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ca. BC 605-536)

너에게 진실을 일러 주겠다(다니-11)

좋은생각으로 2025. 1. 18. 09:51

 

가브리엘 천사의 

이집트와 시리아에 대한 섧명이

다니엘서 11장에 나온다. 

천사의 설명에는 

당시대의 여러 나라의 상황에 대한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에

아래 본문 설명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본문 내용 또한 마케베오기와 일맥 상통하므로, 

마카베오기를 함께 읽을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가톨릭 교회는 마카베오기를 제2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카베오기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너무 비약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제2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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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하느님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성서를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하느님의 영감은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성서 작가가 영감을 받았는가의 사실 여부는 성스러운 계시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가톨릭에서 경전의 경전성(canonicity)의 판단은 결함 없는 교회의 일치된 견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결정은 교회사에서 약간 늦게 이루어졌다(트리엔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성서의 어떤 책에 대해서는 그 경전의 경전성 여부에 대하여 의심하기도 하였다.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인정되는 책을 흔히 제1경전이라 하고,

한때 경전으로서의 자격에 대하여 의심을 받은 책을 제2경전(Deuterocanonicus)이라고 한다.

 

가톨릭에 있어서는 제1경전이나 제2경전이나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신약성서에 대하여는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이 정전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구약성서에 대하여는 약간 입장을 달리한다.

즉,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유태교 경전만을 따르며,

따라서 히브리어 성서에 있는 구약성서 책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그리스어번역 성서(70인역)에 들어 있는 일곱 권의 책을 추가하여 제2경전이라고 한다.

일곱 권의 제2경전이란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시라크, 바룩서, 마카베오서 상·하 등이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들 제2경전을 외경이라고 한다. (⇒) 제이정전, 외경 (가톨릭대사전)

과연, 가톨릭 교회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마카베오기를 통해 해석하고 있으니,

말씀을 말씀 안에서

성경을 성경 안에서 해석하는

지극히 당연한 보편 교회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장인 다니엘서 12장의

마지막 때에 관한 설명에서 나온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다니 9,27; 11,31; 12,11)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은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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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 군주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이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반 주간 동안은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리라.

성전 날개에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져

황폐하게 만드는 그자에게 이미 결정된 멸망이 쏟아질 때까지 서 있으리라.”(다니 9,27)

31 그리고 그가 보낸 병력이 자리를 잡고서는,

성소와 성채를 더럽히고 일일 번제를 폐지하며,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을 세울 것이다.(다니 11,31)

11 일일 번제가 폐지되고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질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흐를 것이다.(다니 12,11)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BC 167.12.6),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1마카 1,54)처럼

마카베오기에서 이행되었지만,

 

 

황폐를 부르는 자가 머리를 내밀다(1마카 1)

시작하면서다니엘서 7장의 네 마리 짐승의 환시는 다니엘서 2장의 순금(바빌론), 은(메디아),청동(페르시아), 쇠(그리스)로 만들어진 입상으로 표현된네 왕국에 대한 주제를 이어간다.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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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많은 거짓 행위자들에 의해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다니엘의 예언을 통해

우려 섞인 말씀을

묵시적으로 하지 않으실 수 없으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마태 24,24)

 

“그러므로 다니엘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마태 24,15)

 

 

거짓 행위자들의 종말

거짓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거짓의 행위자들로서거짓 사도(2코린 11,13), 거짓 교사(2베드 2,1), 거짓 형제(2코린 11,26), 거짓 예언자(1요한 4,1)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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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11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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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나는 이미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 제일년에 미카엘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그를 뒷받침해 주려고 나선 적이 있다.”

 

천사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관하여 설명하다

The Hellenistic Age.(RNAB)

2이제 나는 너에게 진실을 일러 주겠다. 페르시아에는 앞으로 세 임금이 더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넷째가 나와 앞의 어느 임금보다도 큰 재물을 모을 터인데, 그렇게 재물을 모아 강력해지면, 그는 그리스 왕국을 치려고 온 나라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3그러나 용맹한 임금이 일어나 막강한 통치력을 행사하며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4그렇지만 그가 일어서자마자 그의 나라는 부서져 천하 사방으로 나뉘는데, 그의 자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고, 통치력도 그의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의 나라가 뿌리째 뽑혀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5남쪽 임금이 강력해지겠지만, 그의 장수들 가운데 하나가 그보다 더 강력해져서 그의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통치할 것이다. 6몇 해 뒤에 그들은 동맹을 맺고, 협약을 비준하는 뜻으로 남쪽 임금의 딸이 북쪽 임금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아들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와 또 그 여자를 그리로 데려간 자들, 그 여자의 자식과 지지자가 적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때에 7그 여자와 같은 뿌리에서 난 가지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 북쪽 임금의 군대를 공격하고 성채로 들어가 그들을 쳐 이길 것이다. 8또한 그들의 신들과 주조 신상들, 은과 금으로 된 값진 기물들을 전리품으로 이집트에 가져가고 나서, 몇 해 동안 북쪽 임금을 내버려 둘 것이다. 9그 뒤에 북쪽 임금이 남쪽 임금의 나라로 쳐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곧 자기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10그러나 북쪽 임금의 아들들이 전쟁을 벌이면서 수많은 군대를 모은 다음, 그들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쳐들어가는데, 물밀듯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남쪽 임금의 성채에 이르기까지 다시 싸움을 벌일 것이다. 11남쪽 임금도 분노를 터뜨리며 나가서 북쪽 임금과 싸울 것이다. 그러면 북쪽 임금이 수많은 군사를 일으키겠지만, 그 군사들은 남쪽 임금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12그 군사들이 제거되면 남쪽 임금은 마음이 우쭐해져 수만 명을 쓰러뜨리겠지만,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13북쪽 임금은 처음보다 더 많은 군사를 다시 일으켜, 몇 해 뒤에 많은 물자와 함께 큰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갈 것이다.

