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다니엘서 7장의 네 마리 짐승의 환시는
다니엘서 2장의 순금(바빌론), 은(메디아),
청동(페르시아), 쇠(그리스)로 만들어진 입상으로 표현된
네 왕국에 대한 주제를 이어간다.
다니엘서의 이들 네 짐승에 대한 묵시는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라는 1마카 1,1에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숫염소의 뿔로 계시된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는(다니 8,21)
네 개로 분열되어(다니 8,22),
그 가운데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란한 임금이 일어나리라고 하였다.(다니 8,23),
얼굴이 뻔뻔한 임금은 다니엘서에서
"그의 뒤를 이어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불시에 나서서 모략으로 왕권을 잡을 것이다.(다니 11,21)"라고
천사에 의해 계시된
셀레우코스 왕조의 임금이다.
이 묵시에 대한 이행은
"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3세 대왕 Antiochus Ⅲ the Great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137)년에 [▶BC 175]
임금이 되었다."(1마카 1,10)라는 본문으로 드러난다.
이제 일개 사람에 불과한 사악한 임금인 그가
하느님을 거슬러 벌인 악행과
그로 인해 그에게 내려질 묵시적 결과가
마카베오서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를 다시 들어가기 전에
다니엘이 천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마카베오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 세부 설명에 사용된 관련 본문과 주석은
다른 게시 자료들처럼 미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RNAB)을 인용함을 밝힌다.>
▶마카베오기 상권 1장 본문
I. CRISIS AND RESPONSE(위기와 대응 RNAB)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Conquests and Death of Alexander(NAB)
From Alexander to Antiochus. (알렉산드로스부터 안티오코스까지 RNAB)
1 1키팀 Kittim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 Macedonian으로, 필리포스 Philip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Alexander는 페르시아인들 Persians과 메디아인들 Medes의 임금 다리우스 Darius III codoman [BC 336-331년]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BC 330년, 페르시아 임금으로 즉위].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2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3알렉산드로스는 땅끝까지 진격하여 많은 민족에게서 전리품을 차지하였다. 세상이 그 앞에서 평온해지니 그는 마음이 우쭐하고 오만해졌다. 4그가 막강한 군대를 모아 여러 지방과 민족과 통치자를 굴복시키자, 그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5그 뒤에 알렉산드로스는 앓아 눕게 되자 죽음이 닥친 것을 알고는, 6젊은 시절부터 함께 자란 대장군들을 불러, 죽기 전에 자기 나라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7알렉산드로스는 열두(BC 336323)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 BC 323년]. 8그의 장군들은 저마다 자기 영토를 다스렸다. 9그들은 그가 죽은 뒤에 모두 왕관을 쓰고, 그들의 자손들도 그 뒤를 이어 오랫동안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악으로 가득 채웠다.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풍습을 따르다
Pact between Jews and Gentiles (NAB)
10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Antiochus Ⅲ the Great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BC 175년] .
Lawless Jews. (변절자 유다인들 RNAB)
11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안티오코스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치다
Egyptian Campaign of Antiochus (NAB)
Antiochus in Egypt. (이집트에서의 안티오코스 RNAB)
16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자기 왕국이 튼튼해지자, 이집트 땅까지 지배하여 두 나라의 임금이 되려고 작정하였다. 17그는 강력한 군대와 병거와 코끼리, 그리고 큰 함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18그가 이집트 임금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 Ⅵ Philometor [BC 180-145: 안티오코스의 조카]와 전투를 벌이자,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앞에서 몸을 돌려 달아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어 쓰러졌다. 19안티오코스는 이집트 땅의 요새 성읍들을 점령하고 그 땅에서 전리품을 거두었다.
Robbery of the Temple. (성전 약탈 RNAB)
20백사십삼년에 이집트를 쳐부수고 돌아가면서 [▶BC 169년: 1차 이집트 침략], 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 21그는 거드럭거리며 성소에 들어가 금 제단, 등잔과 그것에 딸린 모든 기물, 22제사상과 잔, 대접과 금향로, 휘장과 관을 내오고, 성전 정면에 씌워져 있던 금장식을 모두 벗겨 냈다. 23또 은과 금, 값진 기물들과 깊숙이 간직되어 있던 보물들을 찾아냈다. 24그는 마구 살육을 저지르고 오만불손한 말을 한 다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BC 168: 2차 이집트 침략 후, 야손이 메넬라우스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25이스라엘 곳곳에는 큰 슬픔이 일어
26지도자들과 원로들은 탄식하고
처녀 총각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져 갔다.
27신랑들은 모두 탄식을 쏟고
신방에 앉아 있는 신부들은 슬픔에 잠겼다.
28땅도 그 주민들 때문에 떨고
야곱의 온 집안은 수치로 뒤덮였다.
