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후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로 나간다.
아버지 이사이의 심부름도 있었지만,
도유 받은 다윗의 자신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형 엘리압이
"너의 교만과 못된 마음을 모를 줄 아느냐?"라고 했을 때
다윗이
"말 한마디 한 것뿐인데,
지금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러십니까?"라는
대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사무엘의 도유로 주님의 영이 들이닥친(1 사무 16,13) 다윗은
필리스티아인 골리앗과 싸워 승리한 후
임금인 사울에게 인도되어 공식적인 그의 활동이 시작된다.
▶본문 관련 연대표
1. 다윗이 처음으로 전쟁터에 나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대를 소집하여 유다의 소코에 집결시켰다.
그들은소코와 [지도 ②] 아제카 사이에 있는 에페스 담밈에 [지도 ③] 진을 쳤다.
사울도. 이스라엘군을 집결시켜
엘라 골짜기에 [지도 ④]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맞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갓 출신 투사가 하나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암마하고도 한 뼘 [☞ 약 294cm]이나 더 되었다.
그 필리스티아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다가와
싸움을 걸어온 지 사십 일이나 되었다.
그 무렵 사울과 다윗의 형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엘라 골짜기에서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고 있었다(1사무 17,1-2.4.16.19).
다윗은,
골리앗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전열을 모욕한단 말입니까?(1사무 17,26)라고 말한다.
20이튿날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 떼를 양치기에게 맡기고,
아버지 이사이가 시킨 대로 짐을 들고 떠났다.
그가 진영에 다다랐을 때,
온 군대는 함성을 지르며 전선으로 나가고 있었다.
26다윗이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여
이스라엘에서 치욕을 씻어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 준다고요?
할례도 받지 않은 저 필리스티아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전열을 모욕한단 말입니까?”(1사무 17,20.26)
2.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다윗을 책망하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맏형 엘리압이 듣고,
그에게 화를 내며 다그쳤다.
“네가 어쩌자고 여기 내려왔느냐?
광야에 있는 몇 마리 안 되는 양들은 누구한테 맡겼느냐?
내가 너의 교만과 못된 마음을 모를 줄 아느냐?
너는 싸움을 구경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1사무 17,28)
이렇게 맏형 엘리압이 다윗을 책망하자
다윗이 대꾸한다.
“말 한마디 한 것뿐인데,
지금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1사무 17,29 )
29다윗은
“말 한마디 한 것뿐인데,
지금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하고는,
30형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서 같은 말로 물어보았다.
군사들은 앞에서와 같은 말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31다윗이 한 말이 퍼져 나가더니,
마침내 사람들은 사울 앞에서까지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불러들였다.
32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1사무 17,29-32).
다윗의 대답에 다른 해석도 있겠으나
문맥 순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다면,
다윗은 그들 형제들 가운데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를 보았던 엘리압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감에 차서
그러한 치기스러운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윗은 한술 더 떠 반발하고서는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인다.
3. 다윗이 골리앗과 마주치다
골리앗의 도발에 다윗이 말한다.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1사무 17,46)
그러자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청동 투구를 씌어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지만,
다윗은 그것들을 버린 상태였다.
