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영성

하느님의 새 계약으로 향하는 디딤돌, 마카베오기

좋은생각으로 2024. 12. 27. 17:45

 

프롤로그

큰 나라 임금들 간의 싸움에

조그마한 유다라는 민족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쓰러진다.

 

모욕에 치욕이 더하여

비참함과 처참함으로 뒤틀린 유다 민족에

크나큰 하느님의 진노가 내린다.(1마카 1,54) 

 

하느님께서는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

 

완강하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사무엘이 다시 말한다.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1사무 8,18)

 

과연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공정과 평화를 사라지게 하는

임금들의 발호에 대한 당신의 계시의 말씀이(1사무 8,11-17)

성경의 종국의 역사서

마카베오기를 통해 드러나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극한의 시대 상황을 통해

모든 백성이 하느님 말씀 안에 

항상 깨어있어야 함을(마태 24,42),

 

오늘도 저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당신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창세 18,19)

역동적인 필체로 묘사한 성경 본문이

바로 마카베오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마카베오 투쟁(1마카 1,29-48)이

결실을 맺게 된 이유는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1마카 2,29),

 

즉 피느하스가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1마카 2,26)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1마카 2,27) 이들이

께 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창세 18장)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창세 18,1ㄱ)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

suhbundo.tistory.com

 

 

유다의 발자취

임금을 요구한 백성들이 사울을 거쳐

다윗의 온 이스라엘을 왕국을 세우지만(BC 1010) 

솔로몬이 죽은 후(BC 931) 분열되어,

북 왕국 이스라엘(BC 723/722)과 남 왕국 유다(BC 587)가 

순차적으로 완전히 멸망한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과 관련된 고대 시대는

신아시리아(~BC 609),

신바빌론(~BC 539),

메대와 페르시아를 거쳐(~BC 330)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 확장과 몰락의 시대적 격변을 거치며(~ BC 323)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생겨난 왕국들과 관련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세계는 크게

그리스,

시리아,

이집트 지역에 걸쳐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나라는 이들 영토를 중심으로

그리스 마케도니아는 

카산트로스 왕국,

안티고노스 왕국,

리시마코스 왕국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시리아는 셀레우코스 왕국(BC 312-63),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BC 305-30)으로 분열되어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제국이 분열되어 자리 잡게 된다. 

 

마카베오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당시(BC 167-141) 시대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그때 유다를 둘러싸고 있던 역사적 상황이 

그간 그들이 겪었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처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와는

양방향적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마카베오 시대에는 다중적 역학관계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유다에 대한 이민족들의 관심이  확장된 것이다. 

 

마카베오기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로마와도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필리스티아의 지방에서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이어진 것이다.  

 

마카베오기 시대(BC 167-141)의 외세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바빌론 유배 이후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외세의 침략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로서

많은 변절자들이 이민족들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 자신의 민족에 반하여

공공연히 암약하게 된다.  

 

마카베오기는 바로 이 시대에 나타난

유다 민족을 중심으로 한 조그마한 민족 공동체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 안티고노스 왕조

그리스에서 일어난 세 왕국은

안티고노스 왕국으로 통합되어 유지되다가 

페르세우스 임금(재위 BC 179-168) 시대에

로마 공화정에 의해 종말을 고하면서,  

결국 4개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안티고노스 왕국의 마지막 임금인

페르세우스의 아들 알렉산더 Alexander(son of Perseus)는 

숙련된 금속가공업자가 되었고 라틴어를 배웠으며 공증인이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Perseus of Macedon

더보기

페르세우스 Perseus (생몰년: BC 212 - 166년)는 기원전 179년부터 168년까지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 왕국의 임금이었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임금이자 안티고노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로 널리 여겨지며,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중 피드나 Pydna 전투에서 로마에 패배하여 마케도니아는 사실상 독립된 정치적 실체로서 종식되었다. 

기원전 172년, 동지중해에서 마케도니아의 세력 확장을 두려워한 페르가몬 Pergamon의 에우메네스 2세 Eumenes  II는 로마 상원에서 연설을 하여 페르세우스가 그리스 세계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비난했다. 

곧 로마와 페르세우스는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BC 171-168년)에 돌입했다.


페르세우스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피드나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한 후 로마 장군 루시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Lucius Aemilius Paullus에게 항복하고 결국 이복형제 필리푸스 아들 알렉산더 Alexander와 함께 로마에 투옥되면서 전쟁은 끝났다. 안티고노스 왕국은 해체되었고, 4개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페르세우스는 파울루스 Paullus의 개선식에서 포로로 끌려갔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플루타르크 Plutarch에 따르면 2년 후 로마인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고, 그가 BC 166년에 지쳐 죽을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로마 역사가인 티투스 리비우스 Livy는 페르세우스가 관대한 처분을 받아 평생 알바 푸첸스 Alba Fucens에서 좋은 상태로 지냈다고 기록했다.


