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영성

정의와 공정을 거스르며 파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

좋은생각으로 2024. 1. 24. 10:48

정의와 공정을 거스르며 파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

사람의 역사가 시대를 달리하여도 소멸되지 않는 이유는

앞서 간 사람들의 경험과 지론이 대를 이어 기록 혹은 전승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 혹은 지식은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직업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선생, 스승 혹은 교사라 불린다.

 

배우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선생 및 교사들에 의해 당연히 참 교육을 받지만,

때로는  시대 혹은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변질된 거짓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발생한다.

변질되거나 왜곡된 학문과 역사는 과거와의 단절을 초래하므로,

이러한 영향을 받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취약한 본래의 자아보다는

황당한 논리에 의해 작위적으로 취사선택한 우월적 거짓 자아가 형성된다. 

 

이러한 자아 도취성 비교 우위적 우월감은  

이들 무이성적 집단에게 정의롭지 못한 무소불위적 연대감을 형성하게 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정의와 공정을 바라는

선한 백성과 민족 혹은 국가의  존폐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성경 사가들이 

자신들에게는 치욕적인 사실일지라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음을 성경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북 왕국 이스라엘의 몰락에 대한 반성(2열왕 17,7-23)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바빌론 유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체성이 소멸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을 통해 드러내신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으로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및 예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온 후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삿된 일에 추종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편승한다.

그러기에 이사야가

"너의 첫 조상부터 죄을 지었고 너의 대변자들도 나에게 반역하였다."(이사 43,27)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쏟아내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에 대한 반역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되었다.

 

유다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는

백성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무지함에 의한 것으로, 

그 첫 번째 책임은 무지하고 무능한 지도자,

사제 및 거짓 예언자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성경 사가들이 자기 성찰적 통회와

그에 따른 회개의 모습으로 성경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현재에도 이스라엘의 거짓 예언자와 교사와 지도자들 같은 자들이

거짓을 만들어내는 거짓 철필로(예레 8,8) 

참으로 부단히 하느님의 마음을 저미고 있다. 


그릇된 가르침과 잘못된 배움의 결과는

"보라, 주님의 날이 오다.

무자비한 그날이 진노와 격분과 함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그 죄인들을 땅에서 절멸시키러 온다."(이사 13,9)라는 말씀처럼

성경에 그대로 드러나듯 참으로 가혹한 종말이니(이사 13,9),

예수님께서도 이와 관련된 눈먼 율법 교사와 학자들에 대해

당신의 노여움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신다. 

 

▶눈먼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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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 15,14)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루카 11,45) 혹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율법 교사와 율법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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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교사 a scholar of the law와 율법 학자 the scribes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도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a scholar of the law]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마태 22,35)라는 본문처럼 이들에 대해 '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5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태 22,35-36)

35 and one of them [a scholar of the law] tested him by asking,

36 Teacher, which commandment in the law is the greatest?”(마태 22,35-36)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8,19)

19A scribe approached and said to him,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마태 8,19)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45)

45 Then one of the scholars of the law said to him in reply,

“Teacher, by saying this you are insulting us too.”(루카 11,45)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25 There was a scholar of the law* who stood up to test him and sai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루카 10,25)

Scholar of the law: an expert in the Mosaic law,

and probably a member of the group elsewhere identified as the scribes (루카 5,21)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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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와 사두가이:  바리사이는 서면과 구두로 율법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고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들이 주로 이들 그룹에 속했다.

사두가이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제 귀족 집단이었다.

그들은 구약의 처음 다섯 권만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율법의 문자만을 따랐으며,

구전된 율법 전통을 거부하고,

죽은 자의 부활과 같은 오경에 없는 가르침을 반대했다.

