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를 발견하고 전례를 개혁한 유다 임금 요시야는
아시리아의 니네베가 바빌론에게 함락된(BC 612) 뒤,
아시리아를 도우러 하란으로 올라가는(BC 609) 이집트 파라오 느코를 막으려고
므기또로 병력을 이끌고 나간다.
파라오 느코는 요시야를 므기또에서 죽이고
동맹인 아시리아인들과 함께 하란(Harran)에서 바빌로니아인들과 싸운다.
바빌론 연대기는 기원전 609년 탐무즈 달(7월~8월)부터
엘룰 달(8월~9월)까지의 전투를 기록한다.
따라서 요시야는 BC 609년 탐무즈 달,
즉 이집트인들이 하란으로 가던 그 전 달에 죽는다.
유다 임금 요시야 이후로 네 명의 임금이 등장한다.
이 기간은 요시야 임금 사망이 BC 609년이고 유다 멸망이 BC 587년이므로 22년간이다.
관련된 임금들은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그리고 마지막 임금인 치드키야이다.
유다-17 여호아하즈
요시야가 BC 609년에 므기또 전투에서 죽자,
느코가 바빌론과 싸우는 동안, 백성들은 여호야킴(엘야킴, Eliakim) 보다 어린 여호아하즈(살룸, Shallum)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운다.
막내인 그가 임금으로 추대된 것은 여호아하즈의 인기 혹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 그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정작 그는 아버지 요시야의 개혁을 무시한다(2열왕 23,32).
32그는 자기 조상들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2열왕 23,32)
하란(Harran) 공격에 실패한 파라오 느코는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뒤에 남겨두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에,
유다인들이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아하즈를 임금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라오 느코는 돌아가는 경로에 있는 리블라로 여호아하즈를 불러 그곳에서 가둔다(2열왕 23,33).
느코는 요시야의 방해로 진군이 지체되어,
하란에 적시에 도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요시야와의 전투에서의 손실로 바빌론과의 전쟁에 패배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여호아하즈는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 2세에 의해 폐위되고 이집트 포로로 끌려간다.
여호아하즈는 3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 했다(2 열왕2열왕 23,31).
느코는 여호아하즈 대신 그의 형인 엘야킴을 임금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킴으로 바꾸었다(2열왕 23,34ㄱ).
31여호아하즈는 스물세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탈인데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이었다.(2열왕 23,31)
33ㄱ파라오 느코가 하맛 지방 리블라에서 그를 잡아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그 나라에 은 백 탈렌트와 금 한 탈렌트를 배상금으로 바치게 하였다.(2열왕 23,33)
34ㄱ그러고 나서 파라오 느코는 요시야의 아들 엘야킴을 아버지 요시야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세우고, 그
의 이름을 여호야킴으로 바꾸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여호아하즈를 끌고 갔다.(2열왕 23,34ㄱ)
파라오 느코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간 여호아하즈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34ㄴ여호아하즈는 이집트에 들어가 그곳에서 죽었다.(2열왕 23,34ㄴ)
예언자 예레미야는 여호아하즈에 대해 “포로가 된 자를 위하여 통곡하며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고국을 보지 못하리로다”(예레 22,10)라고 말한다.
10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고 애도하지 마라. 오히려 멀리 떠나가는 자를 위하여 슬피 울어라.
그가 다시 돌아와 제가 태어난 땅을 보는 일이 없으리라.
11요시야의 아들 살룸은 제 아버지 요시야 다음에 유다 임금이 되어 다스리다가 이곳에서 떠나가야 했다.
그를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는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12그는 포로로 끌려간 거기에서 죽어 다시는 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다.”(예레 22,10-12)
유다-18 여호야킴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할 수 있는 여호야킴은 느코가 므기또에서 요시야 임금을 죽인 지 3개월 후인 BC 609년에 이집트 파라오 느코에 의해 임금에 오른다.
이에 여호야킴은 이집트의 속국이 되어 많은 조공을 이집트에 바친다.
