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고 아득히 넓은 뜰을 광야라 한다. 생물이 살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다. 엄밀한 의미로 이는 바르지 않다. 지구 생태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생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텅 비어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가득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비단 생물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광야에 나가 삶의 활력을 채우려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을 추스리기 위함이든, 영적 성숙을 위한 영성 추구를 위함이든, 광야는 나름대로 인간의 삶에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말씀이 함께하는 곳의 광야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광야 중에서 유달리 유다 광야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셨다.
▥ 12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2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1)
밝은 빛이 구름을 뚫고 한 곳을 비춘다. 바로 유다 광야의 모습이다.
눈으로는 삭막하다.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뜨거움이 가득 차 오른다.
유다 광야를 둘러본다.
벌거숭이 산으로 된 광야다.
눈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듬성듬성 관목들이 보인다.
저 어느 곳에 수도원이 있다고, 함께 간 누군가가 손으로 가리키지만.....
안 보인다.
마음으로 볼까 보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굶으셔서 배가 매우 고프시다.
그래서 유혹자라는 이가 예수님을 꼬드긴다.
글쎄 "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
▥ 2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
우연찮게 그곳에서 돌멩이가 쌓여 있는 곳을 보았다.
개미들이 보인다.
저러한 돌들을 빵으로 만들라고 부추겼을 것이다.
"빵만으로 살지 않아, 말씀으로 산다"라고 일갈하신다.
눈을 들어 다시 멀리 바라본다.
저 너머에 예리코가 있다.
예리코는 신 구약 모두에서 유명한 동네다.
동네? 성읍? 아무튼 그러하다.
유혹자도 저곳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급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도성으로 간다.
▥ 5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
예루살렘 옛 도성이다.
황금 문이 보인다.
아마 저러한 곳에 서 계셨을 것이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고 또 일갈하신다.
8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4)
유혹의 산이라는 곳이다.
저곳에서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다고 한다.
산과 산 사이에 희미하게 수도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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