마태오는 이 두 그룹을 예수님의 적으로 간주한다(마태 16,1.6.11.12; 마르 8,11-13.15). (마태 3,7. RNAB 주석)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마태 3,7)

 

예수님께서 이들을 비판하신 이유는

신약 시대의 유다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한데도,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편향된 생각으로 변질시켜

백성들을 잘못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 교사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 말씀을 그들 머리 속의 짧을 지식으로 변질시켜

백성들을 그릇되게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과거 거짓 예언자들이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유다 사회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에 대한 파멸적인 결과가 극명하게 보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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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8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마태 23,37-38)

 

 

시온 가는 발걸음

제자들아! 마지막 나의 여정. 이제 한 주 남았구나. 자, 일어나 시온으로 가자! 베드로야! 나의 반석아! 네가 날 무엇이라 하였느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하지 않았느냐? 요한아!

suhbundo.tistory.com

 

그렇다면 백성을 잘못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

즉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어떠한 행태를 보였는가?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하신 말씀을 새겨보자

예수님 말씀의 대상이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이지만

그들은 현재의 거짓 교사들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현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인들은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거짓 교사들의 유해함에 대해 사도들은 이미 직시하고 있었다.

베드로 사도가 백성에게 말한다.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는 거짓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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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2베드 2,1)

2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들의 방탕한 행실을 본받아,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모욕을 받을 것입니다.

3ㄱ그들은 또 탐욕에 빠져,

지어낸 말로 여러분을 속여 착취할 것입니다.(2베드 2,2-3ㄱ)

베드로 사도가 세례로 신앙인이 된 사람들에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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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21 의로움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편이 나을 것입니다.(2베드 2,20-21)

베드로 사도의 우려는 사도 시대에 대한 것이지만,

사도의 말은 교언과 잡설에 넘어가지 않는 참된 신앙인이 되라는 것이므로

이천여 년이 지난 현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니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5)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거짓 예언자들과 다름없는 거짓 교사들을 단죄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실 것이다.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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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ㄴ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이사 63,19).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이처럼 큰 노여움을 쏟아내셨으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마태 24,24) 그리고 거짓 교사들(2베드 2,1)에게는 

요엘이 부르짖은  피맺힌 절규가

"주님의 날"(2베드 3,10)에

피못이 되어 들이박힐 것이다.    

 

▶요엘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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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님께서 당신 군대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신다.

정녕 그분의 군대는 많기도 하고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이는 막강하기도 하구나!

주님의 날은 큰 날 너무도 무서운 날 누가 그날을 견디어 내랴?(요엘 2,11)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시다

이제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인 거짓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하다고 하신 말씀을 들어본다(마태 23,1-36; 마르 11,38-40; 루카 11,39-50; 20,45-47)

 

성경 본문(마태 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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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마르 12,38-40) ; (루카 11,39-52) ; (루카 20,45-47)

1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 ②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15 ③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④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23 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⑥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27 ⑦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⑧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33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34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35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36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마태 23,1-36)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루카 13,34-35)

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8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39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마태 23,37-39)


1.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마태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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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2-3)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모세의 권위에 대한 단순한 비유인지 혹은 율법 학자가 앉았던 실제 의자와 관련된 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복음 이후의 시대에, 본문의 설명처럼 지정된 의자가 회당에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마태 5, 31-42)을 폐지하시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에 대해 경고하시고(마태 14, 1-12), 

이 담론에서, 바리사이들의 맹세에 관한 가르침과 관련하여

눈먼 안내자들로 바리사이들을 비난하시므로(마태 23, 16-12), 

그들이(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라는 이 계명은

복음사가가 이해하는 교회의 합당한 행동 표준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마태오 공동체가 대부분 유다인 그리스도인이었고

여전히 회당과의 완전한 단절을 피하려고 노력하던 시대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RNAB 주석)


2.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마태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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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마태 23,5)

 

예수님께서는,

말은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는(마태 23,3) 당신의 말씀에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한다는 비난을 덧붙이신다.