기원전 178년에 그는 시리아 출신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의 딸인 라오디케 5세와 결혼했다. 페르세우스와 라오디케 5세의 아들 중 한 명인 알렉산더  Alexander는 페르세우스가 로마인에게 패배했을 때 아직 어렸고, 기원전 167년에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Aemilius Paullus의 개선식 이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알바 푸첸스에 구금되었다.

그는 숙련된 금속가공업자가 되었고 라틴어를 배웠으며 공증인이 되었다.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로스의 장군들에 의해 세우진 두 왕국 가운데

셀레우코스 왕국은 시리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이집트에 자리를 잡는다. 

한편 로마는 공화정(BC 509-27)의 국가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마카베오기에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유다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칠십인역 성경의 번역을 주도한 나라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는 셀레우코스를 약화시키기 위해

혼인 전략을 수행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테아이다. 

그녀는 시리아 데메트리오스 2세 소테르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2세 나카토르 및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와 전략적인 혼인을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피스콘의 딸인 트리파에나는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의 아들인 안티오코스 8세와 혼인하고

클레오파트라 셀레나는

안티오코스 10세 에우세비스와 혼인하게 하여

셀레우코스 왕조를 이집트의 영향 아래에서

형제들 간에 이전투구를 벌이게 하여

결국에는 BC 63년에 멸망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도 

점진하는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BC 30년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에사리온을 끝으로

역사에서 소멸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

마카베오기에 악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셀레우코스 왕국은

시리아에 자리를 잡는다. 

 

유다는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 끼여

두 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그들의 문화는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실체를 잊어버리니

마카베오기가 이에 대해 일갈한다.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1마카 14-15)

 

셀레우코스 왕국이 세워진지 130여 년이 지난 뒤에

자기 누나와 혼인한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임금에 오르면서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는 사건이 벌어진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아버지인

안티오코 스 3세 대왕의 행적이 참으로 기괴하다.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네 명의 자식을 가졌다.

맏아들 안티오코스(생몰년: BC 221-193, 28살),

둘째 아들 셀레우코스 4 필로파토르(생몰년: BC 218-175, 43살),

딸인 라오디케 4세(생몰년 미확인: BC 3세기 후반-2세기 초반),

그리고 막내아들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생몰년: BC 215-164, 51살)이다. 

 

안티오코스 대왕의 아들 안티오코스는

기원전 210년,

안티오쿠스 3세가 대원정을 위해 동쪽으로 떠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공동 임금으로 세웠다.

그는 기원전 200년 파니온에서 승리했을 때

셀레우코스 군대를 부분적으로 지휘했다.

그는 실제로 독립적인 권한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동부 셀레우코스 총독령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안티오코스 대왕의 아들 안티오코스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여러 법령과 편지에 이름이 나와 있다.

기원전 200년,

안티오코스는 파니움 전투에 참석하여

기병대의 우익 지휘권을 받았다.

이집트 기병대를 격파하고 승리한 기병대로

후방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중앙을 공격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기원전 196년,

안티오코스는 셀레우코스 왕위의 상속자로 임명되었다.

그 해에 그의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아들인 안티오코스와 그의 여동생인 라오디케 4세와 혼인하도록 했다.

 

라오디케 4세와 안티오코스의 혼인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일어난 최초의 근친혼이었다.

형제 혼인에서 라오디케 4세는

안티오코스에게 니사라는 딸을 낳아 준다.
 

그 해 말에 안티오코스가 죽는다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안티오코스의 동생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처럼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맏아들인 왕세자 안티오코스가 죽자

또다시 라오디케 4세를 자신의 둘째 아들과

혼인을 시킨다. 

 

라오디케 4세는 아버지에 의해 근친혼을 하였을 수도 있지만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둘째 오빠인 남편이 죽자 이번에는 그의 동생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와 혼인하는

참으로 거북스러운 왕족 혈통 유지 본능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안티오코스 대왕의 딸인 라오디케 4세의 세 번의 근친혼

더보기

첫 번째 근친혼

기원전 196년,  라오디케 4세의 큰 오빠인

왕세자 안티오코스(안티오코스 아들 안티오코스)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왕위를 계승하도록 임명되었다. 

그 해에 라오디케 4세는 그와 혼인했다.

라오디케 4세와 왕세자 안티오코스의 혼인은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일어난 최초의 형제간 근친혼이었다.