안티오코스가 유다인들을 박해하다
Attack and Occupation. (공격 및 점령 RNAB)
29이태 뒤 [BC 167년] 임금이 유다의 성읍들에 조공 징수관Mysian commander [☞미시안 사령관 RNAB]을 파견하니, 그자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30그가 평화로운 말로 주민들을 속이자 그들은 그를 믿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그 도성을 습격하여 큰 타격을 입히고 이스라엘 백성을 많이 죽였다. 31또한 이 도성을 약탈한 다음 불을 지르고 집들과 주위의 성벽을 허물었다. 32그의 군대는 또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고 가축을 빼앗았다. 33그러고 나서 그들은 튼튼한 성벽을 높이 쌓고 견고한 탑을 세워 다윗 성 City of David을 재건하고, 자기들의 성채 citadel로 삼았다. 34그리고 죄 많은 족속과 변절자들을 그 안에 배치시켰다. 이들은 거기에 굳게 자리 잡은 뒤, 35무기와 양식을 저장하고 예루살렘에서 거둔 전리품을 쌓아 두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위협이 되었다.
36그곳은 성소를 위협하는 복병이 되고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는 흉악한 원수가 되었다.
37그들은 성소 둘레에서 무고한 피를 흘려
성소를 더럽혔다.
38그들 때문에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달아나
예루살렘이 이민족들의 거처가 되고
제고장 사람들에게 낯선 곳이 되어 버렸다.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제 땅을 버리고 떠나갔다.
39예루살렘 성소는 광야처럼 황폐해지고
축제일은 슬픔으로 변하였으며
안식일은 조롱거리가 되고
그 명예는 치욕이 되어 버렸다.
40그 수치는 이제 지난날의 영광만큼이나 커지고
그 고고함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안티오코스가 유다교를 박해하다
Prohibitions against Religion (NAB)
Religious Persecution. (종교적 박해 RNAB)
41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44임금은 사신들을 보내어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이러한 칙서를 내렸다. 유다인들이 자기 고장에 낯선 관습을 따르게 할 것.
45성소에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바치지 못하게 하고, 안식일과 축제를 더럽힐 것. 46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47이교 제단과 신전과 우상을 만들고,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 48그들의 아들들을 할례 받지 못하게 하고, 온갖 부정한 것과 속된 것으로 그들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도록 할 것. 49그리하여 율법을 잊고 모든 규정을 바꾸게 할 것. 50임금의 말대로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
51임금은 자기의 온 왕국에 이렇게 모든 칙령을 내리고, 온 백성을 감시할 감독관들 inspectors을 세웠다. 또 유다의 성읍들에는 각 성읍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52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저마다 율법을 저버리고 감독관들에게 동조하여, 이 땅에서 나쁜 짓들을 저질렀다. 53감독관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숨을 곳을 찾아 온갖 피난처로 떠나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54백사십오년 키슬레우 Chislev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the horrible abomination을 세웠다 [▶BC 167년 12월 6일] .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율법서 scrolls of the law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58그들은 이렇게 모든 성읍에서 달마다 눈에 띄는 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하였다. 59매달 스무닷샛날에는 번제 제단 위에 있는 단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다. 60제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부인들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고, 61그 젖먹이들은 그들의 목에 매달았다. 그들의 집안 사람들과 또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이들까지 매달았다.
62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1마카 1장 상황: 그리스력 137년(BC 175) - 145(BC 167년)
I. CRISIS AND RESPONSE(RNAB)
위기와 대응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1,1–10] 다니 8,20–22; 11,3–4.21
Conquests and Death of Alexander(NAB)
From Alexander to Antiochus. (RNAB)
[1,1–10 관련 본문]
[1,1–10] 다니 8,20–22; 11,3–4.21
20 뿔이 두 개 달린 숫양을 네가 보았는데,
그것들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임금들이다.
21 숫염소는 그리스 임금이고,
두 눈 사이에 있던 큰 뿔은 그 첫 임금이다.
22 그 뿔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생긴 네 뿔은 한 왕국에서 생겨날 네 나라인데,
그것들이 그 왕국의 힘은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23 그들의 통치 끝에 죄악이 가득 차면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란한 임금이 일어나리라.
24 그는 힘이 점점 세어질 터인데 제힘으로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끔찍스러운 파괴를 자행하면서도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리라.
또 힘센 이들과 거룩한 백성을 파멸시키리라.
25 그는 재간이 좋아 제 손으로 속임수도 성공을 거두게 하니
마음속으로 오만해져 불시에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리라.
그러나 제후들의 제후에게까지 맞서다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부서지리라.
26 내가 설명한 저녁과 아침의 환상은 진실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으니 너는 이 환시를 봉인해 두어라.”
27 나 다니엘은 기운이 빠져서 여러 날 동안 아팠다.
그런 다음에 일어나 임금의 일을 거들었지만,
그 환상 때문에 당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다니 8,20-22)
3 그러나 용맹한 임금이 일어나 막강한 통치력을 행사하며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4 그렇지만 그가 일어서자마자 그의 나라는 부서져 천하 사방으로 나뉘는데,
그의 자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고, 통치력도 그의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의 나라가 뿌리째 뽑혀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21 “그의 뒤를 이어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불시에 나서서 모략으로 왕권을 잡을 것이다.(다니 11,3-4.21)
1 1키팀 Kittim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 Macedonian으로,
필리포스 Philip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Alexander [☞알렉산더 대왕]는
페르시아인들 Persians과 메디아인들 Medes의 임금
다리우스 Darius [다리우스 3세, BC 336-330]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BC 330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임금에 즉위한 시기].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1,1 주석] 키팀 땅. 다리우스
[1,1] 키팀 땅: 그리스.