 

14그때에 많은 사람이 남쪽 임금을 거슬러 일어날 것이다. 네 백성 가운데에서도 난폭한 자들이 환시를 실현시키겠다고 봉기하겠지만 실패할 것이다. 15북쪽 임금이 내려가서 공격 축대를 쌓고 요새 성읍을 함락하는데, 남쪽의 병력은 정예 부대까지도 그들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당해 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16남쪽 임금을 공격하는 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그들을 아무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북쪽 임금이 영화로운 땅에 자리 잡으면,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17그는 남쪽 임금의 온 나라를 자기의 세력 아래로 끌어들이겠다고 결심하고서는, 그와 화친을 맺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남쪽 임금에게 여자를 하나 주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에게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18그는 섬과 해안 지방으로 얼굴을 돌려 많은 곳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나 장군 하나가 그러한 그의 행패를 끝장내는데, 그는 자기가 당한 행패를 그 장군에게 되갚지도 못할 것이다. 19그 뒤에 그는 자기 땅의 성채들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만, 비틀거리다 넘어져 사라져 버릴 것이다. 20그의 뒤를 이어 다른 임금이 일어나 나라의 영광스러운 곳으로 조공 징수관을 보내기도 하지만, 다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 임금은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될 것이다.”

 

시리아의 사악한 임금에 관하여 설명하다

21그의 뒤를 이어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불시에 나서서 모략으로 왕권을 잡을 것이다. 22그 임금 앞에서 적군들이 완전히 쓸려 나가고 부서지는데, 계약의 영도자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23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고 나서부터는 속임수를 쓰는데, 얼마 되지 않는 백성을 거느리면서도 위치가 올라가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24그는 불시에 그 지방의 비옥한 곳으로 쳐들어가, 자기 부하들에게 전리품과 노략물과 그 밖의 물자를 뿌리며, 자기 조상들 가운데 아무도 하지 않은 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요새들을 칠 계략을 꾸미지만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5그는 힘과 용기를 내어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 임금을 치려고 할 터인데, 남쪽 임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면서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쪽 임금을 칠 계략을 꾸밀 것이기 때문이다. 26그와 함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파멸시키고, 그의 군대는 휩쓸려 가며 많은 사람이 살해되어 쓰러질 것이다. 27그 두 임금이 마음속으로는 악을 품고서도 한 식탁에 마주 앉아 거짓말을 주고받겠지만, 아무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정해진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8북쪽 임금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다가, 거룩한 계약을 해칠 마음을 품고 그 계획을 이룬 다음에야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29정해진 때가 되면 그가 다시 남쪽으로 쳐들어가겠지만, 그때는 먼젓번과 같지 않을 것이다. 30키팀의 배들이 그를 치러 오는 바람에 그는 겁을 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거룩한 계약에 분풀이를 할 것이다. 그는 다시 돌아가서 거룩한 계약을 저버린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31그리고 그가 보낸 병력이 자리를 잡고서는, 성소와 성채를 더럽히고 일일 번제를 폐지하며,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울 것이다. 32그는 계약을 깨뜨리는 자들을 달콤한 말로 배교하게 만들겠지만, 저희 하느님께 충성스러운 백성은 굳건히 서서 행동할 것이다. 33또 백성 가운데에서 현명한 이들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동안 그들은 칼과 화염에 쓰러지고 유배와 약탈을 당할 것이다. 34그들은 쓰러질 때에 도움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그들과 합류하겠지만 거짓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35현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렇게 쓰러지면서, 마지막 때가 되기까지 다른 이들이 단련되고 정화되고 순화되게 할 것이다. 아직 정해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6임금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교만스레 자신을 들어 높이며 자기가 모든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길뿐더러, 신들의 하느님을 두고 끔찍한 말까지 해 댈 것이다. 이렇게 그는 진노의 때가 다하기까지 성공을 거두리니, 결정된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7그는 자기 조상들의 신들을 비롯하여, 여자들이 아끼는 신이며 그 밖의 모든 신을 무시할 것이다. 자기가 그 모든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8그리고 그들 대신에 성채의 신을, 제 조상들은 알지도 못하던 신을, 금과 은과 보석과 그 밖의 보물들을 바쳐 가며 공경할 것이다. 39그는 그 낯선 신을 모시고 가장 견고한 요새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영광을 더해 주고 많은 사람을 다스리게 하며, 보수로 토지도 나누어 줄 것이다.

 

40마지막 때에 남쪽 임금이 그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북쪽 임금은 병거와 기병과 수많은 배를 거느리고 그에게 돌진해 갈 것이다. 여러 나라를 쳐들어가며 물밀듯이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41북쪽 임금은 영화로운 땅으로도 쳐들어가 수만 명을 쓰러뜨리지만, 에돔과 모압과 대부분의 암몬인들, 바로 그들은 그의 손을 피할 것이다. 42그가 이렇게 여러 나라에 손을 뻗으면 이집트 땅도 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43그리하여 그는 이집트의 금과 은을 비롯한 보화, 그리고 다른 모든 보물의 주인이 되고, 리비아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도 그의 발아래 놓일 것이다. 44그러다가 동쪽과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그를 놀라게 할 터인데, 그는 크게 화를 내며 나가서 많은 이를 죽이고 멸망시킬 것이다. 45그는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임금이 머물 천막들을 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를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니엘서 관련 그림 연대표


11 1나는 이미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 제일년

미카엘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그를 뒷받침해 주려고 나선 적이 있다.”

