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대한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고 밝히시면서,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6,17)라고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이는 곧,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로지 율법"이라는 경직된 형식인
바리사이의 율법주의에 따른 율법의 규정이 아닌,
율법의 정신으로 살 것을 주장하신 것으로.
이러한 정신은 사도들 특히 사도 바오로에 의해 체계화 된다(참조, 가톨릭 대사전).
예수님의 율법 정신에 대한 생각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고 하신 말씀으로
당신의 시대 정신을 여실히 드러내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에 답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마태 22,37-38)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9-40) 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그 어느 계명보다 앞선다고 하신다.
이처럼 수 많은 말씀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듯
율법 가운데 사랑이 으뜸이기에,
사도 바오로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라고 예수님의 말씀에 화답한다.
첫째 계명인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목숨까지 바치려는 행동없이,
생각이나 말로만 하는 비신앙적인 믿음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 정신에 위배된 활동을 하는 집단은 계명을 어겨,
교묘하게 꾸며낸 교설적인 자료로(마태 5,19ㄱ) 선한 사람들을 어둠의 자식이 되게 하는 매개자가 되어,
결국에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적(1요한 2,18)으로 만들어
어두움 가득한 미몽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여야 한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에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4)
그렇다면 예수님의 약속대로 가르치시려고 오신(요한 14,26) 성령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1코린 6,19)
이처럼 성령께서 계시는 바로 그 마음 안에 말씀이신 하느님이 계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백성이 된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고,
거룩하게 정화된 우리와 함께 시간과 공간 즉 시공을 초월하시어,
현재의 바로 그 시각과 장소에 거룩하게 된 믿음의 자손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가 성령을 약속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넘게 사칭하려 합니까?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마르 13,6)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마르 13,2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마르 13,22)
하느님께서 보내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해주시는(요한 14,26) 성령께,
어느 누가 모독하려(마태 12,31) 합니까?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
어느 누가 감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주제넘게 우롱하려(갈라 6,7) 듭니까?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신명 18,20)
이럴진대,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고(루카 16,17) 하신 말씀을
어찌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라고 생각하는가?
말씀이신 하느님을 손끝으로나 혀끝으로 우롱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밝은 빛 안에 내어놓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가톨릭 성경을 통해 거룩한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통해,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20)
그렇습니다.
의로움으로(마태 5,20) 가득한 거룩한 신앙인에게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마태 5,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하라는 이 계명 즉 율법이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신명 30,11).
마태오 복음
예수님과 율법(마태 5,17-20)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5:18] 루카 16,17.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주석
[5,17-20] 주석: 예수님과 율법
[5:17-20] 모세 율법과 관련된 예수님의 입장 대한 진술은 마태오의 설교 문서(참고: 마태 5,1-7.29에 관한 주석), 다른 Q 소재(참고: 마태 18; 루카 16,17), 그리고 복음 사가 자신의 편집적 필치로 구성되어 있다.
율법 실행이 처음에는 최소한의 상황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인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어떠한 율법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그러나 하늘과 땅의 "없어짐"은 많은 묵시문학에서처럼 반드시 존재하는 우주의 해체로 이해되는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시대의 전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묵시록적 사건과 함께 오고, 이 복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사야에 의해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라고 예언된(이사 65,17; 66,22) 새로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 하늘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 예수님의 전도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직무는, 다가올 시대에 대한 상당한 기대가 있겠지만, 뒤에 나올 본문들이(마태 5, 21-48) 보여주는 것처럼 율법의 체제 안에 남아 있다.(인용 RNAB 주석)
17“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22정녕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서 있을 것처럼 너희 후손들과 너희의 이름도 그렇게 서 있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이사 66,22)
[5,19] 주석: 계명에 대한 명령
[5:19] 이들 명령은 모세 율법의 그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의 잠정적인 윤리이다.(인용 RNAB 주석)
인용 본문
[5:18] 루카 16,17.
17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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