여호야킴은 돈을 모으기 위해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고 그 땅의 백성들로부터 은과 금을 징수한다.
35여호야킴은 파라오 느코에게 은과 금을 내주었는데,
파라오가 명령한 돈을 바치기 위하여 나라에 먼저 세금을 부과해야만 하였다.
그는 파라오에게 은과 금을 내주려고,
나라 백성에게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부과된 금액을 거두어들였다.(2열왕 23,35)
그런데 BC 605년에 이집트가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바빌론에게 패배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포위하자,
여호야킴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피하기 위해 바빌론에 복종하기로 한다.
그는 예루살렘의 보물창고에서 조공을 바치고 성전 유물 일부를 바쳤으며 왕족과 귀족 일부를 인질로 넘긴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이 이들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된다(다니1,6).
6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올라와서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7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 기물들도 일부 바빌론으로 가져가 바빌론에 있는 자기 궁전에 두었다.(2역대 36,6-7)
1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6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다니 1,1-2.6)
여호야킴은 3년 동안 바빌론의 속국이 된다.
그런데 BC 601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이집트 침공이 실패한다.
이에 여호야킴은 바빌론을 버리고 다시 이집트에 조공을 바친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러한 임금의 정책을 비판하며 회개와 율법의 엄격한 준수를 주장한다.
또 다른 예언자인 우리야의 아들 스마야도 비슷한 메시지를 선포하자 여호야킴은 그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예레미야 26:20-23).
20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또 있었으니 키르얏 여아림 출신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였다.
그도 예레미야와 같은 말씀으로 이 도성과 이 나라를 거슬러 예언하였다.
21여호야킴 임금은 자기의 모든 용사와 모든 대신과 더불어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죽이려고 찾았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야는 두려워서 이집트로 도망갔다.
22그러자 여호야킴 임금은 악보르의 아들 엘나탄에게 몇 사람을 딸려서 그들을 이집트로 보냈다.
23그들이 이집트에서 우리야를 잡아내어 그를 여호야킴 임금에게 데려오자,
여호야킴 임금은 그를 칼로 쳐 죽이고 그 시체를 서민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다.(예레 26,20-23)
유다가 바빌론에 등을 돌리고 이집트와 연합하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BC 598년에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3개월 동안 계속한다.
여호야킴의 사망은 불명확하지만, 바빌론의 포위 공격이 끝나기 전에 그가 사망한다.
여호야킴의 죽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상이하기 때문에 (2열왕 24,6; 2역대 36,6; 예레 22,18.19)
이를 조화시키는 것이 어려워 다양한 의견이 전해지고 있다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이다.
"여호야킴이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자, 그의 아들 여호야킨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2열왕 24,6)
"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올라와서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2역대 36,6)
예레미야는 여호야킴이 정상적인 장례 절차 없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예레 22,18-19; 36,10).
18그러므로 주님께서 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도 그를 위하여 애곡하지 않으리라.
“아이고, 나의 형제여! 아이고, 자매여!” 아무도 그를 위하여 애곡하지 않으리라.
“아이고, 임금님! 아이고, 폐하!”
19사람들은 노새를 묻듯 그를 묻으리라.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에 멀리 내던지리라.(예레 22,18-19)
30그러므로 주님께서 유다 임금 여호야킴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의 후손 가운데 아무도 다윗 왕좌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고,
그의 시체는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추위에 내던져질 것이다.(예레 36,30)
한편 랍비 문헌은 여호야킴을 잔인한 죄와 범죄를 저지른 불경한 폭군으로 묘사한다.
그는 며느리, 계모와 근친상간 관계를 맺고 살았으며, 남자를 살해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들의 아내를 범하고 재산을 압수했으며, 몸에 문신도 새겼다고 기록한다.