제자들은 이미 동일한 잘못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마태 6,1-18). (RNAB 주석)


3.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마태 2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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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8-12)

 

다양한 칭호의 사용에 대해 경고하는 이 구절은

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인들을 지칭할 때 '랍비'라는 칭호만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마태 23,7),

제자들에게 이러한 호칭의 사용을 금지한 것은

마태오의 교회에서도 그러한 호칭이 사용되었을 시사 한다.
마태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칭호뿐만 아니라

그 칭호를 받아들임으로써 나타나는 우월감과 교만의 정신도 금하신다. (RNAB 주석)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7 greetings in marketplaces, and the salutation ‘Rabbi.’(마태 23,7)


4. 여덟 번의 "불행하여라" (마태 23,13–36)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여덟 번의 “불행하여라”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연속된 담론의 핵심이다.

"불행하여라"라는 구절은 죄악과 죄지은 자들에 대한 벌의 공포를 표현하는

예언 및 종말론적 문학에 자주 나타난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인의 위선은

종교인으로서의 그들의 명성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마태 23,5),

즉 말과 행동의 불일치(마태 23,3)와

그들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RNAB 주석)

 

 

1) 첫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마태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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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 열쇠를 주시겠다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는 구절인 마태 16,19 비교

이 비유에 의해 표현된 권위의 목적은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려는 것이다(하늘나라는 권위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만 닫혀 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여기에서 책임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권위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에 장애가 되는 방법으로 행사되는 것이다: “율법 학자들”에 대한 비난은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다는 구절인 루카 11, 52 비교. (RNAB 주석)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2) 두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약자의 가산을 등쳐 먹고 기도를 가식적으로 길게 하기 때문이다.(마태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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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일부 필사본은 마태 13,12 뒤에 이 구절을 추가한다.  

비교: 마르 12,40; 루카 20,47.

이 “불행하여라”는 마르 12,40과 거의 같으므로 마르코 본문에서 유래된 삽입구라 할 수 있다.(RNAB 주석)

 

40"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2,40)

47"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욱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루카 20,47)

 

3) 세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개종자를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태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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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 세기, 로마에 대한 제1 차 유다 반란(AD 66-70)까지,

많은 바리사이들이 비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선교 운동을 수행했다.

 

개종자: 문자 그대로, “전향자”, 할례와 모세 율법의 다른 모든 요구사항에 순종하여 유대교를 완전히 받아들인 비 유대인들. 

지옥의 자식으로: 영원한 벌을 받을 자격이 있는.

너희보다 갑절이나: 아마도 이 말은 개종자를 개종했던 사람을 넘어서는 개종자의 열성을 단순히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RNAB 주석)

4) 네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헛되이 맹세하는 눈먼 인도자들이기 때문이다.(마태 23,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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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어떤 맹세는 구속력이 있고(하나는 의무적이고) 다른 맹세는 그렇지 않다고(아무것도 아님을 의미함) 선언한 궤변과

더 낮은 가치의 것 (금, 제단의 선물)으로 행한 것이 구속력 있는 맹세라는 것에 대한 공격.

가치의 순서를 뒤집는 그러한 가르침은 교사들이 눈먼 안내자임을 드러낸다. 참조. 마태 15,14.

 

 14"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 15,14)

 

마태복음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맹세를 금하셨으므로(마태 5,33-37),

이 '불행하여라'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표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인들의 용어로 그들을 조롱한다. (RNAB 주석)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    

 

5) 다섯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마태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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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모세 율법은 땅의 생산의 십일조 징수를 명령했으며(레위 27,30; 신명 14,22-23),

여기에서는 율법 학자들이 모세 율법을 가장 작은 풀까지도 확장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행위가 행위 자체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들이 율법보다 중요한 사실을 부정하고 중요성이 낮은 문제에 집착하기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RNAB 주석)

 

6) 여섯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마태 23,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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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식사 도구를 씻는 예식(참조, 마르 7,4)이 내면의 순결을 무시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은유로 바뀌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인들이 겉은 깨끗이 씻지만 속은 더러운 잔에 비유된다.