이 이름은 원래 키프로스 섬의 수도인 키티 Kiti의 주민들을 지칭했고,
그다음에는 모든 키프로스인 Cypriots (이사 23,1; 예레 2,10)을 지칭했고,
나중에는 그리스인 전체를 지칭했고, 마지막으로는 로마인까지 지칭했다.
다니엘 11,30에 대한 주석 참조.
다리우스: 다리우스 3세, 코도만 Darius III Codoman (BC 336-331년).
2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3알렉산드로스는 땅끝까지 진격하여 많은 민족에게서 전리품을 차지하였다.
세상이 그 앞에서 평온해지니 그는 마음이 우쭐하고 오만해졌다.
4그가 막강한 군대를 모아 여러 지방과 민족과 통치자를 굴복시키자,
그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5그 뒤에 알렉산드로스는 앓아 눕게 되자 죽음이 닥친 것을 알고는,
6젊은 시절부터 함께 자란 대장군들을 불러,
죽기 전에 자기 나라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7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8그의 장군들은 저마다 자기 영토를 다스렸다.
[1,7 주석] 열두 해 ☞ BC 336-323년
[1,7] 열두 해: BC 336-323년. 알렉산더 대왕 제국의 분할은 기원전 305년까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9그들은 그가 죽은 뒤에 모두 왕관 diadems을 쓰고,
그들의 자손들도 그 뒤를 이어 오랫동안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악으로 가득 채웠다.
[1,9 주석] 왕관
[1,9] 왕관: 머리 주위에 두르는 흰색 천으로 장식된 띠로, 왕권을 상징한다.
이집트에 기반을 둔 프톨레마이오스는 BC 198년까지 유다를 지배했지만,
그 이후에는 시리아에 기반을 둔 셀레우코스 왕조로 대체되었다.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풍습을 따르다
Pact between Jews and Gentiles (NAB)
10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Antiochus Ⅲ the Great (안티오코스 대왕 BC 223-187)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 [▶BC 175년]에 임금이 되었다.
[1,10 주석]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 (137)년 ☞ BC 175년
[1,10] 백삼십칠년 [137년]: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BC 175년 9월에 왕위를 장악했다.
이 책에서는 셀레우코스 시대의 시작에 따라 연대를 정하여 제시하지만,
연대 측정은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계산했다.
안티오키아인들은 이 날짜를 BC 312년 10월(시리아력)로 여겼고,
반면 바빌론인과 유다 사제들은 시대의 시작으로(성전력) BC 311년 4월로 받아들였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정치적 사건은 시리아력으로,
종교적 사건은 성전력으로 연대를 정했다.
그에 따라 민간인 새해는 9월이나 10월에,
종교적 새해는 3월이나 4월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사망 연도>
16 안티오코스 임금은 그곳에서 백사십구년에 죽었다.(1마카 6,16)
[1마카 6,16 주석] 백사십구년: 149년은
현대력으로 BC 164년 9월 22일 - 163년 10월 9일이다.
위에서 설명하 듯 새해 시작 달이
현대력과 다르기 때문이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바빌론 왕조 목록에 따르면
안티오코스는 BC 164년 11월이나 12월 초에 사망했는데,
이는 성전 재봉헌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셀레우코스 제국의 시조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는
BC 320-315, 312-305년은 총독으로
BC 305-281년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초대 임금으로 재위했다.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시대별 직함은
아래와 같다(참고 wikipidia 2024.10.1)
페르디카스(BC c. 355-321/320)의 고위 관리(Senior officer under Perdiccas: BC 323–321)
바빌론 총독(Satrap of Babylonia: BC 321–316)
프톨레마이오스의 제독(Admiral under Ptolemy: BC 316–311)
바빌론 총독(Satrap of Babylonia: BC 311–306)
셀레우코스 임금(King of the Seleucid empire: BC 306–281)
이러한 다양한 경력으로 인해
셀레우코스 1세의 재위 연도가 문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Lawless Jews. (RNAB) [1,11–15] 2마카 4,12–17.
변절자 유다인들(RNAB)
[1,11–15 관련 본문]
[1,11–15] 2마카 4,12–17
야손이 오니아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리스 문화를 끌어들이다(2마카 4,7-22)
12 그는 신이 나서 성채 바로 밑에 체육관을 세우고
가장 뛰어난 청년들에게 그리스식 모자를 쓰게 하였다.
13 이렇게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그리스화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
14 그리하여 사제들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에 열성이 없어져,
성전을 경시하고 희생 제물 바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징이 울리기가 바쁘게 그들은
레슬링 경기장으로 달려가 법에 어긋나는 경기에 참여하였다.
15 그들은 이렇게 조상들이 명예롭게 여긴 것을 멸시하고,
그리스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16 바로 그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을 열심히 따르고
모든 면에서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17 사실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대가 그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2마카 4,12-17)
11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 transgressors of the law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14 주석] 경기장
[1,14] 경기장: 그리스의 운동과 지적 생활의 상징이자 중심지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주요 도구였다.
