는 일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15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마태3,15)
6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
인용 본문
[6:26] 시편 145,15–16; 147,9.
15모든 눈이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16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모든 생물을 호의로 배불리십니다.(시편 145,15-16)
9가축에게도, 우짖는 까마귀 새끼들에게도 먹이를 주시는 분.(시편 147,9)
[6:25-33] 루카 12,22-3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루카 12,22)
목숨은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소중하다.(루카 12,23)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골방도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루카 12,24)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루카 12,25)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루카 12,26)
그리고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루카 12,27)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루카 12,28)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루카 12,29 )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루카 12,30)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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