 

천사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관하여 설명하다

The Hellenistic Age.(RNAB)

헬레니즘(그리스)의 시대

 

2이제 나는 너에게 진실을 일러 주겠다.

페르시아에는 앞으로 세 임금이 더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넷째가 나와 앞의 어느 임금보다도 큰 재물을 모을 터인데,

그렇게 재물을 모아 강력해지면,

그는 그리스 왕국을 치려고 온 나라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11,2 주석] 세 임금(캄비세스 2세, 가우마타, 다리우스 대왕), 넷째 임금( 크세르크세스 1세: BC 486-4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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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페르시아에는 앞으로 세 임금:

캄비세스 2세, 가우마타, 다리우스 대왕의 세 임금이 있으며,

넷째 임금은 그리스에 대한 위대한 원정가인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465년)이다.

 

▶페르시아 왕조 

페르시아(아카메네스) 제국 가계도(Family tree of the Achaemenid rulers. (Artaxerxes IV = A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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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아케메네스) 제국 가계도, 키루스 2세는 제국의 대왕으로서의 재위 기간임.

 

3그러나 용맹한 임금이 일어나

막강한 통치력을 행사하며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11,3 주석] 용맹한 임금  ☞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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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용맹한 임금: 기원전 333년 이수스  Issus 전투에서 승리하여

페르시아의 지배를 깨뜨린 알렉산더 대왕.

 

이수스 전투(Battle of Issus)

이수스 전투(Issos라고도 함)는 기원전 333년 11월 5일에

남부 아나톨리아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헬레니즘 동맹과

다리우스 3세 대왕이 이끄는 아케메네스 제국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는 알렉산더의 아시아 정복에서 두 번째로 큰 전투였고,

다리우스 3세와 알렉산더 대왕의 첫 번째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했다.

4그렇지만 그가 일어서자마자

그의 나라는 부서져 천하 사방으로 나뉘는데,

그의 자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고,

통치력도 그의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의 나라가 뿌리째 뽑혀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11,5–45 주석] 관련 본문 해설 ☞ 이집트와 시리아에 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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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5] 다니엘서 11장 5절에서 45절까지의 구절들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남쪽 임금)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북쪽 임금) 왕조의 역사를 묘사한다. 

이는 다니엘서 사가가 관심을 가졌던

헬레니즘 제국이 두 개로 분열되는 상황이다.
다니 11장 10-20절은

리스티아를 지배하기 위한

두 왕국 간의 투쟁을 묘사한다.
결국 셀레우코스 왕국이 승리한다.

5남쪽 임금이 강력해지겠지만,

그의 장수들 가운데 하나가 그보다 더 강력해져서

그의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통치할 것이다.

 

6몇 해 뒤에 그들은 동맹을 맺고,

협약을 비준하는 뜻으로

남쪽 임금의 딸이 북쪽 임금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아들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와 또 그 여자를 그리로 데려간 자들,

그 여자의 자식과 지지자가 적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때에

 

7그 여자와 같은 뿌리에서 난 가지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

북쪽 임금의 군대를 공격하고 성채로 들어가 그들을 쳐 이길 것이다.

8또한 그들의 신들과 주조 신상들,

은과 금으로 된 값진 기물들을 전리품으로 이집트에 가져가고 나서,

몇 해 동안 북쪽 임금을 내버려 둘 것이다.

 

[11,6 주석] 남쪽 임금의 딸이 북쪽 임금에게 시집갈 것이다. ....  적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 BC 250년경의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와 이집트의 베레니카 시라의 비극적인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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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기원전 250년경의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Antiochus II Theos

이집트의 베레니케 시라 Berenice Syra의 혼인은 비극으로 끝났다.

 

베레니케(BC 275-246년경)는 베레니케 페르노포루스 Berenice Phernophorus ("지참금 수취인")

또는 베레니케 시라 Berenice Syra 라고도 불리는

이집트의 공주이자 셀레우코스 왕조의 섭정 여왕이었다.
그녀는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와 혼인하여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비가 되어,

BC 246년에 아들 안티오코스의 미성년 시절에 섭정을 맡았다.

 

베레니케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 Ptolemy II Philadelphus

이집트의 아르시노에 1세 Arsinoe I 의 딸이었다.
그녀는 친할머니인 이집트의 베레니케 1세 Berenice 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녀가 혼인을 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나일강에서 생수를 제공하여

그녀가 다른 곳에서 물을 마실 필요가 없도록 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개인적인 관심을 특별히 나타낸 것이다.

 

기원전 252년경, 안티오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제2차 시리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화 협정을 맺은 후, 

베레니케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주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와 혼인했는데,

안티오코스 2세는

첫 번째인 아내 라오디케 1세 Laodice I와 이혼하고

왕위를 베레니케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혼인 후 그녀는

시리아 Syria를 가리키는 "시라 Syra "라는 이름을 얻었다.
베레니케는  결혼하기에는

나이가 꽤 많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공주였다.
그녀의 지참금이 너무 많아서 페르네포루스 Phernephorus,

즉 지참금 가져오는 사람 Dowerbringer로 알려졌다.

안티오코스 2세는

첫 번째 아내 라오디케 Laodice 와 다시 혼인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안티오쿠스 2세에게 베레니케로 돌아가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안티오쿠스 2세는 이를 거듭해서 미루었다.

기원전 246년 프톨레마이오스가 죽었을 때,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Ptolemy III Euergetes

아버지가 시작한 외교적 압력을 증가했다.
안티오쿠스  2세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는데,

많은 사람은 라오디케가 독살했다고 의심했다.