유대인 청소년들은 스포츠에 매료되었고 청소년 클럽에 가입하도록 권장되었다.
그들은 군사 기술과 시민의 의무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교도로 전락했고,
일부는 할례를 외과적으로 교정하려고 했다(신체 운동은 누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5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안티오코스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치다 [1,16–19] 2마카 5,1–10; 다니 11,25–30
Egyptian Campaign of Antiochus (NAB)
Antiochus in Egypt. (RNAB)
[1,16–19 관련 본문]
[1,16–19] 2마카 5,1–10; 다니 11,25–30
기병대의 발현(2마카 5,1-4)
1 그 무렵에 안티오코스 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 가 제이차 이집트 원정을 시도하였다.
2 그런데 금실로 짠 옷을 입고 창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
거의 사십 일 동안 온 도성 상공에서 이리저리 치닫는 일이 일어났다.
3 칼을 빼 든 그 기병대들은 전열을 갖추고 서로 공격과 반격을 되풀이하였는데,
방패들이 휘둘리고 창날들이 숲을 이루며 화살들이 흩날리고,
금장식 마구들이 번쩍이고 온갖 종류의 갑옷이 번뜩였다.
4 이 발현을 본 이들은 그것이 모두 좋은 징조이기를 바랐다.(2마카 5,1-4)
야손Jasson의 최후(2마카 5,5-10)
5 그때에 안티오코스가 죽었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그러자 야손 Jasson [대사제, BC 175-172]은 천 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갑자기 이 도성에 공격을 퍼부었다.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이 쫓겨 가고 마침내 도성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메넬라오스 Menelaus [대사제 BC 172-165]는 성채로 달아났다.
6 야손은 자기 동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포들을 희생시켜 얻는 성공이 가장 큰 불행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승리가 적군을 누르고 얻은 것이지 동족을 누르고 얻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그는 대사제직을 차지하지 못하고,
마침내 모반 때문에 수치를 당한 채 다시 암몬 땅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8 그러고 나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아라비아인들의 통치자 아레타스 [☞ 아래 5,8 주석 참조]에게 감금되었다가,
모든 이에게 쫓겨 이 성읍 저 성읍으로 도망 다녔으며,
법을 배신한 자로 미움을 받고 조국과 동족을 박해한 자로 혐오를 받다가 이집트로 쫓겨났다.
9 수많은 사람을 조국에서 추방하였던 그는
라케대모니아인들에게 건너가서 조상이 같다는 사실에 호소하며
피난처를 구해 보려고 하였으나 이국땅에서 죽고 말았다.
10 많은 사람을 묻어 주지 않고 내던져 버렸던 그가 죽자,
아무도 곡해 주지 않았고 어떠한 장례식도 치러 주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조상의 무덤에 함께 묻히지 못하였다.(2마카 5,5-10)
[2마카 5,8] 아레타스 Aretas: 나바테아의 임금 아레타스 1세(<비교> 1마카 5,25)
24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동생 요나탄은 요르단을 건넌 다음,
광야에서 사흘 길을 진군하였다.
25 그곳에서 그들은 나바태아인들 Nabateans 을 만났는데,
그들은 유다의 군대를 평화롭게 맞이하면서
길앗의 유다 동포들에게 일어난 일을 낱낱이 일러 주었다.(1마카 5,25)
시리아의 사악한 임금에 관하여 설명하다 (다니 11,25–30)
21 “그의 뒤를 이어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불시에 나서서 모략으로 왕권을 잡을 것이다. (다니 11,21)
25 그는 힘과 용기를 내어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 임금을 치려고 할 터인데,
남쪽 임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면서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쪽 임금을 칠 계략을 꾸밀 것이기 때문이다.
26 그와 함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파멸시키고,
그의 군대는 휩쓸려 가며 많은 사람이 살해되어 쓰러질 것이다.
27 그 두 임금이 마음속으로는 악을 품고서도 한 식탁에 마주 앉아 거짓말을 주고받겠지만,
아무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정해진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8 북쪽 임금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다가,
거룩한 계약을 해칠 마음을 품고 그 계획을 이룬 다음에야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29 정해진 때가 되면 그가 다시 남쪽으로 쳐들어가겠지만,
그때는 먼젓번과 같지 않을 것이다.
30 키팀의 배들이 그를 치러 오는 바람에 그는 겁을 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거룩한 계약에 분풀이를 할 것이다.
그는 다시 돌아가서 거룩한 계약을 저버린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다니 11,25-30)
16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자기 왕국이 튼튼해지자,
이집트 땅까지 지배하여 두 나라의 임금이 되려고 작정하였다.
17그는 강력한 군대와 병거와 코끼리,
그리고 큰 함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1,17 주석] 코끼리
[1,17] 코끼리: 셀레우코스 군장비의 중요한 부분(<비교> 6,34-37).