 

4"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마르 7,4)

 

방종: 여기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음주나 성행위에 있어서 자제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RNAB 주석)

 

 

7) 일곱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속이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마태 2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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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일곱 번째 "불행하여라"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겉에는 관심을 갖지만 속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것을 다룬다.

 

무의식적으로도 시체와의 접촉은 예식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민수 19,11-22), 누구도 무심코 그런 부정에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무덤을 회칠했다.(RNAB 주석)

 

11 누구의 주검이든 그것에 몸이 닿는 이는 이레 동안 부정하다. 12 그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에 그 물로 자신을 정화하면 정결하게 된다. 그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에 자신을 정화하지 않으면 정결하게 되지 않는다. 13 누구든지 주검, 곧 죽은 사람의 몸에 닿은 이가 자신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는 주님의 성막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가야 한다. 정화의 물을 자기 몸에 뿌리지 않아, 그가 부정한 그대로이며 그의 부정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14 사람이 천막 안에서 죽었을 경우와 관련된 법은 이러하다. 그 천막에 들어가는 이나 천막 안에 있던 이는 모두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 15 끈으로 맨 뚜껑 없이 위가 열린 그릇도 모두 부정하게 된다. 16 들에 있다가, 칼에 맞아 죽은 이나 저절로 죽은 이, 또는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는 이는 모두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 17 이렇게 부정하게 된 이를 위해서, 속죄 제물이 타고 남은 재를 얼마쯤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생수를 붓는다. 18 그런 다음, 정결한 사람이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천막과 모든 기물과 그 안에 있던 이들에게 뿌린다. 뼈나 살해된 이나 저절로 죽은 이나 무덤에 몸이 닿은 이에게도 그렇게 한다. 19 정결한 이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에 부정한 이에게 그 물을 뿌려 준다. 이렇게 정결한 이가 이레째 되는 날에 부정한 이를 정화해 주면,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는다. 저녁때가 되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20 부정하게 된 사람이 자신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는 공동체에서 잘려 나가야 한다. 그가 주님의 성소를 부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화의 물을 자기 몸에 뿌리지 않아, 그는 부정하다. 21 이는 그들이 지켜야 할 영원한 규정이 되어야 한다. 정화의 물을 뿌린 이는 자기 옷을 빨아야 한다. 정화의 물에 몸이 닿는 이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2 부정한 이가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되고, 그것에 몸이 닿는 사람도 저녁때까지 부정하게 된다.”(민수 19,11-22)

 

8) 여덟 번째 "불행하여라"

너희가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손들이기 때문이다.(마태 23:29–32)  

 

마지막인 여덟 번째 불행(마태 23,29-32)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심각한 징벌이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예언자들과 의인들을 살해한 그들의 조상들처럼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는 것으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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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33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34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 prophets과 현인들 wise men과 율법 학자들 scribes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35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36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마태 23,1-36)

 

무덤을 만들고 묘를  기념물을  장식하여 죽은 자를 기리며, 그들이 당시에 살았다면 조상의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인들은 그들의 조상의 진정한 자녀이므로,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라는 예수님으로부터 도전적인 명령을 받았다.
이 순서는 하느님의 최종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완성되어야 할 할당된 고난에 대한 유다인의 관념을 반영한다.(RNAB 주석)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4-36)

 

▶본문 관련 Q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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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Q 자료의 마태오 형식과 루카 형식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루카 11,49~51 비교.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 prophets과 사도들 apostles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49-51)


루카 복음에서 사자를 보내는 이는 “하느님의 지혜”이다.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본문이 Q 자료의 원래 표현이라면, 마태오는 율법 학자들을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기록하여, 예수님을 의인화된 신성한 지혜로 제시했다.

루카 복음에서 지혜의 사자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사도들”이다.