 

베레니케 여왕 Queen Berenice

그녀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Antiochus의 섭정권을 주장했다.
라오디케는 베레니케를 투옥하고

안티오코스를 납치하여 살해하고

자신의 아들을 왕좌에 앉혔다.


베레니케는 모인 군중에게

아들의 목숨을 구걸했고(아들이 살해된지 모름),

그녀는 셀레우코스 도시 전역에서 동정을 얻었다.
이 동정심은 그녀를 더 강력한 적으로 만들었고,

라오디케에 의해 처형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군대를 일으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안티오키아로로 돌진했지만 너무 늦게 도착했다.

 

베레니케의 여종들은,

결국에는 베로니케의 오빠와 함께,

베레니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위조 편지를 써서

프톨레마이오스 3 Ptolemy III

베레니케의 지참금을 압류할 수 있도록 모의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시리아를 침공하여

라오디케를 죽임으로써 누이의 살해에 대한 복수를 하였다.

 

 

이스라엘에 독립 국가로서의 기틀이 만들어지다(1마카 10)

본문 개요(1마카 10장)시리아에 두 임금이 들어서다데메트리오스 I 소테르가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의 아들 에우파토르를 살해하고임금이 되자(1마카 7,4), 안티오코스 IV 에피파네스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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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왕조 가계도

 

▶시리아  셀레우코스 Seleucoid  왕조 가계도

 

9그 뒤에 북쪽 임금이 남쪽 임금의 나라로 쳐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곧 자기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10그러나 북쪽 임금의 아들들이 전쟁을 벌이면서 수많은 군대를 모은 다음,

그들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쳐들어가는데,

물밀듯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남쪽 임금의 성채에 이르기까지 다시 싸움을 벌일 것이다.

 

11남쪽 임금도 분노를 터뜨리며 나가서

북쪽 임금과 싸울 것이다.

그러면 북쪽 임금이 수많은 군사를 일으키겠지만,

그 군사들은 남쪽 임금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11,11 주석] 남쪽 임금도 분노를 터뜨리며 나가서 북쪽 임금과 싸울 것이다 

   ☞ BC 217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4세와 시리아 안티오코스 3세 대왕 간의 라피아 전투

이집트가 승리하였으며 코엘레 시리아 지역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코엘레 시리아

더보기

[11,11] 이집트가 시리아를 격파한 라피아 Raphia 전투(BC 217년).

 

라피아 전투

라피아 전투는

이집트의 임금이자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Ptolemy IV Philopator(BC 221-203)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BC 223–187)의 군대 사이에 

기원전 217년 6월 22일에 현재의 라파 Rafah  근처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는 헬레니즘 왕국과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였으며,

코엘레 시리아 Coele Syria의 소유권을 결정했다.

 

<코엘레 시리아>

코엘레 시리아 Coele-Syria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시리아의 한 지역이었다.
이 용어는 원래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산맥 사이의

"움푹 들어간" 베카 계곡 Beqaa Valley을 지칭했지만, 

때때로 시리아 지역의 더 넓은 지역에 적용되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시리아와 레바논의 일부이다.

12그 군사들이 제거되면 남쪽 임금은 마음이 우쭐해져 수만 명을 쓰러뜨리겠지만,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13북쪽 임금은 처음보다 더 많은 군사를 다시 일으켜,

몇 해 뒤에 많은 물자와 함께

큰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갈 것이다.

 

 

[11,13 주석] 북쪽 임금은 ...., 몇 해 뒤에 많은 물자와 함께 큰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갈 것이다

☞ BC 200년 파네아스 전투에서 북쪽 임금인 시리아가 이집트를 격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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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시리아는 BC 200년에 파네아스 Paneas 전투에서 이집트를 격파했다.

그러자 유다는 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파네아스(파니움) 전투

파네아스 전투는 기원전 200년 파네아스 Paneas (카이사리아 필리피 Caesarea Philippi ) 근처에서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군대가 제5차 시리아 전쟁의 일환으로 벌인 전투이다.

셀레우코스는 안티오쿠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이 이끌었고,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는 아이톨리아의 스코파스 Scopas of Aetolia가 이끌었다.


셀레우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를 섬멸하고

코엘레 시리아 속주를 정복하여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파니움에서의 패배에서 결코 회복하지 못했고,

더 이상 독립적인 강대국이 아니었다.
안티오코스는 남쪽 측면을 확보하고 로마 공화국과의 임박한 갈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4그때에 많은 사람이 남쪽 임금을 거슬러 일어날 것이다.

네 백성 가운데에서도 난폭한 자들이

환시를 실현시키겠다고 봉기하겠지만 실패할 것이다.

 

15북쪽 임금이 내려가서

공격 축대를 쌓고 요새 성읍을 함락하는데,

남쪽의 병력은 정예 부대까지도 그들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당해 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11,15 주석] 공격 축대를 쌓고 요새 성읍을 함락하는데

   ☞ 파네아스 전투에서 패한 이집트의 스코파스가 만 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돈으로 피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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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공격 축대를 쌓고 요새 성읍을 함락하는데: 파네아스 전투 이후의 시돈 포위 공격.

 

파네아스 전투의 여파

이집트의 스코파스 Scopas는 1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돈으로 피난을 갔고,

다른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는 예루살렘, 페니키아, 사마리아, 데카폴리스로 도망쳤다.
그들 모두는 BC 198년 말에 항복을 강요받았다.
코엘레-시리아는 셀레우코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BC 195년에 안티오쿠스와 평화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의 결과 중 하나로,

프톨레마이오스 속주 states는 그 후 몇 년 동안

마케도니아 정착민 부대 Macedonian settler phalanx [(고대 그리스의 방진(方陣) ]의 역할을 축소해야 했다.
일부 성경 주석가들은 이 전투가 다니 11,15에 언급된 전투라고 본다.

