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에 대한 가르침
맹세의 의미는 "일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함"(표준국어대사전)이다.
그러므로 약속보다 강한 개념이지만,
맹세에 대한 정의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일부러 애써 맹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맹세는 맹세자가 좀 더 강한 힘을 빌어 자신의 각오를 다짐하는 것이므로
맹세를 받아들이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상은 주로 윗사람 혹은 상위 직위를 가진 자가 되지만,
성경은 사람 간에 맺어진 다양한 맹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의 배필을 찾아가는 그의 종에게 맹세하게 하고(창세 24,9),
야곱은 형 에사우에게 불콩죽을 주면서 맏아들 권리를 넘겨줄 것을 맹세하게 하고(창세 25,33),
야곱과 그의 장인 라반은 서로 침략하지 말자고 함께 맹세하고(창세 26,31),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자신이 죽으면 조상들과 함께 잠들 수 있도록 하라고 맹세하게 한다(창세 47,31).
요셉도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라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였다(창세 50,25).
부연하면, 모세는 약 400여 년 뒤에 이집트를 탈출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엄숙히 맹세하게 하였기(탈출 13,19) 때문이다.
이 사례는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적인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도,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겠다."(탈출 6,8)라고 맹세하셨으며,
마침내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네 후손들에게 이것을 주겠다.’ 하며 맹세한 땅으로 올라가거라."(탈출 33,1) 하시면서 당신의 맹세를 지키셨다.
지금까지 성경에 나온 맹세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사람 혹은 하느님의 맹세에 따른 약속이 모두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맹세를 했던 사람이 맹세한 바를 지키지 못하면 맹세 대상자를 속여 넘기는 기망자는 물론,
거짓 맹세자 또는 헛맹세자로 각인되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약속을 어기면 약속 대상자에게 진심으로 사과 혹은 사죄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맹세를 어기면 자연스럽게 변명과 더불어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헛맹세로 인한 거짓말은 사람 간의 신뢰를 무너뜨려,
서로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질투와 미움의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니,
헛맹세자는 결국 사람을 속이는 의롭지 못한 사람이 되어
헛맹세를 많이 하는 사람은 범법으로 가득 차게 된다(집회 23,11).
사람들은 종종 습관적으로 하느님을 두고 맹세한다는 말을 한다.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가 지켜지지 못하면
거룩하신 하느님을 속이고 욕되게 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라는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느님께서도 직접 당신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2)라고 말씀하신다.
맹세와 관련된 훈계에 대해 집회서의 말씀으로 묵상하고자 한다.
"얘들아, 말에 대한 훈계를 들어라.
그것을 따르는 이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리라.
죄인은 제 입술로 말미암아 붙잡히고
험담가와 오만한 자도 제 입술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리라.
네 입에 맹세하는 버릇을 들이지 말고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지 마라.
끊임없이 문초를 당하는 종이 상처가 가시지 않듯
언제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하는 자도 결코 죄악에서 깨끗해지지 못하리라.
맹세를 많이 하는 사람은 범법으로 가득 차고
징벌의 채찍이 그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그가 맹세를 어기면 죄악이 그와 함께 머물고
분별없이 맹세를 하면 죄가 갑절로 무거워지리라.
그가 헛맹세를 하면 의롭게 되지 못하리니
그의 집이 온갖 재앙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집회 23,7-11)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마태오 복음
정직하여라(마태 5,33-37)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마태 5,33) [5:33] 레위 19,12; 민수 30,3.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마태 5,34)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마태 5,35)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 5,36)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5:34–37] 시편 48,3; 집회 23,9; 이사 66,1; 야고 5,12.
주석
[5,33] 주석: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5,33] 이 절은 어떤 구약 본문의 정확한 인용이 아니지만, 탈출 20,7; 신명 5,11; 레위 19,12를 참조하라.
맹세의 목적은 하느님을 증인으로 불러 진실함을 보증하는 것이다.
7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탈출 20,7)
11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신명 5,11)
12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2)
[5,34-36] 주석: 맹세
[5,34-36] 하느님의 이름을 피하기 위한 이런 상투적인 맹세가 실제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과 동일한데, 맹세된 모든 것이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5,37] 주석: 예 할 것은 예하고
[5,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문자그대로, “너의 말은 ‘예 이면 예’, ‘아니면 아니오’가 되게 하라”.
사람들은 이것을 맹세의 순화된 형식이라고 이해했는데, 예수님에 의해 허락되었다.
마태5,34의 관점에서, “아예 맹세하지 마라,”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악에서 나오는 것: 즉 악마로부터.
맹세는 인류의 죄 많은 사악함, 이름하여 거짓말하는 경향을 상정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맹세를 불필요하게 하는 정직함(참됨)을 요구하신다
인용 본문
[5:33] 레위 19,12; 민수 30,3.
12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2)
3남자가 주님께 서원을 하거나 맹세를 하여 스스로 서약을 할 경우, 자기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 제 입에서 나온 것을 다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민수 30,3)
[5:34–37] 시편 48,3; 집회 23,9; 이사 66,1; 야고 5,12.
3아름답게 솟아오른 그 산은 온 누리의 기쁨이요 북녘의 맨 끝 시온 산은 대왕님의 도읍이라네.(시편 48,3)
9네 입에 맹세하는 버릇을 들이지 말고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지 마라.(집회 23,9)
1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이사 66,1)
12나의 형제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야고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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