또한 랍비 문헌은 여호야킴의 비참한 말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기록은 산헤드린이 네부카드네자르의 요구에 응하기 전에 여호야킴이 예루살렘에서 죽었기 때문에
네부카드네자르는 벽 너머로 던져진 여호야킴의 시신에 만족해야 했다고,
다른 기록은 여호야킴이 성벽에서 떨어지면서 죽었다고,
또 다른 기록은 네부카드네자르가 여호야킴을 온 유다 땅으로 끌고 다닌 후,
그를 죽인 다음 그의 시체를 개들에게 조금씩 던졌다고,
이외에도 여호야킴을 죽은 나귀의 가죽에 넣었다는 기록들도 있다(참조 위키피디아).
37그는 자기 조상들이 하던 그대로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2열왕 23,37)
유다-19 여호야킨
바빌론 연대기에 따르면,
여호야킴 시대에 있었던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한 1차 예루살렘 함락은 기원전 597년 아다르 달 2일(3월 16일)이다.
포위 동안에 여호야킴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킨(여콘야, Jeconiah)이 계승하지만,
즉위 3개월 후에 예루살렘에 들어온 네부카드네자르가 여호야킨을 폐위하고,
그의 동생인 치드키야를 임금으로 세운다(2열왕 24,17).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호야킨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마침대 여호야킨과 그의 집안 및 많은 유다 백성이 바빌론으로 유배된다.
10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11이렇게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 도성에 이르렀다.
12그러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
대신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빌론 임금에게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바빌론 임금은 그의 통치 제팔년에 여호야킨을 사로잡았다.
13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참조 ☞ 2열왕 20,17],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에 있는 모든 보물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내가고,
이스라엘 임금 솔로몬이 주님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금 기물들을 모조리 떼어 냈다.
14또한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 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여 나라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15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을 모후와 왕비들,
내시들과 나라의 고관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끌고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데려간 것이다.
16바빌론 임금은 또 훌륭한 사람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등,
전투할 수 있는 건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2열왕 24,10-16)
바빌론으로 끌려간 여호야킨은 바빌론의 유대인 공동체의 첫 번째 세습 통치자로 여겨진다.
에제키엘은 에제키엘서에서 여호야킨을 임금으로 언급하고
그가 포로 생활을 한 햇수에 따라 특정 사건의 연대를 정한다.
에제키엘은 자신을 여호야킨과 동시대 사람이라고 밝히나 치드키야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2열왕 25,27-30절에 따르면, 여호야킨은 아멜 마르둑(에윌 므로닥)이 왕위에 오르고
궁정에서 권위 있는 지위를 얻은 해인 "포로 생활 37년"에 감옥에서 풀려난다.
바빌론에서의 여호야킨의 석방은 열왕기와 신명기 역사를 마무리짓는다.
27유다 임금 여호야킨의 유배살이 제삼십칠년 열두째 달 스무이렛날이었다.
바빌론 임금 에윌 므로닥은 자기가 임금이 된 그해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다.(2열왕 25,27)
여호야킨은 일곱 자녀를 두었다.
스알티엘, 말키람, 프다야, 센아차르, 여카므야, 호사마, 느다브야 (1역대 3,17-18)가 그들이다.
여호야킨은 프다야의 아버지로 역대기 첫째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의 후손들의 명단은 1역대 3,17-24에 나와 있다.
예레미야(22,28-30)는 여호야킨에게 그의 후손 중 아무도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30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사람을 자식 없는 자로 기록하여라.
그는 자기 생애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의 자손들 가운데에서는 다윗 왕좌에 앉아 다시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나오지 않으리라.”(예레 22,30)
마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여호야킨 임금인 여콘야를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마태 1, 11).
12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2-16)
유다-20 치드키야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여호야킨이 폐위되고 그의 삼촌인 치드키야가 임금에 오른다.
바빌론에 의해 임금에 오른 치드키야가 바빌론 임금에게 반역한다(2열왕 24,20)
예레미야가 이집트 파라오 호프라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집트와 동맹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한다.