15북쪽 임금이 내려가서 공격 축대를 쌓고 요새 성읍을 함락하는데, 

남쪽의 병력은 정예 부대까지도 그들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당해 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다니 11,15)

 

마케도니아 방진 phalanx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필리포스 2세 Philip II(c. May 359 – October 336 BC)가

고대 그리스 방진 phalanx 에서 개발한 보병 진형으로,

가장 획기적인 것은 6m 길이의 창인 사리사 sarissa를 사용한 것이다.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 이

기원전 334년에서 323년 사이에

아케메네스 제국을 정복하는 동안 통솔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후 마케도니아 방진 양식은

헬레니즘 세계 전역으로 퍼져서

대격전 pitched battles의 표준 전투 대형이 되었다.

로마 공화국에 대한 마케도니아 전쟁(BC 214-148년) 동안,

방진  phalanx 은 기동성이 더욱 뛰어난

로마 군단에 비해 쓸모없는 것으로 보였다.

16남쪽 임금을 공격하는 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그들을 아무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북쪽 임금이 영화로운 땅에 자리 잡으면,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17그는 남쪽 임금의 온 나라를

자기의 세력 아래로 끌어들이겠다고 결심하고서는,

그와 화친을 맺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남쪽 임금에게 여자를 하나 주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에게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11,17 주석] 북쪽 임금이...... 남쪽 임금에게 여자를 하나 주지만

   ☞ BC 197년에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를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와 약혼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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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안티오쿠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 [BC 223–187]

BC 197년에  자기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를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Ptolemy V Epiphanes 와 약혼시켰다.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 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 시라(BC 204-176년)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BC 204–180)와 혼인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여왕이 되어,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의 미성년 시절에 이집트의 섭정을 맡았는데, 
섭정 기간은 BC 180년 남편이 죽은 후부터 기원전 176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였다.
클레오파트라 1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임금 안티오코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2세의 공주인 라오디케 3세 Queen Laodice III 의 딸이었다.

 

18그는 섬과 해안 지방으로 얼굴을 돌려 많은 곳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나 장군 하나가 그러한 그의 행패를 끝장내는데,

그는 자기가 당한 행패를 그 장군에게 되갚지도 못할 것이다.

19그 뒤에 그는 자기 땅의 성채들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만,

비틀거리다 넘어져 사라져 버릴 것이다.

 

[11,18 주석] 장군 하나가 그러한 그의 행패를 끝장내는데

    ☞ BC 190년에 로마 장군 스키피오 Scipio 

        마그네시아 Magnesia 전투에서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을 격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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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로마 장군 스키피오 Scipio BC 190년의 마그네시아 Magnesia 전투에서 안티오코스를 격파했다.

 

<마그네시아 전투>

마그네시아 전투는 기원전 190년 12월

또는 기원전 189년 1월에 일어났다.
이 전투는 로마-셀레우코스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졌으며,

집정관 루시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Lucius Cornelius Scipio Asiaticus가 이끄는

로마 공화국 군대와

에우메네스 2세 Eumenes II 가 이끄는

동맹군 페르가몬 왕국 Kingdom of Pergamon

안티오쿠스 3세 대왕 Antiochus III the Great의 셀레우코스 군대와 맞붙었다.


두 군대가 처음에는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마니사 Manisa )의 

마그네시아 아드 시필룸 Magnesia ad Sipylum 북동쪽에 진을 치고
며칠 동안 유리한 지형에서 서로를 자극하여 전투를 벌이려 했다.


마침내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로마 동맹군인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Eumenes

셀레우코스의 좌익 left flank을 혼란에 빠뜨렸다.

안티오코스의 기병대가 전장의 오른쪽 측면에서 적군을 제압하는 동안,

그의 군대의 중앙은 그가 지원군을 지원하기 전에 무너졌다.

이 전투는 로마-페르가몬의 결정적인 승리로 이어졌고,

이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소아시아 지배를 종식시킨

아파메아 조약 Treaty of Apamea으로 이어졌다.

 

<아파메아 조약>

아파메아 조약은 BC 188년

로마 공화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의 통치자 안티오쿠스 3세 사이에서 체결된

평화 조약이다.
로마-셀레우코스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 조약은 로마의 테르모필레 전투 Battle of Thermopylae (BC 191)와

마그네시아 전투 Battle of Magnesia (기원전 190년)에서의 승리,

그리고 셀레우코스 해군에 대한

로마-로도스 해군의  승리 이후에 체결되었다.

20그의 뒤를 이어 다른 임금이 일어나

나라의 영광스러운 곳으로 조공 징수관을 보내기도 하지만,

다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 임금은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될 것이다.”

 

[11,20 주석] 그의 뒤를 이어 다른 임금이 일어나

     ☞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 Seleucus IV Philopator(BC 18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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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그의 뒤를 이어 다른 임금이 일어나: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 Seleucus IV Philopator [BC 187-175] 이다.

그는 헬리오도로스 Heliodorus 예루살렘에  보낸다(비교 2마카 3).

 

시몬이 반역하다(2마카 3,1-6)

1 오니아스 대사제 high priest Onias

경건하게 살고 악을 미워한 덕분에,

거룩한 도성에서는 사람들이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다.(2마카 3,1)

 

 

[2마카 3,1] 오니아스 3세: 대사제직은 BC 196-175년 이었으며, BC 171년에 피살되었다. 

그는 시몬의 아들이었으며, 시몬에 대한 찬양이 집회 50,1-21에 나와 있다.  

 

2 그때에는 임금들까지도 성소를 존중하고

최상의 선물을 보내면서 성전을 영화롭게 하였다.

