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43회중이 흩어진 뒤에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따라오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였다. 44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50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사도 13)
11내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박해를 견디어 냈던가!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2티모 3, 11)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 중에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방문했다.
이때 바오로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선다고 말한다.
바오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여행에서도 이 지역을 방문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서의 바오로의 "박해와 고난"은 디모테오 2서 3, 11에 언급되어 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는 6세기에 들어와서 전략적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고,
주요 교역로에서 멀어지면서 중요성을 잃기 시작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유적지로 들어가는 관람 입구이다.
유적지 안내도 가운데 1, 3, 4, 12번 지점들을 둘러보았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유적지에 들어섰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도로가 점점이 눈에 들어온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초입에서 주변을 촬영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야외극장으로 접어드는 갈림길이다.
야외극장으로 가는 길인 막스무스(Maxmus) 도로이다.
막스무스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야외극장이 나온다.
사진 좌측 멀리 야외극장터가 있는 둔덕이 보인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야외극장 유적지이다.
야외극장터를 둘러본 영상이다.
야외극장터에서 안티오키아 북부 성당 유적지쪽을 바라본 사진이다.
북부 성당 유적지(안내도 12번)가 멀리 보인다.
안내도에는
중앙 성당(Central Church), 북부 성당(Northern Church), 그리고 성 바오로 성당(St. Paul Church) 등
세 개의 성당터가 표시되어 있다.
성 바오로 성당이 있었음에서,
사도 바오로의 설교 장면이 연상되는 것 같다.
북부 성당(Northern church) 유적지이다.
입구로 되돌아 나오는 길이다.
멀리 이스파르타 주의 Yalvac 시내가 보인다.
세월의 흐름에 무심한,
무심초가 바람에 흔들린다.
얼핏 민들레처럼 보여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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