[☞ 사울은 17장 56-58에서 다윗을 모르는 것처럼 대하지만,
이 본문은 사울이 다윗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 엘라 골짜기]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1사무 17,40).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 시편 79:2–3] (1사무 17,44)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그러자 다윗 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1사무 17,45-46)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라는 말은
주검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에 패배한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즉 살아있는 자는 노예로 끌려가고
온갖 물건들이 약탈되는 참혹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말은 상대방에게 두려움과 모욕을 주는 것으로,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말로 받아들인다.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조, 에제 16,4]
4그들은 죽을 병에 걸려 죽겠지만,
아무도 그들을 위해 곡을 해 주지도 묻어 주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땅 위의 거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칼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리니,
그들의 시체는 하늘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 밥이 될 것이다.”(예레 16,4)
4. 다윗이 무릿매로 골리앗을 물리치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1사무 17,47)
다윗은,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시편 33:16] (1사무 17,47) 라고 하면서,
그는 무릿매질을 하여 골리앗의 이마를 맞힌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골리앗은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다.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누르고 그를 죽인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벤다.(1사무 17,49-51a)
[시편] 전쟁은 주님께 달려있다고 노래하는 시편 (시편 33,16)
16병력이 많다고 임금이 승리하지 못하며
근력이 세다고 용사가 제 몸을 살리지 못하네.(시편 33,16)
오직 말씀으로만(시편 33:4-5) 하늘의
삼층 우주,
우주의 물,
그리고 땅을(시편 33,6-9) 창조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
의인들을 초청한(시편 33,1-3) 찬미가이다.
하느님 말씀과는 달리
사람의 말은 아무 효과가 없다(시편 33,10-11).
사람들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먼저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선택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해야 한다.(시편 33,12-22).(참조 RNAB 주석)
5.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을 물리치다
다윗은 골리앗의 목은 예루살렘으로,
그의 무기는 다윗의 천막에 두었다(1사무 17,54).
51ㄴ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52그러자 이스라엘과 유다의 군사들이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필리스티아인들을 갓에 [지도 ⑤] 이르기까지,
그리고 에크론 성문까지 [지도 ⑥] 뒤쫓아 갔다.
그리하여 사아라임에서 갓과 에크론에 이르기까지
필리스티아인들은 칼에 맞아 쓰러져 갔다.
53이스라엘 자손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추격하다가 돌아와서
그들 진영을 약탈하였다.
54다윗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의 목은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으나,
그의 무기는 자기 천막에 두었다.(1사무 17, 51ㄴ-54).
이때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이다.
예루살렘은 다윗의 통치가 시작될 때가 되서야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골리앗의 목이 예루살렘으로 갈 이유가 불충분하다.
또한 어린 양치기로서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이
군사용 천막을 가졌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1사무 21,10에 따르면 골리앗의 무기인 칼은 놉에 있었다.(RNAB 주석)
따라서 본문의 내용은 다윗에 대한의 미래를 소급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놉에 보관된 골리앗의 칼은, 사울이 놉의 사제를 죽이는(1사무 22,6-23) 빌미가 된다.
8그런데 그날 거기에는 사울의 신하 하나가
주님 앞에 부득이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는 에돔 사람으로 이름은 도엑이었는데,
사울의 목자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1사무 21,8)
10사제가 대답하였다.
“장군께서 엘라 골짜기에서 쳐 죽인
필리스티아 사람 골리앗의 칼이 있습니다.
보자기에 싸서 에폿 뒤에 두었는데 그것이라도 가지려면 가지십시오.
이곳에 그것 말고 다른 무기라고는 없습니다.”
다윗이 말하였다.
“그만 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것을 나에게 주십시오.(1사무 21,10)
10그때 아히멜렉은 그를 위하여 주님께 여쭈어 본 다음,
그에게 여행 양식을 주고
필리스티아 사람 골리앗의 칼도 내주었습니다.”(1사무 22,10)
6. 다윗이 사울 앞에 나서다
55사울은 다윗이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보고
군대의 장수 아브네르에게,
“아브네르,
저 젊은이는 누구의 아들이오?” 하고 물었다.
[사울의 삼촌 네르의 아들인] 아브네르가
“임금님,
임금님의 목숨을 두고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6임금은 다시 아브네르에게,
“저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직접 알아보시오.” 하고 명령하였다.
57다윗이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자,
아브네르가 그를 사울 앞에 데려갔다.
그의 손에는 필리스티아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58사울이 그에게
“젊은이, 자네는 누구의 아들인가?” 하고 묻자,
다윗이
“저는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사이의 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1사무 17,55-58)
이 본문은 사울이 다윗을 모르는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허락을 받고(1사무 17,38)
필리스티아인과 싸우러 나갔다.