마태오 복음의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은 아마도 그리스도교 제자들일뿐이다. 마태 10,41 비교. (RNAB 주석)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 10,41)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5.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마태 23,37–39)

정의와 공정을 거스른 유다 사회의 지도층인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

즉 거짓 교사들의 행동은 유다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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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루카 13,34-35)

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8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39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마태 23,37-39)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본문의 루카복음 13:34~35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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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루카복음 13:34~35.
바리사이파 유대교에 대한 비난은 예루살렘에 대한 이 한탄으로 끝난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거부하고 살해했다.

몇 번이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번 도성을 방문하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요한복음에서는 발견되지만 공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 이와 유사한 비유를 보려면 시편 17,8; 91,4 참조.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아마도 서기 70년의 성전 파괴를 암시할 것이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최후의 심판을 위해 영광 안에 오실 때까지 예수님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라는 환호는 대조적인 방식으로 해석되었는데,

그렇게 말할 때에 이스라엘이 마침내 예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징후로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유죄선고를 선언할 두려워하던 판관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의 당혹한 인식이다.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려면 마태 24,30을 참조하라. (RNAB 주석)

 

30 그때 하늘에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면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 24,30) 


에필로그

이십일 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등 다양한 전자기적 접속에 의해 수많은 자료를 접하게 된다. 

각종 정보가 빛의 속도로 흐르는 인터넷 망은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거의 무제한적 정보 접근성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데이터들에는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인 오류성 자료가 포함된다. 

정보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공급자의 목표이겠지만

때로는 비과학적, 비인지적, 비상식적 자료들이 범람하게 되는 환경에 의해

사용자가 오류 정보에 의한 정신적 혹은 물리적 피해를 겪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성 자료들을 잘못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오류적 사고의 틀에 빠지게 되므로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요구되기도 한다. 

산술적 계산 혹은 과학적인 실험 결과도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수많은 답이 변형되어 나올 수 있듯이,

인문적 사고의 틀에서 쏟아지는 생각의 관점은 

제공 혹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변형적 논리가 적용되어

획일적 혹은 의도적인 주장에 대해

무비판적 혹은 무조건적인 수용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하느님 말씀은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6,17)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시작이며 끝인 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2베드 2,1)

거짓 교사들이 보편 교회의 성경이 아닌 왜곡된 자료로  선한 백성들을 호도한다.

이는 "양심이 마비된 거짓말쟁이들의 위선 때문"이니(1티모 4,2)

"얘야, 내 말을 듣고 지식을 얻어라.

내 말에 너의 마음을 기울여라."(집회 16,24)라는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지혜 안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다. 


인터넷 망은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의 산물이지만

세상 만물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과학적 질서임을 성경은 명확히 공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 담긴 과학적인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수천 년 전 구약 시대에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어느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삶과 직결된 위생이다. 

이는 레위기에 나온 각종 미생물과 관련된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물은 순환 주기를 갖는다. 순환 주기는 태어나서(탄생), 살다가(삶),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귀환) 과정으로, 유전적으로 끊임없이 순환 및 지속되려는 속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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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구약 시대 사람들이 도저히  알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미생물과 관련된 과학적인 예방과 처방을

미생물을 표징으로 하여

수 천년 전 모세에게 내리신

시작이며 마지막이신 하느님 말씀이(묵시 22,13)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니 

거룩하시고 영원히 찬미받으실 하느님의 말씀에 어느 누가 감히 대들려 하는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창세 3,19)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욥 41,2) 

당신께서

"높은 데에 계시니 주님께서는 드높으시고 시온을 공정과 정의로 채우셨다."(이사 33,5)

그러므로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잠언 21,3)

 

 

 

이사 56,1-2.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의인의 구원(3이사-1)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의인의 구원 의인에 대한 구원은 이사야서 전체에 걸쳐 잘 알려진 주제를 반영한다. 즉 정의와 공정한 심판, 구원과 해방이다. 이들 주제는 제3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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