3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이제 내가 유다 임금 치드키야를 그의 목숨을 노리던 원수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손에 넘겼듯이,
이집트 임금 파라오 호프라를 그의 원수들 손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 손에 넘겨주겠다.’”(예레 44,30)
치드키야는 예레미야, 바룩 및 기타 가족 및 고문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 여호야킴이 바빌론 임금에게 당한 사실을 무시하면서,
이집트의 파라오 호프라(Hophra)와 동맹을 맺는다.
마침내 네부카드네자르가 유다를 침공한다(2열왕 25,1).
네부카드네자르가 BC 589년 12월에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시작한다.
이 포위 공격 동안, 모든 최악의 재난이 도시에 닥치고,
하느님의 진노의 잔의 찌꺼기를 마시게 된다(2열왕 25,3; 애가 4,4-5).
1그래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2열왕 25,1)
3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2열왕 25,3)
4젖먹이는 목말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고
어린것들은 빵을 달라고 애원하건만 그들에게 한 조각 주는 이가 없구나.
5맛있는 것만 먹던 아이들이 거리에 쓰러져 움직일 줄 모르고
자주색 옷에 싸여 업혀 다니던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껴안고 있구나.(애가 4,4-5)
약 30개월 동안 성을 포위한 네부카드네자르가 BC 587년에 마침내 예루살렘 함락에 성공한다.
치드키야와 그의 추종자들은 도시를 빠져나와 탈출을 시도하지만 예리코 평원에서 사로잡혀 리블라로 끌려간다.
치드키야는 리블라에서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바라본다.
그런 다음 그의 눈이 뽑히고 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가(2열왕 25,1-7; 예레 32,4-5; 39,1-7; 52,4-11; 에제 12,13),
치드키야는 여호야킨과는 달리 바빌론에서 죽을 때까지 죄수로 남아 있게 된다.
그의 조카 여호야킨은 자발적으로 항복했지만,
치드키야는 자신을 유다의 임금으로 임명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반역하였기 때문이다.
4그래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 [9] 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다.
그들은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5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 [11] 년까지 포위당하였다.
6넷째 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굶주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7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이 모두 달아났다.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나가 아라바 쪽으로 갔다.
8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치드키야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9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10바빌론 임금은 리블라에서 치드키야가 보는 가운데,
그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유다의 모든 대신들도 살해하였다.
11그러고 나서 바빌론 임금은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는,
죽는 날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예레 52,4-11)
13그러나 나는 그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겠다. 내가 친 망에 걸리면,
나는 그를 칼데아인들의 땅 바빌론으로 끌어가겠다.
그러면 그는 거기에서 그 땅을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에제 12,13)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네부카드네자르는 느부자르아단을 보내어 도성을 파괴하게 한다.
이에 도성은 약탈되어 쑥대밭이 되고,
솔로몬의 성전은 불타게 된다.
소수의 포도 재배자와 농부들만이 그 땅에 남아 있도록 허용되었다.(예레 52,6)
8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9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11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12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2열왕 25,8-12)
16그러나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에레 52,16)
유다가 BC 587년에 멸망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BC 1406년 약속의 땅에 들어온 지 820여 년이 지났다.
유다의 멸망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계명,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이다.
유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다.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치드키야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2역대 26,12)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반역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대신에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2역대 26,13)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2역대 26,14)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2역대 26,15)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2역대 26,16) |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의 대부분의 임금들은 치드키야 처럼, 자신을 낮추지 않고, 목이 뻣뻣하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셨지만 구제할 길이 없었다. |
'역사서 > 남 왕국 유다(열왕+역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시야, 예언의 표징인 임금(유다 16대) (0) | 2023.01.13 |
---|---|
아몬(유다 15대) (0) | 2023.01.13 |
므나쎄, 예루살렘을 무죄한 피로 채운 임금(유다 14대) (0) | 2023.01.13 |
히즈키야(유다 13대) (0) | 2022.12.30 |
아하즈(유다 12대) (0) | 2022.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