그 해 말에 그녀의 오빠인 남편이 죽었다.  

 

두 번째 근혼인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그녀가 다시 혼인하도록 주선했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두 째 오빠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이다.

두 사람의 혼인 생활에서 그들은 세 자녀를 두었다.

안티오쿠스(셀레우코스 아들 안티오코스)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두 아들, 

그리고 딸인 라오디케 5세였다.

 

기원전 187년에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즉위하면서

그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를 로마로 보낸다.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신하인 헬리오도루스에게 암살되자

셀레우코스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생몰 연도 c. 180-170, 재위 175-170)가 임금이 된다. 

 

 세 번째 근혼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신하에게 암살당한 후, 

라오디케는 4세는 그녀의  동생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와 세 번째의 근친혼을 한다.

그의 조카인 안티오코스가 임금이 되었지만

스스로 임금이 되어 공동 통치를 하면서

BC 170년에 조카인 안티오코스를 죽인다. 

라오디케 4세는 세 번째 남편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와의 사이에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를 둔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죽자

그의 아들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가

어린 나이에 임금에 오르지만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가 시리아로 들어와

또 다른 동시대의 임금이 되어

집안 내 분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wikipidia 인용)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아들인 에우파토르가

그의 나이 10살경에 죽임을 당하는데, 

마카베오기는 그의 죽음에 대해 

"그 [데메트리오스]가 자기 조상들의 왕궁으로 들어갈 때,

군사들이 안티오코스와 리시아스를 잡아

그에게 데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 사실을 알고,

“나에게 그들의 얼굴을 보이지 마라.” 하고 말하자,

군사들이 그들을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데메트리오스가 왕좌에 앉게 되었다."(1마카 7,2-4)라고 설명한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자체적인 문제는 물론

또 다른 그리스계 왕조인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끊임없는 견제로 멸망에 이른다. 

유다 하스몬 왕조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사후에 벌어진 

셀레우코스 왕조의 형제 간의 분쟁은 

왕국이 스스로 쇠락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바로 이 시대적 기회에 

유다는  BC 167년의 마타티아스의 투쟁을 시작으로 

유다 마카베오 (BC 167-160)

요나탄 아푸스(BC 160-143)

시몬 타씨(BC 143-134) 시대인

BC 140년에 독립된 하스몬 Hasmonian 왕조를 세운다.  

 

하스몬 왕조는 요한 히르카누스 1세(BC 134-104)를 거쳐

안티고누스를 마지막으로 BC 37년에 소멸되어

그 뒤로 헤로데 왕조가 들어서지만

헤로데 왕조 역시 부침의 역사를 거치면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를 마지막으로

성경에서의 국가로서의 유다는 

BC 44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에필로그

시대를 호령하며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꿈인 

그의 광대한 영토는

그가 죽자마자 갈가리 찢겨나가

결국에는 300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의 고향 마케도니아에서 그의 꿈이 

페르세우스의 아들 알렉산더로 드러나는데,

대왕이었던 알렉산더가

금속가공업자이며 공증인인 알렉산더가 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꿈을 나누며 희망을 공유한 장군들,

그들이 전리품으로 얻은 왕국들은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들어서는 시대에

한 줌의 재로 소멸되어 버릴 위기이다. 

 

하느님의 자비로 통회하고 회개하며,

바빌론 유배 이후

어찌어찌 살아온 유다가

이러한 시대의 부침 속에서 기회를 잡는다. 

 

그들의 기회는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에 의해 완성되는데

그것은 정의와 공정을 바라는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던 백성들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유다의 역사가

성경과 연대기에서 드러나듯, 

대사제 카야파(요한 18,14)로 이어지는

권력에 대한 인간들의 야욕이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에는 AD 70년에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유다의 숨결이 끊어진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의 세상이다.  

 

아브라함이 태어나

그의 자손 유다 민족이 뿔뿔이 흩어진 그 순간까지 

얼마나 긴 세월인가?

아브라함의 탄생 연도를 BC 2166년이라 하면

2,236년이 지난 세월이다. 

그리고 현시대인 오늘까지 계산하면

어언 4,190년이다. 

 

인간들이 그동안 행해왔던 실체를 들여다보면

과연 그렇다.

이 세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이 아닌 것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함께

겸손되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맺으신 새 계약을 통해

이를 입증하신다(예레 31,31).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정의와 공정을 거스르며 파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

정의와 공정을 거스르며 파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사람의 역사가 시대를 달리하여도 소멸되지 않는 이유는앞서 간 사람들의 경험과 지론이 대를 이어 기록 혹은 전승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suhbundo.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