벳 즈카르야의 전투(1마카 6,28-47)
34 또 코끼리들을 잘 싸우게 하려고 포도즙과 오디 즙을 보여 자극시키고 나서,
35 그 짐승들을 전열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그들은 코끼리마다,
쇠사슬 갑옷으로 무장하고 머리에는 청동 투구를 쓴 보병 천 명을 배열시켰으며,
또 코끼리마다 정예 기병 오백 명도 배치하였다.
36 코끼리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기병들이 먼저 가 있었고,
코끼리가 이동하면 함께 이동하여 코끼리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37 코끼리 등에는 단단한 나무 탑을 얹어 덮고,
그것들을 특별한 기구로 고정시켰다.
나무 탑에는 전투를 벌이는 군대의 병사 네 명과
인도 사람 하나가 타고 있었다.(1마카 6,34-37)
18그가 이집트 임금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 Ⅵ Philometor(재위 기간 BC 180-145)와 전투를 벌이자,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앞에서 몸을 돌려 달아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어 쓰러졌다.
[1,18 주석] 프톨레마이오스 ☞ Ptolemy Ⅵ Philometor (BC 180-145)
[1,18] 프톨레마이오스: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 Ptolemy Ⅵ Philometor (BC 180-145)로서 안티오코스 4세의 조카이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는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 Cleopatra I Syra의 아들이다.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의 자손들에는
Antiochus;
Seleucus IV Philopator;
Ardys;
Laodice of Bactria;
Laodice IV, Queen of the Seleucid Empire;
Cleopatra I Syra, Queen of Egypt;
Antiochis, Queen of Cappadocia;
Antiochus IV Epiphanes 등이 있다.
☞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 VI 필로메토르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조카가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BC 186-145년)는
BC 180년부터 164년까지,
그리고 기원전 163년부터 145년까지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의 그리스 임금이다.
그는 종종 이집트가 여전히 강대국이었을 때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통치자로 여겨진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의 장남인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아버지가 기원전 180년에 사망할 때
여섯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왕국은 섭정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BC 178년 또는 177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 후에는 클레오파트라 1세의 동료인 에우라이오스 Eulaeus와
레나에오스 Lenaeus가 BC 169년까지 통치했다.
BC 170년부터,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클레오파트라 2세와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그와 함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통치는
시리아를 둘러싼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외부 갈등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권을 둘러싼
남동생과의 내부 갈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제6차 시리아 전쟁(▶BC 170-168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는 완전히 패배했고,
이집트는 셀레우코스 군대에 의해 두 번이나 침략당했다.
셀레우코스와의 분쟁이 끝난 지 몇 년 후인 BC 164년에,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프톨레마이오스 6세를
이집트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 등을 돌리고
BC 163년에 프톨레마이오스 6세를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이 두 번째 통치에서
시리아와 그의 형제에 대한 분쟁에 대해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그는 동생을 키레나이카 Cyrenaica [리비아 동부지역]로 추방했고,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게 유리한 로마의 실질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키프로스를 점령하기 위한 발판으로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그곳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거듭해서 막았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셀레우코스 왕위를 놓고 경쟁하는
일련의 왕위 주장자들을 세대를 거쳐 지원함으로써
결국에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멸망하는
내전을 선동하는 데 일조했다.
기원전 145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시리아를 침공하여 오에노파루스 Oenoparus 전투에서 완승을 거두어,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을 모두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전투 3일 후에 사망하니,
전쟁에서 얻은 성과는 거의 즉시 사라지고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어부지리로
다시 권력을 잡았다.(인용: 위키피디아 영문)
19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이집트 땅의 요새 성읍들을 점령하고
그 땅에서 전리품을 거두었다.
Robbery of the Temple. (RNAB) [1,20–24] 2마카 5,11–21.
성전 약탈(RNAB)
[1,20–24 관련 본문]
[1,20–24] 2마카 5,11–21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을 모독하다
11 이 일 [☞ 야손의 최후, 2마카 5,5-10]에 관한 보고가 임금에게 들어가자
그는 유다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야수처럼 격분한 마음으로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 도성을 무력으로 점령해 버렸다.
12 그러고 나서 걸리는 사람마다 사정없이 칼로 쳐 죽이고
집으로 들어간 이들도 학살하라고 군사들에게 명령하였다.
13 그리하여 젊은이와 늙은이를 살해하고,
여자와 아이를 도륙하고,
처녀와 젖먹이를 살육하는 일이 자행되었다.
14 단 사흘 만에 팔만 명이 살해되고 사만 명이 백병전으로 죽었다.
노예로 팔려 간 사람도 살육당한 사람만큼 많았다.
15 임금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법과 조국의 배반자가 된 메넬라오스 Menelaus [대사제 BC 172-165] 의 인도를 받아
무엄하게도 온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전으로 들어갔다.
16 그는 거룩한 기물들에 부정한 손을 대고,
다른 임금들이 그곳의 발전과 영광과 영예를 위하여 바친 예물들을
더러운 손으로 휩쓸어 갔다.
17 안티오코스는 이 도성에 사는 이들의 죄악 때문에
주님께서 잠시 이곳을 소홀히 하시게 된 것을 모르고
교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18 그들이 그토록 많은 죄악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셀레우코스 임금이 보내어 금고를 점검하러 왔던 헬리오도로스처럼,
안티오코스도 안으로 들어섰다가 바로 채찍질을 당하여
그런 방자한 짓을 못 하게 내몰렸을 것이다.