3 아시아의 임금 셀레우코스

희생 제물을 바치는 예식에 드는 모든 비용을 자기 수입에서 지불하였다.

4 벤야민 가문 출신으로 성전의 관리 책임자였던 시몬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도성의 시장 운영과 관련하여 대사제와 의견 대립을 보였다.

5 그는 오니아스를 꺾을 수 없었으므로,

그때에 코일레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총독으로 있던,

트라새오스의 아들 아폴로니우스에게 가서,

6 예루살렘의 금고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가득 차 있어

그 액수를 헤아릴 수 없는데,

그 돈은 희생 제물에 드는 비용이 아니므로

임금의 권한 아래 둘 수 있다고 일러바쳤다.(2마카 3,1-6)

 

헬리오도로스가 성전의 재물을 탈취하러 오다 (2마카 3,7-12)

7 아폴로니우스는 임금을 만나

자기가 들은 대로 그 돈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임금은 행정을 책임진 헬리오도로스를 뽑아 파견하며,

앞에서 말한 그 돈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8 헬리오도로스는 곧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 여행은 코일레 시리아

페니키아의 성읍들을 시찰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임금의 계획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9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도성의 대사제에게 영접을 받은 그는

자기가 들은 정보를 제시하며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그대로인지 물었다.

10 대사제는 금고의 돈이 일부는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기금이고,

11 일부는 토비야의 아들로서 높은 지위에 있는 히르카노스의 기금이며,

또 사악한 시몬이 거짓으로 보고한 것과는 달리

그 돈은 다해서 은 사백 탈렌트와 금 이백 탈렌트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12 그리고 성소의 거룩함과 온 세상이 존중하는 성전의 위엄과

그 불가침성을 믿는 이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2마카 3,7-12)

 

대사제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동요하다 (2마카 3,13-23)

13 그러나 임금의 명령을 받은 헬리오도로스는

그 돈이 반드시 임금의 금고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14 그러고 나서 그는 날을 잡아 그 기금을 조사하러 들어갔다.

그러자 온 도성이 적지 않은 근심에 잠겼다.

15 사제들은 사제 옷을 입고 제단 앞에 엎드려서 하늘을 향하여,

기금에 관한 법을 내리신 분께,

돈을 맡긴 이들을 위하여 그 기금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사고 간청하였다.

16 대사제의 모습을 보는 이마다 마음이 괴로웠으니,

표정과 안색의 변화가 영혼의 근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17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기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마음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18 사람들도 무리를 지어 집 밖으로 뛰어나와 함께 탄원하였다.

성소가 곧 모독을 당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19 젖가슴 밑으로 자루옷을 두른 여자들이 길을 메웠다.

집 안에 갇혀 있던 처녀들은 더러는 성문으로,

더러는 성벽으로 함께 뛰어가고 또 더러는 창문으로 내다보며,

20 모두 손을 하늘로 쳐들고 탄원 기도를 바쳤다.

21 군중이 온통 뒤섞여 엎드려 있는 광경과

큰 근심에 잠겨 불안에 떨고 있는 대사제의 모습은 애처로웠다.

22 그들은 돈을 맡긴 이들을 위하여

그것을 안전하고 온전하게 지켜 주십사고 전능하신 주님께 간청하였다.

23 한편 헬리오도로스는 결정된 대로 실행하려고 하였다.(2마카 3,13-23)

 

헬리오도로스에게 징벌이 내리다 (2마카 3,24-34)

24 헬리오도로스가 호위병들과 함께 금고에 다가갔을 때,

영들과 모든 권세의 지배자께서 장엄한 현현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래서 그와 함께 당돌하게 들어선 자들이 이 하느님의 힘에 놀라 넋을 잃고 겁에 질려 버렸다.

25 휘황찬란하게 무장한 말이 무시무시한 기사를 태우고 그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 말은 헬리오도로스에게 맹렬히 돌진하여 앞발로 그를 공격하였다.

그 말을 타고 나타난 기사는 황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26 그리고 다른 두 젊은이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아주 건장하고 출중한 미남이었으며 눈부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헬리오도로스 양쪽에 한 사람씩 서서 채찍으로 그를 쉴 새 없이 때려 그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다.

27 그러자 갑자기 그가 쓰러지고 짙은 어둠이 그를 덮었다.

사람들이 그를 들것에 올려놓았다.

28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조금 전에 그 많은 수행원과 그 모든 호위병을 거느리고 앞에서 말한 금고에 들어갔다가

이제는 자기 몸도 가눌 수 없게 된 그를 옮겨 갔다.

모두 하느님의 권능을 똑똑히 깨달았던 것이다.

29 헬리오도로스가 하느님의 힘 때문에

말도 못하고 회복될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채 넘어져 있을 때,

30 유다인들은 당신의 성소를 영광스럽게 해 주신 주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포와 혼란으로 가득하였던 성전은

전능하신 주님의 현현 덕분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31 그러자 헬리오도로스의 동료 몇이 급히 오니아스에게 가서,

거의 마지막 숨을 넘기며 죽어 가는 그의 목숨을 살려 주시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께 간청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32 대사제는 유다인들이 헬리오도로스에게 무슨 악랄한 짓을 한 것으로 임금이 생각할까 두려워,

그 사람의 회복을 위하여 희생 제물을 바쳤다.

33 대사제가 속죄 제물을 드릴 때,

그 젊은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헬리오도로스에게 다시 나타나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오니아스 대사제에게 깊이 감사하여라.

주님께서 그를 보아 네 목숨을 살려 주셨다.

34 하늘로부터 벌을 받았던 너는 이제 모든 이에게 주님의 위대한 능력을 알려라.”