그리고 사울 앞에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은 사울이 이미 다윗을 알고 있었던 (1사무 16, 21; 1사무 17,31-32) 때이다.
▶사울이 다윗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관련된 본문
14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혔다.
21그리하여 다윗은 사울에게 와서 그를 시중들게 되었는데,
사울은 다윗을 몹시 사랑하여 그를 자기 무기병으로 삼았다.(1사무 16,14.21)
31다윗이 한 말이 퍼져 나가더니,
마침내 사람들은 사울 앞에서까지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불러들였다.
32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청동 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다.(1사무 17,31-32.38)
따라서 이 구절은 후기 편집자들에 의한
또 다른 문장 배열로,
다윗이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의 아들임을 강조하면서
다윗의 등장을 마무리하기 위함일 것이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1사무 17,47)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골리앗과 싸운다. 이때 다윗의 나이는 15세 정도, 고고학적 성경연대는 BC 1025년이다. 다윗이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1사무 17,47)라고 말했듯이 국가 간의 다툼, 민족 간의 다툼, 개인 간의 다툼, 나 자신과의 다툼 등, 모든 다툼에서 선한 승리를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에 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 여정이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하고 싶다. 모든 다툼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나"라는 1인칭으로 하여 이해해 보고도 싶다. 다윗도 나, 골리앗도 나, 사무엘도 나, 사울도 나 .....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고백 기도, 가톨릭 기도서) |
시편에 부쳐 보는 다윗의 생애
다윗이 시편에서처럼
그리 자주 하느님에 대해 노래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을(신명 30,14) 통해
당신의 말씀을 끊임없이 들려주신다.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성경 안의 인간 역사는
단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전개될 상황이다.
따라서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성경의 한 단어, 한 문장, 하나의 사건 등을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고 이해하여
하느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다윗의 골리앗에 대한 승리가
그 당시 시대로만 한정될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다윗과 필리스티아 사람 골리앗과의 전쟁(BC 1025)은
약 300년 후에는 아시리아(BC 723년)와
440여 년 후에는 바빌론(BC 587년)이라는 거인과의 전쟁으로 귀결된다.
다윗의 승리는
"전쟁은 주님께 달렸다"라는 끊임없는 믿음의 결과이고,
아시리아와 바빌론과의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패배는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예레 25,8) 주님의 말씀처럼
멸망은 하느님을 끊임없이 믿지않은 결과이다.
그렇다.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고
한시라도 하느님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
다윗이 시편에서
회개하고 청원하고 찬양하는 노래를 끊임없이 노래하였듯이
항상 말씀을 읽어야 하겠다.
[시편]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 구원의 하느님(시편 79장)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을 위하여저희를 구하시고 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시편 79,9)
민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거룩한 백성을 죽이고
그 시체를 매장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는 공동 애가(시편 79,1-4).
이 시편은 BC 587년의 바빌론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노래일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 철회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묻고(시편 79,5),
지금의 행동에 대해 기도하고(시편 79,6-7),
그들의 죄가 재앙을 초래했음을 인정한다(시편 79,8-9).
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시도록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하느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지 않는 민족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시편 79,6),
하느님의 명예가 위태롭게 되고(시편 79,1.10.12),
하느님 소유의 종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시편 79,2-4.11)고
함께 비통해 한다.(시편 79장 RNAB 주석)
▶시편,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노래
시편,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노래
3이땅에 있는 거룩한 이들과 위대한 이들에게 저의 온 마음이 쏠립니다.(시편 16,3)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민족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함이란 "성스럽고 위대함"을 의미한다.
인간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계명,
즉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뜻인 주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술된 말씀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편성은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루카 11,33) 어둠을 밝히며,
모든 것에 두루 통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가 (사도 신경, 가톨릭 기도서)
필요한 이유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성경 본문 참조용 그림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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