19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곳을 위하여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여 이곳을 선택하신 것이다.
20 그래서 이곳은 백성의 불행을 함께 겪고 나중에 혜택도 함께 누렸다.
전능하신 분의 진노로 버림받은 이곳은
위대하신 주님과 화해하게 되었을 때,
다시 그 모든 영광을 되찾았다.(2마카 5,11-20)
21 이렇게 하여 안티오코스는
성전에서 천팔백 탈렌트를 실어 내어 안티오키아로 급히 돌아갔다.
그는 오만하게도
뭍에다 배를 띄우고 바다를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의기양양하였던 것이다.(2마카 5,21)
<유다 마카베오>
마타티아스의 아들, 기원전 165-162년(성전 봉헌 후 직책을 맡음)
36 유다와 그 형제들은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고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52 그들은 백사십팔년 [BC 164년] 아홉째 달, 곧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 아침 일찍 일어나,(1마카 4,36.52)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히브리어: מנלאוס)는 BC 172-165년경의 예루살렘의 대사제였다.
이 때는 마카베오 반란(167-160)이 시작될 때이다.
메넬라오스는 오니아스 3세의 형제인 야손의 후계자이다.
메넬라오스는 BC 163/162년에 죽는다(☞ 2마카 13,1 주석 참조)
1 백사십구년 [▶BC 163/162년]에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가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 땅에 쳐들어오는데, (2마카 13,1)
3 그때에 메넬라오스도 그리스 군대와 어울려
매우 교활한 말로 안티오코스를 부추겼다.
그것은 조국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사제직에 재임명되려는 속셈에서 한 일이었다.
4 그러나 임금들의 임금이신 분께서는
안티오코스가 이 악한에게 분노를 터뜨리게 하셨다.
그리하여 메넬라오스가
모든 환난의 원인이었다는 리시아스의 말을 들은 안티오코스는,
그자를 베로이아로 끌고 가서
그쪽 지방의 관습에 따라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2마카 13,3-4)
[☞ 2마카 13,1 주석] 백사십구년 : BC 163/162
20백사십삼[▶BC 169]년에 이집트를 쳐부수고 돌아가면서,
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1,20 주석] 백사십삼년에 이집트를 쳐부수고
[1,20] 백사십삼년에 이집트를 쳐부수고: BC 169년
마카베오기 상권에는
2마카 5,1.11에 설명된 1년 후의 이집트에 대한
두 번째 원정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마카베오기 하권(2마카 5,1.11)과
다니엘서(11,25.29)에는
둘 다 기록되어 있다.
<마카베오기 하권>
1 그 무렵에 안티오코스가 제이차 이집트 원정을 시도하였다.
11 이 일에 관한 보고가 임금에게 들어가자
그는 유다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야수처럼 격분한 마음으로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 도성을 무력으로 점령해 버렸다.(2마카 5,1.11)
<다니엘서>
25 그는 힘과 용기를 내어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 임금을 치려고 할 터인데,
남쪽 임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면서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쪽 임금을 칠 계략을 꾸밀 것이기 때문이다.
29 정해진 때가 되면 그가 다시 남쪽으로 쳐들어가겠지만,
그때는 먼젓번과 같지 않을 것이다.(다니 11,25.29)
21그는 거드럭거리며 성소에 들어가 금 제단,
등잔과 그것에 딸린 모든 기물,
[1,21 주석] 성소에 들어가
[1,21] 성소에 들어가:
안티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군인들에게 급여를 주기 위해
성전에 보관되어 있던 성물과 돈을 빼앗았다(2마카 3,10-11 참조).
10 대사제는 금고의 돈이 일부는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기금이고,
11 일부는 토비야의 아들로서 높은 지위에 있는 히르카노스의 기금이며,
또 사악한 시몬이 거짓으로 보고한 것과는 달리
그 돈은 다해서 은 사백 탈렌트와
금 이백 탈렌트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2마카 3,10-11)
22제사상과 잔,
대접과 금향로,
휘장과 관을 내오고,
성전 정면에 씌워져 있던 금장식을 모두 벗겨 냈다.
23또 은과 금,
값진 기물들과 깊숙이 간직되어 있던 보물들을 찾아냈다.
24그는 마구 살육을 저지르고 오만불손한 말을 한 다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25이스라엘 곳곳에는 큰 슬픔이 일어
26지도자들과 원로들은 탄식하고
처녀 총각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져 갔다.
27신랑들은 모두 탄식을 쏟고
신방에 앉아 있는 신부들은 슬픔에 잠겼다.
28땅도 그 주민들 때문에 떨고
야곱의 온 집안은 수치로 뒤덮였다.
안티오코스가 유다인들을 박해하다
Attack and Occupation. (RNAB) [1,29–40] 2마카 5,24–26.
[1,29–40 관련 본문]
[1,29–40] 2마카 5,24–26
24 안티오코스는 미시아의 수령 아폴로니우스를 군사 이만 이천 명과 함께 보내며,
장정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라고 명령하였다.