이 말을 하고 그들은 사라졌다.(2마카 3,24-34)

 

헬리오도로스가 회개하다 (2마카 3,35-40)

35 헬리오도로스는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목숨을 살려 주신 그분께 장엄한 서원을 한 다음,

오니아스와 작별하고 나서 군대를 이끌고 임금에게 돌아갔다.

36 그는 모든 이에게 자기가 본 대로 지극히 위대하신 하느님의 일들을 증언하였다.

37 임금이 헬리오도로스에게 예루살렘에 다시 한 번 사람을 파견하려면 누가 좋겠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38 “임금님께 맞서는 자나 정권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으면 그를 거기에 보내십시오. 설

령 살아 나온다 하여도 호되게 채찍질을 당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곳 주변에는 정말 하느님의 어떤 힘이 있습니다.

39 하늘에 거처가 있는 그분께서 친히 그곳을 지켜보고 도와주시며,

악한 짓을 하러 그곳에 다가가는 자들은 내리쳐 없애 버리십니다.”

40 헬리오도로스와 금고 수호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2마카 3,35-40) 

 

다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임금은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될 것이다.”

 

▶ 그 임금은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될 것이다

     ☞ BC 175년에 헬리오도루스가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를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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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4세와 헬리오도루스>

기원전 175년 9월 3일,

셀레우코스는 그의 주요 관료 중 한 명인 헬리오도루스에게 암살당한다.

고대 자료에는 이 행동의 동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권력에 대한 단순한 욕망이었거나,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사람에게 죽음이 잘못 돌려졌을 수 있다.

헬리오도루스는 섭정을 맡아 셀레우코스 4세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대신하여 통치했다.

그러나 헬리오도루스의 섭정 통치는 짧았다.

몇 달 후, 그는 페르가몬의 지원을 받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로 교체되었다.

 

시리아의 사악한 임금에 관하여 설명하다

21그의 뒤를 이어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불시에 나서서 모략으로 왕권을 잡을 것이다.

 

[11,21 주석] 멸시받아 마땅한 자가 일어나는데

     ☞  BC 175년에 임금이 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 (BC 175-163)에 대한 내용이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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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이 구절부터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 [BC 175-163] 의 이력이 시작된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BC 215년경 - 164년 11월/12월)는

기원전 175년부터 기원전 164년 사망할 때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을 통치한 그리스 헬레니즘 임금으로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미트라다테스 Mithradates (미트리다테스 Mithridates   다른 형태인 )였지만,
왕위에 오른 후 안티오코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안티오쿠스 통치 기간 동안의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정복,

유다와 사마리아의 유다인 박해,

유다인 마카베오의 투쟁이 있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왕위 등극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일부에서는 그를 찬탈자로 여겼다.
기원전 175년 그의 동생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 Seleucus IV Philopator[BC 187-175]가 죽은 후,

"진정한" 상속자는 셀레우코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우스 1세 소테르 Demetrius I Soter [BC 161-150]여야 했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 1세는 매우 어렸고 당시 로마에 인질로 잡혀 있어서,
안티오코스는 자신을 임금으로 선언할 기회를 잡기 위해,
안티오키아 Antioch에서 자신의 주장을 지지할 그리스 지배증을 충분히 모았다.

이로 인해 이후 세대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이 불안정해지는 추세가 생겼으며.
점점 더 많은 권리 주장자가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죽음 이후,

왕조 내의 경쟁 가계 간의 권력 다툼이 제국의 붕괴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일반 사람들과 교류할 때 대중 목욕탕에 나타나거나 시청에 지원하는 등

종종 기괴한 성향과  변덕스러운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동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그를 에피마네스(Ἐπιμανής, Epimanḗs, "미친 사람")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칭호인 에피파네스를 빗댄 말장난이다.

 

22그 임금 앞에서 적군들이 완전히 쓸려 나가고 부서지는데,

계약의 영도자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11,22 주석] 계약의 영도자: 대사제 오니아스 3세(BC 196-175)

     ☞ BC 175년에 계약의 영도자인  대사제 오니아스 3세 Onias III 가 축출되고 171년에 피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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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계약의 영도자: 대사제 오니아스 3세 Onias III이며 BC 171년에 피살된다.  

 

<오니아스 3세>

오니아스 3세(BC 196-175)는 시몬 2세(BC 3세기 후반-2세기 초기)의 아들로서

제2성전 시대(BC 516 - AD 70)의 유대인 대사제였다.
그는 성경에서 유다의 헬레니즘화에 반대하는 독실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동생 야손 Jason 기원전 175년에 그를 계승했다.

23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고 나서부터는 속임수를 쓰는데,

얼마 되지 않는 백성을 거느리면서도 위치가 올라가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24그는 불시에 그 지방의 비옥한 곳으로 쳐들어가,

자기 부하들에게 전리품과 노략물과 그 밖의 물자를 뿌리며,

자기 조상들 가운데 아무도 하지 않은 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요새들을 칠 계략을 꾸미지만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5그는 힘과 용기를 내어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 임금을 치려고 할 터인데,

남쪽 임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면서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쪽 임금을 칠 계략을 꾸밀 것이기 때문이다.

26그와 함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파멸시키고,

그의 군대는 휩쓸려 가며 많은 사람이 살해되어 쓰러질 것이다.

27그 두 임금이 마음속으로는 악을 품고서도

한 식탁에 마주 앉아 거짓말을 주고받겠지만,

아무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정해진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8북쪽 임금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다가,

거룩한 계약을 해칠 마음을 품고

그 계획을 이룬 다음에야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11,28 주석] 북쪽 임금: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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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북쪽 임금: 안티오코스 4세 Antiochus IV 일 것이다.