25 아폴로니우스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평화로운 사람인 체하며 거룩한 안식일까지 기다렸다가,
그날에 유다인들이 일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부하들에게 무장 행렬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26 그러고 나서 그는 이 광경을 보러 나온 이들을 모두 학살하고,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이 도성으로 달려 들어와
또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2마카 5,24-26)
29이태 뒤 [▶BC 167] 임금이 유다의 성읍들에
조공 징수관 Mysian commander [미시아 ☞ 아래 지도 참조]을 파견하니,
그자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1,29 주석] 조공 징수관 ☞ 미시아의 수령 아폴로니우스 (2마카 5,24)
[1,29] 조공 징수관 [미시아 사령관]:
2마카 5,24에서 그는 “미시아인(소아시아 용병)의 사령관 아폴로니우스 Apollonius”로 식별된다.
1마카 1,29의 그리스어 본문(“조세 징수관”)은 히브리어 원본을 잘못 읽은 것을 반영한다.
24 안티오코스는 미시아의 수령 아폴로니우스를 군사 이만 이천 명과 함께 보내며,
장정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라고 명령하였다.(2마카 5,24)
30그가 평화로운 말로 주민들을 속이자 그들은 그를 믿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그 도성을 습격하여 큰 타격을 입히고
이스라엘 백성을 많이 죽였다.
31또한 이 도성을 약탈한 다음 불을 지르고
집들과 주위의 성벽을 허물었다.
32그의 군대는 또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고 가축을 빼앗았다.
33그러고 나서 그들은 튼튼한 성벽을 높이 쌓고
견고한 탑을 세워 다윗 성 City of David을 재건하고,
자기들의 성채 citadel로 삼았다.
[1,33 주석] 성채
[1,33] 성채: 글자 그대로 아크라 akra는 요새를 의미한다.
성채는 성전 지역 근처에 세워진 외국 군대와 변절자 유다인들을 위한 수비대였으며
BC 141년에야 시몬에게 함락되었다(1마카 13,49-50).
49 예루살렘 성채에 있는 자들은
유다 지방을 오가면서 물건을 사고팔지 못하였기 때문에,
배가 몹시 고파 많은 자들이 굶어 죽었다.
50 그들이 시몬에게 화해해 달라고 부르짖자,
시몬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시몬은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낸 다음,
부정한 것을 치우고 성채를 정화하였다.(1마카 13,48-50)
34그리고 죄 많은 족속과 변절자들을 그 안에 배치시켰다.
이들은 거기에 굳게 자리 잡은 뒤,
35무기와 양식을 저장하고 예루살렘에서 거둔 전리품을 쌓아 두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위협이 되었다.
36그곳은 성소를 위협하는 복병이 되고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는 흉악한 원수가 되었다.
37그들은 성소 둘레에서 무고한 피를 흘려
성소를 더럽혔다.
38그들 때문에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달아나
예루살렘이 이민족들의 거처가 되고
제고장 사람들에게 낯선 곳이 되어 버렸다.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제 땅을 버리고 떠나갔다.
39예루살렘 성소는 광야처럼 황폐해지고
축제일은 슬픔으로 변하였으며
안식일은 조롱거리가 되고
그 명예는 치욕이 되어 버렸다.
40그 수치는 이제 지난날의 영광만큼이나 커지고
그 고고함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1,39–40] 아모 8,10; 토빗 2,6.
[1,39–40 관련 본문]
[1,39–40] 아모 8,10; 토빗 2,6
10 너희의 축제를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를 애가로 바꾸리라.
나는 모든 사람이 허리에 자루옷을 두르고
머리는 모두 대머리가 되어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게 하고
그 끝을 비통한 날로 만들리라.(아모 8,10)
6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토빗 2,6)
안티오코스가 유다교를 박해하다[1,41–64] 2마카 6,1–11
Prohibitions against Religion (NAB)
Religious Persecution. (RNAB)
[1,41–64 관련 본문]
[1,41–64] 2마카 6,1–11
이교 예식을 강요하다
1 그 뒤에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임금은 아테네의 원로 한 사람을 보내어,
유다인들이 조상들의 법을 버리고 하느님의 법대로 살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2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으며,
그리짐에 있는 성전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하는 대로
나그네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3 이렇게 악은 혹독하고 극도로 가혹하게 맹위를 떨쳤다.
4 성전은 이민족들의 방탕과 향락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성전 경내에서 창녀들과 놀아나고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그리고 부당한 것들을 끌어들였다.
5 제단은 법으로 금지된 부정한 것들로 가득 찼다.
6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낼 수도 없고
조상 때부터 전해오는 축일도 지킬 수 없었으며,
스스로 유다인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
7게다가 달마다 임금의 생일이 되면 끌려가서
지독한 강요를 받아 이교 제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디오니소스 축일이 되면,
담쟁이덩굴로 엮은 관을 쓰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행렬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8 프톨레마이스 시민들의 제안으로
이웃 그리스 성읍들에도 칙령이 반포되었다.
그 칙령은 유다인들을 탄압하는 똑같은 정책을 써서
이교 제사에 참석하게 하고,
9 관습을 그리스식으로 바꾸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난이 닥친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10 어떤 여자 둘은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끌려 나왔다.