29정해진 때가 되면 그가 다시 남쪽으로 쳐들어가겠지만,

그때는 먼젓번과 같지 않을 것이다.

30키팀의 배들이 그를 치러 오는 바람에 그는 겁을 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거룩한 계약에 분풀이를 할 것이다.

그는 다시 돌아가서 거룩한 계약을 저버린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11,30 주석] 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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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키팀: 원래 이 단어는 키프로스인 Cypriots 혹은 다른 서방인들 westerners을 의미했다.

때때로 그리스인을 지칭하기도 한다(1마카 1,1).

여기서는 안티오코스가 이집트로 두 번째 원정을 하는 동안

이집트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한 로마인을 지칭한다.

 

1 키팀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1마카 1,1)

31그리고 그가 보낸 병력이 자리를 잡고서는,

성소와 성채를 더럽히고 일일 번제를 폐지하며,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울 것이다.

 

32그는 계약을 깨뜨리는 자들을 달콤한 말로 배교하게 만들겠지만,

저희 하느님께 충성스러운 백성은 굳건히 서서 행동할 것이다.

33또 백성 가운데에서 현명한 이들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동안 그들은 칼과 화염에 쓰러지고 유배와 약탈을 당할 것이다.

34그들은 쓰러질 때에 도움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그들과 합류하겠지만 거짓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11,34 주석] 그들은 쓰러질 때에 도움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 투쟁을 선언한 마카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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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4] 도움을: 이것은 마카베오 반란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종말론적인 사가는 하느님으로부터의 구원은 기대하지만

인간의 노력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실, 마카베오 집안은 시리아 군대를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했으며,

시리아의 박해를 종식시켰다.

35현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렇게 쓰러지면서,

마지막 때가 되기까지 다른 이들이 단련되고 정화되고 순화되게 할 것이다.

아직 정해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6임금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교만스레 자신을 들어 높이며 자기가 모든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길뿐더러,

신들의 하느님을 두고 끔찍한 말까지 해 댈 것이다.

이렇게 그는 진노의 때가 다하기까지 성공을 거두리니,

결정된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7그는 자기 조상들의 신들을 비롯하여,

여자들이 아끼는 신이며 그 밖의 모든 신을 무시할 것이다.

자기가 그 모든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1,37 주석] 여자들이 아끼는 신: 탐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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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여자들이 아끼는 신: 탐무즈 Tammuz .

안티오코스는 제우스 숭배를 선호했다.

다니엘은 제우스 숭배가 다른 모든 신들을 소홀히 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38그리고 그들 대신에 성채의 신,

제 조상들은 알지도 못하던 신을,

금과 은과 보석과 그 밖의 보물들을 바쳐 가며 공경할 것이다.

 

[11,38 주석] 성채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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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 성채의 신: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에 지은 아크라 Akra 요새에서 숭배하던 신.

39그는 그 낯선 신을 모시고 가장 견고한 요새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영광을 더해 주고 많은 사람을 다스리게 하며,

보수로 토지도 나누어 줄 것이다.

 

[11,40–45 주석] 관련 본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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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45] 이 결론 구절에서 묘사된 사건들은

더 이상 마카베오 시대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다.

 

다니엘은 에제 38-39에 나오는 곡 Gog 의 모델에 따라

안티오쿠스의 죽음을 상상한다.

안티오쿠스는 실제로 페르시아에서 죽었다.

 

마곡의 곡 First Prophecy against Gog (에제 38,1-16)

곡에게 내리는 심판(에제 38,17-23

침략자 곡의 멸망 Third Prophecy against Gog (에제 39,1-20)

40마지막 때에 남쪽 임금이 그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북쪽 임금은 병거와 기병과 수많은 배를 거느리고 그에게 돌진해 갈 것이다.

여러 나라를 쳐들어가며 물밀듯이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41북쪽 임금은 영화로운 땅으로도 쳐들어가 수만 명을 쓰러뜨리지만,

에돔과 모압과 대부분의 암몬인들,

바로 그들은 그의 손을 피할 것이다.

42그가 이렇게 여러 나라에 손을 뻗으면 이집트 땅도 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43그리하여 그는 이집트의 금과 은을 비롯한 보화,

그리고 다른 모든 보물의 주인이 되고,

리비아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도 그의 발아래 놓일 것이다.

44그러다가 동쪽과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그를 놀라게 할 터인데,

그는 크게 화를 내며 나가서 많은 이를 죽이고 멸망시킬 것이다.

45그는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임금이 머물 천막들을 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를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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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비참한 최후를 맞다

5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치명타를 그에게 가하셨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내장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속으로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6 괴이한 형벌을 수없이 가하여

다른 이들의 내장에 고통을 준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7 그러나 그는 오만함을 조금도 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만해져서

유다인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더 빨리 가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다가 내달리는 병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너무 세게 떨어져 몸의 뼈마디가 모두 어긋났다.

8 조금 전까지 초인적 교만으로

바다 물결에 명령할 수 있다고 여기고

산들의 높이를 잴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가,

이제는 땅바닥에 떨어져 들것에 실려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모든 이에게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

9 이 사악한 자의 눈에서는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살은 썩어 문드러져 갔다.

그 썩는 냄새가 온 군대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28 이렇게 하여 살인자이며 신성 모독자인 그는

다른 이들에게 가한 것과 같은 극도의 고통을 겪으며

이국의 산속에서 매우 비참한 죽음으로 삶을 마쳤다.

29 그 주검은 그의 친구 필리포스가 거두어 갔다.

그런데 필리포스는 그의 아들 안티오코스를 두려워하여

이집트로 프톨레마이오스 필로메토르에게 갔다.(2마카 9,5-9.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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