그 여자들은 아기를 가슴에 매단 채 성읍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다가,
성벽 위에서 아래로 내던져졌다.
11 다른 이들은 근처 동굴에 모여서 몰래 일곱째 날을 지내다가
필리포스에게 고발되어 한꺼번에 화형을 당하였다.
그들은 성스러운 날을 존중하여,
자신들을 방어하는 일조차 삼갔던 것이다.(2마카 6,1-11)
41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44임금은 사신들을 보내어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이러한 칙서를 내렸다.
유다인들이 자기 고장에 낯선 관습을 따르게 할 것.
45성소에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바치지 못하게 하고,
안식일과 축제를 더럽힐 것.
46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47이교 제단과 신전과 우상을 만들고,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
48그들의 아들들을 할례 받지 못하게 하고,
온갖 부정한 것과 속된 것으로
그들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도록 할 것.
49그리하여 율법을 잊고 모든 규정을 바꾸게 할 것.
50임금의 말대로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 [1,50] 1마카 2,29–38; 2마카 6,18 – 7,42
[1,50 관련 본문]
[1,50] 1마카 2,29–38; 2마카 6,18 – 7,42
마타티아스의 투쟁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30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아들과 아내,
그리고 가축까지 그렇게 하였다.
불행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31 왕명을 거역한 이들이 광야의 피신처로 내려갔다는 보고가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있던 임금의 신하들과 군사들에게 들어갔다.
32 그래서 큰 군대가 그들 뒤를 쫓아 나섰다.
그들을 따라잡은 그 군대는 맞은쪽에 진을 치고
안식일에 그들을 공격할 채비를 갖추었다.
33 그러고는 그들에게
“자, 이제 그만 나와서 임금님 말씀대로 하여라.
그래야 살 수 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임금의 말대로 하여 안식일을 더럽히지도 않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그러자 곧 그들에게 공격이 퍼부어졌다.
36 그러나 그들은 대항하지 않았다.
돌을 던지지도 않고 자기들의 피신처를 봉쇄하지도 않고,
37 “우리는 모두 깨끗한 채로 죽겠다.
너희가 우리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증언해 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38 이렇게 그들은 안식일에 공격을 받아 아내와 자녀와 가축과 더불어 죽어 갔다.
죽은 이는 천 명이나 되었다.(1마카 2,29–38)
엘아자르의 순교(2마카 6,18-31)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나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2마카 6,18-31)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1 그때에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 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2마카 7,1) (2마카 6,18 – 7,42.)
51임금은 자기의 온 왕국에 이렇게 모든 칙령을 내리고,
온 백성을 감시할 감독관들 inspectors을 세웠다.
또 유다의 성읍들에는 각 성읍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52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저마다 율법을 저버리고 감독관들에게 동조하여,
이 땅에서 나쁜 짓들을 저질렀다.
53감독관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숨을 곳을 찾아
온갖 피난처로 떠나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54백사십오년 키슬레우 [Chislev 아홉째] 달 열닷샛날 [▶ BC 167년 12월 6일],
안티오코스 A. Ⅳ Epiphanes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the horrible abomination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1,54] 다니 9,27; 11,31; 마르 13,14.
[1,54 주석]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Chislev [아홉째] 달 열닷샛날.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1,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BC 167년 12월 6일,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원래 히브리어로는,
하느님을 위해 상징 혹은 제단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는희생 제물 제단 위에 세워졌는데,
그 하느님에게 바쳐진 "하늘의 주님"이라는 칭호에 대한
경멸적인 언어 유희. <비교> 다니 9,27; 11,31.
27 그 군주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이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반 주간 동안은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리라.
성전 날개에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져
황폐하게 만드는 그자에게
이미 결정된 멸망이 쏟아질 때까지 서 있으리라.”(다니 9,27)
31 그리고 그가 보낸 병력이 자리를 잡고서는,
성소와 성채를 더럽히고 일일 번제를 폐지하며,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울 것이다.(다니 11,31)
[1,54 관련 본문] 다니 9,27; 11,31; 마르 13,14
[1,54] 다니 9,27; 11,31; 마르 13,14
27 그 군주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이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반 주간 동안은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리라.
성전 날개에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져
황폐하게 만드는 그자에게 이미 결정된 멸망이 쏟아질 때까지 서 있으리라.”(다니 9,27)
31 그리고 그가 보낸 병력이 자리를 잡고서는,
성소와 성채를 더럽히고 일일 번제를 폐지하며,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울 것이다.(다니 11,31)
14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라.(마르 13,14)
55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율법서 scrolls of the law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1,56 주석] 율법서 ☞ 율법서 두루마리
[1,56] 율법서: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 중 하나 또는 그 이상, 이스라엘의 전통적 율법.
57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58그들은 이렇게 모든 성읍에서
달마다 눈에 띄는 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하였다.
59매달 스무닷샛날에는
번제 제단 위에 있는 단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다.
60제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부인들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고,
61그 젖먹이들은 그들의 목에 매달았다.
그들의 집안 사람들과 또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이들까지 매달았다.
62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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